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부흥 90 - 46. 두려워하지 말라.말씀. 창15:1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요, 만물의 척도라고 자랑하지만 수많은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기치 않는 사건 사고와 질병, 죽음, 파산, 이별 등은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욥과 같은 부와 권세와 명망을 지닌 사람도 평소에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또 내가 크게 두려워하는 것이 내게 임하였고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 내게 이르렀기 때문이라.](욥3:25). 평소에 가지고 있던 두려움과 무서워했던 것이 현실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예는 허다합니다. 사람들은 내적 두려움, 공포, 걱정, 염려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는 신자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무엇인가 두려움에 떠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두려움은 불신의 표현이며,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삶이란 두려움을 모르는 삶, 두려움을 이기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에게 언제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방패시요, 보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이 진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일들 후에 [주]의 말씀이 환상 속에서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防牌)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報償)이니라, 하시니](창15:1). 주님이 방패시라면 주님을 뚫기 전에는 누구도 그 사람을 해할 수 없고, 이길 수 없습니다. [이는, [주]여, 주께서 의로운 자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와 같은 은총으로 그를 호위하실 것임이니이다.](시5:12). 전쟁이라면 몸서리처질 정도로 겪어 본 다윗은 수많은 생사의 위기를 넘으면서 이 진리를 체득했습니다. [그러하오나, 오 주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이시니이다.](시3:3).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의 방패라면 두려울 것이 무엇입니까? [[주]는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그분을 신뢰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분을 찬양하리로다.](시28:7). [우리의 혼이 [주]를 기다리나니 그분은 우리의 도움과 우리의 방패시로다.](시33:20).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셨고, 다윗의 방패가 되셨다면 저와 여러분에게도 방패가 되십니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인들이 실패하고 넘어지고 상하고 다칩니까? 주를 신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들이 입는 전신갑주 중에 방패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방패’(엡6:16). 믿음, 신뢰가 방패의 강약을 주장합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은 주를 신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를 신뢰하는 사람에게 주님이 방패가 되십니다. [하나님으로 말하건대 그분의 길은 완전하고 [주]의 말씀은 단련되어 /순수하니/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가 되시는도다.](삼하22:31).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은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하는 모든 말씀은 주를 신뢰하는 자들에게만 유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느니라.](잠30:5).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아, 너희는 [주]를 신뢰하라. 그분은 그들의 도움이시요, 그들의 방패시로다.](시115:11). 주님을 신뢰할 때 주님은 그들의 방패가 되어 주시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고통과 신음 소리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아이와 함께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을 보십시오. 그들은 광야에서 탈진하고 말았습니다. 누가 그들을 돌보아 주고 먹입니까? 족장이요, 부자였던 아브라함의 부인이요, 장자에서 졸지에 과부와 고아보다 못한 신세가 되어 버린 그들입니다. 부도가 난 사람의 삶도 이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음성을 들으시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너를 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이가 있는 곳에서 그의 음성을 들으셨음이니라.](창21:17).

셋째, 하나님이 언약을 주시고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밤에 [주]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내 종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씨를 번성하게 할 것임이라, 하시매](창26:24). 우리는 모두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이며, 아브라함의 복이 그대로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이삭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런즉 믿음에 속한 자들 곧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녀인 줄 알지어다.](갈3:7), [그러므로 믿음에 속한 자들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9). 이삭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들 위에 임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통하여 /성/령을 약속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갈3:14).

넷째, 주께서 구원을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 [주]께서 너희에게 보여 주시는 [주]의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이집트 사람들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14:13).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전함이나 군대가 있는 것도 아니요, 적을 막을 군대도 없었습니다. 파라오의 군대가 추격할 때 그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지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 [주]께서 너희에게 보여 주시는 [주]의 구원을 보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상황이 전개 되는대로 운명을 맡겨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도 주님의 백성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싸우시는 것을 보기만 하면 됩니다.

다섯째,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는 [주]를 대적하여 반역하지 말며 또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우리의 빵이기 때문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주]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민14:9).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지 않고, 내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면 우리는 적을 압도할 힘과 지혜를 가질 때까지 알아서 몸을 낮추고 기어야 합니다. 두려움에 떨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력이나 경제력이나 사람의 수나 모든 면에서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그런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얼추 전력이 비슷해야 싸움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상대와 힘의 차이가 너무 나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상대가 누구인지, 얼마나 강한지, 전력이 어떤지는 개의치 말라고 하십니다. [네가 나가서 네 원수들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를 보고 또 너보다 많은 백성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이집트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주] 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니라.](신20:1). 주님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膽大)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이는 [주] 네 하나님 그분께서 너와 함께 가실 것임이니라. 그분께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니라.](신31:6). [[주] 그분께서 너를 앞서 가시고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하니라.](신31:8). 우리가 전혀 누구나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이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주]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수1:9).

