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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부흥 90 - 77.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 고후7:5-6



오늘 성경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말씀은 "nevertheless"란 단어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뜻입니다. 이는 ~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는 정반대로란 뜻으로 말이나 글에 자주 쓰이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성경에 이 말씀을 여러 번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상황이나 여건이 나쁜데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거나 정반대로 좋은데도 불구하고 따르지 않았을 때 씁니다.

갈라디아서 2:20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이 쓰인 가장 좋은 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갈2:20a). 또 한가지 좋은 예는 시편 89:32-33절입니다. [그때에 내가 막대기로 그들의 범죄한 것을 벌하며 채찍으로 그들의 불법을 벌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완전히 거두지는 아니하고 나의 신실함도 없어지게 하지 아니하며](시89:32-33).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씀은 어감상 우리 마음속에 정확히 박히는 그런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떠함을 보신 후에 일반적인 예상과 결과와는 반대로 말씀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을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에 우리 육체에 안식이 없었으며 사방으로 고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싸움이 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담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디도를 오게 하사 우리를 위로하셨으니](고후7:5-6).

몇 가지 성경적인 예를 보겠습니다.

첫째, “그럼에도 불구하고”-심판의 날(출32:30-35). 이세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13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수레바퀴는 매우 천천히 굴러오는 것 같아 보이며, 심지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세벨에 관하여도 주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예스르엘 성벽 옆에서 이세벨을 먹으리라.](왕상21:23). 이는 엘리야가 예언한 것입니다. 이때 이세벨은 왕을 능가하는 권력가였습니다. 이 예언이 있었건만 이세벨은 잘 먹고 잘 살았으며, 여전히 악행을 행하였습니다. 이 여자에게 심판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오신다. 곧 오신다.’ 아무리 외쳐도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2000년 전부터 해 온 소리! 광신자들 같으니라고...믿어도 저렇게 믿어야 하나? 하고 욕합니다. 하지만 열왕기하 9:33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그녀를 내던지라, 하니 그들이 내던지매 그녀의 피가 벽과 말 위에 튀기더라. 예후가 그녀를 발로 밟으니라.](왕하 9:33). 이세벨이란 여자의 최후를 보십시오. 주의 말씀은 더딘 것 같지만 결코 더디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탐욕으로 말미암아 거짓된 말을 가지고 너희를 상품 취급하리니 그들에 대한 심판은 오래 되어 이제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받을 영벌은 잠자지 아니하느니라.](벧후2:3). 오히려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디신 것이 아니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주님의 이런 깊은 배려와 은혜를 악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악한 일에 대한 판결이 속히 집행되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의 아들들이 마음 속에서 악을 행하기로 완전히 작정하였도다.](전8:11). 우리는 이런 때에 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만일 너희가 그와 같이 하지 아니하면, 보라, 너희가 주께 범죄하였으니 너희 죄가 너희를 찾아낼 줄을 분명히 알지니라](민32:23). 죄를 많이 짓고도 평안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십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대학 다닐 때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통해 장학금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상마다 벽마다 새까맣게 예상 문제가 적혀 있었습니다. 같은 선교 단체에 있던 형제들이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때 한 목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뿌린대로 거두는 것은 영적 세계에서 육적 세계에서나 예외없는 영원 불변의 법칙입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고한 불순종(삼상8:19).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친히 왕으로 다스리시는 신정국가였습니다. 그래서 따로 왕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을 구하면 세금을 더 내야 하며, 자식들을 내시와 궁녀로 보내야 하며, 압제를 받기 쉽습니다. 사무엘은 이 모든 것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왕을 구하는 것이 악이란 사실을 분명히 말해 주었습니다. 백성들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이 사무엘의 목소리에 순종하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에게도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 있어야만 하리니](삼상 8:19).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완고한 불순종을 일삼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으로, 양심으로, 목자를 통해, 형제 자매들을 통해, 환경을 통해서 계속해서 말씀해 주시지만 유독 혼자만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면서 완고하게 고집을 피웁니다. 진리를 위한 투쟁, 순결을 위한 투쟁을 위해 세상과 가족과 친구의 반대를 무릎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정욕에 따른 집착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거슬러서 구하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이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셨을 지라도 주의 하십시오. [이에 그분께서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으되 그들의 혼은 야위게 하셨도다.](시106:15). 잘못된 것을 구하는 사람에겐 그것을 줌으로써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래, 좋다. 네가 좋을대로 해 봐라’ 여러분은 세상 속에서도 “저놈이 뜨거운 맛을 봐야 알지. 쓴 맛을 보도록 관 둬...” 이런 말을 들으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역시 그런 방법을 사용하신다면 우리는 엄청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는 20-30년 아니 한 평생을 후회 속에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구원(시106:8). [우리가 우리 조상들과 함께 범죄하고 불법을 저지르며 사악하게 행하였나이다.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주의 이적들을 깨닫지 못하였으며 주의 풍성한 긍휼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바다에서 곧 홍해에서 그분을 격노하게 하였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이것은 자신의 강하신 권능을 알리고자 하심이로다.] (시106:6~8). 주님은 우리의 불신과 범죄와 불법과 깨닫지 못하는 완악한 마음과 풍성한 긍휼을 기억하지 않는 망각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시는데 이는 자신의 강하신 권능을 알리고자 하십니다. 이 말씀은 구원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이루어짐을 보여 줍니다. 또 한 가지는 구원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확고한 믿음(눅 5:5). [시몬이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어도 잡은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눅5:5). 자신의 경험과 지혜, 오랜 관습과 전통을 부인하고 오직 주의 말씀에만 의지한 베드로의 모습은 단연 순종의 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기잡이에서 누가 더 전문가입니까? 베드로는 어부였고, 예수님은 목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그분이 다 아신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신을 부인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어떤 형제는 무엇이든지 ‘자발적으로, 자원해서’하는 것만 영적인 줄 압니다. 영적이란 의미를 왜곡되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모임을 가기 싫은데 가는 것, 교회를 가기 싫은데 가는 것, 성경 공부를 하기 싫은데 하는 것, 전도를 하러 나가기 싫은데 나가는 것 등은 율법적인 것이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게 성경적이라면 대부분의 형제들은 죽을 때까지 아무런 영적 열매도 맺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자원해서”란 말보다 “자기를 부인하고”란 말씀을 제자의 요건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며, 그것이 ‘옳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노는 것보다는 교회를 나가는 것이 성도의 의무이고 옳습니다. 자원해서란 말을 기분에 따라서란 말로 오해하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성경대로 믿고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한다는 것이 [자원]의 의미입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 분이 인도하는 길은 high way 나 royal road 가 아닐지라도 best way입니다. 주님은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을 가라고 하실 뿐만 아니라 그 길로 인도하십니다.

