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에스겔 22:1-16
요절: 에스겔 22:16
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각종 죄악에 대해서 검사가
공소장을 작성해서 읽으시듯 조목조목 밝혀 주시며, 유죄를 선언하십니다.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 드러나지 않을 죄악이 없습니다. 주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방관자가 아니십니다.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희고 눈같이 희며 그분의 두 눈은 불꽃
같고](계1:14), [그 눈이 불꽃 같고](계2:18), [그분의 눈은 불꽃 같고 그분의 머리 위에는 많은 왕관이
있으며](계19:12a)라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은 화평의 도시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어서 하나님의 도시로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죄로 인해 더 이상 거룩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소돔이나 고모라에 버금가는 그런 도시였습니다.
성격이나 하는 일에 따라서 어떤 사람으로 분류하듯이 하나님은 도시를 마치 그렇게 분류하십니다. 도시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이 어떤 부류인가? 에
따라 그 성격이 특징 지워집니다. 동성연애자들이 많이 살고, 창녀 촌이 있는 곳이라면 음란한 도시라고 합니다. 라스베이거스처럼 gambling이
주산업인 곳을 도박의 도시라고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와 같이 항만을 끼면 항구 도시라고 부릅니다. 부자들이 많이 살면 부유한 도시라고 합니다.
반면 마카오처럼 마약이 거래되고 갱들이 설치는 도시라고 합니다. 헐리웃을 영화의 도시라고 합니다. 이번에 올림픽이 열렸던 그리스의 아테네는
신들이 사는 신화의 도시라고 불립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은 무슨 도시입니까? 캐톨릭, 회교도, 유대인들은 그곳을 성스러운 도시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저 피흘린 도시’라고 부르십니다.
1,2절입니다. [또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 사람의 아들아, 이제 네가 저 피흘린 도시를 심판하고자 하며 네가 심판하고자 하느냐? 참으로 너는 그녀에게 그녀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보여 주며](1,2). 주님은 예루살렘을 ‘저 피흘린 도시’라고 선언하십니다. 무죄한 피를 흘리는 일이 흔했기 때문입니다. 살인과
폭력, 강탈이 난무한 도시였습니다. 치안과 행정이 마비되어서가 아니라 도덕성이 무너지고,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회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말씀의 권위가 없어질 때 순식간에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는 도시가 됩니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려는 것이 도시민들의 꿈이지만
이는 경제력, 교육수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없는 도시가 좋은 도시이며, 교회가 많은 도시가 좋은 도시입니다. 학교가 있고, 환경
오염이 적은 도시가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라면 최고의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도시민들의 마음 속에 신앙이 주류를 이룰 때 그 도시는 신실한 도시, 거룩한 도시가 됩니다.
예전에 이곳 미국의 많은 도시들에서는 술집, 도박장, 여관 등은 아예 영업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 도시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도시들은
거의 없습니다. 신실하던 도시에서 피흘린 도시가 된 것입니다. 거룩한 도시가 음행하는 도시가 된 것입니다. [신실하던 도시가 어찌하여
창녀가 되었는가! 공의가 거기에 충만하고 의가 거기에 거하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사1:21).
주님께서 에스겔에게 “네가 심판하고자 하느냐?”는 것은 물음이
아니라 ‘이렇게 피 흘리는 도시를 심판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촉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에스겔 너 자신이라도 심판하려고 하지 않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범죄하고 타락한 도시, 더럽고 음란한 도시를 보면 쓸어버리고 싶은 본능적 욕망이 일어나는데 이는 에스겔에 예루살렘을
향해 느낀 심정이었습니다.
3절입니다. [또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이 도시가 자기 한가운데서 피를 흘려 자기 때가 이르게 하고 우상들을 만들어 자기를 치게 하여 자기 자신을 더럽게 하는도다.](3).
예루살렘의 도시 한 가운데는 성전이 있습니다. 죄 사함을 위한 헌물이 드려지고, 주님의 거룩한 이름이 있고, 경배가 드려져야 하는 이곳이 우상
숭배와 폭력과 살인, 음행이 자행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신앙이 포기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닌 사람의 믿음이 무너지면
죄악의 물결은 거친 해일처럼 모든 것을 쓸어 버리는 법입니다. 온갖 오염물이 모두 쏟아져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준수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음을 버렸을 때 그곳은 어느 이방 도시들 못지 않는 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말로 하면, ‘그곳은 지극히 보수적인 동네가
아닌가?’, ‘그곳은 율법이 엄하게 지켜지는 동네가 아닌가?’라고 말하면 듣던 사람들이 ‘모르는 소리, 요즘 그 동네나 여기나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네!’라고 하는 식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냥 죄를 지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심판의 시계를 빨리 돌아가게 합니다.
