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에스겔 21:1-32
요절: 에스겔 21:

에스겔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특히 “사람의 아들”이란 칭호를 볼 때 더욱 분명합니다. 에스겔이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말씀을 전하는 것은 마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대언하시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21장은 온통 ‘칼’ 이야기입니다. 칼은 용도가 다양합니다. 성경에는 세 종류의 칼이 나옵니다. 첫째, 성령의 검으로서 칼입니다(엡6:17).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 선 검(칼)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권능이 있어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骨髓)를 찔러 나누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니](히4:12). 두 번째 칼은 주의 칼로 언급되는 전염병입니다(대상21:12). 셋째, 전쟁 무기로서 사람을 죽이고, 짐승을 사냥하고, 무엇을 베 버리는 칼입니다. 전쟁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칼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칼을 뽑으셨고, 그 대상은 이스라엘입니다. 이는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막대기나 채찍도 괴롭고 고통스러운데 칼이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1-2절입니다. [[주]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너는 네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하고 거룩한 처소들을 향하여 네 말을 떨어뜨리며 이스라엘 땅을 쳐서 대언하여](1-2). ‘쳐서’란 말은 ‘against' 즉 대적한다는 말입니다. 범죄한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땅을 대적하시는 것은 그 땅이 피로 더럽혀지고, 불법의 백성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벨의 피가 땅에 흐른 이후로 하나님은 땅이 사람들의 피로 인해 더럽혀지는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피는 땅을 더럽힙니다. 피로 더럽혀진 땅은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깨끗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는 너희가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가 흘려진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깨끗하게 할 수 없느니라.](민35:33). 주님이 토양 오염이 기름이나 독극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죄한 피로 인한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구 오염은 산업 폐기물, 음식물 쓰레기 등이 아니라 살인으로 인해 흘리는 피입니다. 이 땅은 끊임없이 피로 인해 더러워졌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피를 흘린 자들의 피가 모두 흐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땅은 깨끗해 집니다. [이에 그 천사가 자기의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모아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즙 틀 속에 던지매 도시 밖에서 그 포도즙 틀이 밟히니 포도즙 틀에서 피가 나와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타디온이나 퍼졌더라.](계14:19-20). 피를 흘린 자들의 피로 더럽혀진 땅은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내가 칼집에서 내 칼을 뽑아 의로운 자와 사악한 자를 네게서 끊으리라.](3). 주님이 뽑으시는 칼은 전염병입니다. 역병을 주의 칼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택할지니 곧 삼 년 동안 기근이 들게 할 것인지 혹은 석 달 동안 원수들의 칼이 너를 따라 잡아 네가 네 원수들에게 패하게 될 것인지 혹은 주의 칼 곧 역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있어 주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역을 두루 멸하게 할 것인지 택하라, 하셨나니 그러므로 이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내가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친히 알려 주소서, 하매](대상21:11-12). 주의 칼이 나타나면 많은 사람은 전염병으로 죽게 됩니다. 전염병이 돌게 되면 의인이든 악인이든 구별 없이 죽게 됩니다. 이스라엘 땅에 이런 일이 있다면 거기서 벗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쥐고 내 원수들을 보복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리라.](신32:41). 주님의 칼은 무섭습니다. 한 번 이 땅을 쓸고 지나가면 모두 죽습니다. [오 [주]의 칼이여, 네가 얼마나 지나야 잠잠하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쉬며 조용히 있을지니라. [주]께서 그 칼에게 명하사 아스글론과 그 해변을 치라 하셨은즉 어찌 그 칼이 잠잠하겠느냐? 그분께서 그 칼을 거기에 /임하도록/ 지정하셨느니라.] (렘47:6~7). 어떤 지역에 전염병이 도는 것은 주의 칼이 임한 결과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땅에 그런 전염병이 돌았다면 그것은 주님의 칼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칼로부터 보호를 받으려면 주님을 믿고 ‘몸된 교회’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대환란의 위험에서 보호됩니다. 그 전에 들림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보다 더 안전한 길은 없습니다.

