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에스겔 27:1-36

요절: 에스겔 27:4


주님은 에스겔에게 두로를 위한 애가를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두로는 철저히 망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두로가 당할 일들에 대해서 애가를 지어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곡을 하거나 만가(輓歌)를 부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애가(哀歌)란 일종의 만가(輓歌)입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죄와 심판에
대해서 대언하다가 유다의 멸망을 기뻐한 이방 민족들이 당할 심판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주]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이제 너는 두로를 위하여 애가를 짓고
](1-2). 이미 지난 장에서 두로가 어떻게 멸망하는가? 에 대해서
다루었지만 오늘 다시 한번 다루게 됩니다. 역사적, 지역적으로 두로의 멸망에 대해서는 이미 앞 장에서 다 다루었으며, 예언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역시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두로의 멸망은 역사 속에 존재했던 두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언적으로 적용되는 영적 세계에 대한
것입니다. 두로의 왕이 어떤 사람인가 보면 두로라는 나라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두로의 왕에게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지혜가 충만하며 아름다움이 완전하여 모든 것을 봉인(封印)하는 자로다.
](겔28:12).
두로의 왕은 느부갓네살이나 다윗, 솔로몬과도 비교할 수 없는 왕입니다. 그는 지혜가 충만하고 아름다움이 완전하며 모든 것을 봉인하는 자입니다.
두로의 역사는 물론이고 인류 역사에 이런 왕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는 두로를 다스리는 영적 통치자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시간에 영적
세계의 정사와 권세들, 통치자들, 높은 처소들에 있는 존재들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두로의 왕이라 불리는 이 자는 마귀입니다. 이 자는 이사야
14장에 나오며, 에스겔28장에 나오는 루시퍼, 사탄입니다. 하나님은 이 자를 멸하실 것인데 이는 대환란 때에 사슬로 묶어 깊은 구렁에 가두고,
천년 왕국이 끝날 무렵에 산 채로 불 못에 던지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적그리스도는 바빌론, 메대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을 거쳐서
마지막 시대에는 다시 바빌론 제국을 건설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정치와 종교를 통합하여 이 세상을 다스릴 것인데, 이는 중세 1500년 동안
로마 캐톨릭이 가졌던 권세와 비슷합니다. 로마 교회는 아직도 이런 왕국의 도래와 부활을 꿈꾸는데 이들은 적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들이 중세에
누렸던 그런 권세를 누리려 할 것입니다.


3절입니다. [두로에게 이르기를, 오 바다 어귀에 있으면서
많은 섬을 위하여 백성들의 상인(商人)이 된 너 /두로/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오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완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
](3). 이 구절은 마귀에 대한 구절입니다. “오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완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란 말씀은 28:12에 마귀에 대해서 언급된 것과 일치합니다. [너는 지혜가 충만하며 아름다움이 완전하여 모든 것을
봉인(封印)하는 자로다.
](겔28:12). “오 두로야”라고 부르신 것 역시 매우 의인화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특정한
인물을 언급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두로는 바다 어귀에 있으면서 활발한 무역을 했음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온 세계를
좌지우지할만한 강대국이 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예언적인 언급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말 중에 하나가
“나는...하다”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없고 “나는 어떠어떠하다”고 말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멸하십니다. 영적으로 어린 아이들은 항상 “나”를
앞세웁니다. 내가 모든 것의 척도이며, 내가 중심이며, 나를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인생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6:3). 인생의 주체는 늘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의 삶을 인도하시고, 살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자 하지 아니하며 오직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 것을 확신하노라.
] (고전16:7). 바울은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까닭에 너희가 마땅히 말하기를,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요,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약4:15). 우리는 매사에 이런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나는 완전하다. 나는 부자다. 나는 똑똑하다. 나는 능력이 있다.’ 등의 말은
주님을 멸시하는 말입니다. 교회 가운데 그런 교회가 있었습니다.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가련한 것과 비참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도다.
](계3:17). “나는...어떠
어떠하다”고 말할 때 주님은 그를 낮추어 버리십니다.


