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에스겔 19:1-14
요절: 에스겔 19:14
이스라엘의 역사는 애가의 역사입니다. 웃어 본 적이 없는
역사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승리의 기쁨을 주시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는 눈물의 역사요, 슬픔만이 가득한 고통과 질곡의 역사입니다. 이미 바빌론에
포로로 간 1차 포로기에 사로잡혀간 여호야김, 여호야긴이나 왕족들, 고관들, 만 명의 기술자들이 있습니다. 에스겔 역시 포로로 잡혀간 상태에
있습니다(왕하24:14-16, 대하36:10).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화가 바빌론 군대에게 약탈당하므로 바벨론으로 옮겨졌고 그 일부는
파괴되었습니다(왕하24:13, 대하36:10). 한국 민족의 역사를 흔히 수탈과 침략, 질곡의 역사라고 말하지만 이스라엘이 겪은 수난의 역사는
이루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애가(哀歌)의 연속입니다.
오늘 애가는 이스라엘을 위한 애가인 동시에 마귀의 애가이기도
합니다. 에스겔에는 두로의 애가를 비롯한 마귀가 이 땅에서 자신의 모든 지위와 권위를 잃어 버리고 심판받는 것을 슬퍼하는 사람들의 애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큰 바빌론의 멸망을 보고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무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아하스의 어머니를
암사자, 피가 흐르는 포도나무로 비유한 것은 단지 역사적 예로서가 아니라 장차 이 땅에 임한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불리는
마귀에 대한 것입니다.
1-2절입니다. [또 너는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을 위해
애가(哀歌)를 지어 이르기를,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녀가 사자들 가운데 누워 젊은 사자들 가운데서 자기 새끼들을 기르는데](1-2).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포로로 사로 잡혀 와 있는 통치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에게 애가를 지어 말하는 것은 슬픔이
종결된 것이 아니라 또 포로로 잡혀 올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14절에 보면 애가는 앞으로도 사용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애가요, 반드시 애가가 되리라.](14b). 주님은 현재형과 미래형으로 동시에 언급하셨는데, 앞으로 있을 애가, 즉 앞으로 닥칠 심판에
대한 예고입니다.
암사자란 여호아하스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를 암사자에 비유한 것은
스가랴 5장에 나오는 여인과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여자’와 연결시키는 암시적인 말입니다. 열두 지파 중 유다 지파는 사자로 비유되는
지파입니다. [유다야, 너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네가 탈취한 것을 떠나서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린 것이 사자 같고 늙은
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건드려 화나게 하리요?](창49:9).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의 사자로서 오십니다. 유다 왕조의 왕들은
사자들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암사자란 말은 왕후를 가리키는데 하무달을 가리킵니다. [여호아하스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이십삼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니 립나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왕하23:31).
여호아하스는 장남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영향력과 신하들의 지지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3절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자기 새끼들
가운데 하나를 키우매 그것이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잡는 것을 배워 사람들을 삼키니](3). 자기 새끼들 가운데 하나는 여호아하스
왕입니다. 요시야 왕 다음에 왕위에 오른 왕입니다. 이는 역사적 적용입니다.
사자는 먹이를 잡는데, 누구를 잡습니까? 짐승들을 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잡습니다. 이는 이 사자들이 누구를 예표하는지 넉넉하게 짐작하게 해 줍니다. 마귀는 울부짖는 사자들입니다. 혼들을 찾아 삼키려
합니다. 마지막 시대에 시장에 나오는 상품들을 보십시오. [육계(肉桂)와 향료와 향유와 유향과 포도즙과 기름과 고운 가루와 밀이요, 짐승과
양과 말과 병거와 노예들과 사람들의 혼(魂)이라.](계18:13). 인신매매가 합법화되고, 거래되는 그런 시대가 옵니다. 마귀가 이
세상에서 적그리스도를 내세워 통치할 때 일어날 일입니다. 주님은 유다의 멸망 과정을 통해 이 세상의 끝날들에 대해 동시에 조명해 주고 계십니다.
사자에 대해서 좀 살펴 보겠습니다. 욥기 4:10-11입니다.
