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빌3:10,11
부흥을 위한 기도회 삼십 일째입니다. 오늘은 부활의 권능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5대 신앙이라고 하면 [창조 신앙, 성육신 신앙, 십자가 신앙, 부활 신앙, 재림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일컬어 기독교 2대 신앙, 양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권능, 성령의 능력은 부활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애 동안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가장 강력하게 선포한 사건은 물위를 걷는 것이나 나병 환자를 고치신 사건이나 소경을 고치신 것,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부활’에 있습니다. 모든 이적적인 사건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받은 사람들도 행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실 수 있습니다. 주의 영이 임한 대언자들 가운데도 죽은 사람을 일으키고, 병을 고치고,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고, 요르단 강을 갈랐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면 사람이라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런 일만 하셨다면 대언자들 중의 한명이라고 해도 그만입니다. 십자가로 끝이라면 예수님은 구약의 많은 능력 있는 대언자들 가운데 한 명 정도로 인식되고, 아깝게도 죽임을 당해 버렸다는 선에서 끝이 날 것입니다. 실제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그렇게 알았고 믿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에 능력있는 대언자였거늘 수제사장들과 우리의 치리자들이 그분을 넘겨 주어 사형으로 정죄받게 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그러나 우리는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할 분이시라고 믿었노라](눅24:19b-21a). 그런데...젠장, 다 틀렸어!, 거짓말이었어! 헛 믿었어!, 아 그러나 그것은 꿈이었어! 이것이 당시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이 믿었던 전부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자신들의 믿었던 믿음, 꿈, 기대, 소망은 다 무너졌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근거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시란 증거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부활은 누구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참 하나님이심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듭니다. [거룩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사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드러나셨느니라.](롬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능력은 부활을 통해 가장 강력하게 선포되었습니다. 죽은 자를 일으키던 사람이 죽었다! 이보다 더 큰 충격도 드물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유대 명절이 가까워 모든 사람들이 모여 들었을 때 그들이 보는 앞에서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무덤에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한 마디로 죽은 사람이 살아서 수의를 입은 채 나왔습니다. 병자를 일으키는 것도 기적이지만 죽은 자를 일으키는 기적이야 말로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런데 그런 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임을 당해 버렸습니다.
3년 반 동안 유대 땅을 흔들어 놓았던 그 예수란 사람이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언도 받고 죽어 버렸습니다. 행여나 죽을 때에라도 천사가 나타나거나 하늘에서 군대가 내려오거나 하는 무슨 기적이 일어나는가 하는 한 가닥 희망을 가졌지만 그냥 죽어 버렸습니다. 장사한 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습니다. 제자들은 흩어져서 도망갔습니다. 주님을 잘 따르던 여인들은 시체에 바를 향료를 준비해서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 때 천사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느냐?](눅24:5b). 천사들은 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느냐? 고 책망을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신대로 죽으셨고, 말씀하신 대로 장사되셨습니다. 그렇다면 말씀대로 일어나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너희가 찾는 줄 내가 알기 때문이라. 그분께서는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 이는 친히 말씀하시던 대로 일어나셨음이니라. 와서 {주}께서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28:5~6). 성경은 빈 무덤을 보여 줍니다.
부활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구약에서도 죽은 자를 일으키신 적이 있고, 공생애 사역 동안에도 나사로와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이들은 모두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죽었던 육신의 생명을 돌려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다시 죽었습니다. 부활은 생명 연장의 꿈이 아니며, 무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살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 엘리사, 베드로, 바울도 죽은 자를 일으킨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새로운 생명, 새로운 몸, 새로운 성품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한 상태는 이렇습니다. [이는 부활 때에는 사람들이 장가가지도, 시집가지도 아니하며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기 때문이니라.](마22:30). 부활할 때에는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습니다. 부활한 몸은 영화로운 몸입니다. 우리의 몸은 한 번 죽고 두 번 죽고 일백 번을 고쳐 죽어도 여전히 흙에 속한 몸입니다. 육에 속한 몸이요, 땅에 속한 몸입니다. 질병과 노화와 죽음 앞에 쓰러지는 몸입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변화된 몸입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게 하시리라.](빌3:21). 이 몸은 사망이 다시 주장하지 못하는 몸입니다(롬6:9). 질병이 엄습하지 못합니다. 영원하며,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몸입니다. 이 몸은 우리 주님과 동일한 몸입니다. [우리가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닌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고전15:49). 상상을 하기가 어려운 그런 몸입니다. 이 몸은 영에 속한 몸입니다. [본성에 속한 몸으로 뿌리고 영에 속한 몸으로 일으켜지나니 본성에 속한 몸이 있은즉 영에 속한 몸도 있느니라.] (고전15:44). 그렇다고 해서 살과 뼈가 없느냐? 있습니다(눅24:39). 영적인 몸은 영이 아니라 몸입니다. 이런 몸을 입는 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시고, 살리신 주님께서 우리의 몸을 살리셔서 그렇게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몸을 입을 것을 생각하면 경이롭기만 합니다. 장차 주님 오실 때 일어날 이 일들에 대해서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있을 때, 현재 육신을 입고 사는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미래에 있을 이 일들을 믿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현재 우리 안에 이 일을 이루실 성령이 거하신다는 점을 믿습니다. 우리 안에서 죽을 몸도 일으키시는 그 권능의 성령이 거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주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그 권능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계시며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은 부활의 권능입니다. 부활의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날마다 죽지만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는 능력이요, 생명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신약 성경에서만 104번이나 언급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 성도들이 부활을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구약 성도들은 모두 부활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러 갈 때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욥 역시 부활을 믿었고, 다윗 역시 부활을 믿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생은 가장 비참한 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사는 동안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이리라.](고전15:19). 