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고전10:31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란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뜻대로 일하고 행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는 기도와 말씀, 예배와 찬양, 전도와 선교같은 교회 관련된 일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하든지]라고 하신 것은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은 물론이요, 취미 생활, 여행, 직장 생활, 가정생활, 부부 생활, 자녀 교육, 사회생활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낮잠을 자는 일, 커피 한 잔 마시는 일 하나까지도 포함됩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하든지]라고 명하신 것은 문자 그대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다 일컫는 그런 말씀입니다.
첫째, 무엇을 하든지- 일의 목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는 일의 목적을 분명히 하라고 하십니다. 목표가 불분명하고 목적이 불확실한 사람은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마음에 정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그 의미는 무엇을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성공할 수 있을까? 충분히 안정되게 살 수 있을까? 그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그 목적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일을 하는 동기와 목적이 나의 성공이나 행복이나 꿈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가문의 영광이나 자신의 영광, 자신의 성공, 꿈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하는데 하나님의 축복을 구할 수 있는가? 이 일이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일인가? 이 일이 나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교회를 세우는 일에도 유익한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고 그렇다고 생각되면 하셔도 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란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어떤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우리가 새벽부터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다 너희를 위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부모의 애정과 사랑이 듬뿍 묻어난 말이긴 하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성도들의 발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새벽부터 이 고생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라고 전환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너희를 주의 훈계로, 말씀으로 제대로 양육하라고 우리 가정에 선물로 주셨기에 너희를 먹이고 입히는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성경적인 사고이며 가치관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아내는 남편을 위해,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식들은 부모와 자신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고방식을 모두 주님께로 전환하십시오. 내가 학교에서 공부를 좀 더 하는 것이나 유학을 결정하는 것이나 이사를 가는 것이나 직장을 옮기는 일이나 그 모든 일이 나의 꿈을 성취하고 더 높은 이상과 성공을 위한 일이고, 돈 벌이를 위한 일이고, 가정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솔직하고 정직한 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근본적으로 그런 일들이 주님의 영광과 사역을 위한 연관 관계를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방식입니다.
둘째, 무엇을 하든지- 일의 방법: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의 방법이 있습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행위에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골3:17). 우리는 일을 하든지 말을 하든지 간에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회사의 직원이라고 합시다. 근무 시간 중에 하는 모든 일은 다 회사의 이름으로 합니다. 문서를 보내도 회사 로고가 찍혀 있는 공식 레터지에 보내고, 팩스를 보내도 그렇습니다. 편지 봉투에도 회사 주소와 전화번호가 찍혀 있는 봉투에 담아 보냅니다. 출장을 가더라도 회사에서 주는 경비로 갑니다. 이런 저런 모든 일은 다 회사의 이름으로 행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원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로 어떤 일도 나 자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법이 없습니다. 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집니다. 왜 술을 안 마시는가? 건강이 나빠서요. 술이 싫어서요. 이런 대답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마시지 말라고 하십니다.”가 대답입니다. 왜 사람들이 안 보는 데서도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가? 적당히 쉬어가면서 하라고 하면, 주님께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고 하셔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을 많이 겪어 보았네만 자네는 사람이 너무 착하군”이란 칭찬을 들으면 “저라고 다른 사람과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주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 보려다 보니 그런 말을 듣는 편입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때는 성질을 내지 왜 그렇게 조용조용 말하는가?”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묻고, 말하든지 간에 우리는 주님의 이름이 들어가는 대답이 준비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냥 입술에 박힌 겉치레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말과 행위가 될 때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하고,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부인에게, 자녀에게, 친척들, 친구들, 동료들에게 대하는 방식 역시 동일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입니다.1
셋째, 무엇을 하든지- 일의 결과: 형통함.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 예수 이름으로 행할 때 주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게 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직종을 선택하고, 장사가 잘 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고 경기가 좋은가 그렇지 않는가에 신경을 쓰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그런 것은 뒷전이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가? 그분을 힘입어 하고 있는가? 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리고 아침이나 저녁에도 자신이 일을 맡은 청지기임을 고백하고 일을 잘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말씀대로 정직하고 신실하게 행하고자 합니다. 그 때 주님이 형통함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 네 하나님의 책무를 지켜 그분의 길로 걸으며 그분의 법규와 명령과 법도와 증거를 지키되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왕상2:3).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들, 기도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분들에게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적 방법이며,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사람들이 신문과 뉴스를 보면서 주가와 국제 경기와 내수 경기를 고민하고 생각할 때에 성도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더 신경을 씁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을 지킬 때 형통함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강가에 심은 나무가 제 철에 열매를 맺으며 또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형통하리로다.](시1:3).
많은 성도들이 주일에 잠깐 예배를 참석하고, 교회 행사 몇 개에 참석하고, 잠깐 기도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온 종일 모든 관심은 말씀이 아닌 다른 것에 쏠리고 있습니다. 국내 정치, 국제 정치를 비롯해 자금의 흐름이나 세상을 분석도 하고, 예측도 하고, 이런 저런 것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까지 관심을 못 쓰는 사람은 이 지역에 경쟁 업종이 몇 개나 되고, 유동 인구는 얼마나 되고, 가격 경쟁력은 어떻게 되는가? 등등에 신경을 씁니다. 광고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이것도 관심입니다. 이런 일은 business의 기본입니다. 이런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명철을 신뢰하지 마십시오(잠3:5). 사람들의 말을 신뢰하지 마십시오. 육신을 신뢰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신뢰하시고,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십시오.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내가 그분의 말씀을 찬양하리라.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였은즉 육체가 내게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56:4).
