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에스겔 32:1~16
요절: 에스겔 32:3
계속해서 이집트의 파라오에 대한 말씀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그에 대한 언급입니다. 파라오는 단지 이집트의 왕이란 역사적 인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대환란 때 임할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파라오, 그 앗시리아 사람, 바빌론 왕 등이 모두 그러합니다. 30:21-22절에서 팔이 꺾이는 모습이 나왔고, 오늘 말씀은
지옥에 내려가는 그의 모습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특정한 사람을 들어 적그리스도와 연관해서 주님이 말씀하실 때가 많이 있습니다. 파라오, 앗시라인,
두로 왕, 바빌론 왕 등이 그런 예인데 이는 그들이 세상의 어떤 사람들보다 마귀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몸은 이집트에 있고, 두로, 바빌론에 있었지만 그들 속에는 마귀의 영이 있었고 마귀가 주는 초자연적인 힘과 능력과 권세를 지니고 왕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왕들은 단지 정치적으로만 왕이 아닙니다. 그들은 신정통합의 권세를 지니고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아들] 또는 그들에게 힘과
권세를 받았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곤 했습니다. 파라오 역시 태양신 라의 아들이라 불렸습니다. 이들의 인생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 안에 있는 [영]이 마귀의 영이요, 적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에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역으로도 성립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개인 다윗의 인생사나 일생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윗 안에 주셨던 거룩한 영 즉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장차 세워질
영원한 왕국에 대한 것입니다. 다윗은 정치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왕이요, 40년간 통치한 것이 전부이지만 다윗 안에 있었던 영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육체적으로 다윗에 대한 말씀만이 전부가 아닌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 이 점을 구분해서 볼 수 있다면 왜
‘역사적 사건’이나 ‘역사적 인물’을 그토록 먼 미래에 전개될 ‘예언적 사건’, ‘예언적 인물’과 중첩이 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놓친 채 ‘이집트와 파라오’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 까지나 역사적 사건으로만 한정해서 과거사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다가
결국 수많은 진리를 놓쳐 버립니다. 반대로 모든 일을 먼 미래에 있을 예언적 사건으로만 규정하고 은유적, 비유적, 풍유적 성경 해석만을
일삼음으로써 성경의 역사성을 뿌리채 뽑아 버리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건전한 생각의
영으로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1-2절입니다. [십이년 십이월 곧 그 달 첫째 날에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너는/ 이집트 왕 파라오를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민족들 중의
젊은 사자와 같으며 바다의 고래와 같으니라. 네가 네 강들과 함께 일어나 네 발로 물들을 휘저으며 그들의 강들을 더럽혔도다, 하라.](1-2).
파라오는 “민족들의 중의 젊은 사자”와 같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자는 모든 짐승들 중의 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의
사자](계5:5)입니다. 마귀는 성도들을 삼키려는 울부짖는 사자(벧전5:8, 시22:21, 딤후4:17)로 나옵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지 않으면 마귀가 사자처럼 삼키려 덤벼들 것이며, 우리가 믿음 안에 굳게 설 때, 그리고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할 때
그는 도망갈 것입니다(약4:7). 이런 점에서 성도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강건한 군사들로서 담대해야 합니다.
‘젊은 사자’ 마귀 외에 또 한 가지는 ‘바다의
고래’입니다. 고래는 바다의 짐승들 중에서 으뜸입니다. 고래는 바다에 살지만 어류로 분류되지 않고 사람과 같이 ‘포유류’로
분류됩니다. 이는 참으로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귀를 가리키는 말로서 ‘고래’는 태평양이나 대서양에서 보는 고래가 아니라 지상에서 볼
수 없는 ‘리워야단’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욥기 41장에서 그의 존재, 생김새, 활동, 무서움, 능력 등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욥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의 지체들과 그의 권능과 그가 알맞게 균형 잡힌 것에 대하여 숨기지 아니하리라.](욥41:12).
리워야단은 주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의 생김새를 그려보면 마치 오늘날 공상 과학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거대한 용들의 모습과 거의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 리워야단의 모습을 말씀해 주신 것은 땅에서 볼 수 없는 초자연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짐승은 성경에서만 그 정체가 나오는데 초자연적인 생물입니다. 결코 포경선에서 잡힐 그런 이 땅의 바다에 있는 고래들이 아닙니다. [땅
위에는 그처럼 생긴 것이 없나니 그는 두려움 없는 존재로 만들어졌느니라.](욥41:12~33). * “땅 위에는 그처럼 생긴 것이
없나니”란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이는 이 지구상의 생물이 아닙니다.