마리아는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잉태를 했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말하기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하매 천사가 그녀를 떠나가니라.](눅1:38). 늙은 할머니가 아이를 갖는다는 말에 사라는 웃었습니다(불신의 웃음. 창18:12). 침례인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도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믿지 못해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사가랴야, 두려워하지 말라. 주께서 네 기도를 들으셨느니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눅1:13).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듣고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이것을 내가 무엇으로 알리이까? 이는 내가 노인이요, 내 아내도 매우 연로하기 때문이니이다, 하니](눅1:18). 하지만 남자를 알아 본 적도 없는 처녀에게 아이가 있으리라고 할 때 믿었던 여자가 바로 마리아입니다. 상식과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 내려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다섯째, “그럼에도 불구하고”-자기 부인(눅22:42). 주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의 뜻을 부인해야 합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nevertheless-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뜻이 아니옵고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눅22:42). 하나님의 뜻은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실 때 창문으로라도 들어가려 애쓰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요6:38-40).

여섯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시당함 (행 27:10-12, 21). 하나님의 사람의 경고나 충고보다 주위 환경이나 이익에 눈이 먼 조언자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이르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에서는 짐과 배뿐만 아니라 우리 생명도 다치게 되고 많은 손실이 있으리라, 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부장은 배의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행27:10-11). 설교자는 인생의 모든 방면에서 모든 일에 능통한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언제나 돈과 이익보다 하나님과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노련하고 풍부한 경험이 있는 설교자의 가르침은 늘 배울 것이 있습니다. 다수가 늘 옳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씀이 양날 선 검처럼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곱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목적지(벧후3:13).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서두르라. 그 날에 하늘들이 불이 붙어 해체되고 원소들도 뜨거운 열로 녹으려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약속에 따라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는도다.](벧후3:12-13). 이 세상은 지금 용광로 속으로 향해 달려가는 중입니다. 현 세상은 악한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암송할 말씀: 고후7:5-6, 시89:32-33

☜ 생각해 볼 문제:

-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예를 성경에서 찾아 적어 보시오.
- 나의 죄악과 불법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하시는 이유를 적으시오.
- 자원하는 마음과 자기 부인은 영적 생활의 차이점인가 공통점인가? 논해 보시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