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에스겔 26:1-21

요절: 에스겔 26:2


두로는 역사적으로나 예언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나라입니다. 성경
지도를 참고해 보면 시돈의 남쪽이며 갈멜의 북쪽에 위치한 베니게의 항구 도시로서, 가나안 정복 때 아셀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 정복하지 못한
곳입니다. 번성한 상업 도시이자 무역 도시였으며, 에스겔을 비롯한 여러 대언자들이 이곳의 멸망을 예언했는데 이곳의 통치자(두로의 왕)은
적그리스도인 사탄 마귀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 중에 7일 동안 체류한 곳이기도 하며, 예수님께서 고라신, 벳새다를 저주하실 때
두로와 시돈에서 이런 기적들을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회개했을 것이라고 말한 그 도시입니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이는 너희 안에서 행한 능력 있는 일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오래 전에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속에서 회개하였을 것임이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11:21-22). 지금 현재 지도로 보면 시돈은
레바논의 남부 지역 사이돈입니다.


오늘 본문은 역사적 적용과 예언적 적용이 절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는 성경의 기록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예언적 사건을 일러 주는 구도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흔히 역사적으로만 다 적용해 버리고 나면 예언적으로 적용할 것이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또는 역사적 기술과 모순되는 일이 가끔
발생함으로써 성경의 무오함에 대한 신뢰를 잃어 버리게 됩니다. 그럴 경우에 우리는 그 본문이 예언적으로 성취될 미리 기록된 역사란 점을 인식하고
성령의 조명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계의 왕국의 배후에는 이 세상의 왕이요, 통치자인
마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이 땅에 정사와 권세 외에 저 하늘에 정사와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목적은 이제
교회를 사용하사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정사(政事)들과 권능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엡3:10). 성경은 분명히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정사들, 권능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들은 지상에 있는 정치가들, 권력자들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대적(對敵)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政事)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엡6:12). 이 말씀 역시 정사들과 권능들의 위치가 “높은 처소들에 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에는 페르시아의
통치자가 천사 가브리엘을 3주 동안이나 막아섰던 기사가 나오는데(단10:13) 그 통치자는 지상의 페르시아 왕궁에 있는 왕이 아님은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지상의 누가 하늘의 하나님에게서 오는 천사 가브리엘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미가엘은 자신을 도울 자로 미가엘을 언급했는데,
미가엘은 천사장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의 통치자입니다. 미가엘은 “우두머리 통치자”(단10:13), “너희의 통치자”(단10:21), 큰
통치자(단12:1)라고 불리는데, 이스라엘의 통치자입니다. 지상의 왕국이 있고, 그 위에 공중에 정사와 권세자들이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1절입니다. [제십일년 그 달 일일에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1). 제 십일년이란 말은 예루살렘이 느부갓네살에게 최종적으로 함락된 때이며, 시드기야 11년째 되던 해를 말합니다.
구체적인 달을 말하지 않고 ‘그달 일일’이라고 한 것은 그 달이 너무나 유명한 달이어서 달리 달 이름을 쓸 필요가 없는 달을 말하는데 예루살렘이
함락되던 4월을 말합니다.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사월 곧 그 달 구일에 그 도시가 함락되니라.](렘39:2). 예루살렘은 시드기야
11년 4월 9일에 망했습니다. [사월 곧 그 달 구일에 도시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에 거하는 백성의 빵이 없었고 (이제 갈대아 사람들이
사방에서 그 도시를 에워쌌으므로) 그 도시가 함락되매 모든 군사가 밤에 도시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에 있는 성문 곧 왕의 동산 옆에 있는 성문
길을 따라 도망하였더라. 그들이 평야 길로 가니라.
](렘52:6,7). 예레미야는 이 부분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기록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에스겔이 지금 말씀을 받는 장면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8일 전에 말씀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을 앞두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는
에스겔에게 주님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하고 축하하며 축배를 드는 이방인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모암, 암몬,
에돔을 비롯하여 이제 두로에 대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두로는 상업 도시이며, 무역 도시로서 매우 유명한 곳입니다.


2절입니다.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두로가 예루살렘을
치며 말하기를, 아하, 만백성의 문이던 그녀가 부서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이제 그녀가 피폐하게 되었은즉 내가 충만하게 되리로다, 하였도다.
](2).