4-5절입니다. [내가 의로운 자와 사악한 자를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남쪽에서 북쪽에 이르기까지 모든 육체를 치리니 이것은 모든 육체로 하여금 나 [주]가 칼집에서 내 칼을 뽑은 줄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칼이 다시는 돌아가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4-5).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민족적으로 심판하십니다. 물론 대환란 기간 동안에 소수의 의인들이 칼날로부터 살아남겠지만(9:4-6) 주님이 내리시는 심판을 피해나갈 길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에스겔 시대에 있을 일이지만 예언적으로는 분명 대 환란의 말씀입니다. 역사적 사건은 예언적 사건의 모델입니다.

6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아,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며 그들이 보는 앞에서 비통하게 탄식하라.](6). 에스겔은 대언하면서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허리가 끊어지듯, 비통하게 탄식’해야 했습니다. 이 모습은 자신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동시에 그 확실성을 백성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한 방편입니다. 주의 칼이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죽게 될 것에 대한 비통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역사적 이스라엘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장차 이들이 3년 반동안 이 땅에서 적그리스도에게 당할 비참한 상황을 미리 내다보고 있습니다. ‘야곱의 환란’이라고 불리는 대 환란은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받는 시기인데 전무후무한 대 박해입니다. 주님께서 감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7절입니다.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네가 탄식하느냐? 하면 대답하기를, 소식으로 인함이니 곧 /재앙의/ 소식이 임하기 때문이라. 모든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게 되고 모든 영이 활기를 잃으며 모든 무릎이 물같이 약하게 되리라. 보라, 이 소식이 임하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느니라, 하라.](7). 사람들은 에스겔이 말씀을 전하고 비통하게 탄식을 해도 그 이유를 모릅니다. 사람들이 물으면 에스겔은 이유를 대답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들은 소식을 전해 줄 때 사람들의 마음은 녹습니다. 손은 약하게 되고, 모든 영이 활기를 잃고, 모든 무릎은 물같이 약해집니다. 재앙의 소식, 심판의 소식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완전히 녹여 버립니다. 반면 좋은 소식은 듣는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눈의 밝은 빛은 마음을 기쁘게 하며 좋은 소식은 뼈를 기름지게 하느니라.](잠15:30), [먼 나라에서 오는 좋은 소식은 목마른 혼(魂)에게 냉수 같으니라.](잠25:25). 복음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눅2:10). 복음은 ‘좋은 일들의 반가운 소식’(롬10:15)입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믿음과 사랑의 좋은 소식’입니다(살전3:6). 우리는 에스겔과 같이 재앙의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이들이 복음을 거부할 때 재앙, 심판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에스겔은 백성들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라 재앙의 소식을 전함으로써 비통하였고, 듣는 이들 역시 비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8-10절입니다. [[주]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너는/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하고 이르기를, 칼이로다. 날카롭고 빛나는 칼이로다. 이 칼이 날카로움은 심하게 살육하고자 함이요, 이 칼이 빛남은 번쩍이기 위함이니 어찌 우리가 기뻐하겠느냐? 이 칼이 모든 나무를 /멸시하듯/ 내 아들의 막대기를 멸시하는도다.](8-10). 주님은 날카롭고 빛나는 칼을 제시하십니다. 영화나 만화 등에 등장하는 빛나는 검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칼 앞에선 사람들은 짚단보다 더 허무하게 베어지고, 쓰러집니다. 이 칼이 모든 나무를 멸시한다는 것은 나무가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포도나무로 비유 되듯이 민족들을 나무로 비유하기도 하고, 개개인을 나무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아내는 포도나무, 자식은 올리브 나무(시128:3)로 비유합니다. 의로운 자는 종려나무, 백향목(시92:12)으로 비유하고, 성도들은 주의 나무들(시104:16)이라고 합니다. 칼이 나무를 멸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칼로 나무를 벨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번쩍이는 칼 앞에 인간은 무기력하기 그지 없습니다.