'자기 때가 이르게 하고'란 말씀은 심판의 시기를 말합니다. [때가 찼고, 때가 이르고]와 같은 말씀은 주님께서 계획하신 일이
집행될 때를 말합니다. 몇 구절만 보겠습니다. [그녀의 수소를 다 죽이라. 그들을 도살장으로 내려가게 할지니라. 그들에게 화가 있도다!
이는 그들의 날 곧 그들의 징벌 받을 때가 이르렀음이로다.](렘50:27), [{주}
만군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오 너 지극히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노니 이는 너의
날 곧 내가 너를 징벌하는 때가 이르렀음이라.](렘50:31). 죄를 지으면 징벌의 때, 심판의 때가 이르는 것입니다. [오
너 곧 그 땅에 거하는 자야, 아침이 네게 이르렀도다. 때가 이르렀도다. 고난의 날이 가까이 임하였으니
산들이 소리를 되울리는 것이 아니로다.](겔7:7). [때가 이르렀으며 그 날이 가까이 왔으니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며 파는 자도
애곡하지 말지니 이는 진노가 그 모든 무리 위에 임하였음이라.](겔7:12). 징벌과 심판은 고난을 불러 오기에 고난의 때라 불립니다.
피를 흘리면 자기 때가 이르는데 이는 징벌 받을 때, 심판의 때, 고난의 때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충만해지면 심판의 때가
이릅니다. 더 많은 죄를 지으면 심판의 때는 앞당겨집니다.
[우상들을 만들어 자기를 치게 하여 자기 자신을 더럽게
하는도다.](3b). 자신들이 만들어 섬기는 우상이 자기들을 치게 하는 것이요, 자기 자신을 더럽히는 것인 줄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자신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는 자해(自害) 행위입니다. [그러나 나를 대적하여 범죄하는 자는 자기 혼을 해치는
자요, 나를 미워하는 자는 다 사망을 사랑하는 자니라.](잠8:36). 범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 혼을
해치고, 자신을 더럽히는 자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자신을 해치는 자들입니다. 자기를 보호해 달라고 마리아 상을 사서 방안에 두고, 차에 걸어
두고,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이것저것 부적을 다는 일이 자기를 해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숭배하는 우상들은 나무나 돌,
금이나 은으로 만든 형상들이었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돈, 교육, 음악, 섹스, 록 가수, 연예인, 운동선수 등 별의별 우상들을 다 섬깁니다. 이제
때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들은 거리와 극장에 있고, 보이지 않는 우상들은 마음속에 가득합니다. 집에서 부모들, 학교에서
선생들은 어린 아이 때부터 인생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란 우상을 깊고 강하게 심어 줍니다.
4절입니다. [너는 네가 흘린 피로 말미암아 유죄가 되었고
네가 만든 네 우상들로 말미암아 네 자신을 더럽혔으며 네 날들을 가까이 오게 하여 네 햇/수/에까지
이르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이교도들에게 치욕거리가 되게 하며 모든 나라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노라.](4).
하나님은 심판관으로서 ‘유죄’를 선언하십니다.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히는 일은 심판을 당기는 일입니다. ‘네 날들을 가까이 오게 하여’란 말씀은
심판의 때가 왔음을 말합니다. 날들과 햇수란 말이 함께 쓰였는데, 날들에 비해 ‘네 햇수’란 것은 심판의 기간이 길다는 것을 말합니다. 네
날들은 예언적으로 볼 때, [오직 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벧전4:7)는
말씀이나 대 환란에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날들은 공포와 재앙의 날이 될 것입니다.