4절입니다. [네 경계들이 바다 한가운데 있고 너를 건축한
자들이 네 아름다움을 완전하게 하였도다.
](4). 두로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건축된 도시입니다. 이들은 두로의 상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은
섬들이나 민족들인데 이들이 두로의 아름다움을 완전하게 했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움은 교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빌론은 갈대아 사람들의 빼어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왕국들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들의 빼어난 아름다움인 바빌론이 하나님께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리니](사13:19).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의 아름다움을 멸하여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나 도시를 둘러싼 성벽 등은 지금도 불가사의에
해당할 정도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꽃의 아름다움이 떨어지듯이 육체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시듭니다. [이 소리가
이르되, 외치라, 하매 그가 이르기를,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모든 육체는 풀이요, 육체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사40:6).
사람들이 도시를 아름답게 건축하고, 국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돈이나 군대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교도들 가운데로 나아갔나니 이는 내가 네게 단정하게 입혀 줌으로 말미암아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음이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겔16:14). 두로나 바빌론, 로마나 호주의 시드니나 뉴욕 등과는 달리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친히 아름답게 입혀
주신 도시엿지만 그들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화 있을진저, 교만한 왕관 곧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이여! 그들의 영광스런
아름다움은 시들어 가는 꽃이니 이 /꽃/들이 포도주에 잠긴 자들의 기름진 골짜기 머리 위에 있도다.
](사28:1). 죄는 모든 것을
추하고 더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마귀의 왕국에 마귀의 수하들이 도시를 세우고, 아름답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두로가 바다 곁에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이는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지중해 시대에서 대서양 시대로 이제는 태평양 시대로 간다고 하지만 마지막
시대에는 다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무역이 전개될 것임을 말해 줍니다. ‘바다 한 가운데 있고’란 말은 해상 무역의 중심 도시란 의미입니다.


5절입니다. [그들이 스닐의 전나무로 네 배의 모든 판자를
만들었으며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가져다가 너를 위하여 돛대를 만들었도다. 그들이 바산의 상수리나무들로 네 노를 만들었으며 아술 족속의 무리들이
깃딤의 섬들에서 가져온 상아로 네 갑판을 만들었도다.
](5-6). 여기서부터는 익숙하지 않는 지명들이 많이 나와서 성경을 읽는 우리들을
약간 멀어지게 합니다. 스닐의 전나무, 레바논의 백향목, 바산의 상수리 나무들, 아술 족속의 무리들이 깃딤의 섬들에서 가져온 상아 등 여러
민족들이 두로의 배 한 척을 만드는데 최상품의 자재를 쓰고 있습니다. 해상 국가에서 배보다 더 큰 재산은 없습니다. 고대든 현대는 해상을
장악하는 나라가 세계를 장악합니다. 해군이 그 나라의 국력입니다. 판자, 돛대, 노를 만드는데 각국에서 자재를 들여오고, 상아로 갑판을 만들
정도면 얼마나 부유한 나라인가 상상이 갑니다. 마지막 시대에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현재 세계 해양 선박의
주조는 한국과 일본이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배는 만들지 못합니다. 이는 엄청난 정치력, 군사력,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두로의 왕이 적그리스도라면 쉽게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7절입니다. [네가 이집트에서 들여온 수놓은 제품과 고운
아마포를 넓게 펴서 돛을 삼았으며 엘리사의 섬들에서 들여온 청색과 자주색 /옷감/으로 너를 덮게 하였도다.
](7). 호화 함선은 더욱
놀랍게도 이집트의 수놓은 제품, 고운 아마포로 돛을 삼았습니다. 옷감으로도 부족할 제품이 돛으로 사용됩니다. 엘리사의 섬들에서 가져온 옷감들로
배를 덮었습니다. 엘리사의 섬들이란 그리스나 마케도니아를 일컫는데 이곳은 예전부터 세마포로 유명했습니다. 이는 마치 중국의 비단과 같이 옷감으로
유명한 도시들이었습니다. 그리스의 펠레포네스 섬은 최상품의 세마포 산지로 그 명성을 떨쳤는데 성경이 지리학적으로도 얼마나 정확한지를 입증해 주는
구절입니다.