[사자의 울부짖음과 사나운 사자의 소리가 /그치고/ 젊은 사자들의 이빨이 부러지며 늙은 사자는 먹이가 없어 죽어가고 강인한 사자의 새끼들은
널리 흩어지느니라.](욥4:10-11). 울부짖는 사자, 사나운 사자, 젊은 사자, 늙은 사자, 강인한 사자 이렇게 다섯 종류가
나옵니다. 사자는 다 사자인데 히브리어로 종류가 다 다릅니다. ‘울부짖는 사자’는 먹이감을 보면 먼저 으르렁 소리를 질러 겁에 빠뜨리는
사자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을 향해 돌아다니는 사자가 바로 이 놈입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對敵)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연약한 성도들은 사자의 울부짖는 소리만으로도 오줌을 질끔 싸고, 오금이 저리는
형편인지라 사자들이 사냥을 쉽게 합니다. ‘사나운 사자’는 검은색 사자란 뜻인데 성격이 포악하고 가장 날렵합니다. ‘젊은 사자’들은 공격용
목표를 정하면 숲이나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기회를 포착하다가 덤벼드는 사자들입니다. ‘늙은 사자’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먹이를 짓누르고 있는
사자를 말하며, ‘강인한 사자’란 말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는 사자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젊은 사자란 바로 기회를
노리는 사자에 해당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젊은 사자들에 비유됩니다. 그러나 삼손은 이들을 찢어 죽여 버렸습니다. [삼손이 자기 부모와
함께 딤낫에 내려가 딤낫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향하여 소리 지르더니 [주]의 영께서 그에게 크게 임하시매 그가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염소 새끼를 찢는 것같이 그 사자를 찢었으나 자기가 행한 일을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고하지 아니하였더라.](삿14:5~6).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영적인 힘입니다. 하나님은 사자를 통해 심판의 도구로 보내시기도 하십니다. [아시리아 왕이 바빌론과
구다와 아바와 하맛과 스발와임으로부터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자손 대신 사마리아의 도시들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소유하고 그 도시들에
거하니라. 그들이 거기에 처음으로 거할 때에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사자(獅子)들을 그들 가운데 보내시매 사자들이 그들
중에서 몇 사람을 죽이니라.] (왕하17:24~25). 사자들이 출몰했다는 것은 그들에게 곧 심판이었습니다. 다니엘 7장에는 ‘독수리의
날개를 지닌 사자’가 나오는데 페르시아를 상징하는 사자입니다. 요한계시록 5:5에는 예수님을 유다지파의 사자라고 하며, 베드로전서 5:8에는
마귀를 일컬어 울부짖는 사자라고 말합니다.
4절입니다. [민족들도 그에 대하여 듣고 그를 구덩이에서
사로잡아 쇠사슬로 묶어 이집트 땅으로 데려가매](4). 이 부분의 역사적 배경을 보기 위해서는 열왕기상 23-24장,
역대기하35-36장을 보면 됩니다. 요시야 왕은 이집트의 파라오느고와 전쟁을 했다가 므깃도에서 화살을 맞고 죽었습니다(왕하23:29). 이집트는
앗시리아와 전쟁을 하러 가는 중에 요시야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요시야는 관여하지 말아야 할 전쟁에 관여했다가 전사하고,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위에 올렸으나 파라오느고에 의해 석달만에 폐위되어 이집트로 잡혀 갔습니다. 파라오느고는 여호아하스를 포로로 잡아가고, 그의 형제
엘리야김을 유다의 왕으로 추대하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꿉니다(왕하23:34). 그리고 전쟁 배상금조로 공물을 바치게 했는데, 은 백 달란트와
금 일 달란트입니다. [파라오느고가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서 묶어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땅으로 하여금 은 백
달란트와 금 일 달란트를 공물로 바치게 하고](왕하23:33). 에스겔이 말한 ‘그를 구덩이에서 사로잡아 쇠사슬로 묶어 이집트 땅으로
데려가매’(4)란 본문은 여호아하스가 이집트로 끌려간 사건을 말합니다. [또 파라오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잡아갔더니 그가 이집트로 가서 거기서 죽으니라.](왕하23:34).
5절입니다. [이제 그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자기의 소망을
잃은 줄 알고는 자기 새끼들 가운데 다른 하나를 취하여 젊은 사자로 만드니](5). 여기서 젊은 사자는 여호야긴을 말합니다. 이집트에
의해 왕위에 책봉된 여호야김은 바빌론에 반역을 일으켰다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여호야긴은 8세에 왕이 되었으니 젊은 사자 정도가 아니라 어린
사자라 해야 할 정도입니다. [여호야긴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팔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석 달 열흘 동안 통치하며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였더라.](대하36:9). 그러나 이 어린 나이에 그가 석 달 열흘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한 일이라곤 악한 것
뿐이었습니다.