5절입니다. [너는 수치스런 자요, 많은 괴로움을 당하는
자니 네게 가까이 있는 자나 멀리 있는 자가 다 너를 조롱하리라.](5). 이는 범죄한 유대인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지만 마지막 날들에는
범죄한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6절입니다. [보라,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 네 안에서 피를
흘려 각각 자기 권세를 얻고자 하였도다.](6). 피를 흘려 권세를 얻는 것은 왕정이나 군정, 혁명 정부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민주주의에서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나 현재 전 세계의 정치 상황을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피를
흘림으로 각각 자기 권세를 얻고자 하는 것은 정치가들의 본능입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스스로 권세를 얻고자 할 때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권력을 스스로 쟁취하고자 할 때 무죄한 피 흘림은 필연적입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라면 왕들, 제사장들, 장로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백성들을 섬겨야 하는데, 피를 흘려 자기 권세를 얻었습니다. 이는 매관매직이 얼마나 성행했으며, 칼로 권세를
장악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어느 사회나 돈이나 피를 흘려 자기 권세를 얻는 일이 있을 때 그 사회를 부패한 사회라고 말하며,
멸망이 가까이 왔다는 신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출세의 요건이 정직, 믿음, 섬김, 율법을 아는 지식 등이 아니라 돈과 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매우 쉽게, 정확하게 그 시대의 모든 부패상과 죄악상을 묘사해 놓으셨습니다. 이렇게 권세를 잡은 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하겠습니까? 의를 행하겠습니까?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들이 하는 짓이 7절부터 묘사되어 있습니다.
7절입니다. [그들이 네 안에서 부모를 업신여기며 네
한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여 다루고 네 안에서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를 괴롭혔도다.](7). 칼로 권세를 잡은 자들이 행한 세 가지 죄가
나옵니다.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 나그네를 학대한 것. 고아와 과부를 괴롭힌 것. 이 셋은 하나님께서 모세 오경을 통해 엄히 금지하신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는 실질적인 복을 약속받았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리라.](출20:12). 효도는 장수 비결 중의 한 가지입니다. 좋은 음식, 좋은 집, 많은 돈, 적절한 운동이
장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오래 살게 해 줄 것 같아도 교통사고, 화재 사고, 강도, 폭력, 살해와 같은 각종
사건이나 암, Aids, 사스 등과 같은 질병으로 보호해 주지 못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이런 데서 보호받습니다. [[주] 네 하나님이
네게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준 땅에서 네 날들이 길고 네가 잘되리라.](신5:16).
효도는 성공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째 명령이니 이것은 너로 하여금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라.](엡6:2-3).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일은 어떤 학교 교육도 보장해 줄 수 없는 장수와 성공을 보장해 줍니다.
여러분이 자녀의 성공과 장수를 바란다면 명문대를 보내려고 발악하지 마시고, 어릴 때부터 순종과 공경을 가르치십시오. 부모를 무시하고, 경시하는
사회 그런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라면 이미 그 사회는 심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사회요, 때가 다된 사회입니다.
나그네를 학대하는
것 역시 주님이 금하신 명령입니다. [너는 나그네를 괴롭게 하거나 학대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니라.](출22:21). [너는 또한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지냈은즉 나그네의 심정을
아느니라.](출23:9). 주님은 이민자들에 대해 매우 관대하시며, 잘 해 주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이민자들, 외국인에
대해 자유롭고 관대한 나라는 미국입니다. 그러나 이곳도 급격히 나그네를 괴롭게 하고 학대하는 정책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공화당이 오랫동안
집권하고자 한다면 이민자 우대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입니다. 오늘날 각 개개인의 성도들에게 적용하자면 손님 대접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결코 나그네를 학대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
[나그네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는 이로써 알지 못하는 가운데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니라.](히13:2). 인심이
메말라지고, 사랑이 식어지는 세대에서 손님들은 전혀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주님은 이것이 그들의 죄임을 지적하십니다. 한국 사람들은 예부터 손님
대접에 매우 신경을 쓰고 호의적인데 이 점은 복받은 성격이요,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의, 염치를 안다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괴롭힌 것 역시 이스라엘이 범한 죄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철저히 보호하도록 하셨는데 레위 지파와 동등한
수준으로 대해 주도록 하셨습니다. [너는 삼 년이 끝날 때마다 그 해 소출의 십일조를 다 내어서 네 성문 안에 저축하여 너와 함께 나누는
몫이나 상속이 없는 레위 사람과 네 성문 안에 거하는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로 하여금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레14:28-29). 하지만 어느 사회나 노동력이 없고, 경제력이 없고,
생산성이 없는 이들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최고의 국가가 된 것은 땅이 커서가 아니라 고아를 입양하고,
장애인들을 잘 대해주는 일에서 철저히 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나라가 사회적 약자를 잘 보호해 주는 일에 매우 감격스러웠습니다.