8절입니다. [오 두로야, 시돈과 아르왓 거주민들이 네
선원이 되었으며 네 안에 있는 지혜로운 자들이 네 선장이 되었도다.
](8). 두로는 장사를 하기 위해서 시돈과 아르왓 거주민들을 선원으로
고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두로 사람들이 맡았습니다. 시돈은 두로 위 지중해 최상단의 도시인데 지금도 항구 도시로 유명합니다.
아르왓은 두로와 이웃 지역인데 항해 기술이 매우 뛰어났던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항구 도시나 섬들이 항해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을 선원으로
고용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럽지만 그래도 선장은 두로 사람들의 현자들이 맡았던 것을 볼 때 두로가 이 방면에서는 최고였습니다.


9절입니다. [그발의 노인들과 그곳의 지혜로운 자들이 네
안에서 /배의/ 틈을 막는 자가 되었으며 바다의 모든 배와 그 선원들이 네 안에서 네 상품을 거래하였도다.
](9). 그발은 페니키아의 한
도시입니다. 이들은 목수로서 명성을 떨쳤던지라 두로의 선박을 수리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모든 무역, 경제의 중심이 두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발의 노인들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는 이 지역에서 알파벳이 탄생한 것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페니키아는
이집트의 상형 문자와 크레타의 회화 문자를 받아 들여 22자의 알파벳 자음을 만들어 내었고, 무역상을 통해 온 유럽에 이 문자를 퍼뜨렸습니다.
후에 그리스에서 모음을 추가하여 현재의 알파벳이 되었습니다.


10-11절입니다. [페르시아와 룻과 붓 사람들이 네 군대
안에서 네 전사가 되었으며 그들이 네 안에 방패와 투구를 달아매어 네 아름다움을 나타내었도다. 아르왓 사람들과 네 군대는 네 성벽의 사방에
있었고 감맛 사람들은 네 망대들 안에 있었으며 그들이 자기 방패를 네 성벽의 사방에 달아매어 네 아름다움을 완전하게 하였도다.
](10-11).
두로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민족들이 언급되고 있음을 보십시오. 지금의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민족들이 두로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페르시아와 룻과 붓 사람들은 용병들로서 전쟁에 능한 사람들입니다. 배에는 전사들이 타고 있습니다. 룻 사람들은 활쏘기에
능했던 사람들이며(사66:19), 풋 사람들은 겁을 모르는 용맹성으로 예전부터 용병으로 뽑혔던 사람들입니다. 감맛 사람들은 여기에 딱 한번 밖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라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지만 매우 용맹했던 사람들이어서 두발의 배에 용사로 뽑혔다는 정도만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배에서 방패와 투구를 달아매어 도열한 채 출정하는 모습은 천하무적의 위용을 뽐내는 그런 모습입니다. 이 배의 깃발만 보아도 모두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정도입니다.


12-25절은 온통 무역하는 이야기입니다. 두로가 어떤 민족과
어떻게 상거래를 하고 있는지를 주님께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런 도시를 볼 때면 영광이 영원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어떤 강대국도 그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제국의 영광은 금방 몰락하고 말곤 했는데 주님이 다스리는 영원한 의의 왕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년 제국의 꿈은
오직 주님께서만 이 땅에서 실현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적그리스도를 통해 통제 경제가 되고, 짐승의 표가 없이는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시대에서 적그리스도는 엄청난 부(副)를 축적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구약에서 부자는 복의 상징이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영적인 부를
언급하지만 부자를 저주하거나 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환란 시대에 부자는 저주의 대상입니다. [자 이제, 너희 부자들아, 앞으로 너희에게
임할 비참한 일들로 인하여 슬피 울며 울부짖으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부식되었으니 이 녹이 너희를 대적하여
증거하며 불과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마지막 날들을 위하여 재물을 모아 쌓았도다.
] (약5:1~3). 대환란 때 부자가
되었다는 것은 정당한 부의 축적이 아니라 충성스런 마귀의 수하로서 일했다는 증거에 불과할 뿐입니다.