여섯째,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주] 너희 하나님 그분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임이라, 하였노라.](신3:22).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나의 힘과 지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지혜로 싸우는 것이요, 하나님이 함께 싸우시는 싸움입니다. 영적 싸움은 모두 주님의 전쟁이요, 주님이 우리의 대장이십니다. 우리가 싸우는 어떤 작은 싸움도 주님의 지휘 아래 싸우는 것이지 우리가 단독으로 맞서는 그런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영역 속에 지독한 상관이 있든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불편한 이웃이든 친구이든 가족이든 친지이든 누구도 두려워 마십시오. 주님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어떤 사람이나 사건도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혼(魂)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마10:28). 적이든 원수이든 사람은 사람의 몸 이상을 죽이지 못합니다.

일곱째,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지니 이는 [주] 네 하나님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니라.](신7:21). 하나님은 이스라엘 한 가운데 계셨듯이 교회 한 가운데 계십니다. 두 세 사람이 모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였다면 그 가운데는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한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막의 위치는 항상 진영 한 중앙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한 가운데는 주님이 계시며, 우리의 마음 한 가운데는 주님이 거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너희 가운데 계신 [주] 네 하나님이 질투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신6:15). 우리 가운데 주님이 거하시고,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오직 한분 주님만이 두렵고 떨릴 뿐입니다. 반면 주님이 그 안에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대신 실패와 좌절, 죽음과 질병, 전쟁과 화재 등 사건 사고를 무서워합니다.

여덟째, 우리를 둘러 싸 계신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우리와 함께한 자들이 그들과 함께한 자들보다 많기 때문이니라, 하고](왕하6:16). "하나님과 함께 한 사람은 그 사람이 곧 다수이다(One man with God is majority.)." 이것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언제나 진리입니다. *시34:7참조할 것/ [[주]의 천사가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건지는도다.](시34:7).

아홉째, 보응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이르기를, 마음을 강하게 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께서 오셔서 원수를 갚으시리니 곧 하나님께서 보응하시리라. 그분께서 오셔서 너희를 구원하시리라, 하라.](사35:4).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들을 갚아 주시는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열 번째,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가장 크고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용기를 내고 아시리아 왕이나 그와 함께한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이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께서 그와 함께하는 자들보다 위대하시기 때문이라.](대하32:7).

열한 번째,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니라. /너는/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기 때문이니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내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주님은 말로만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며, 강하게 하시고, 참으로 도와주시며, 붙들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말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말씀하신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일하시며,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크고 두려운 일을 만난다 할지라도 그것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조력자가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초조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나 [주] 네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너 벌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주] 네 구속자(救贖者),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말하노라.](사41:13-14).

열두 번째, 우리는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귀한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무가치한 존재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를 주고 구속하고 살만큼 가치 있는 존재로 보십니다. 천하보다 귀한 존재로 보시며, 대우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지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께서 이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기 때문이니 너는 내 것이니라.](사43:1). 그래서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열세 번째,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맺은 언약의 말에 따라 내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학2:5). 주님은 영원토록 우리 안에 거하시며 도우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해 주실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인도함을 받고, 성령 안에서 걷고, 살며, 기도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선물들을 주셔서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서로 섬기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고, 성령의 검인 말씀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도 수행하게 하시며, 승리를 주십니다. 그래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열네 번째, 주님께서 우리를 모두 다 세어 두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으니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중하니라.](눅12:7). 하나님은 우리의 속 중심부에 있는 생각까지 다 아시며, 우리 머리에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없다면 머리털하나도 그냥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21:17~18).

열다섯 번째, 왕국을 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적은 양무리여,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너희 아버지께서 그 왕국을 너희에게 주시기를 참으로 기뻐하시기 때문이니라.](눅12:32).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을 모두 소유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왕국으로 우리 속에(눅17:20-21) 주시는 것이며, 의와 희락과 평강(롬14:17)입니다. 이 왕국이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은 성경에서 무려 365번이나 [두려워 말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 암송할 말씀: 창15:1, 학2:5
☜ 생각해 볼 문제:

-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두려워하는 것은 __________의 표현이요, _____________의 결과이다.
- 두려움을 이기는 가장 쉽고 단순한 성경적 방법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