주님은 두로에 대해서 대언하게 하셨는데, 이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조롱하며 기뻐했습니다. 두로는 장사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할 곳이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중계 무역으로 적잖은 수입을 올렸습니다. 솔로몬 이후로 이스라엘로 인해 그들은 적잖은 타격을 받았는데, 이는
이들이 예루살렘에 관세를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성읍이 망했으니 두로가 기뻐했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들은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목공과 석공, 백향목을 제공해 주었을 정도로 이스라엘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삼하5:11). 그러나 이는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관계이지 진정한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이 피폐하게 되었을 때 기쁨의 찬양을 부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 등 하나님과 관련된 어느 것도 저주하거나 그들의 멸망을 바라는 것은 심판의 대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교회가 망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망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들을 주님은 대적하십니다. 한국 사람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입니다. 이는 정말 저주받은 성품입니다. 예루살렘은 만백성의 문이었지만 부서졌고,
이제는 두로에게 그 영광이 돌아왔다고 자랑합니다. 예루살렘이 피폐하게 되었은즉 두로는 흥왕하게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때로 우리는 옆 집이
망하고, 옆 가게가 망하고, 이웃 나라가 망하면 반사 이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 교회가 망하면 곁에 있던 교회는 그 교인들을 흡수하려고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유익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옆의 이웃, 가게, 회사, 교회가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라면 결코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예루살렘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망했지만 그것은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형제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결코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죄를 범함으로 인해 징계를 받고 심판을 받는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고소하다거나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사울이 망하는 것을 다윗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현장에서 사울이 얼마나 비영적이며, 비성경적이며, 악령으로 충만한지를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저런 사람이 왕으로 있는 것이 민족의 비극임을 가장 절실히 체험하고 몸소 겪은 사람이었지만 그는 결코 사울의 집이 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죄를 범한 형제들일지라도 그의 넘어짐과 망함을 기뻐하지 말아야 하며, 그로 인해 내가 많은 것을 얻는다 해도
좋아 하지 말아야 합니다.


3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오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바다가 그 파도를 일으키는 것같이 내가 많은 민족들로 하여금 올라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3).
주님께서 친히 두로를 대적하십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들이 누려야 할 이득이 자신들에게 돌아온 것을 좋아했는데 주님은 그들을
원수로 여기십니다. 주님은 [내가 많은 민족들로 하여금 올라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라고 하시는데 역사적으로 두로는 앗시리아, 바빌론
등에 의해서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았습니다. 두로의 역사는 어느 약한 나라나 마찬가지로 수탈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읍이 워낙
견고했던지라 방어를 잘 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에게 완전히 멸망을 당했습니다(332 B.C). 그 후에 이 땅은 시리아로 넘어갔고,
다음에는 사라센 제국에 합병되었다가 십자군 전쟁 때 함락되었고, 다음에는 베니스로 합병되고, 그 후에는 터키로 넘어갔다가 현재는 레바논의 땅이
되었습니다. 많은 민족들로 하여금 올라와서 너를 치게 하신다는 주님의 말씀은 역사를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저주한 대가로는 너무나
처절한 보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고, 사랑하시는 대상을 저주하는 일은 이와 같이
무섭습니다. 이 진리는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주님은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욕하고 괴롭히며 박해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내리십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목회자요, 부흥사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미국의 영적 대각성 운동에 큰 몫을 한 사람입니다. 1703년에 태어난 그는 아마도 미국이 낳은
최고의 지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목사이자 저술가이며 나중에는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을 지낸 그는 아내와 11명의 아이를 두었습니다. 그의 남자
후손들은 300명이 넘는 목사와 선교사, 신학교수가 있었고, 120명은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했고, 110명은 변호사가 되었고, 60명은 유명한
작가가 되었고, 30명은 법관이 되었으며, 14명은 대학의 총장이 되었고, 3명은 미국 상원의원이 되었고, 1명은 미국의 부통령이 되었습니다.