6-7절입니다. [그가 사자들 가운데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잡는 것을 배워 사람들을 삼키며 사람들의 황폐한 궁궐들을 알아내고 그들의 도시들을 피폐하게 만들매 그의 울부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그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황폐하게 되니라.](6-7). 우리는 여기서 통치자들이 행하는 악은 자기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들, 땅과 거기 충만한 것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 땅이여, 네 왕이 어린아이이며 네
통치자들이 아침에 먹으면 네게 화가 있으리로다!](전10:16)란 말씀대로입니다. 무경험, 무능력, 무지의 3박자를 갖춘 통치자들은
나라를 말아 먹고, 국부(國富)를 날려 버리며, 백성들을 학대합니다.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그 나라의 복입니다. [이는
땅의 범죄로 인해 통치자가 많게 되거니와 명철과 지식이 있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장구(長久)하게 될 것임이라.](잠28:2).
명철과 지식이 있는 한 사람!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떠나는 것이 명철이란 점에서(욥28:28) 우리는 명철한 통치자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명철이 부족하면 학대자가 됩니다. [명철이 부족한 통치자는 또한 크게 학대하는 자이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자기
날들을 길게 하리라.](잠28:16). 왕정 국가는 특히 왕의 운명이 국가 운명과 직결된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요시야 왕 이후로 유다의
왕들은 단 한명도 주님을 두려워 한 왕이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들의 이력서 끝에 그들의 행적에 대한 평가를 한 줄씩 달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그들이 행한 이력서의 끝줄을 잠깐 살펴봄으로써 경계와 교훈을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히스기야를 보십시오. [히스기야가 자기 조상 다윗이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니라.](왕하18:3).
그의 아들 므낫세를 보십시오. [므낫세가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여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교도들의 가증한 일들을 본받았으니](왕하21:2). [므낫세가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여 유다로 하여금 범죄하게 한 그 죄 외에도 또 무죄한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왕하21:16).
다음에 아몬을 보십시오. [아몬이 자기 아버지 므낫세가
행한 것같이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되](왕하21:20).
요시야를 보십시오. [요시야가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여 자기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걷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왕하22:2).
여호아하스를 보십시오. [여호아하스가 자기 조상들이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였더니](왕하23:32).
여호야김입니다. [여호야김이 자기 조상들이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였더라.](왕하23:37).
여호야긴입니다. [여호야긴이 자기 아버지가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였더라.](왕하24:9).
시드기야입니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이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였으니](왕하24:19).
우리가 저 하늘에 갔을 때 이런 평가를 받게 됩니다. 다윗,
히스기야, 요시야와 같은 평을 받는 사람과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같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8절입니다. [이에 여러 지방에서 민족들이 나와 사방에서
그를 대적하며 그에게 그물을 치고 그를 구덩이에서 사로잡아](8). 이 사건은 열왕기하 24:2에 나오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주께서
자신의 종 대언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 사람들의 부대와 시리아 사람들의 부대와 모압 족속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서 멸하게 하시니라.](왕하24:2).
여호아하스는 왜 구덩이에 빠졌습니까? 주님 앞에 악을 행한
결과입니다. 누가 구덩이에 빠지는가?
첫째, 의로운 자를 악한 길로 이끄는 자들은 구덩이에 빠집니다.
[누구든지 의로운 자를 악한 길로 /끌어들여/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구덩이에 빠져도 곧바른 자는 좋은 것들을 소유하느니라.](잠28:10).
악인을 의로운 길로 돌이키게 하면 많은 허물을 덥고, 상급이 있지만 의인을 악한 길로 이끌 때 둘 다 구덩이에 빠집니다. 전에 한국에 유명한
희극 배우가 폐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는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죽었는데, 병상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자는 금연 홍보
대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분이 죽었을 때 가장 많이 울었던 사람은 같은 연예이면서 교회의 장로로 계신 다른 희극 배우였습니다. 자기가 젊을
때 담배를 가르치고, 술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의롭지 못한 길에 끌어 들이는 자는 반드시 둘 다 구덩이에 빠집니다. 친구들 중에 열심히
공부해서 겨우 대학을 들어와서 선배가 던져 주는 써클에 들었다가 데모나 하고 평생 그 길로 접어든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반대로 죄인의 길을
걷던 저를 ‘대학생 성경 공부반’으로 이끌어 주어서 완전히 살아나게 한 자들도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에게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지혜
있는 자들은 궁창의 광채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들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자들은 별들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단12:3).