“내 아들의 막대기를 멸시하는도다”란 말씀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 아들이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 지닌 막대기는 초림에는 목자의 지팡이지만 재림에는 민족들을 다스릴 철장입니다(계2:27, 12:5, 19:15). 그렇다면 이 철장을 멸시할만한 칼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가 칼을 주어 빛나게 함은 그것을 길들이기 위함이요, 이 칼이 날카롭고 빛남은 죽이는 자의 손에 그것을 넘겨주기 위함이라, 하셨다, 하라.](11). 이 칼은 하나님께서 ‘죽이는 자’(마귀)의 손에 주신 칼입니다. 죽이는 자는 누구입니까? 마귀입니다. 마귀는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입니다(히2:14). 31절에 보면 마귀는 “멸하는데 익숙한 자”라고 합니다. 마귀는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요, 멸하는데 익숙한 자요, 파멸시키는 자(출12:23)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악인들을 벌하시는데 마귀를 사용하십니다. 마귀가 살육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우리 주님이 다스리는 철장보다 더 엄하고 무시무시하다는 의미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인데 주님은 살인자 마귀를 심판의 도구로 마음껏 사용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범죄한 성도들조차 하나님께 기도하여 사탄에게 넘겨 주시기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그 육체를 멸하게 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전5:5). 사탄에게 넘겨 주었다는 것은 ‘죽이는 자의 손’에 넘겨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 중에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 준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모독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딤전1:20). 이 구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는 것은 죽이는 자요, 멸하는데 익숙한 자이며, 파멸시키는 자인 그에게 육신의 생명을 취하도록 한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의 육신의 생명을 죽이는 자입니다. 주님은 때로 범죄하는 자신의 성도들을 죽음에 넘겨 주시는데 이는 그가 더 이상 범죄하지 못하게 하시며, 하나님 모독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12절입니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부르짖으며 울부짖을지니 이는 그 칼이 내 백성 위에 임하며 이스라엘의 모든 통치자 위에 임할 것임이라. 그 칼로 인한 두려움이 내 백성 위에 임할 것인즉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12). 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 칼’이란 하나님이 내리치는 심판의 칼이며, 하나님께 살육을 허락받은 마귀의 활동을 말합니다. 대환란의 살육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42개월 동안 마귀는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을 죽일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인침을 받은 사람들 외에 거의 다 죽습니다. 에스겔은 이 장면에서 울부짖습니다. 예언의 말씀에 주목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부르짖으며 울 수 밖에 없습니다. 때로 앞의 일을 미리 안다는 것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법입니다. 이런 환란을 피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칼이 임하기 전에 들림 받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이것은 시험하는 것인즉 그 칼이 그 막대기까지 멸시하면 어찌되겠느냐? 그것이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13). 성경에서 막대기라고 하면 모세의 지팡이와 아론의 막대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손에 잡은 막대기는 뱀이 되었고, 나일 강을 피로 바꾸었으며, 각종 이적과 표적을 일으켰습니다. 홍해를 향해 내밀었을 때에는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영적인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반석을 치자 물이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반석을 쳤다는 점에서는 모세의 지팡이는 마귀를 예표하는 막대기입니다. 민수기에는 아론의 싹난 막대기가 나오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합니다(민17:7,8). 죽은 나무에서 생명이 나오는데 이는 대제사장으로 예표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드러내는 막대기입니다.