12-15절입니다. [다시스는 온갖 재물이 많으므로 네
상인(商人)이 되었으며 그들이 은과 쇠와 주석과 납을 네 장터에서 바꾸어 갔도다. 야완과 두발과 메섹은 네 상인이 되었으며 그들이 사람과 놋
그릇을 네 시장에서 바꾸어 갔도다. 도갈마의 집에 속한 사람들은 말과 기병과 노새를 가져다가 네 장터에서 바꾸어 갔으며 드단 사람들은 네 상인이
되었도다. 많은 섬이 네 손의 상품이 되었으며 그들이 네게 상아 뿔과 흑단을 예물로 가져왔도다.
](12-15). 다시스는 지금의 스페인
지역으로 각종 금속의 산지로 유명합니다. 이 금속들이 지중해 연안의 각 국으로 수출되었습니다. 성경의 증언 역시 일치합니다. 야완은 그리스를
가리킵니다. 지금은 잊혀진 신화의 국가로 기억되지만 그리스는 한 때 세계를 제패했던 나라입니다. 모든 서양 철학은 여기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두발과 메섹은 오늘날 러시아를 일컫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이 했던 일은 노예 무역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람과 놋 그릇을 네 시장에서
바꾸었도다.”란 말은 사람들을 사고 파는 인신매매(人身賣買)를 했다는 것입니다. [육계(肉桂)와 향료와 향유와 유향과 포도즙과 기름과 고운
가루와 밀이요, 짐승과 양과 말과 병거와 노예들과 사람들의 혼(魂)이라.
](계18:13). 이는 적그리스도의 경제 체제하에서 교역되는
상품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예입니다. 노예들과 사람들의 혼이 상품 시장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혼들이 아니라면 그 혼들은
마귀에게 속한 혼이요, 팔린 혼입니다.


토갈마(창10:3)는 노아의 증손자요, 야펫의 손자인데 오늘날
독일이나 아르메니아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들은 전쟁 물품을 사고 팔았는데 요즘말로 주로 군수 물자를 교역하고
무기 거래를 했다는 말입니다. 드단은 아라비아인들을 말합니다. 상아 뿔과 흑단은 아프리카의 특산물인데 아라비아 상인들이 주로 교역했던
물품들입니다.


16-18절입니다. [네가 만드는 물품이 많으므로 시리아가
네 상인이 되었으며 그들이 에메랄드와 자주색 /옷감/과 수놓은 제품과 고운 아마포와 산호와 마노를 가져다가 네 장터에서 거래하였도다. 그들 곧
유다와 이스라엘 땅이 네 상인(商人)이 되었으며 그들이 민닛의 밀과 판낙과 꿀과 기름과 향유를 네 시장에서 바꾸어 갔도다. 네가 만드는 물품이
많고 모든 재물이 많으므로 다마스커스가 헬본의 포도즙과 흰 양털을 가져와 네 상인이 되었도다.
](16-18). 두로는 만드는 물품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는 공업 국가란 의미입니다. 역사적으로 두로가 기술집약적인 공업이 발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장차 이 나라는 세계 최고의
공업 국가가 될 것임은 자명합니다. 적그리스도는 마술과 각가지 풍부한 기술력을 제공할 것입니다. 주변 국가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로 이
나라와 장사를 하게 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주로 농산물을 판매했습니다.


19-21절입니다. [단과 야완도 오가면서 네 장터에서
거래하였으니 빛나는 쇠와 계피와 창포가 네 시장에 있었도다. 드단은 병거에 쓸 귀한 옷감을 가져와 네 상인이 되었도다. 아라비아와 게달의 모든
통치자들은 어린양과 숫양과 염소를 가져와 너와 거래하였으며 그들이 이것들을 가져와 네 상인이 되었도다
.](19-21). 단은 가나안 지역
가장 북단에 위치한 도시인데 양질의 칼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게달은 아라비아 북서부 지방의 유목민들인지라 그들의 상품은 양과
염소였습니다.