[그 죄인을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한 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인즉 그로 하여금 이것을 알게 할지니라.](약5:20).
둘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교도들은 구덩이에 빠집니다. [이교도들은
자기가 만든 구덩이에 빠지고 자기가 숨겨 둔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시9:15). 이들은 모두 혼이 지옥의 구덩이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 사악한 자들은 깊은 구덩이에 내 던져집니다. [타오르는
숯불이 그들 위에 떨어지게 하시며 그들이 불 가운데와 깊은 구덩이에 내던져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시140:10).
넷째, 구덩이를 파는 자가 구덩이에 빠집니다. [누구든지
구덩이를 파는 자는 거기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그 돌에 도로 치이리라.](잠26:27). 하만은 유대인들을 모두 죽이고,
모르드개를 목매달기 위해 높은 장대를 세워지만 자신이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역사상 유대인들을 죽이기 위해 구덩이를 팠던 사람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나라들은 모두 도리어 자신들이 판 구덩이에 빠져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성도들과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덩이를
파는 자는 거기 빠질 것이요, 누구든지 울타리를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로다.](전10:8).
다섯째, 주님이 구덩이를 파십니다. 주님은 사악한 자를 위하여
구덩이를 파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 그에게 안식을 주사 역경의 날들로부터 벗어나게 하시되 사악한 자를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하시리이다.](시94:13).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갇혀 있는 자가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여섯째,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려는 자들이 구덩이를 팝니다.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잡으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시119:85). 세상에는 우리를 실족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많은 구덩이들, 올무들, 그물들이 있습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씩 성장을 위해 나아갈 때 반드시 거치는 것이 마귀가 설치해
둔 부비 트랩, 걸림돌, 실족하게 하는 돌입니다. 어떤 때는 목사, 장로, 집사, 성경 교사와 같은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걸려 자빠지고,
어떤 때는 성도들이 하나 둘 실족하고 맙니다. 주의 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예외없이 넘어지고, 빠집니다. 빛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걸려
넘어집니다. 목자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깨어지고, 자빠집니다. [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한 비유를 말씀하시되,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할
수 있겠느냐? 둘 다 도랑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눅6:39).
9절입니다. [쇠사슬로 묶고 감금하여 바빌론 왕에게로
데려가니 사람들이 그를 감옥에 가두어 다시는 그의 음성이 이스라엘의 산들 위에 들리지 아니하게 하였느니라.](9). 9절은 여호야긴의
이야기입니다. 2-4절이 여호아하스 왕의 이야기이고, 여기는 여호야긴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10절부터 주님은 미래의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10절입니다. [네 어머니는 물가에 심은 포도나무 곧 네 피가 흐르는 /포도나무/ 같아서 많은 물들로
인해 열매를 많이 맺으며 가지가 가득하고](10). 포도나무 속에 피가 흐른다는 말을 볼 때 포도 나무는 생명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피는 육체의 생명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도 나무에 비유되고 있는데, 많은 물들로 인해 열매를 많이 맺고, 가지가
가득했지만 곧 불타고 말라 버리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본문이 단지 역사적 사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적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물들’은 민족들을 가리킵니다. [또 그가 내게 이르되, 네가 본 물들 곧 음녀가 앉아 있는 물들은 백성들과 무리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니라.](계17:15). 많은 물들 위에 앉은 여자는 창녀로서 적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의 하나가 와서 내게 이야기하며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들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내가 네게 보여 주리라.](계17:1).
주님은 한 여자가 받을 심판을 말해 줍니다.
‘피 속에 있는 포도 나무’도 예사롭지 않는 표현인데, 창녀는
땅의 왕들과 음행을 벌이고 포도주에 취해있습니다. [땅의 왕들이 그녀와 음행하였고 땅의 거주하는 자들도 그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되었도다, 하고](계17:2). 피가 흐르는 포도나무의 포도즙은 땅의 왕들 위에 앉은 여인이 마시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자주색
옷과 주홍색 옷을 차려 입고 금과 보석들과 진주들로 꾸미고 그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것들과 그녀의 음행으로 인한 더러운 것이
가득하더라. 그 여자의 이마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니,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으므로 내가 이 여자를 보고 매우 놀라며 이상히 여기니] (계17:4~6).
