말씀: 벧후3:18
부흥을 위한 기도회 삼십 이 일째입니다. 생명의 특징은 자라는 것입니다. 식물이 자라서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듯이 무릇 생명이란 모두 성장을 해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은 씨를 주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자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 주님의 창조 작품입니다. 생명은 주님이 주신 것이요, 자라게 하시는 분 역시 주님이십니다. [그분께서 가축이 먹을 풀과 사람이 쓸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음식이 나게 하시되](시104:14). 가축이 먹을 풀, 사람이 쓸 채소를 자라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땅에서 음식이 나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늘을 구름들로 덮으시고 땅을 위하여 비를 예비하시며 산들에 풀이 자라게 하시고](시147:8). 산들에 풀이 나서 자라는 것도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주님은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의 믿음과 영을 자라게 하시는 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낳으신 분도 주님이시오, 자라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자나 물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6-7). 성장이 없는 것은 비정상입니다. 자라나지 않으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영적 갓난 아이들이 들끓었을 뿐 성장한 사람이 없다는데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같이 하였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단단한/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못하기 때문이라.] (고전3:1~2). 아이들은 자기만 압니다.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이 유치합니다. 아이들은 생산성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약합니다. 아이들은 잘 깨닫지를 못합니다. 말씀을 받을 때는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받고, 믿을 때도 쉽게 믿고, 악을 행하는데도 어린 아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결코 어린 아이처럼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많습니다. 성경은 성장을 명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되어서는 아무 힘도 능력도 지혜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나야 합니다. 아이들은 무엇이라고 말하든 간에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 아이들”입니다.
◇ 깨닫는 데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아이와 같으며 생각하는 것이 아이와 같았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유치한 일들을 버렸나니](고전13:11). 아이의 일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아이들의 유치함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어른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장난감 총, 장난감 칼로 병정놀이를 할 수는 없습니다. 어른은 장난감이 아니라 뭐든지 실제를 가지고 놀이대신 일을 해야 하고, 전투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생각하는 것이 어른다워야 하고, 깨닫는 일에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어린 애 티를 벗지 못한 어른들은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형제들아, 깨닫는 일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너희가 오직 악한 일에는 아이가 될지라도 깨닫는 일에는 어른이 될지니라.](고전14:20).
◇ 어린 아이는 종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제 내가 말하노니 상속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아이일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고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는 가정교사와 감독하는 자 밑에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아이였을 때에 세상의 초등 원리 밑에서 종노릇하였느니라.] (갈4:1~3). 영적 성장을 하지 못한 채 어린 아이로 머물러 있으면 여전히 종노릇을 합니다. 종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유하는 자가 아니라 누가 시키는대로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판단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신분은 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종같이 살게 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요8:32).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고후3:17). 어린 아이들은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 어린 아이들은 쉽게 속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간교한 술수로 속이고자 하는 자들의 온갖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엡4:14). 아이들을 속이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영악해 보여도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입니다. 유혹하면 거의 넘어갑니다. 이것이 요즘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유혹하는 영들의 가벼운 유혹에도 다 쫓아갑니다. 속아 버립니다. 이유가 뭡니까?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어린 아이들은 돌봄이 필요합니다. [오직 너희 가운데서 부드러운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아이들을 돌보듯 하였으니](살전2:7). 아이들은 유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유모(乳母)란 젖을 주는 어머니를 말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젖을 먹어야 합니다. 목자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 어린 아이들은 의에 말씀에 능숙하지 못합니다. 지각을 사용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분별력이 거의 없습니다. [이는 시간으로 보건대 너희가 마땅히 가르치는 자가 되었어야 할 터이나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 원리인 것들을 남에게 다시 배워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 너희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자가 되었나니 이는 젖을 사용하는 자마다 갓난아이이므로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한 자로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니 그들은 곧 /그것을/ 사용하여 자기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5:12~14). 이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람 말을 들어 보면 이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어 보면 저 말이 옳은 것 같습니다. 교회 와서 목사님 말씀을 들어보니 이렇게 살아야 할 것 같고, 집에서 부인 말을 들어 보면 그게 아닌 것 같고, 직장에서 동료들 말을 들어보면 또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분별력과 판단력이 없습니다. 이것이 모두 어린 아이의 특징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선한 말씀, 은혜의 말씀은 좋아하지만 단단한 고기에 해당하는 질긴 의의 말씀은 싫어합니다. 주어도 먹을 줄을 모릅니다.