반면 교회를 핍박하고 모욕하며 불태웠던 주크 가(家)의 후손 1,200여 명을 조사해 보았더니, 그중 직업 거지가 310명, 죄를 지어 몸이
망가진 불구자가 440명, 습관적인 도적이 60명, 죄수가 130명, 부도덕한 사람이 55명, 상업을 배운 사람은 고작 12명인데 그 중에
10명은 그것을 감옥에서 배웠고, 살인자는 6명이 배출되었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핍박하는데 열심인 사울에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가시채찍을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행9:5b)고 하셨습니다. 눈에는 교회가 박살나는 것 같은데 사실은 사울이 가시채찍을 걷어차듯이
자신이 고생한다는 말씀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사람은 모두 이와 같습니다. [내가 많은 민족들로 하여금 올라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란 이 구절을 예언적으로 적용하면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의 연합군에 의해서 이 지역이 모조리 초토화될 것을 말합니다. 중동의
많은 지역은 적그리스도에게 동참해도 그들의 땅과 재산은 모두 군용으로 징발되어 버리기에 땅은 황폐화되고, 멸망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4절입니다. [그들이 두로의 성벽을 무너뜨리며 그 망대를
헐 것이요, 나도 두로에서 그 티끌을 벗겨 내어 바위의 꼭대기같이 되게 하리라.
](4). 적그리스도의 군대는 두로의 성벽을 무너뜨릴
것이며, 망대를 헐어 버립니다. 주님은 두로를 바위의 꼭대기 같이 벌거벗겨 버리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현재 레바논이란 국가의 미래입니다.
성경의 예언이 이스라엘을 제외한 어떤 민족에게도 우호적이거나 좋은 말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성경을 미워하고, 이스라엘을 싫어합니다. 소위 아랍
연합이라고 동맹을 맺은 그들은 모두 이와 같이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들은 지금 석유를 가지고 있다고 큰 소리치고, 회교라는 일치된
종교를 바탕으로 힘을 자랑하지만 이들이 가진 모든 것은 모두 약탈당할 것이며, 그들이 믿는 회교란 것은 결국 적그리스도의 종교 통합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이상 모조리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소위 회교 근본주의란 것이 피의 성전(聖戰)을 촉구하겠지만 2억이나 되는 적그리스도의
연합군에게는 상대가 될 수 없으며, 모조리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5-6절입니다. [두로가 바다 한가운데서 그물을 치는 곳이
되리니 이는 내가 이것을 말하였음이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또 두로가 민족들에게 노략물이 되며 들에 있는 그녀의 딸들은 칼에 죽임을
당하리니 내가 [주]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5-6). 바다 한 가운데서 그물을 친다는 것은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잡힌다는 의미입니다. 축적해 두었던 부(副)가 남의 그물에 다 걸려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국부(國富)는 소멸 될 것이며, 적그리스도가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두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뻐할 것도 없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돌아올 것 같은 이익이 민족들에게 노략물이 될 뿐이며,
백성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7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내가 왕들의 왕 곧 바빌론의 느부갓레살 왕을 보내되 북쪽에서 말과 병거와 기병과 군대와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두로에 임하게 하리라.
](7).
주님이 두로에게 바빌론의 왕 느부갓레살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전쟁을 보는 성경적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을 일으킨 왕을 욕하지만 주님께서 그를 보내신 것입니다. 느부갓레살은 적그리스도의 예표이며, 전쟁광처럼 보이지만
주님이 그를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많은 민족들을 산산조각 내셨는데 이는 심판입니다. 두로를 심판하는 심판자 역시 주님이
보내신 느부갓레살입니다. 그는 악을 심판하고 집행하는 하나님의 종이요, 도끼였습니다. [너는 나의 싸우는 도끼요, 전쟁의 무기니 이는 내가
너를 들어 민족들을 산산조각 내고 너를 들어 왕국들을 멸할 것임이라.