부활이 없다면 성도들의 삶은 죽도록 고생하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다른 모든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잘 보여 줍니다. [그분께서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미리 아심을 통하여 넘겨졌거늘 너희가 그분을 붙잡아 사악한 손으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일으켜 세우셨으니 그 까닭은 사망이 그분을 붙들 수 없었기 때문이라.] (행2:23~24). 부활케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자를 일으키는 능력은 생명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 하시니] (요2:19). 주님은 친히 자신이 일어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죽음이란 아무 힘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주님은 친히 일어나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성전이란 말은 자신의 몸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성/전인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2:21). 주님은 자신의 몸이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사흘만에 일어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자신의 죽음과 그 뒤에 있을 부활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장로들과 수제사장(首祭司長)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 뒤에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시되](막8:31).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신 분은 주님 한 분 뿐이십니다. 죽고 나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씀하신 분도 주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들이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침을 뱉고 죽일 것이요, 그가 셋째 날에 다시 일어나리라, 하시니라.](막10:34). 주님이 제자들에게만 은밀히 이 사실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유대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병사를 시켜 무덤을 지키게 한 것입니다. [이르되, 각하, 저 속이는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기를, 내가 사흘 뒤에 다시 일어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마27:63).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부활을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알았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죽음에서 일어나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이는 자신의 능력으로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으사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3:18).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리심을 받은 주님을 봅니다. 부활에서 삼위일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믿음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만일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지 아니하셨으리라. 또 그리스도께서 만일 일어나지 아니하셨으면 우리의 선포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13~14). 우리의 믿음은 전적으로 주님의 빈 무덤, 부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이시란 증거는 부활로 입증됩니다. 부활이 없으면 그는 죽은 자에 불과합니다.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나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죽었다!’하고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주님은 부활이십니다. 우리는 죽음으로서 인생이 끝나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죽음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부활이신 주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을 폐하시고, 무덤을 이기시는 부활의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습니까? 듣고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을 때 여러분 안에는 모든 사망의 그림자들, 어둠의 권세들, 사망의 쏘는 것들이 다 물러가게 됩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있게 되면 죽을 몸도 살리십니다.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주님은 부활이시며, 성령은 부활의 영이십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듯이 부활이십니다. 우리를 부활시키는 분이란 의미를 넘어서서 ‘부활’ 자체란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이시기 때문에 ‘부활이신 주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입니다. 부활은 세상에서 가장 큰 능력입니다. 세상의 힘은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측정하지만 부활의 능력은 죽은 자를 일으키고, 흙으로 돌아가 흔적도 없는 몸을 다시 일으킵니다. 어떤 이들은 죽으면 자신의 몸을 태워서 바다에 뿌리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바람 가운데 흩날려 온 세상에 날아가게 하라고 유언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 때에 그 모든 것을 다시 모아 살아나게 하십니다. 흙 속에서 잠들어서 썩어 있던 강이나 바다에서 빠져 죽어서 물고기 밥이 되었든 화재의 현장에서 다 타버리고 녹아 없어졌든 간에 주님은 그 몸을 다 부활시키십니다.
부활은 기본적으로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을 바라보게 합니다. 주님은 여러 차례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말씀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증거와 증인들의 말도 믿지 못하는 법입니다. 믿음은 증인들과 눈에 보이는 사실적 증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기 때문입니다(롬10:17). 부활하신 주님, 부활이신 주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고, 아무 것도 불가능할 것이 없습니다. 생명이요, 부활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을 때 주님이 일하십니다. 우리 안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이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하여 그분의 죽으심과 같은 모습이 되어 어찌하든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도달하려 하노니](빌3:10-11)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부활의 권능’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부활이신 분의 부활의 권능은 믿는 자들을 모두 다시 살리시는 권능이요, 변화시키시며, 새롭게 하시며, 소생시키는 권능입니다. 부활의 권능이란 다시 살아나는 권능입니다. 일곱 번 쓰러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권능이 바로 부활의 권능입니다.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아도 일어나며, 죽게 되어도 일어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생명은 죽음이 천적입니다. 원수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죽음의 원수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삼켜 버리는 것입니다. 죽음의 권능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입니다. 마귀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부활로서 죽음은 자신보다 더 강한 권능을 만난 것입니다(히2:14-15). 부활은 승리입니다. 모두 부활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 암송할 말씀: 빌3:10-11, 요11:25-26
☜ 생각해 볼 문제:
- 부활에서의 삼위일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오.
- 부활의 권능이란 무엇인가?
- 부활한 몸은 어떤 몸인가?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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