그렇다면 에스겔 19장에 기록된 암사자, 여자, 어미로 표현되는 이 여자를 역사적으로 적용할 때는 여호아하스의 어머니가 되지만 영적으로 적용했을
때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큰 바빌론, 가증한 것들의 어미입니다.
11절입니다. [다스리는 자들의 홀(笏)이 될 만한 강한
막대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 키가 굵은 가지들 사이에서 크므로 자기의 많은 가지들과 함께 높이 드러났느니라.](11). 좀 특이한
포도나무입니다. 포도나무는 땅을 기는 나무인지라 어디에 매달려서 자라며, 가지는 열매 맺는 것 외에는 땔감으로나 쓸까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포도나무는 ‘다스리는 자들의 홀이 될만한 강한 막대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키가 굵은 가지요, 높이 드러난 가지란 적그리스도를
나타내지만 주님은 입에서 나오는 칼로 소멸해 버리시며, 죽여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더 이상 보좌에 앉힐 왕을 찾지 못합니다. 다스리는
자들의 홀은 적그리스도의 보좌를 의미합니다.
12절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격노 중에 뽑혀 땅에
내던져지매 동풍이 그녀의 열매를 말리고 그녀의 강한 막대기들은 부러지며 말라 불에 소멸되어](12). 그러나 이 나무는 순식간에 뽑혀
버립니다. 열매는 말라 버리고, 강한 막대기들은 부러지고, 불에 소멸됩니다. 역사적으로 해석해서 왕조의 멸망으로 이해한다면 한 자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스라엘은 불에 태워져도 결코 소멸되지 않는 가시떨기 나무이지 태워져서 소멸되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나 예언적으로나
소멸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태워지고, 소멸됩니다. 이 점에서 이 구절들이 역사적으로만 이해될 수 없는 다른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그렇게 되면 사탄의 왕국이 잠시 동안 흥왕하다가 12절에서 완전히 뽑혀 불 못으로 던져지는 장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마귀의 왕국은
길어도 1260일면 끝입니다. 그는 이 시간을 지나면 뽑혀 땅에 내던져지고, 그의 수하들은 모두 말라 버리게 됩니다. 2억의 기병들이 하루
아침에 몰살당할 것입니다. 강한 막대기들은 모두 부러지고, 소멸되고 맙니다. 더 이상 그의 왕국은 존재할 수 없고, 의의 천년 왕국이 예루살렘에
건설될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이제는 그녀가 광야 곧 메마르고 갈증나는
땅에 심기고](13). 이것을 역사적으로 적용하자면 바빌론 포로기에 광야 같은 곳에 살게 되었다는 말이 되는데, 실제 유대인들은
바빌론에서 강가에 정착했고 70년이 지나면 돌아 왔습니다. 바빌론은 풍토적으로도 최고의 비옥한 땅이었기 때문에 그 때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예언적으로 적용하자면 그녀는 땅의 창녀, 가증한 것들의 어미로서 “메마르고 갈증나는 땅”이란 다름 아닌 불 못을 말합니다. 주님은
그녀를 불 못에 던져 버리신 것입니다. 불 못은 그의 거처가 되어 ‘심기고’란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습니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대언자들은 모두
산채로 불 못에 던져지고, 사탄은 깊은 구렁에 천년 동안 묶여 있게 됩니다. [용을 붙잡으니 저 옛 뱀 곧 마귀요 사탄이라. 그 천사가
그를 붙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바닥 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어 가두고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이 차기까지는 더 이상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뒤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리라.] (계20:2~3). 이들이 거할 곳이 바로 ‘갈증나는 땅’입니다. 갈증나는
땅이란 그곳이 불이있고, 물이 전혀 없는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지옥에서 갈증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가복음 16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14절입니다. [불이 그녀의 가지들 가운데 한 막대기에서
나와 그녀의 열매를 삼키매 다스리는 홀이 될 만한 강한 막대기가 그녀에게 없게 되었다, 하라. 이것이 애가요, 반드시 애가가 되리라.]
(겔19:1~14). 이스라엘은 이전에 울었고, 앞으로도 울 것입니다. 마귀는 마지막 순간에 주님의 칼에 멸망당함으로써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하게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