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에스겔 28:1-15
요절: 에스겔 28:15
성경에는 마귀를 예표하는 왕들이 몇 있습니다.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나 페르시아 왕, 이집트의 파라오, 앗시리아 왕이나 두로 왕이 그런 예입니다. 세상 왕국과 모든 민족이 주님을 대적하지만 특히 이런
왕들은 적그리스도를 매우 잘 예표하는 일을 합니다. 이 현 시대는 이스라엘 주변 민족은 물론이고 유엔이나 유럽 공동체로 대표되는 나라들이 주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주님이 이 땅을 다스리는 것을 결사반대합니다. 그들은 힘을 합해 주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교도들이
격노하며 백성들이 헛된 일을 꾀하는가? 땅의 왕들이 스스로 나서며 치리자들이 함께 의논하여 주와 그분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이르기를,
그들이 결박한 것을 우리가 끊고 그들이 묶은 줄을 우리에게서 내던지자, 하는도다.] (시2:1~3). 에스겔은 이방 왕들에 대해 주어진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가운데 두로 왕으로 예표되는 적그리스도와 사탄의 정체를 낱낱이 일러 주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를 펴더라도 우리는 항상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마귀가 언급되는 것은 그가 주님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관계없는 인물이라면 성경에 등장해야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과 관계된 모든 일은 또한 성도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나 공부할 때나 묵상할 때 이 점을 유념할 때 중심과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27장과 더불어 28장은 두로 왕에 대한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주]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너는/ 두로의 통치자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네 마음이 높아졌으므로 네가 말하기를, 나는 한 하나님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한가운데 앉아 있다, 하였도다.
네가 네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같이 정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아니니라.](1-2). 사람들은 마음이 교만해지면 자신들이 사람을
능가하는 무엇이라고 칭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합니다. 초인, 성인, 군자, 보살, 부처 등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권세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칭호인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좋아합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천자(天子-하나님의 아들)]란 칭호를 매우
좋아합니다. [태양의 아들]과 같은 칭호 역시 모두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심리가 반영된 말들입니다.
두로의 통치자는 마음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나는
한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국을 건설한 왕들이나 전제 군주들이 붙이기를 좋아하는 칭호 이상의 높은 칭호를 붙였습니다.
사탄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높입니다.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를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2:4). 이 자는 적그리스도입니다. 두로 왕은 적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등장합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마귀인 자가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자신을 높여 경배 받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하나님이니 그리스도니 하며 높이고
존경하며 따르기를 좋아하지만 정작 하나님이시요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주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 하는 것은 선한 일 때문이 아니요, 신성 모독 때문이니 곧 사람인 네가 스스로 하나님으로
행세하기 때문이니라.](요10:33). 주님은 사람들에게 경배 받지 못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경배하는 대신 죽이려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매 우리 법대로 하면 그가 마땅히 죽으리니 이는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로 행세하였음이니이다.](요19:7).
그들은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은 사람이라고 죽이지만 사람에 불과한 마귀는 하나님처럼 높이고 경배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음이라.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
(롬1:25)이라고 했습니다.
두로 왕은 해상 무역에 능하고 상당한 부와 권세를 잡았던
왕이었는지,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한가운데 앉아 있다, 하였도다]라고 선포합니다. 땅을 정복하든지 바다를 정복하든지
무엇인가를 많이 소유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초인이나 신이 된 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늘이 주님의 보좌가 있는 처소인 것과 같이
바다 역시 주님의 처소입니다. [주의 음성이 물들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천둥을 치시나니 주는 많은 물들 위에 계시도다.](시29:3).
마귀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네가 네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같이 정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아니니라.](겔28:2b). 그는 사람입니다. 천자니 태양의 아들이니 무슨 소리를 해도 그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집트
왕들은 자신들을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지칭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이제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요, 하나님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니라. [주]께서 자신의 손을 내미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고 도움을 받는 자도 쓰러져서 그들이 함께 멸망하리라.](사31:3).
영적인 존재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너희는 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사람들같이 죽을 것이요, 통치자들 중의 하나같이 넘어지리로다.] (시82:6~7). 마귀는 용에게 권세를 받고,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지만
그는 하나님이 아닙니다(계13:4-7). 이들은 죽음을 통해 자신들이 하잘 것 없는 존재란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 이들의 교만을 흩어
버리십니다.