10절에서 “내 아들의 막대기”라고 했기 때문에 에스겔이 본 막대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죽이는 일을 할 것인데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모든 사람을 죽이고 파멸할 수 있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죽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칼로 그는 누구든지 죽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 죽음에 저항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순종하심으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5:8).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심으로 재림의 때까지 이 세상은 여전히 마귀의 왕국이요, 마귀가 통치합니다. 주님이 영광의 왕국을 가지고 오실 때에 그분의 손은 나무 막대기가 아니라 철장이 있을 것이며, 모든 것을 쳐서 멸하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세상은 마귀의 손아래 있습니다.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아, 너는 대언하며 네 두 손을 마주 치고 그 칼로 하여금 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임 당한 자들을 /친/ 칼이요, 죽임 당한 큰 자들 곧 자기들의 은밀한 방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친/ 칼이라.](14). 칼을 세 번 거듭 쓰이게 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시드기야 왕이 사로잡혀가고, 예루살렘 성읍이 함락되고, 남아 있던 사람들까지 몽땅 포로로 잡혀가는 일을 말합니다. 이 칼은 땅위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철저히 죽이는지 ‘자기들의 은밀한 방’으로 들어가는 자들까지 찾아내어 다 죽여 버립니다. 방공호나 비밀 아지트나 그 무엇도 소용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핵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지하 시설이라 할지라도 이 칼날을 피하지는 못합니다. 마귀는 철저히 멸할 것입니다. 칼이 세 번 쓰인다는 것은 심판의 정도를 말한 것인데 완전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15절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활기를 잃고 그들의 황폐함이 많게 하려고 내가 그들의 모든 문을 향하여 칼끝을 겨누었도다. 아! /그가/ 그 칼을 빛나게 하였고 살육하기 위하여 감싸 쥐었도다.](15). 모든 문들을 향해 칼끝이 겨누어졌으면 피할 방법이 없고, 도망할 길도 없습니다. 살육을 위하여 감싸 쥐었다는 것은 마치 사형 집행수가 사람을 내리 치기 위해 칼을 잡은 모습이요, 전쟁터에서 장수가 적진을 향해 칼을 뽑아든 모습입니다.

16절입니다. [너는 이 길이나 저 길로 가며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네 얼굴을 정한 곳으로 가라.](16). 역사적으로 적용하자면 예루살렘을 향하는 길이라면 어느 길이나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방향을 정해서 돌격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루살렘은 칼날을 막을 힘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바빌론은 북쪽에서 곧 바로 남하해서 내려와도 되고 작전상 우회해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공격해서 올라가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마귀에게 이 길이나 저 길로 가라, 오른 쪽이나 왼쪽이나 네 얼굴을 정한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전권을 위임하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완전히 멸하는 이 장면은 천년 왕국 직전 아마겟돈 전쟁에서 주님에게 패할 때까지 지속됩니다.

17절입니다. [나도 내 두 손을 마주 치며 내 격노를 풀리로다. {주} [하나님]이 이것을 말하였노라.](17). 주님은 심판을 집행함으로 자신의 진노를 다 푸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실 뿐 아니라 공의를 집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8-19절입니다. [[주]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또한 /너는/ 바빌론 왕의 칼이 이르도록 두 길을 정하라. 이 두 길이 다 한 땅에서 나오리니 너는 한 곳을 택하되 도시로 가는 길 머리에서 택하라.](18-19). 여기서부터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바뀝니다. 바빌론 왕은 적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용으로 비유되기도 하고(렘51:34), 사자로 비유되기도 합니다(렘50:17). 바빌론 왕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불태우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대 환란 때 적그리스도가 유대인을 박해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빌론 왕의 칼이 예루살렘을 향해 휘둘러도 그 일은 주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란 점입니다. 전쟁을 주관하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바빌론 왕이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하는 길은 적그리스도의 행로이기도 합니다. 다니엘서 11:15,16절에 따르면 ‘북쪽 왕’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예루살렘을 향해 남진하다가 헬몬산 어귀 쯤에서 어느 한쪽 길을 정하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하는 길은 다양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칼이 암몬 족속의 랍바스와 견고한 /도시/ 곧 유다의 예루살렘에 이르도록 한 길을 정할지니](20). 적그리스도는 한 길을 정해야 하는데, 하나는 레바논 땅을 거쳐 갈릴리 서쪽으로 해서 이스르엘 계곡을 건너 내륙 지대를 통과하여 예루살렘 북쪽으로 곧 바로 쳐 내려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시리아 땅을 거쳐 갈릴리 동쪽 야르뭇 강을 건너 요르단의 길르앗 산지를 넘고 사해 북단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진격하는 길입니다. 이 길을 택하게 되면 본문에 나오는 암몬 족속의 랍바스를 통과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한 길을 택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들은 작전상 빠르고 쉽게 이길 수 있는 길을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해 길을 잡습니다. 이방인들이 전쟁에서 진로를 결정할 때 주로 쓰는 방법이 점입니다.