장애인들을 입양해서 키우는 부모들을 보면 저는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이 하는 모든 일에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속화되었다는 증거 중의 하나가 고아와 과부를 괴롭힌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이웃을 향해 어떤 사랑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8절입니다. [너는 내 거룩한 것들을 멸시하고 내 안식일을
더럽혔으며](8). 다음 죄목은 거룩한 것들을 멸시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들이라고 하면 주님께 바쳐진 것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거룩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지갑 속에 있는 돈이라도 주님께 드려질 것으로 떼어 놓으면 그것은 거룩한 돈이 됩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하나님께 떼어 놓으면 그것은 거룩한 시간이 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떼어진 것은 무엇이나 거룩합니다. 구약의 성전에서 사용하는
기명들이나 각종 헌물들은 다 거룩한 것들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들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헌물을 드렸습니다. 반면 신약 성도들이 드리는 헌물이나
헌금은 거룩하게 드려지지만 죄를 속하기 위한 것들이 아니라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헌금은 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죄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되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것은 다 감사, 찬양의 희생물입니다. 어떤 예물이나 헌물,
봉사, 희생도 죄 문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지은 죄는
안식일을 더럽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님의 안식일을 주신 것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킴으로써 타 민족과 구별되고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이 주신 것을 더럽힘으로써 주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안식일은 주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이요, 거룩히 구별한 날이며, 명령입니다.
9-12절은 예루살렘에 있는 다양한 부류의 죄인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는 거룩한 예배자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소문을 옮기는 자들, 산 위에서 우상에게 드린 희생물을 먹는 자들, 음탕한 짓을
하는 자들, 근친상간, 뇌물, 고리대금업을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세상 어느 도시에 이런 자들이 없는 곳이 있을 수 있는가? 싶지만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모습들입니다.
9절입니다. [네 안에는 피를 흘리려고 소문을 옮기는
자들이 있으며 네 안에는 산들 위에서 /희생물을/ 먹는 자들이 있고 네 한가운데는 음탕한 짓을 행하는 자들이 있으며](9). 예루살렘
내에 있는 불순분자들입니다.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 산들에서 희생물을 먹는 자들, 음탕한 짓을 행하는 자들은 3대 불순분자들입니다. 유언비어
유포 죄는 어느 사회에서나 죄로 다루지만 오늘날만큼 이런 죄가 무성한 시대는 없을 것입니다. 신문, T.V, 인터넷을 통해 소문을 옮기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히 인터넷은 피를 흘리고 소문을 옮기는 자들로 가득한 공간입니다. [너는 네 백성 가운데서 위 아래로 다니며
소문을 퍼뜨리는 자가 되지 말고 또 서서 네 이웃의 피를 대적하지 말라. 나는 [주]니라.](레19:16). 산들 위에서 희생물을 먹는
자들은 산에서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린 후에 제사를 드린 희생물을 나누어 먹는 것인데 한국에서 제사, 모사 등을 지내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저희 마을에는 김 씨와 홍 씨의 집성촌이었는데 이들은 일 년에 한번 성대하게 자신들이 지어 놓은 사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온
동네에 제사 떡을 나누어 주곤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이방인들의 풍습을 지키고 있음을 말합니다.
10-11절입니다. [네 안에는 자기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드러내는 자들이 있었고 네 안에는 더러움으로 인해 따로 떨어져 있는 여자를 비천하게 하는 자들이 있었으며 어떤 자는 자기 이웃의 아내와 더불어
가증한 짓을 하고 어떤 자는 음탕하게 자기 며느리를 더럽히며 어떤 자는 네 안에서 자기 누이 곧 자기 아버지의 딸을 비천하게 하였느니라.](10-11).
근친상간은 중동 사회, 특히 이집트와 가나안 지방의 보편적인 문화 중의 하나였습니다. [너희는 전에 너희가 거하던 이집트 땅의 행위를 따라
행하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행위를 따라 행하지 말고 또 그들의 규례대로 걷지 말며](레18:3).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주변 민족에서 널리 행해지는 이런 풍습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벌거벗음은 음행과 연관되어 있는데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었고, 소돔을 탈출한 롯 역시 술에 취해 딸들과 음행을 벌였습니다. 롯의 딸들은 아버지의 씨를 잇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직접 아비의 벌거벗음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창19:33-38). 이런 죄를 자행하는 자들이 예루살렘에 있었고, 월경 중일 때 성행위를
하는 자들이 있었는데(레18:19, 20:18) 이는 율법에서 엄히 금하는 행위였습니다. 우상 숭배는 항상 음행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12절입니다. [네 안에는 뇌물을 받고 피를 흘린 자가
있었으며 너는 이자와 이득을 취하고 욕심을 내며 네 이웃을 착취하여 /재물을/ 얻었고 나를 잊어버렸도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12).