3절입니다. [보라,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사람들이
네게 숨길 수 있는 은밀한 일이 없나니](3). 두로 왕의 지혜가 다니엘보다 더하다면 이는 사탄의 영이 그에게 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절이 사람으로 나타난 적그리스도의 모습이라면 적그리스도의 대언자적인 모습입니다.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인간도 마귀의 지혜를 당해 낼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 느부갓네살이 꾸고도 잊어버린 꿈을 밝혀내고 그 해석을 알린 사람입니다.
그런 다니엘보다 더 지혜롭다면 사람이 마귀에게 숨길 수 있는 은밀한 일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오, 지혜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의지하지 않고는 도저히 마귀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마귀들에게 사로잡힌 점쟁이들이나 무당들이 설쳐대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마귀는 정치적 존재이며 동시에 종교적 존재로서 왕과 제사장을 겸직합니다. 그는 대언자적인 모습을 드러내는데 주님께서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아셨듯이
마귀 역시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을 다 압니다.
4-5절입니다. [네가 네 지혜와 네 명철로 재물을 얻었고
금과 은을 얻어 네 곳간에 넣었으며 네가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불렸고 네 마음이 네 재물로 인하여 높아졌도다.](4-5).
마귀는 무역에 매우 능합니다. 그는 심지어 사람의 혼들을 사고파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계18:13). 요한계시록에 보면 [그가 우렁찬
음성으로 힘차게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저 큰 바빌론이여,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의 요새가 되고 온갖 부정하고
가증한 새들의 집이 되었도다. 이는 모든 민족들이 그녀의 음행으로 인한 진노의 포도즙을 마셨고 또 땅의 왕들이 그녀와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녀의 넘치는 사치로 말미암아 치부(致富)하였음이라, 하더라.] (계18:2~3)고 말합니다. 마귀의 지혜는 오직 재물을 얻고 늘리는데
놀랍게 뛰어납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마귀의 문화임을 입증해 주는 말씀입니다. 국가마다 무역 전쟁입니다. 회사마다 재물을
얻기 위해 온갖 지혜와 명철을 동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물결에 뛰어든 교회가 있습니다. 라오디케아 교회입니다. 교회들마다 동산, 부동산을
축적합니다. 건물을 짓고, 땅을 삽니다.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가련한 것과
비참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이들의 지혜는 누구의 지혜입니까? 마귀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어리석게 보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돈이 나옵니까? 먹을 것이
나옵니까? 하지만 이 지혜는 세상 통치자들이 결코 알지 못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순수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부드럽고 대하기 쉬우며 긍휼과 선한 열매로 가득하고 차별과 위선이 없나니 의의 열매는 화평케 하는
자들이 화평으로 씨를 뿌려 /거두는/ 것이니라.] (약3:17~18). 사람의 마음을 끌지 못하지만 열매를 맺습니다. 반면 마귀의 지혜는
이렇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에 속한 것이요, 관능(官能)적인 것이요, 마귀에게 속한 것이니 이는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기 때문이라.](약3:15~16). 사람의 마음을 잡아당기고 끕니다. 재물이 모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시기와 다툼과 혼란과 모은 악한 일이 있습니다.
6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네가 네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같이 정하였으니](6). 겸손은 은혜를 입는 가장 위대한 덕목이지만 교만은 멸망의
앞잡이입니다. 교만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그는 모든 높은 것을 바라보는 자요, 모든 교만한 자녀들을 다스리는 왕이니라.](욥41:34).
마귀는 스스로 하나님보다 더 높이 올라가고자 했던 자인지라 하나님의 마음같이 정한 일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모두 심판하십니다.
7-8절입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타국인들 곧
민족들 중에서 무서운 자들을 데려다가 네 위에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자기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움을 치며 네 광채를 더럽히고 너를 구덩이로
끌어내리리니 네가 바다 한가운데서 죽임 당한 자들이 죽는 것같이 죽으리라.](7-8). 두로를 정복한 나라로는 갈데아인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물이 많은 곳에는 적들도 끓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그토록 지혜로운 두로 왕이 다른 민족들에게 정복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면 우리는
그의 지혜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개입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멸하시고자 마음먹으면 철옹성 같은 나라도 멸망을 하며, 먼지같이 사라지고 맙니다.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도시를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127:1). 마귀는 자신의 왕국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자신보다 더 강하신 이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은 타민족들을 데려다가 심판을 하시는데, 단순히 지상의
두로 왕이라면 바빌론 왕 정도로 충분할 것입니다. 이 구절이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 볼 때 이 말씀은 주님과 함께 말을 타고 오는
민족들입니다. [또 그분께서 피에 담근 옷을 입으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일컬음을 받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계19:13-14). 이들이야 말로 천하무적의 군대입니다. 주님께서 칼을 빼어
들고 피에 적신 옷을 입은 모습은 그 살육이 어떠할 것인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이들은 능히 마귀와 그의 군대를 멸합니다.