22-25절입니다.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네 상인이
되었으며 그들이 모든 향료 중 최상품과 모든 보석과 금을 가져다가 네 장터에서 거래하였도다. 하란과 간네와 에덴과 및 스바와 앗수르와 길맛의
상인들도 네 상인들이라. 이들이 모든 종류의 물건 곧 네 상품 가운데서 청색 옷과 수놓은 제품과 백향목으로 만들어 끈으로 묶고 값진 옷을 담은
상자를 가져와 네 상인이 되었으니 다시스의 배들이 네 시장에서 너에 대하여 노래하였으며 너는 충만하게 되어 바다 한가운데서 심히 영화롭게
되었도다.
](22-25). 시바는 아라비아에서 가장 부유했던 성읍이고 라아마는 인근 성읍이었습니다. 이들은 인도로부터 고급 향료를
들여와서 두로에 팔았습니다. 하란은 예전에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나 살았던 곳이고, 간네는 티그리스 강 유역에 위치한 앗시리아의 한
지방이었습니다. 에덴은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있는 아라비아의 한 곳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사37:12). 길맛은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 있는 꽤
큰 도시입니다. 이런 도시들이 모두 두로와 무역을 했던 관계로 두로는 없는 것이 없는 그런 도시가 되었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현대의
뉴욕이나 도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도시임에 틀림없습니다. 각국의 유명한 도시들은 도시의 찬가와 같은 노래들이 있습니다. 이곳 미국의 뉴욕은
프랭크 시내트라가 불렀던 ‘뉴욕, 뉴욕’ 이 있고, 한국의 서울만 해도 ‘서울의 찬가’와 같은 노래들이 불리듯이 두로에 대한 노래가 불렸고,
심히 영화롭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도시는 역사상 없었습니다. 바빌론도 아테네도 로마도 이 정도의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장차 세워질
‘두로’라는 도시, 큰 바빌론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도시야 말로 적그리스도가 지금까지 세웠던 어떤 도시보다 더 영화롭고 찬란한 도시입니다.


26절부터 분위기는 갑자기 바뀌어서 두로는 몰락하게 됩니다.
26절입니다. [너의 노 젓는 자들이 너를 인도하여 큰 물들에 이르게 하였으며 동풍이 바다 한가운데서 너를 부수었도다.](26).
동풍은 레바논 지역으로부터 지중해 쪽으로 불어 오는 바람인데 이 지역에서는 사나운 바람으로 유명합니다. 이 바람이 일면 배를 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다 한 가운데서 이 동풍을 만났으니 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동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것은 태양이 뜨고 지는 방향이며, 동시에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행로와 일치하는 방향이며 성경 어디를 펴 보아도 좋은 방향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동문으로 입성하십니다. 동풍은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바람입니다.


27절입니다. [네가 몰락하는 날에 네 재물과 장터와
상품과 선원과 선장과 /배의/ 틈을 막는 자와 네 상품을 거래하는 자와 네 안에 있는 모든 전사와 네 한가운데 있는바 네 모든 무리에 속한
/전사들이/ 바다 한가운데로 빠질 것이요,
](27). 바다 한 가운데서 만나는 바람은 어떤 배라도 소용이 없으며, 그 안에 어떤 사람이
타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람으로 바다를 움직여 버리시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부분은 계시록
18장의 큰 도시 바빌론의 멸망 모습과 거의 일치합니다. 많은 성경 학자들은 에스겔이 말한 두로가 바빌론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단정하는데 이들은
포로로 바빌론에 잡혀 있던 에스겔이 바빌론의 멸망을 예언하지 못하고 두로에 빗대어 예언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는
점에서 두로와 바빌론의 상관 관계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두로는 분명 바빌론이 아닙니다. 그런데 두로에 대한 묘사는 바빌론에 대한
묘사와 거의 일치합니다. 그러나 바빌론은 해상 국가가 아니며 또한 바다 한 가운데서 망한 역사적 예가 없습니다. 에스겔이 말한 두로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큰 도성 바빌론은 그 통치자가 마귀인데 이들이 망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두로의 통치자자 큰 도성
바빌론의 통치자는 둘 다 마귀입니다. 고로 그들에 대한 묘사가 일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들이 바다 한 가운데 빠지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이에 힘센 천사 하나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이르되, 저 큰 도시 바빌론이 이같이 세차게 던져져서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계18:21). 이 도시의 멸망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 전쟁의 결과입니다. 천사들이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엎어
버렸듯이 큰 바빌론을 바다 가운데로 던져 버리는 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28-30절입니다. [그 주변 지역이 네 선장의 울부짖는
소리에 흔들릴 것이로다. 노를 잡는 모든 자들과 선원들과 바다의 모든 선장들이 자기 배에서 내려와 육지에 서서 너를 향하여 자기 목소리를 들리게
하고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자기 머리 위에 티끌을 날리고 스스로 재 가운데서 뒹굴며
](28-30). 이 모습은 계시록 18:9,10절과
일치합니다. [그녀와 음행하고 호화로이 살던 땅의 왕들이 그녀가 탈 때에 나는 연기를 보고 그녀로 인해 슬피 탄식하며 애통할 것이요,
그녀가 받는 고통을 두려워하므로 멀리 서서 이르되, 가엾도다, 가엾도다! 저 큰 도시 바빌론이여, 저 막강한 도시여! 이는 너에 대한 심판이 한
시간 내에 이르렀음이라, 하리로다.
] (계18:9~10).


