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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부흥 90 - 59. 주님은 나의 무엇이며 누구신가?
말씀: 시144:2


이력서나 약력에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와의 관계성에 대해서 물을 때면, “너에게 무엇이 되느냐?” 라고 묻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분은 나의 부친이시다. 친구이다. 먼 친척이다. 학교 선배다. 직장 상사다. 전에 있던 직장 동료다. 고향 친구다.” 등 관계성에 따라 별별 호칭이 다 붙습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물으면 이름이나 직위를 말해 주면 그만이지만 나와의 관계성을 묻는 것일 때는 소개가 길어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누구신가? 란 신학적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은 나의 무엇이며, 나의 누구신가? 라는 나와의 관계성에 대해서 물어보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의 답변이 우리의 신앙의 척도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인도자가 되고, 어려울 때 도움이 되고, 보호자가 되어 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동일한 관계를 맺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나의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가 되면 그 다음에 모든 것이 정립됩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친함이 있어야 하고 존경과 신뢰가 있어야 하고, 사랑의 관계성이 있어야 하며, 순종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예전에 저는 친구와 함께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오늘 집에 가거든 성경을 펴서 주님은 나의 무엇이 되며, 누구이신가? 적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집에 가서 자신의 방 벽지에다 주님이 자신의 무엇이 되며, 누구이신지를 적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후에 그 집에 가 보았더니 정말 온 사방에 주님에 대해서 적혀 있었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교회에 조금 다녀 본 사람이라면 주님은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 나의 도움, 나의 방패, 나의 목자, 나의 산성, 나의 요새, 나의 망대, 나의 친구, 나의 스승, 나의 주님 이런 정도는 입에서 줄줄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여러분이 스스로 읊어 보시고, 묵상해 보시고, 고백해 보십시오. 정말 놀라운 은혜의 시간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의 누구시며, 무엇이며, 어떤 분이신가를 늘 새롭게 인식하고 믿음으로 재정립해야 합니다. 주님이 누구신지를 입으로 고백하는 일은 우리 입술이 드리는 찬양이며, 믿음의 고백이며, 신앙 간증이며,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희생물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나의 ***]이라고 고백한 예는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시편은 온통 주님은 나의 무엇/누구란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주]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분은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분을 신뢰하리로다, 하리니](시91:2). 다윗에게 주님은 피난처요, 요새시요, 하나님이셨습니다. [나의 피난처]란 원수들이 들끓는 세상에서 안전히 거할 처소가 되신 주님을 말합니다.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은 안에도 있었고, 밖에도 있었습니다. 나의 요새란 것은 주님이 병영이 되심을 말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시란 것은 공동체 신앙이 주축인 유대 사회에서 얼마나 긴밀하게 하나님을 섬겼는가를 말해 줍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주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틀림없이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비록 아브라함은 우리를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오 [주]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요, 우리의 구속자시니 주의 이름이 영원부터 있나이다.](사63:16).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로 낳으셨습니다. 성령으로 낳으셨습니다(요3:5-8).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벧전1:23).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란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법적 관계와 더불어 친밀함, 가족 관계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 안에 아버지의 신성한 성품과 권능이 그대로 전해졌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는 것은 우리가 아들의 영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 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갈4:6). 성도들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주님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오 [주]여, 그러나 이제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우리의 토기장이시오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사64:8). 우리 아버지란 말은 이들이 민족적 신앙 공동체로서 선민의식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반면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란 혈육적 관계입니다. 신약이 아닌 구약 성도들에게도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전에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내게 부르짖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반석이시니이다, 하리니](시89:26). "나의 아버지"란 것은 나를 낳으신 아버지요,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란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신 작품이요, 자녀입니다.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란 사실은 첫째, 간구하는 기도 소리들을 들으시는 분이시란 말입니다. [내가 [주]께 말하기를, 오 [주]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나의 간구하는 소리들을 들으소서.](시140:6). 둘째, 나를 가르치시는 분이시란 점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오니 나를 곧바른 땅으로 인도하소서.](시143:10). 셋째,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분이십니다. [오 [주]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주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으므로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정하신 계획들은 신실과 진리이니이다.](사25:1).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은 위와 같은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반석이시다. 반석이란 사전적 의미는 ‘넓고 평평한 바위’를 말합니다. [/이것은/ [주]께서 곧바르심을 보이고자 함이로다. 그분은 나의 반석이시니 그분께는 불의가 전혀 없도다.](시92:15).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반석이라고 한 것입니까? 여기에는 약간의 역사적 배경이 필요합니다. 반석은 출애굽 과정에서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면서 끊임없이 불평을 할 때 물을 내어 준 곳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모두가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느니라. 이는 그들이 자기들을 따라가던 영적 반석으로부터 마셨기 때문이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였느니라.](고전10:4). 다윗이 주님은 나의 반석이라고 말할 때 나의 반석은 ‘주리고 목마른 자신의 혼에 물을 내어 주시는 분’이란 의미입니다. 이 반석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반석은 단순한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영적 반석’이며, 따라갔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삼하22:2). [[주]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나의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어다.](삼하22:47).