‘네 광채를 더럽히고’란 말은 마귀가 빛의 천사이고 가장하기
때문입니다(고후11:14). ‘너를 구덩이로 끌어내리리니’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정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들에게
다스리는 왕이 있으니 곧 바닥 없는 구덩이의 천사라. 그의 이름은 히브리 말로는 아바돈이나 그리스 말로는 아폴리온이라 하더라.](계9:11).
한 때 지상에서 활동했으나 현재는 구덩이에 들어 가 있으며, 앞으로 여기에서 나올 자입니다(계17:8). 그는 대환란 때 자신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으로 가장하지만 결국 멸망으로 들어갈 자입니다(계17:8). 구덩이는 마귀에게는 고향과 같은 곳이요, 자신의 처소입니다.
9절입니다. [네가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 여전히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이라, 하겠느냐? 오직 너는 너를 죽이는 자의 손에서 사람일 뿐이요, 하나님일 수는 없느니라.](9). 자신이
인간을 넘어선 초인(超人)이요, 하나님인 줄 알았는데 누군가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두로 왕은 자신을
죽이는 자의 손에서는 단지 사람일 뿐입니다. 하나님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적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동일한 죽음을 내리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 땅에서 살 동안 자신이 만물의 중심인 줄 압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면 그는 한낱 사람에 불과함을 알게 됩니다.
10절입니다. [네가 타국인들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 받지
못한 자가 죽는 것같이 하리니 이는 내가 이것을 말하였음이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하셨다, 하라.](10).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란 육신적으로는 이방인들이요, 영적으로는 주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입니다. 성도들은 진정으로 할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또한 그분
안에서 그리스도의 할례로 말미암아 육신의 죄들에 속한 몸을 벗어 버림으로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를 받았느니라.](골2:11).
적그리스도는 할례받지 못한 자가 죽는 것 같이 죽습니다. 이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죽는 것처럼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부활의 소망도 영생의
소망도 없이 죽는 죽음입니다.
11절부터는 두로 왕에 대한 애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언급되는 두로 왕의 모습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두로 지역에 있던 한 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본문을 조금만 읽어 보면 이 사실은
명백합니다.
11-12절입니다. [[주]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너는 두로의 왕에게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지혜가 충만하며
아름다움이 완전하여 모든 것을 봉인(封印)하는 자로다.](11-12). 두로 왕의 모습은 루시퍼에 대한 기술과 일치합니다. 이는 그의
정체가 바로 마귀란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인류 역사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묘사가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14장에서는 바빌론 왕을 빗대어 마귀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에스겔
28장은 두로 왕에 빗대어 마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지혜와 아름다움이 마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어떻습니까? [이는 그가 주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것임이라. 그에게 /고운/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사53:2). 사람들이 육신의 힘과 지혜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그는 필경 마귀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소리가 이르되, 외치라, 하매 그가 이르기를,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모든 육체는 풀이요, 육체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주]의 영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참으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 하라.] (사40:6~8).
13절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더니 모든
보석 곧 홍보석과 황옥과 다이아몬드와 녹주석과 줄마노와 벽옥과 사파이어와 에메랄드와 석류석과 황금이 너를 덮었으며 네가 창조되던 날에 네 안에서
작은 북과 피리의 작품이 예비되었도다.](13). 역사적으로 두로의 왕은 하나님의 동산 에덴 부근에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가 보았습니다. 거기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무엇으로 자신을 꾸미는지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통 보석입니다. 이 보석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보석인데 출애굽기에 대제사장들의 의복에 붙어 있는 보석과 유사합니다(출28:15-20). 하늘의 도성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마귀는 대제사장의 모습을 하고 잇는데 이는 그가 지극히 정치적인 존재인 동시에 지극이 종교적인 존재란 사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무엇이나 모방과 모조의 대가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네가 창조되던 날”이란 말은 마귀의 기원에 대한 언급입니다.