우리는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일들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나무나 풀이 자라듯이 믿음도 그렇게 자랄 수만 있다면 우리는 기도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양육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저절로 알아서 다 자라주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잡초나 엉겅퀴와는 달리 무릇 쓸 만한 것들은 모두 보살핌과 손길이 필요합니다. 심는 자와 물주는 자가 필요합니다. 농부의 땀이 필요하듯이 성장을 위해서 땀을 흘리는 뜨겁고도 효과적인 기도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장을 명하셨습니다. 주님이 친히 자라나게 하시는 분이시요,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이시지만 성장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효과적인 성장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이 젖으로 자라가도록 하라.](벧전2:2).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보다 성장이 빠른 사람이 없습니다. 잘 먹는 아이가 잘 크듯이 말씀을 사모하여 듣고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영적 성장을 이룹니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이 부모의 기쁨이요, 제자들이 자라나는 모습이 스승의 기쁨이요, 묘목이 자라나는 것이 농부의 기쁨이듯이 성도의 성장은 주님의 기쁨입니다.
둘째,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여 모든 일에서 그분 안으로 자라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엡4:15). 우리의 일상 대화는 농담이나 허황된 말, 비속한 말이나 세상 이야기로 가득차서는 안됩니다. 말씀이 마음 속에 풍부히 거하게 하여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이런 대화는 서로의 믿음을 세우고, 덕을 세우며, 영적 성장을 돕습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대화 상대가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은 급격히 자라나게 됩니다. 반대로 악한 사귐, 부패한 대화는 있던 믿음마저 사라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셋째, 머리되신 주님으로부터 공급을 받아 자라나라. [그분으로부터 온 몸이 각 마디의 공급하는 것을 받아 서로 꼭 맞게 결합되고 들어차서 각 부분의 분량대로 효력 있게 일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고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워 주느니라.](엡4:16). 주님과 밀착하면 할수록 성장이 빠릅니다. 주님 안에 꾸준히 거하면 주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아 자라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머리와 분리된 몸이 자랄 수 없듯이 주님과 분리된 성도는 성도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리적으로 몸된 주님과 분리 될 수 없음을 압니다. 영적 신분에서는 단절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 관계성, 친교(fellowship)에서는 주님과 단절된 성도가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과의 친교를 회복하십시오. 성장은 주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성에서 비롯됩니다.
넷째, 머리를 붙들라.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느니라. 온 몸이 머리로부터 마디와 힘줄에 의해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결합하여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느니라.](골2:19). 골로새 교회의 특징은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고 철학과 율법,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 초등학문을 붙들었습니다. 이런 것들로는 누구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머리를 붙들라고 권면합니다. 세상 학문이나 철학이나 종교가 나의 믿음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목회를 잘하기 위해서 철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교 종교학을 공부해보고, 인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을 공부해 보아야 한다는 등의 주장도 있습니다. 중동의 문화를 이해해야 성경을 잘 알 수 있다, 유대의 전통과 관습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면 그런 것들을 붙드는 자들은 절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온 몸이 머리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아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대로 자라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붙들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장의 처음이요, 전부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토록 그분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후3:18). 우리의 지식은 점점 자라가야 합니다. 지금은 정보 혁명, 지식 본위의 시대입니다. 지식의 격차가 삶의 격차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지식은 자연 과학, 인문 과학적 지식입니다. 외국어를 습득하고 전공 분야에 관련된 지식만을 습득하는 것을 전부로 압니다. 쓸 만한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잘 먹고 잘 사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자라가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지식을 배우고 익혀서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은 목사나 신학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성장하고 열매 맺기 위한 것입니다. 저 하늘에서 보상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가장 뛰어난 것입니다. 법을 아는 것, 몸의 질병을 아는 것, 경제를 아는 것은 편리를 주지만 주님을 아는 지식은 영생을 줍니다. 이 지식은 비교를 불허하는 지식입니다. [참으로 모든 것을 확실히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8). 주님을 아는 지식은 세상 다른 모든 지식을 배설물로 여길 만큼 탁월합니다. 그 속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2:3).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골1:10). 우리 모두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고 지식이 자라고 은혜 안에서 자라는 등 이런 성장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기본이 되는 한 가지는 이 교회를 통해 성도 각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교회의 성장이란 곧 말씀의 성장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旺盛)하여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제사장들의 큰 무리도 이 믿음에 순종하니라.] (행6:7). 말씀이 증가했습니다. 교회의 사람들(제자들)의 수가 불어나기 전에 먼저 나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란 말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은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계속해서 기도했고 천사가 베드로를 감옥에서 데려 나왔습니다. 베드로를 죽이려던 헤롯은 주의 천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기록된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자라나고 흥왕하더라.](행12:24). 교회의 성장이란 곧 말씀의 성장이란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이 자라고 세력을 얻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선교 현장에 보여 지는 현상을 주목해 보십시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하게 자라가고 세력을 얻으니라.](행19:20).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하고 바라는 간절한 기도 제목입니다. 이를 위해 모두 같이 기도합시다.
☜ 암송할 말씀: 벧후3:18, 빌3:8
☜ 생각해 볼 문제:
- 영적 성장의 성경적
방법과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 영적 어린 아이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 우리가 자라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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