31-32절입니다. [또 너로 인하여 완전히 머리를 밀고
굵은 베로 몸을 두르며 비통한 마음으로 쓰라리게 통곡하고 너를 위하여 슬피 울리로다. 그들이 통곡하면서 너로 인하여 애가를 지어 너를 애도하며
말하기를, 두로와 같이 바다 한가운데서 멸망당한 도시가 어디 있는가?
](31-32). 누가 죽거나 멸망했을 때 머리를 밀고 자해를 하는
일은 이교도들의 관습이었습니다. 이들이 망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울고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할렐루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들이
다시 이르되, 할렐루야, 하니 그녀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더라.
](계19:3). 큰 바빌론이 멸망했을 때 주변에서 보인 반응들을
보십시오. [티끌을 자기 머리 위에 뿌리고 슬피 울고 통곡하며 외쳐 이르되, 가엾도다, 가엾도다, 저 큰 도시여! 이는 바다에서 배들을
부리는 자들이 다 그녀의 값비싼 물품으로 인하여 치부하였는데 그녀가 한 시간 내에 황폐하게 되었음이라, 하리라.
](계18:19).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오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적그리스도가 완전한 존재요, 영원한 왕국의 소유자가 될 줄로 알았을 것입니다. 이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 때까지 이런 슬퍼할 것입니다.


33-34절입니다. [네 물품들을 바다에서 내갈 때에 네가
많은 백성을 풍족하게 하였으며 네 재물과 네 상품의 많은 것으로 땅의 왕들을 부유하게 하였도다. 네가 물들의 깊음 속에서 바다로 말미암아 부서질
때에 네 상품과 네 한가운데 있는 네 모든 무리가 빠지리로다.
](33-34). 적그리스도는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왕들에게는 경제적
번영을 주었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로써 정치적 동맹 관계를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일체감은 환란이 끝날 무렵 단 시간에 끝장 나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물이 불타는 것이 사람이 불타는 것보다 더
아쉽고, 아까운 법입니다. [네 혼이 탐하던 열매들이 네게서 떠났으며 우아하고 보기 좋은 것들이 다 네게서 떠났으니 네가 다시는 그것들을
찾지 못하리로다. 이런 물건들을 팔던 상인들 곧 그녀로 인하여 부자가 된 자들이 그녀가 받는 고통을 두려워하므로 멀리 서서 슬피 울고 통곡하며
이르되, 가엾도다, 가엾도다, 저 큰 도시여! 이는 그녀가 고운 아마포와 자주색 옷감과 주홍색 옷감으로 옷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몄는데
그렇게 많던 재물이 한 시간 내에 없어지게 되었음이라, 하고 모든 선장과 배에 있는 무리와 선원과 바다에서 무역하는 자들도 다 멀리 서서
]
(계18:14~17). 이들이 보이는 애끓는 모습을 보십시오. 이들은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연민이 없어도 자신들의 물품이 타는
것에는 애가 끓습니다.


35-36절입니다. [섬들의 모든 거주민들이 너로 인하여
놀라며 그들의 왕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의 얼굴에 근심이 있으리로다. 백성 가운데 있는 상인들이 너를 비웃으리니 네가 두려움이 되어 결코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5-36). 처음에는 애곡했던 상인들이 이제는 비웃습니다. 이곳이 세상의 인심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적그리스도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이 있다고 해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거나 주님께 돌아서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죄는 여전히 그들 앞에 있습니다.






'Archived(완료) > 구약 개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36)  (0) 2006.07.15
에스겔(35)  (0) 2006.07.15
에스겔(33)  (0) 2006.07.14
에스겔(32)  (0) 2006.07.12
에스겔(31)  (0) 200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