주님은 욥에게 [네가 낚시바늘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늘어뜨린 줄로 그의 혀를 끌어낼 수 있겠느냐?](욥41:1)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그 앞에 서기만 해도 두려움에 떱니다.
인간의 무기는 그에게 지푸라기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에게 마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들 가운데 있는 용들의 머리들을 깨드리셨으며 리워야단의 머리들을 산산조각 내시고 그를 광야에 거하는 백성에게 먹을
것으로 주셨으며](시74:13,14)라고 합니다. 이 땅의 오대양 넓은 바다에 존재하지 않는 바다가 저 하늘 위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용들이 노는 바다이며 이 용들을 잡아서 주님이 광야의 백성들에게 먹을 것으로 주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경이로운 찬양을
했는데 그 내용인즉 [이 크고 넓은 바다도 그러하오니 그 속에는 느릿느릿 다니는 짐승 곧 작고 큰 짐승이 무수하나이다. 거기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만드사 거기서 놀게 하신 리워야단이 있나이다.](시104:25~26)라고 했습니다. 지금 시편 기자가 말한 “이 크고 넓은
바다”는 팔레스타인 인근에 있는 지중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욥기에 언급한 ‘리워야단’이 놀고 있는 바다입니다. 리워야단은 하늘들
위의 바다에 있는 용입니다. [그 날에 [주]께서 자신의 매섭고 크고 강한 칼로 꿰뚫는 뱀 리워야단 곧 구부러진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사27:1). 이 바다에는 이 땅의 바다와 마찬가지로 짐승들이 무수히 살고 있습니다. 그 바다에는 배들이
있는데 이는 인간들이 만든 배가 아니라 초자연적인 배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우주의 구조, 하늘들 위에 있는 하늘, 그 위에 있는 물인
깊음, 그리고 영적 존재들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지식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은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바다’를 지상의 바다로만 한정하는지라 ‘리워야단’을 바다 고래, 상어, 악어 심지어 하마라고 말하는 등 아무 동물로 마구 대체해
버립니다.
3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많은 백성의 무리와 함께 내 그물을 네 위에 치리니 그들이 내 그물로 너를 끌어오리로다.](3). 주님은 리워야단을 그물로
끌어 올리십니다. 주님은 리워야단을 낚시로 잡을 수도 있고, 줄로 혀를 묶을 수도 있고, 가시로 턱을 꿸 수도 있습니다. [네가 낚시바늘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늘어뜨린 줄로 그의 혀를 끌어낼 수 있겠느냐? 네가 그의 코에 낚시바늘을 걸 수 있겠느냐? 가시로 그의 턱을 꿸
수 있겠느냐?](욥41:1-2). 사람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무서워 떨며 낙담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의 가죽을
쇠꼬챙이로 가득 채울 수 있겠느냐? 그의 머리를 물고기 작살로 가득 채울 수 있겠느냐?] (욥41:7)고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를 마치 한 마리 물고기를 다루듯이 다루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도 리워야단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흔히 오순절
교회에서 마귀를 결박한다느니 좇아낸다든지 하는 등의 별 우습지 않는 존재로 설교하는 것을 흔히 봅니다. 이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보혈의
능력으로” 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어떤 영화에서는 십자가를 내밀면 마귀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갑니다. 캐톨릭 사제가 성수를 뿌리고 성경을
앞으로 쭉 내밀면 마귀는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도망가는 식으로 그려 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십자가나 성경책을 무서워하거나
사제들이나 목사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어낸 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귀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땅 위에는
그처럼 생긴 것이 없나니 그는 두려움 없는 존재로 만들어졌느니라.](욥41:33)고 말합니다. 마귀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서 마귀들이 누구를 보았을 때 두려워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원한 지옥에 멸해 버리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막5:6-7, 마8:29참조. 성도들이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이 싸우실 때입니다. 우리 속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를 대적하실 때 마귀는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안에 계신 주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지 않고는 결코
마귀를 대항할 수 없습니다. [너희가 마귀의 간계(奸計)를 능히 대적하고 서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胄)를 입을지니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대적(對敵)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政事)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것은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함이라.](엡6:11~13).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을 차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연전연패할 뿐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말씀하신 주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도 마귀와 대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나의 대장이 되시고,
나를 대신해 싸워 주실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나를 대신해 죽으신 주님께서 이제 나를 대신해 살아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의 대장되신 주님께서 우리 앞서 나가 싸우신다는 사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막연히 “믿습니다”고 외치며 믿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근거로 말씀을 통해 주님이 하신 일들을 듣고, 그분을 알고, 진리의 분명한 사실을 믿을 때 승리가 옵니다. 마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도 압니다. [자녀들은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또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속박에 얽매인 자들을 건져 내려 하심이라.](히2:14~15).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이니 곧 마귀의
일들을 멸하려 하시는 것이라.](요일3:8b). 마귀들은 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알아보고 주님께 경배했고, 굴복했고,
도망갔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파라오로 예표되는 마귀를 어떻게 이깁니까?