21절입니다. [이는 바빌론 왕이 두 길의 머리 곧 길이 나뉘는 곳에 서서 점을 쳤음이라. 그가 자기 화살들을 빛나게 하며 형상들에게 묻고 /희생물의/ 간을 들여다보다가](21). 전쟁을 위한 진격로를 알아보기 위해 점괘를 뽑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점치는 방법을 보면 ‘화살’로 알아보는 방법, ‘형상들에게 묻고’, ‘희생물의 간’을 들여다보는 방법 세 가지가 있습니다. 화살 통에 여러 가지 글자를 써 놓고 흔들어서 한 개를 뽑아서 보거나 공중으로 쏘아서 떨어지는 지점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가를 보기도 했습니다. 본문에는 화살들을 빛나게 했다고 하는 것은 칼을 갈듯이 화살촉을 갈아서 번쩍이게 한 다음 화살통에 넣고 번쩍이는 것이 나오면 오른 쪽, 아니면 왼쪽 식으로 뽑았다는 것입니다. 형상들에게 물었다는 것은 형상들이 대답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점술가들을 동원해 점괘를 뽑은 것이고, 희생물의 간을 들여다 본 것은 간에 있는 어떤 반점들을 통해 점을 친 것입니다.

22절입니다. [자기 오른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가 있으므로 대장들을 임명하고 살육하는 중에 입을 벌리며 소리를 질러 목소리를 높이고 성문들을 향하여 /성벽을/ 부수는 망치들을 세우며 작은 산을 쌓고 보루를 세웠도다.](22). 마귀는 점괘를 통해 예루살렘을 진격하는데 오른쪽으로 향합니다. 이 길은 갈릴리 바다 서쪽을 거쳐 이스라엘 평원의 므깃도 계곡 즉 아마겟돈 언덕으로 쳐 내려오는 길입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해서 박살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 전쟁에 승리하고 유대의 남은 자들은 페트라라고 불리는 광야로 도망을 갑니다. 이 후에 이들은 다시 한번 예루살렘을 공격하는데 천년 왕국 전에 마지막 전쟁입니다. 이 부분은 구약과 신약에 똑 같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가 히브리 말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그들을 함께 모으더라.](계16:16).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곡이 있으리니 그것은 마치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서의 애곡과 같으리라.](슥12:11). 바로 이곳에서 적그리스도는 흰말을 타고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맞부딪히게 될 것이며,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23절입니다. [전에 서약을 맹세한 자들은 이것을 눈으로 보고 거짓 점괘로 여길 것이나 그 바빌론 왕은 그 불법을 기억하고 그들을 사로잡으리라.](23). 적그리스도는 점괘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을 때 거짓 점괘로 여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속이십니다. 이들은 전에 서약을 맹세해 놓고 깨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11장에는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평화 협정을 맺지만 언약을 깨어 버릴 것이란 예언이 있습니다(단11:27,28). 그들은 협정을 어기고 재차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데 이 장면이 오늘 에스겔 본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정한 때에 그가 되돌아와서 남쪽으로 향할 것이나 그 일이 그전이나 나중만 못하리라.](단11:29). 하나님은 이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되돌아올 때 남쪽으로 향하도록 거짓 점괘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아마겟돈으로 오도록 인도하시며, 거기서 전멸할 계획을 세워 두셨습니다. 이 일은 공개된 1급 군사 비밀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여전히 완전히 비밀이 되어버린 군사 기밀입니다.