마귀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는 음악에 특별한 재능을 부여 받았습니다. 창조되던 날에 이미 그 안에 작은 북과 피리의
작품이 예비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에 그들은 노래를 했고, 소리를
쳤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明哲)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누가 그 치수들을 정하였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팽팽히 쳤느냐? 그 기초들을 어디에 고정하였느냐? 그 모퉁이돌을 누가 놓았느냐?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욥38:4-7). * 마귀들은 왜 지음 받았는가?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이는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이요,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
하더라.](계4:11).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습니다.
14절입니다.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그룹이요, 덮는
/그룹/이라. 내가 너를 그렇게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위에 있었고 불타는 돌들 한가운데서 오르내렸도다.](14). 주님은
계속해서 마귀의 정체와 신분, 역할에 대해서 말씀해 줍니다. 그는 ‘기름부음을 받은 그룹’이었습니다. 그는 천사가 아니라 ‘그룹’이었습니다.
[덮는 그룹]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 곁에는 사면으로 4개의 그룹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 ‘위에 있는 덮는 그룹’이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였음을 말합니다. 적그리스도란 말은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루시퍼를 제외한 다른 그룹들은 아직도 주님 곁에
있으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왕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왕좌 한가운데와 왕좌 둘레에 네 짐승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첫째 짐승은 사자 같고 둘째 짐승은 송아지 같으며 셋째 짐승은 사람 같은 얼굴을 가졌고 넷째 짐승은 날아다니는 독수리 같더라. 네
짐승이 저마다 자기 둘레에 여섯 날개를 가졌고 안쪽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 오실 이시라, 하고](계4:6-8). 루시퍼는 참으로 영광스럽게 지음 받았고,
놀라운 지혜와 명철을 소유했으며, 하나님과 늘 동행했고, 하나님의 거룩한 산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일곱 머리와 열 뿔을 지닌 붉은
용이요(계12:3), 욥기 41장에서는 리비야단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이 그린 상상도나 전설에 나오는 정보가 아니라 주님이 친히 묘사해
주신 이 자의 모습은 “이빨이 무섭게 둘려 있고, 비늘은 바람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촘촘히 박혀 있으며, 재채기만 해도 빛이 비치고 눈은 광채가
발하고 입에서는 타오르는 불이 나오고 화염이 발해집니다. 콧 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고 목에 힘이 있으며, 심장이 돌처럼 단단하고 몸통 밑에는
뾰족한 돌들이 있고, 바다를 솥같이 끓이고 지나간 자리에는 빛을 내는 길이 생기며, 그의 눈은 모든 것을 바라보고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용사들은 무서워하고 어떤 무기도 그에게는 통하지를 않는다”(욥41장 요약)고 말합니다. 킹 제임스 성경이 유일하게 마귀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정확한 정보입니다.
‘불타는 돌들’은 현재 지구상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돌입니다.
석탄이 바로 그것입니다. 석탄은 돌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불타는 돌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영광의 주님을 뵈었을 때 스랍들 중에 하나가
제단에 핀 숯을 집게로 집어 이사야의 입술에 갖다 대었습니다. 마귀가 [불타는 돌들] 한 가운데서 오르내렸다는 것은 그가 언제나 주님의 보좌
앞에 왔다 갔다 했던 자임을 말해 줍니다.
15절입니다. [네가 창조된 날부터 네 길들에서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 안에서 불법이 발견되었도다.](15). 죄악은 어떤 다른 피조물이 아니라 ‘마귀’에게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죄악은 아담에게서 최초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서 발견되었습니다. 마귀의 죄악이 아담의 불순종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아담 이후로
사람은 태어나면서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라 마귀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요8:44). 사람의 육신은 모두 아담의 후손이요, 아들이지만 그 영은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마귀의 속성을 받아 태어납니다. 그래서 마귀의 속성대로 살게 됩니다. 사람이 본성으로 이길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마귀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靈)이라.](엡2:2).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아도 그는 마귀의 영을 따라
태어났고,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자녀들은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또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속박에 얽매인 자들을 건져 내려 하심이라.](히2:14-15). 십자가를 통해 마귀를 멸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승리의 구심점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유일한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손으로 쓴 규례들 곧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政事)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골2:14~15).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이런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은 신약
성도들이 십자가를 더욱 선명하게 바라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할 때 주님은 우리 안에 들어 와 계심으로 마귀들을
대적하는 군사로 삼으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그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요일4:4). 이 주님을 의지해서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땅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구원의
대장이십니다(히2:10). 매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감당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