](렘51:20).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적그리스도를 통한 이 땅에
임할 심판 역시 범죄한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란 점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공포 정치로 탄압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마(殺人魔)가 되는 것은 주님을 배교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힌 이 땅의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왕들의 왕’이란 표현은 주님께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느부갓레살은 세계 최초의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는 왕들의 왕(a King of Kings)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만왕의 왕(the King
of Kings)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때에 그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그분은 찬송받으실 유일한 권능자이시며 왕들의 왕이시며 주(主)들의
{주}시요,
](딤전6:15). 이 땅의 어떤 왕도 주님의 손아래 있으며, 모든 왕국의 왕들은 주님께로부터 왕권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왕의 마음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실 수 있고, 왕국을 임의로 세우시고 폐하실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시는대로 옮기실 수
있습니다. [왕의 마음이 [주]의 손 안에 있음이 마치 강물과 같으니 그분께서 친히 원하시는 곳으로 그것을 돌리시느니라.](잠21:1).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 분석가들이 아무리 국제정세를 분석한다 해도 신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이들이 어린양과 전쟁을 하려니와 어린양께서 그들을 이기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주(主)들의 {주}시요, 왕들의 왕이시며 또 그분과 함께 있는
자들이 부르심을 받고 선택받은 신실한 자들이기 때문이라, 하더라
.](계17:14),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니,
[왕들의 왕, 주들의 주], 라 하였더라.](계19:16). 두로의 멸망은 두로의 왕이나 정치가들이나 전문가들이
꿈에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예루살렘이 망했으니 우리는 잘 살겠구나! 라고 예측했습니다. 이것이 학자들, 교수들, 전문가들의
전망이요, 예측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무엇입니까? 오히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늘 하나님이 빠져 있고, 고려의 대상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교도들의 계획을 무산시켜 버리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 이교도들의 계획을 무산시키시며 만백성의 계략들을 무효로
만드시는도다.
](시33:10).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는 계획과 예측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 예측은 있으나 마나 한
예측입니다. 우리가 계획하고 생각하는 모든 일에 승패(勝敗)는 주님이 복 주시느냐? 그렇지 않느냐? 에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도시를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
(시127:1). 모든 계획과 절차와 입안에서 하나님을 빼 놓고 세우는 것이라면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계획이 아무리
훌륭해도 주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주]시니라.](잠16:9),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오직 [주]의 뜻만이 서리라.](잠19:21).


8-10절입니다. [그가 들에 있는 네 딸들을 칼로 죽이며
너를 치려고 보루를 만들며 너를 치려고 작은 산을 쌓으며 너를 치려고 작은 방패를 들어올리며 네 성벽을 치려고 전쟁에 쓸 기계들을 세우며 자기
도끼로 네 망대들을 헐리라. 그의 말들이 많으므로 그들의 티끌이 너를 덮겠고 사람들이 무너진 곳이 있는 도시로 들어가는 것같이 그가 네 성문들로
들어갈 때에 그 기병과 수레와 병거 소리로 말미암아 네 성벽들이 흔들리리라
.](8-10). 이는 바빌론 군대가 어떻게 두로를 점령하는가?를
보여 줍니다. 에스겔은 멀리 그발 강가에서 마치 T.V로 생방송을 보며 해설하는 것보다 더 상세하게 두로의 멸망 과정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적그리스도가 두로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며, 미래의 이 지역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역사적 사건은 늘 예언적 사건의 모델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이 세계 단일 정부의 왕으로서 왕중의 왕으로 등극하여 이곳을 질풍노도처럼 밀고 들어올 것입니다. 그는 북쪽에서 오며, 말가
병거를 이끌고 오며, 기병을 끌고 오는 모습이 꼭 주님의 재림하시는 모습과 일치합니다. 칼로 죽이는 장면 역시 주님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세계는 칼로 유지되는 공포정치입니다.


11-12절입니다. [그가 자기 말발굽으로 네 모든 거리를
밟고 칼로 네 백성을 죽이며 네 견고한 요새를 땅에 무너뜨릴 것이요, 그들이 네 재물을 노략하고 네 상품을 탈취하며 네 성벽들을 헐고 네
기뻐하는 집들을 파괴하며 그들이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물 한가운데 넣으리라.
](11-12). 2억의 군대가 이곳을 통과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인구 2억이라면 그 규모가 상상을 불허하는 군대입니다. 2억의 인구가 있는 국가가 그리 많지 않는 세계에서 군대가 2억이라면
지나가는 그 곳은 초토화되고 맙니다. 대환란 때 있을 적그리스도의 군대들은 이곳을 통과하며 모든 것을 박살내면서 가는데 견고한 요새들이 모두
무너지고 맙니다. 11절과 12절에서는 대명사 그가 그들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군대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죽고, 요새는
무너지고, 재물은 노략당하고, 상품은 탈취되고, 성벽들은 헐립니다. 집은 파괴되고, 건축 자재들로 유명한 각종 돌들, 재목들, 흙은 모조리
사라집니다. 두로는 완전히 초토화되어서 도시 자체의 흔적이 없어져 버립니다.