뇌물을 받고 피를 흘린 자란 형법상 촉탁살인에 해당하지만 권력자와 손을 잡고 뇌물을 통해 정적이나 경쟁자를 견제하고 압박하는 일은 너무나 허다한
일입니다. 정경유착은 어느 사회나 있는 일인데 정치 자금을 그냥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뇌물을 받고 피를 흘리는 자들입니다. [무죄한
사람을 죽이려고 대가를 받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27:25). 돈이면 사람을 죽이는 일을
태연스럽게 하는 일이 예루살렘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고리대금업 역시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입니다. 고리대금은 합법을 가장한
착취입니다. 오늘날은 선진금융 기법이란 이름으로 돈을 빌려 주고 이자 받는 일만 잘해도 먹고 삽니다. [네가 만일 네 곁에 있는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 주거든 너는 그에게 빚쟁이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지니라.](출22:25). 이렇게 되면 은행들은
모두 망합니다. 돈은 무이자로 빌려 주어야 하며, 빚쟁이처럼 독촉해서도 안됩니다.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주지 말고 이득을
얻으려고 네 양식을 빌려 주지 말지니라.](레25:37). 이자는 언제나 0%입니다. 이자는 하나님께 받을 생각을 하고, 형제에게 받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네 형제에게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나 음식물의 이자나 이자를 낼 만한 어떤 것의 이자도 받지
말지니라. 네가 타국인에게는 꾸어 주고 이자를 받아도 되려니와 네 형제에게는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지니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네가 가서 소유할 땅에서 네가 손을 대는 모든 일에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23:19-20).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돈으로 생기는
모든 분쟁을 해결해 주는 수단입니다.
13절입니다. [그러므로, 보라, 네가 정직하지 아니하게
번 것과 네 한가운데서 네가 흘린 피로 말미암아 내가 내 손을 쳤나니](13). 정직하게 벌지 않는 돈은 주님께서 치십니다. 하나님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부(副)를 인정하시지만 부당 소득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부당한 소득에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의로운 자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사악한 자의 소득에는 괴로움이 있느니라.](잠15:6).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적게 가지고도 의가 있는 것이 많은
소득을 가지고도 의가 없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8). 소득에는 의가 있어야 합니다.
14절입니다. [내가 너를 대하는 날들에 네 마음이 능히
견디겠으며 네 손이 강하겠느냐? 나 [주]가 이것을 말하였으니 /내가/ 행하리라.](14).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향해 심판을 행하실 때
견뎌낼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모든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게 되고 모든 영이 활기를 잃으며 모든 무릎이 물같이 약하게
되리라.](겔21:7)고 하십니다. 주님은 절대로 엄포만 놓고 마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주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5절입니다. [내가 너를 이교도들 가운데로 흩으며 여러
나라에 흩어 버리고 네게서 네 더러움을 취하여 소멸시키리라.](15). 하나님은 이미 그렇게 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70년간 바빌론 포로
생활을 했고, 신약에서는 1948년까지 전 세계에 흩어졌습니다. 앞으로 또 한 번의 대 환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대 환란을 통과한 후에야 더러움이 소멸될 것입니다.
16절입니다. [그리하여 네가 이교도들의 눈앞에서 네 안에
있는 네 상속을 취하리니 내가 [주]인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16). 유업이란 말은 장차 받게 될 상속의 땅이란 뜻과
‘소유 또는 몫’이란 뜻입니다. 여기서는 후자입니다. 이스라엘이 이교도들의 눈 앞에서 땅을 상속받는 다는 뜻이 아니라 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몇 구절을 보겠습니다.
● 이스라엘이 주님의 상속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 용광로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사 이 날의 너희와 같이 자신을 위하여 상속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신4:20).
이스라엘은 상속 백성이요, 주님은 이스라엘의 상속이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주의 백성, 주의 상속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까닭에
주께 기도하여 이르되, 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주의 크신 위엄으로 구속(救贖)하시고 강한 손으로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상속을 멸하지 마옵소서.](신9:26).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상속입니다.