넷째, 무엇을 하든지- 도움을 청하라: 믿음의 기도. 우리는 무슨 일을 해도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누구의 도움이라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의 도움도 필요하고 유경험자들의 조언도 필요합니다. 혼자 하는 일처럼 보여도 좋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많이 도와주십시오”라고 인사하며 겸양을 떱니다. 그러나 가장 많은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전문가들이나 유경험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 구하십시오.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려면 무엇을 하든지 다 주님께 필요를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들으시는 줄 안즉 또한 우리가 그분께 구하여 청원한 것들을 얻는 줄 아느니라.](요일5:15). 구하면 들으시며, 구하면 얻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당장 필요한 자금이나 필요한 인력이나 필요한 손님들을 다 보내 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이 예상대로 풀리지 않을 수도 있고,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이 구하는 것을 다 들어 줍니까? 일단 구하는 것을 들은 다음에는 구해 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르게 사용될 것인가? 아이들에게 유익한 것인가? 지금은 좋아 보여서 사 달라고 하지만 한두 번 쓰고 버릴 것은 아닌가? 등등을 부모로서 판단합니다. 그리고 당장 사줄 때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고, 유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언제나 원하는 때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교육을 시키기 위함입니다. 부족한 것 모르고 크면 정신이 성숙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 모르면 감사할 줄 모른다, 귀한 것의 가치를 모른다는 등등의 이유로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러합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언제나 즉시 주실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판단해 보시고 주십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 교육을 시킨 후에 주시기도 하십니다.
주님은 식사 때마다 우리에게 생선 한두 마리를 주실 수도 있지만 달라는 생선을 주시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하는 것들이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주 새 신자들을 보내 주시도록 구하지만 주님께서는 잘 보내 주시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말씀도 있고, 영적 지식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라는 사람은 오지 않고, 오히려 떠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원리를 가르치시며, 원칙을 습득시킵니다. 더 뜨겁게 기도하게 하시고, 누구라도 감당할 수 있는 넓은 마음, 먹일 수 있는 영적 양식들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약속을 믿는 믿음, 인내하고 오래 참는 법, 환경이나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말씀만을 의지하게 하시며,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영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는 법과 같이 아주 중요한 원리들을 가르치시고 착착 준비를 시켜 주십니다. 믿음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감사, 찬양, 하나 됨, 부흥을 갈구하고 변화 받으려는 마음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매주 새 신자를 보내 주소서’란 주님의 기도 응답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들으시고 이미 구한 것들에 대해 모든 일을 하고 계십니다. 어떤 때는 필요를 미리 아시는 주님께서 다 준비해 두시고, 구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신 일도 수두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 주님께 필요를 구하고 도움을 요청하시면 됩니다. 믿음의 기도를 배웁시다. 모든 일의 기본입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에게 이르기를, 옮겨 가서 바다에 빠지라, 하며 마음 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무엇을 말하든지 다 받게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을 원하든지 받는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받으리라.](막11:23-24).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십시오. 무엇을 구하든지 주님께서 행하십니다(요14:13,요15:16참조).
다섯째, 무엇을 하든지- 순종. 우리는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든지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는 진실로 모세가 조상들에게 이르되,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형제들 중에서 나와 같은 대언자 하나를 너희를 위하여 일으켜 세우시리니 그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든지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들을지니라.](행3:22). “내게 주시는 무슨 말씀일지라도 행하리라!” 이것이 성도들의 마음에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합니다. 순종은 모든 관계성의 기본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순종의 관계입니다(약4:7). 국가와 백성은 순종의 관계입니다. 여러분들은 국가 권력에 순종해야 합니다(딛3:1). 부모와 자식도 순종의 관계입니다(골3:20). 부부 관계는 순종의 관계입니다(골3:18, 벧전3:7, 딛2:5). 주인과 종 역시 순종의 관계입니다(골3:22). 목자와 성도는 순종의 관계입니다(고전16:16, 히13:17). 성도와 성도는 상호 복종의 관계입니다. 상호 평등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복종(엡5:21)의 관계입니다. 순종(복종)할 때 얻는 유익을 아십니까? 성도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마귀가 물러갑니다(약4:7).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땅에서 잘되고 장수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면 불신자의 남편도 구원받습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것은 혹시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라도 말씀이 아니라 아내의 행실을 통하여 얻고자 함이니](벧전3:1). 반면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습니다. [신중하며 정숙하고 가정을 지키며 선하고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2:5). 제가 시간 관계나 지면 모두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주님께서 정하신 법에 따라 순종의 관계에 따라 순종하고 복종할 때 주님은 복을 주십니다.
☜ 암송할 말씀: 고전10:31, 골3:17
☜ 생각해 볼 문제:
- 우리가 일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 일하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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