13절입니다. [내가 네 노래 소리를 그치게 하며 네 하프
소리도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게 하고
](13). 두로는 상업 도시였기에 상당한 재물이 있었고, 음악과 하프 소리로 보아 환락의 도시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곳을 철저히 엎어 버리심으로 더 이상 노래 소리, 하프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십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없을
때가 살기 좋았습니다.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은 지금입니다. 그 이후에는 재앙이 있고, 심판이 있습니다. 반면 성도들은 지금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악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생이 남아 있습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노래 소리와 하프 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육신을
즐기는 음악인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음악인가?를 보십시오. [그들이 자기 잔치에는 하프와 비올라와 작은 북과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주]의 일은 중히 여기지 아니하며 그분의 손으로 행하시는 것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사5:12). 그 음악을 보면
영적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때에 내가 유다의 도시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환희의 소리와 기쁨의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가
그치게 하리니 이는 그 땅이 황폐하게 될 것임이라.
](렘7:34). 배교한 유대인들이 그러했듯이, 지상의 모든 나라들에서 노래 소리와
하프 소리는 사라집니다. 애곡과 슬픔만이 가득할 것입니다.


14절입니다. [너를 바위의 꼭대기같이 되게 할 것인즉
네가 그물을 펴는 장소가 되고 다시는 건축되지 못하리니 이는 나 [주]가 이것을 말하였음이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14).
이 말씀은 역사적 적용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바빌론이나 앗시리아의 전쟁으로 이들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시
건축되었습니다. 로마 시대나 그 이후에도 여전히 항구 도시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십자군 전쟁 때 점령되기도 했고, 이슬람 시대에 거의
망했지만 여전히 소도시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의 인구는 약 만명 정도의 작은 도시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말씀은 대환란 때 적용될 예언적 말씀입니다. “다시는 건축되지 못하리니”란 말씀은 앞으로 있을 일인데 문자 그대로 다시는 이 땅에 이 도시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로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말 것이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15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두로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네 한가운데서 상처 입은 자가 울부짖으며 살육하는 일이 일어날 때에 섬들이 네 무너지는 소리에 흔들리지 아니하겠느냐?
](15).
여기서 섬들은 정확히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두로와 상거래를 하고 교류하던 도시들이나 나라들일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두로가 무너지면 가장
피해를 보거나 충격을 받을 사람들은 두로와 상거래가 가장 활발한 지역일 것입니다.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지역은 그 지역이 망하면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고, 망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나라같이 작은 나라들은 중국, 일본, 미국 등에서 어떤 경제적, 정치적 충격이 있으면 그대로 영향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두로의 멸망은 주변 섬들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16-18절입니다. [그때에 바다의 모든 통치자들이 자기
왕좌에서 내려와 자기 예복을 버리며 수놓은 옷을 벗고 떨림으로 옷을 입으며 땅에 앉아서 너로 인하여 순간 순간마다 떨고 놀랄 것이며 그들이 너를
위하여 애가(哀歌)를 지어 네게 이르기를, 배타는 자들이 거주하던 유명한 도시여, 그녀와 그녀의 거주민들이 바다에서 강하여 거기를 드나드는 모든
자에게 두려움이 되었더니 어찌 네가 그리 멸망하였는가! 이제 네가 무너지는 날에 섬들이 떨며 참으로 바다에 있는 섬들이 너의 떠나는 것을 보고
근심하리라.
](16-18). 이 장면은 요한 계시록 18장을 연상시킵니다. 요한계시록 18:9-15절을 보십시오. [그녀와 음행하고
호화로이 살던 땅의 왕들이 그녀가 탈 때에 나는 연기를 보고 그녀로 인해 슬피 탄식하며 애통할 것이요, 그녀가 받는 고통을 두려워하므로 멀리
서서 이르되, 가엾도다, 가엾도다! 저 큰 도시 바빌론이여, 저 막강한 도시여! 이는 너에 대한 심판이 한 시간 내에 이르렀음이라, 하리로다.