육신적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는 이 세상에서 왕인 파라오로, 통치자로, 권세자로 있습니다. 이집트에 살면서 파라오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의 통치자, 공중 권세 잡은 자를 이길 사람은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영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 승리는 어떻게
오는가?
승리는 내가 갈구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오듯이(롬10:17) 승리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믿을 때 옵니다(요일5:4-5). 하나님은 오직 승리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5:57).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할 때 자연스럽게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할 때 주님은 자신을 빛으로 향기로 열매도 드러내십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고후2:14).
승리는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옵니다. [이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5:4-5). 이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4-6절입니다. [그때에 내가 너를 땅에 버려 두고 빈
들판에 던져 하늘의 모든 날짐승이 네 위에 머무르게 하며 온 땅의 짐승이 너를 /먹어/ 배부르게 하리로다. 또 내가 네 살을 산들 위에 두며 네
높은 /키/로 골짜기들을 채우리라. 내가 또한 네 피로 네가 헤엄치는 땅에 물을 대어 산들에까지 이르게 하리니 그 강들이 너로 가득하게
되리로다.](4-6). 리워야단이 얼마나 컸던지 땅에 버려 두었을 때 ‘하늘의 모든 날짐승’이 배부르게 먹습니다. 리워야단의 살들이
‘산들 위에 두고, 꼴짜기들을 채울 정도’입니다. 리워야단이 쏟아내는 피가 얼마나 많던지 “네 피로 네가 헤엄치는 땅에”라고 말씀합니다. “그
강들이 너로 가득하게 되리라”는 말씀 역시 그가 얼마나 덩치가 큰 녀석인지를 잘 말해 줍니다. * 계14:20참조.
7절입니다. [내가 너를 물리칠 때에 하늘을 가려 거기
있는 별들을 어둡게 하고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그 빛을 내지 못하게 하리라.](7). 하나님이 마귀를 물리칠 때에 있게 될 하늘과
땅에는 천체의 물리적인 변화가 있게 됩니다. 별들이 어둡게 되고 해를 구름으로 가리고, 달이 그 빛을 내지 못하게 되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이와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분께서 여섯째 봉인을 여신 뒤에 내가 보니, 보라, 큰 지진이 나며 해가 머리털로 짠
상복(喪服)같이 검게 되고 달은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강풍에 흔들려 설익은 무화과가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고]
(계6:12~13). 달이 피같이 변합니다. 어느 날 하늘을 보았는데 달이 시뻘건 핏덩이처럼 보이는 그런 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8절입니다. [또 내가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네 땅 위에 어둠을 두리로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8). 이미 출애굽기에서 주님께서 이집트 전역에 삼일동안
깜깜한 흑암을 보내신 적이 있습니다(출10:21-23).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서 이집트 땅 위에
어둠이 있게 하되 /감촉으로/ 느낄 수 있는 어둠이 있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자기 손을 내밀매 캄캄한 어둠이 사흘 동안 온
이집트 땅에 있으므로 사람들이 사흘 동안 서로를 보지 못하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아무도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출10:21~23). 이런 재앙들은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거니와 미래에 있을 예언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결과가 결국 이것입니다. 영적인 빛, 말씀의 빛을 거부한 이들이 결국 물리적인 빛까지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3:19). 하나님이 이집트에
어둠을 보내실 때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빛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언제라도 어둠 속에 거하지
않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9-10절입니다. [내가 너의 멸망을 민족들 가운데로 곧
네가 알지 못하던 나라들 안으로 가져올 때에 또한 많은 백성의 마음을 괴롭게 하리라. 참으로 내가 많은 백성으로 하여금 너로 인해 놀라게
하리라. 내가 그들 앞에서 내 칼을 휘두를 때에 그들의 왕들이 너로 인해 심히 두려워하겠고 네가 쓰러지는 날에는 그들이 각각 자기 생명을 위하여
순간 순간마다 떨리로다.](9-10). 마귀의 멸망은 마귀를 따르던 민족들의 아픔이요, 고통이었습니다. 42개월동안 마귀를 추종하던
민족들이 그의 멸망으로 인해 당할 허망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영원할 것 같았던 '적그리스도의 왕국'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을 타고 칼을 뽑으실 때 적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당할 심적 고통은 육체적, 물리적 고통을
훨씬 능가할 것입니다.