●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상속입니다. [주는 나의
상속과 나의 잔의 몫이오니 주께서 나의 몫을 지키시나이다.](시16:5). 레위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는 자기
형제들과 함께 나누는 몫이 없으며 상속이 없고 주 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바와 같이 주께서 그의 상속이 되시느니라.](신10:9).
● 팔레스타인 땅이 상속입니다. [너보다 크고 강한
민족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고 너를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네게 상속으로 주려 하심이 이 날과 같으니라.](신4:38).
하나님이 주신 상속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만 유효합니다. 이들이 율법을 버렸을 때 이들은 자신들이 살던 땅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 율법이 상속입니다.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령하였으니 이것은 곧 야곱의 회중이 받을 상속이로다.](신33:4). 하나님의 법은 그들이 받은 상속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자신들의 유업(하나님, 땅, 율법)을 모두
놓치고 심판을 불러들인 것입니다. ‘네 안에 있는 상속’이란 주님이 주신 유업의 상속이 아니라 범죄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심판을 말합니다. 이방
민족들이 그들을 향해 박해와 조롱을 보낼 때 그것을 상속으로 받아서 살아야 했습니다. 온 세계에 흩어져서 고통의 세월을 보내는 것이 그들 안에
있는 상속이었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주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더 이상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상속자니라.](갈4:7).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아들이 되고
상속자가 됩니다. 복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신비/는 곧 복음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라.](엡3:6). 상속자가 되는 유일한 조건은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동으로 상속자가 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니라.](갈3:29).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은 상속을 받을 자격이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이제 영광을 유업으로 받으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구원은
은혜로, 믿음으로 행위와 상관없이 값없이 주어지지만 유업의 상속은 믿음의 행위로 주어집니다.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는 것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롬8:17). 구원은 잃어버릴 수 없지만
상속은 잃어 버릴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나 부정한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결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에서 아무 상속도 받지 못하리라.](엡5:5). 구원받은 성도가 복음에 합당하게 살지 않을 때 아무 상속도 받지
못합니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속을 잃어 버렸듯이 그리스도인들 역시 범죄할 때 상속을 잃어 버릴 것입니다. 상속은 주님을 믿을 때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은 후에 주님을 섬길때 받는 것입니다. [너희가 상속의 보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이는 너희가 {주} 그리스도를 섬기기
때문이니라.](골3:24). 여러분은 여러분이 받을 왕관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왕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
성도가 받게 될 몇 가지 왕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썩지 아니할 왕관입니다. [이기려고 애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을 왕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왕관을 얻고자 하느니라.](고전9:25). 마라톤 선수나
권투 선수처럼 자신의 몸을 복종하는 성도들이 받는 왕관입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는 사람들이 받습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우리는 육신의 정욕이
일어나고, 안목과 정욕과 인생의 자랑이 찾아옵니다. 그 때 자신을 절제하는 사람들은 썩지 아니할 왕관을 받습니다. 절제하는 사람들은 육신으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지 않습니다.
둘째, 환희의 왕관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환희의 왕관이 무엇이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 있을 너희가 아니냐?](살전2:19). 우리는 저 하늘에서
많은 기쁨이 있겠지만 내가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은 사람을 만나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들 곧 나의 기쁨이요 왕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굳게 서라.](빌4:1).
셋째, 의의 왕관입니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왕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딤후4:8).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왕관입니다.
넷째, 생명의 왕관입니다. [시험을 견디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그가 단련을 받은 뒤에 {주}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왕관을 받을 것임이라.](약1:12), [너는
앞으로 당할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너희 중에서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넣어 너희를 시험하리니 너희가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하리라. 너는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왕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이는 주를 위해 고난을 당한
자들, 특히 순교자들에게 주어지는 왕관입니다. 여러분이 순교 신앙을 가지고 날마다 죽는 삶을 산다면 21세기 미국에 살지만 이 왕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영광의 왕관입니다. [그리하면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사라지지 아니하는 영광의 왕관을 받으리라.](벧전5:4). 이 왕관은 양들을 돌보고 섬기는 목자들에게 주어지는 왕관입니다.
목자들은 이 땅에서 교회에서 주는 월급이나 사람들이 주는 칭찬과 영광을 구하지 말고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주실 이 왕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상속 백성이 되었으면 상속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