땅의 상인들도 그녀를 두고 슬피 울며 애곡하리니 이는 그들의 상품을 사 줄 사람이 다시는 없기 때문이라.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요,
고운 아마포와 자주색 옷감과 비단과 주홍색 옷감이요, 각종 향목(香木)과 온갖 상아 그릇이요, 매우 값진 나무와 놋과 쇠와 대리석으로 만든 온갖
그릇이요, 육계(肉桂)와 향료와 향유와 유향과 포도즙과 기름과 고운 가루와 밀이요, 짐승과 양과 말과 병거와 노예들과 사람들의 혼(魂)이라. 네
혼이 탐하던 열매들이 네게서 떠났으며 우아하고 보기 좋은 것들이 다 네게서 떠났으니 네가 다시는 그것들을 찾지 못하리로다. 이런 물건들을 팔던
상인들 곧 그녀로 인하여 부자가 된 자들이 그녀가 받는 고통을 두려워하므로 멀리 서서 슬피 울고 통곡하며
] (계18:9~15). 큰 도성
바빌론은 문자 그대로 바빌론입니다. 우리는 흔히 영적, 종교적으로 적용할 때 이곳은 로마라고 합니다. 로마에는 바티칸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바다의 왕들은 로마와 연관된 캐톨릭 국가들이 됩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남미 국가들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로마의 멸망에 놀라고
슬퍼한다는 의미입니다. 로마 교회가 박살나는 것으로 생각하면 매우 적절한 해석이 됩니다. 마지막 때에 로마 교회는 그냥 종교 집단으로 머물지
않고 정치적 실권을 잡을 것이 확실합니다. 중세와 같이 로마 캐톨릭은 정교일치로 복귀하며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도성을 건축할 것인데 그곳은
바빌론입니다. 바빌론의 건축은 로마의 종교와 자본이 총 집결되고, 로마 교회와 관련된 모든 나라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회교권 역시 적극 지지 할
것입니다. 바빌론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모든 악의 거처이며, 바벨탑이 세워진 곳이며, 이곳에 세계 단일 정부가 세워질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로마 교회가 종교 통합을 이루어 이곳에 정치적으로 단일 정부의 중심이 된다면 로마 교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럽과
남미 국가들은 대환영을 하겠지만 그들은 곧 망하고 말 것입니다.


19-20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너를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도시들같이 황폐한 도시가 되게 하고 깊음을 가져다가 네 위에 오르게 하며 큰 물들이 너를
덮게 할 때에 너를 옛적 사람들 곧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밑으로 데려가고 너를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땅의 낮은 부분 곧
옛적부터 황폐한 곳에 두어 너로 하여금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는 땅이 되게 하리라. 그리하여 내가 산 자들의 땅에 영광을 세우리라
.](19-20).
깊음, 구덩이, 땅의 낮은 부분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이 셋은 단지 지중해나 유프라테스 강과 같은 어떤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지옥을
의미합니다. 몇 개의 관련 구절을 찾아보면 간단합니다. [(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다 하셨은즉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으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엡4:9). 주님이 가신 더 낮은 부분은 지옥입니다. 구덩이라고 하면 ‘바닥없는 구덩이’에 대해서 자세히
나옵니다. [그것들에게 다스리는 왕이 있으니 곧 바닥 없는 구덩이의 천사라. 그의 이름은 히브리 말로는 아바돈이나 그리스 말로는
아폴리온이라 하더라.
](계9:11). 적그리스도의 거처가 바로 이곳입니다. 사탄이 천년 동안 묶여 있는 곳이 이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0:1-3을 보십시오.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바닥 없는 구덩이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붙잡으니 저
옛 뱀 곧 마귀요 사탄이라. 그 천사가 그를 붙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바닥 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어 가두고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이
차기까지는 더 이상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뒤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리라.
](계20:1-3). 구덩이로 내려간다는
말은 지옥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산 자들의 땅에 영광을 세우리라.]
산 자들의 땅이란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죽은 자들이 구렁 속으로 내려간다면 산 자들의 땅에 영광을 세운다는 것은 주님이 세우실 천년 왕국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때에 왕과 제사장으로서 천년을 땅에서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21절입니다. [내가 너로 하여금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네가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 /사람이/ 너를 찾을지라도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21). 두로는 심판을
받아서 완전히 망해 버렸습니다. 두로에 대한 예언은 27, 28장에 계속 이어지는데 두로의 왕이 바로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 지상에
존재하는 각국의 왕들 위에 있는 공중 권세 잡은 자, 정사, 권세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미가엘은 이스라엘의 통치자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두로의
통치자입니다. 위에서 두로의 통치자가 박살나는 순간 지상에서 두로는 영원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과 땅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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