11-12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바빌론 왕의 칼이 네 위에 임하리라. 내가 강한 자들 곧 민족들 중에서 무서운 자들의 칼로 네 무리를 쓰러지게 하리니 그들은 다
/무서운 자들이라/. 그들이 이집트의 영화(榮華)를 노략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11-12). 하나님께서 파라오에게 말씀하신
것은 파라오 안에 있던 적그리스도의 영을 염두에 두고 그의 미래적 활동과 운명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파라오 안에 있던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서 말씀하시다 이제 다시 역사적 현장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파라오의 몸 즉 이집트의 정치적 권력을 잡고 있던 파라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집트는 바빌론의 느부갓레살 왕에 의해 완전히 무너집니다.
13절입니다. [내가 또한 그곳의 모든 짐승을 큰 물들
곁에서부터 멸하리니 사람의 발이나 짐승의 발굽이 다시는 그 물들을 휘젓지 못하리로다.](13). 이집트는 바빌론에 의해 멸망당한 후에
다시는 물들을 휘젓지 못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군대에 멸망당한 후에 다시는 위세를 부리지 못할 것입니다. 나일 강이
무너지면 그들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강들 곁에 있던 짐승들이 모두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사람의 발이나 짐승의 발굽이 물들을 휘젓지 못하는
것은 예언적 사건입니다. 14절입니다. [그 뒤에 내가 그들의 물들을 깊게 하여 그들의 강들이 기름같이 흐르게 하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14).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보좌를 차지하면 천년 왕국이 시작되는데 이 때 ‘그들의 물들이 깊어지고, 강들이
기름지게 흐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땅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 강, 바다, 산들에 일대 지형 변화가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천년 동안 이 땅을 의와 평화로 다스릴 때 지상은 에덴의 동산처럼 변화될 것입니다. 모든 짐승들이 초식동물로 바뀌고 그들이 강에서 물을 마시게
됩니다. 가시 나무와 엉겅퀴가 사라집니다.
15절입니다. [내가 이집트 땅을 황폐하게 하므로 그 나라에 충만하던 것이 없어지게 될 때에 곧 내가 그곳에 거하는 모든 자를 칠 때에
내가 [주]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15). 이집트는 인류 문명의 상징이요, 부의 상징일 정도로 한 때는 찬란한 힘을 자랑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유혹을 느끼고, 거기로 가고 싶어했던 곳이 바로 이집트입니다. 그러나 어느덧 이집트는 풍요와는 거리가 먼 빈곤의 땅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집트를 여행한다면 곳곳에서 그들의 궁핍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의 상태는 장차 있게 될 환란 때에 비하면
그나마 좋은 편입니다. 완전히 불모의 땅이 될 때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될 것입니다.
16절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그녀로 인하여 슬퍼하며
/부를/ 애가(哀歌)니라. 민족들의 딸들이 그녀로 인하여 슬퍼하되 그녀 곧 이집트와 그 모든 무리로 인하여 슬퍼하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16). 망하고 죽고 나서 남는 것은 슬픈 애가(哀歌)요 만가(輓歌) 뿐입니다. 이것이 죄로 죽어간 인생들에게 남는 유일한
것입니다. 이집트는 완전히 멸망하여 남은 것이 없거니와 적그리스도의 왕국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살다간 사람들
역시 그러합니다. 그들이 인생을 얼마나 화려하고 멋지게 살았던지 그들의 운명은 이집트의 파라오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성도의 죽음은 장송곡이 아니라 저 하늘을 향해 가는 화려하고도
웅장한 찬송곡입니다. 저 하늘의 천사들이 우리를 맞을 것입니다. 영광스런 왕관들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모두 내려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장면들을 봅니다(히12:1). 장송곡을 남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의 행진곡, 승리의 찬가를
부르며 사는 사람들이 됩시다. 주 하나님께서 파라오를 끌어 올리시고, 벌하시고, 죽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 가면 승리를 얻습니다. 승리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