주님은 나의 선이시다. [그분은 나의 선(善)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시니 내가 그분을 신뢰하므로 그분께서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시는도다.](시144:2). 주님은 나의 선(善)이십니다. 나의 의이시며, 거룩이십니다(고전1:30). 나의 영적 도덕적 성품의 기원이 나의 인격 수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안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룩함도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럽고 부패합니다.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렘17:9). 그런데 우리의 도덕적 성품은 어디서 기인할 수 있습니까? 나의 선이신 주님, 나의 의이신 주님, 나의 거룩이신 주님을 통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치리자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어떤 치리자가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리이까? 하니](눅18:18). 그 때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눅18:19).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나의 선이 되십니다. 나의 거룩함이 되시고, 나의 의가 되십니다.

주님은 나의 힘이시오, 노래시다. [[주]는 나의 힘이시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 되시는도다. 그분께서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분께 처소를 예비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분을 높이리로다.](출15:2). 힘이란 힘의 모든 근원은 주님이십니다. 특별히 영적인 power(힘, 권능)는 주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는 것도 기대하지만 주님 자신이 ‘나의 힘’이시란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힘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나의 힘이십니다. 이는 힘을 주셨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내용입니다. 우리는 전에 [새 힘을 주소서]란 말씀을 증거 한 적이 있습니다. 힘을 주시는 분, 힘의 근원이 바로 주님 자신입니다. 우리의 힘이 주님이란 것은 우리가 주님의 힘을 이용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 안에 힘을 부여해 주셔서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오 나의 힘이 되시는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리이다.](시18:1). 그래서 누구든지 주님의 손에 붙잡힌 상태에서 주님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상속, 나의 잔의 몫이시다. [[주]는 나의 상속과 나의 잔의 몫이오니 주께서 나의 몫을 지키시나이다.](시16:5).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상속은 땅이나 도시나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지극히 큰 보상이 되십니다. 주님을 얻었다면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입니다(빌3:8). 내가 얻을 수 있는 몫 역시 주님이십니다.

주는 나의 목자이시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주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나를 이끌어 주신 분이십니다. 목자는 양들을 먹이고 돌보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목자의 음성만 알아들으면 됩니다. 그리고 따르면 됩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요10:11).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 주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주거니와](요10:11). 주님은 양들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들을 알고 양들도 나를 아는 것이](요10:14). 전에는 위기 상황이 닥칠 때면 언제나 목자 되신 주님을 찾고 의지했습니다. 양에게 초장과 물의 부족, 맹수의 등장, 도둑들의 출현 등은 엄청난 위기입니다. 이것은 긴급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선한 목자가 있다면 목자가 해결할 일입니다. 양들이 스스로 알아서 초장을 찾고, 강가로 가지 않습니다. 목자의 이끌림을 받아서 갑니다. 여러분의 문제는 결코 여러분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주신 것이 없습니다. 모든 문제는 다 목자에게 맡기십시오. 목자가 책임져 줍니다.

주는 나의 빛, 나의 구원, 내 생명의 능력이시다. [[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27:1). 나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내 길에, 내 발에 등을 비추어 주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이 때 구원은 구원자란 의미입니다(요4:22, 행4:12). 주님은 나의 구원자이시란 말씀입니다.

주는 나의 힘, 나의 방패이시다. [[주]는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그분을 신뢰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분을 찬양하리로다.](시28:7). 주님은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라면 누구든지 힘으로 주님을 이기고, 주님을 부수지 못하는 이상 결코 주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나의 힘이라면 나의 어떠함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는 나의 능력, 찬송, 나의 구원이시다. [[주]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시118:14). 주님은 나의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부를 찬송의 주제는 주님이십니다. 내 입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솔로몬은 주님을 가장 친밀하게 알았던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는 영적 성숙의 단계를 따라 주님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주님이 자신의 소유요, 자신 역시 주님의 소유라고 말합니다. 이는 결혼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 것이며 나는 그분의 것이니 그분은 백합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시는도다.](아2:16). 그리고 주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분의 입은 지극히 달콤하니 참으로 그분은 모든 것이 사랑스럽도다. 오 예루살렘의 딸들아, 이분이 나의 사랑하는 이시요, 이분이 나의 친구시로다.](아5:16). 주님은 나의 사랑하는 이란 애정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친구라고 밝힙니다. 사랑의 관계에서는 모든 것이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법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첫 사랑을 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의 애정의 대상이요, 애정을 고백 받는 그런 분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일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그러다 한 단계 성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이의 것이요,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 것이라. 그분은 백합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시는도다.](아6:3). 여기서는 순서가 바뀐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16과 비교해보면 비슷해 보여도 완전히 다릅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른 순서로 잡혀 있습니다. 그러다 한 번 더 성숙합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이의 것이요, 그분은 나를 사모하시는도다.](아7:10). 이제 더 이상 주님 앞에서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여러분과 주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바로 이런 관계로 성장해야 정상적인 영적 성장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의누구이신가? 나의 무엇인가?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암송할 말씀: 시144:2,

☜ 생각해 볼 문제:

- 주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 보시오.
- 주님은 나에게 무엇이 되는가?
- 주님은 나에게 누구이신가?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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