‘그 바빌론 왕’은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예전에 느부갓네살이 그러했던 것처럼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그들을 모두 사로잡겠지만 하나님은 남은 자를 보존하시며, 이기는 자를 두십니다. 에스겔은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먼 미래에 있을 대환란의 장면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24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희가 너희 불법을 기억나게 하며 너희 범죄들을 드러나게 하였으므로 너희 모든 행위에서 너희 죄들이 나타나느니라. 내가 말하거니와 /그로 하여금/ 너희를 기억하게 하였은즉 너희가 그 손에 사로잡히리라.](24).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불법과 죄들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통해 포로로 잡힌 유대인들이 자신의 죄악을 기억하듯이 적그리스도를 통해 이들은 자신들의 범죄를 기억하게 됩니다.

25절입니다. [너 더럽고 사악한 이스라엘의 통치자야, 네 날이 이르렀나니 곧 불법이 끝날 때니라.](25). 마지막 때의 이스라엘의 통치자는 더럽고 사악한 자인데 적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불법이 끝날 시점은 다니엘서에 나옵니다.이는 대 환란의 끝입니다. [주께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시에게 칠십 이레를 정하셨나니 이것은 범죄가 그치고 죄들이 끝나며 불법에 대하여 화해를 이루고 영존하는 의를 가져오며 환상과 대언을 봉인하고 또 지극히 거룩하신 이에게 기름을 붓고자 함이라. 그러므로 너는 알고 깨달을지니라.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로부터 통치자 메시아에 이르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을 것이요, 이 곤란한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될 것이며](단9:24-25). 더럽고 사악한 통치자의 정체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죄의 사람이요 멸망의 아들이며, 불법의 신비라고 일컫는 불법자(살후2:8)이며, 유대인 혈통에서 나올 육화된 마귀인 적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적그리스도가 유대인의 혈통일 것이며,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 중 한 명의 후손일 것이란 추론이 가능합니다. 다윗의 후손이요, 베들레헴 출생일 것이란 점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 많고, 표적을 일으키며, 유대인들이 메시야라고 믿을만한 말과 행동을 통해 평화로이 와서 이스라엘을 지배할 것이며, 유대인은 평화의 때가 끝난 후에 그가 스스로 하나님임을 자처할 때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메시야인줄 알고 믿었다가 신성모독자임을 알게 되고, 42개월의 대박해가 일어날 것입니다.

26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희는/ 관을 제거하고 왕관을 벗기라. 이것이 /예전과/ 같지 아니하리니 낮은 자는 높이고 높은 자는 낮출지니라.](26). 이스라엘은 바빌론 포로기를 통해 대제사장이 쓰던 관은 제거되었고, 왕관은 벗겨졌습니다. 70년 포로기를 끝으로 돌아와서 성전 제사와 제사장은 복원되었지만 주후 70년 경 로마에 의해 전 세계로 흩어짐으로써 제사장과 왕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때에 잠깐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통치할 것이지만 그는 곧 가짜로 판명될 것입니다. “낮은 자는 높이고”란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게 된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2000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형편없이 낮추었습니다. 평범한 유대인 이하요, 사생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게 되면 그는 가장 높은 자가 될 것입니다. 높은 자를 낮춘다는 것은 그들이 메시야로 영접했던 적그리스도를 낮춘다는 뜻입니다. 이미 메시야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열렬히 메시야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은 적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착각하고 영접했다가 그를 배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7절입니다. [내가 그것을 거꾸러뜨리고 거꾸러뜨리며 거꾸러뜨리리니 그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다가 마침내 그것의 권리를 가진 자가 이르면 내가 그것을 그에게 주리라.](27). ‘그것’이란 왕관을 말합니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로 왕관은 다시 없었습니다. 다윗의 후손 중에 보좌에 앉은 사람이 다시 없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헤롯이 왕이 된 적은 있어도 유대인들 가운데 누구도 왕이 될 수 없었던 것은 예레미야가 두 차례나 예언한 것과 같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 생전에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할지니 이는 그의 씨 가운데 형통하여 다윗의 왕좌에 앉아 유다 안에서 다스릴 자가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렘22:30, 36:30참조). 그러나 영원히 왕좌가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육신의 혈통에서 난 왕은 없겠지만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창49:10, 민24:17). 마침내 그것의 권리를 가진 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적그리스도의 예루살렘 공격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을 두 번 공격합니다. [이는 북쪽 왕이 돌아와서 전보다 더 큰 무리를 배치하고 몇 년 뒤에 반드시 큰 군대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올 것임이라.](단11:13). 다윗 역시 이 점을 언급합니다. [그들이 저녁에 돌아와서 개처럼 짖으며 도시를 두루 다니나이다.](시59:6). 그들은 갔다가 돌아옵니다. 산헤립도 예루살렘을 두 차례 공격했고, 느부갓네살도 두 차례 공격했습니다. 로마 역시 두 차례 공격했습니다. 첫 번째 공격과 두 번째 공격 사이에 유대인들은 광야로 도망할 수 있습니다(마24:15-16). 2차 공격 때는 열 왕의 연합군이 모여 함께 공격할 것이며 약 2억의 기병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아마겟돈은 넓은 평야인지라 이 만큼의 군대가 진을 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너희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렇게 선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예비하고 용사들을 깨우고 모든 군사로 하여금 가까이 나아와 올라오게 할지어다.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너희는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는 말하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모든 이교도들아, 너희는 집결할지어다. 사방에서 함께 모일지어다. 오 주여, 주의 강한 자들로 하여금 거기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이교도들은 깨어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이는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방의 모든 이교도들을 심판할 것임이라](욜3:9-12). 그러나 이렇게 모임으로 인해 하나님은 단숨에 이들을 쓸어 버리게 되고, 이 때 흘린 피가 말고삐까지 차오르게 될 엄청난 살육이 일어날 것입니다.

28-30절은 암몬[이방인]에 대한 심판입니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대언하여 이르기를, 암몬 족속과 그들의 치욕에 관하여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하고 너는 이르되, 칼이로다. 뽑힌 칼이로다. 그 칼이 빛을 냄은 살육하기 위함이요, 번쩍임으로 소멸시키기 위함이라. 그들이 너를 향하여 헛된 것을 보며 너를 향하여 거짓을 점치고 너를 데려다가 죽임 당한 자들 곧 사악한 자들의 목 위에 두리니 그들의 불법이 끝날 때에 그들의 날이 이르리라. 내가 그 칼을 되돌려 칼집에 다시 꽂겠느냐? 네가 창조된 곳에서, 네가 출생한 땅에서 내가 너를 심판하리로다.](28-30).

31절입니다. [내가 내 격노를 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 속에서 너를 향하여 /불을/ 내뿜고 너를 짐승 같은 자들 곧 멸하는 데 익숙한 자들의 손에 넘겨주리로다.](31). 하나님은 지상의 모든 범죄한 민족들을 적그리스도에게 넘겨 주어 심판을 받게 하고, 마지막에 적그리스도를 산채로 불 못에 던져 버리심으로서 대환란의 시기를 종결지을 것입니다(계19:20,21).

32절입니다. [네가 불을 지피기 위한 땔감이 되고 네 피가 그 땅 한가운데 있을 것이며 네가 다시는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나 [주]가 이것을 말하였음이라, 하라.](32). 암몬인들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들은 불을 지피기 위한 땔감으로 전락했는데 천년 왕국 때에 기억나지 않는 민족, 즉 망각의 민족들 속에 포함되고 맙니다. 이들은 지상에서 완전히 멸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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