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에스겔 31:1-18
요절: 에스겔 31:16
오늘 말씀은 파라오와 ‘그 아시리아’ 사람으로 예표되는 마귀의
정체에 대한 것입니다. 흔히 묵시 문학이라고 일컫는 본문은 주님께서 마귀를 역사의 인물을 통해 드러내 주고 계십니다.
1-2절입니다. [제 십일년 삼월 곧 그 달 첫째 날에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너는/ 이집트 왕 파라오와 그의 무리에게 말하기를, 위대함에 있어서 네가 누구와
같으냐? 하라.](1-2). 제 십일 년 삼월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시드기야 왕이 포로로 잡혀온 지 십일년이 지난 3월 1일입니다.
이집트 왕 파라오를 “위대함에 있어서 네가 누구와 같으냐?”라고 말씀합니다. 당대의 세계 최고의 권세와 부를 가졌던 파라오는 적그리스도의 모형이
될 만한 존재입니다. 성경에서 ‘큰 자’라고 말할 때는 권세와 부유함을 말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이삭이 심히 큰 자가 된 내용이 나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씨를 뿌려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주]께서 복을 주시므로 이 사람이 크게 되어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심히 큰 자가 되었더니]
(창26:12~13). 이는 이삭이 부자가 되고 권세를 지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왕국에서 ‘큰 자에서 작은 자까지’라고 할 때는 ‘왕에서부터
평민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위대함”(greatness)은 큰 자를 말하는 것인데 이 세상에서 이집트의 파라오보다 큰 자가 없었습니다.
신약에서 큰 자란 개념은 구약과 다릅니다. 우리는 군대나 돈이나
권세를 통해 크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이 명령들을 행하고 가르치는 자 곧 그는 하늘의 왕국에서 큰 자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마5:19b)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 곧
그가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큰 자니라.](마18:4), [오직 너희 중에 가장 큰 자는 너희 종이 될 것이요,](마23:11)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서로 큰 자가 되기를 열망하고 시기하고 경쟁하고 다투는 것을 자주 보셨습니다. 그 때마다 주님은 누가 큰 자인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니 이는 너희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작은 사람 곧 그가 큰 자이기 때문이라.](눅9:48). 진정으로
위대한 자, 큰 자가 되고 싶다면 이 우주에서 가장 크신 분을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가장 작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3절입니다. [보라, 그 아시리아 사람은 레바논의
백향목이니 그 가지들은 아름다우며 가리는 그늘이 있고 키가 크며 그 꼭대기는 굵고 큰 가지들 사이에 있도다.](3). “그 아시리아
사람”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집트 사람이 아니라 ‘아시리아 사람’입니다. 아시리아가 이집트를 정복해서 지배계층이 되었고,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던 다른 왕이 바로 ‘아시리아인’이었습니다. '그 아시리아 사람'은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비유되어 있습니다. 당대의 중동에서 나무라고하면 ‘레바논의 백향목’을 최상품의 최고 수종으로 여겼습니다. 나무를 대표하는 그런 나무가 ‘레바논의
백향목’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나무로 비유한 예가 매우 많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강가에 심기운 나무’로 비유하셨고, 의로운 사람은 ‘종려 나무’에 비유하셨고, 열매 맺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무화과 나무’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외에도 올리브 나무, 포도나무, 가시 나무 등 성경에는 적절한 비유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그들이 퍼진 것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주]께서 심으신 알로에나무 같고 물가의 백향목 같도다.](민24:6)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백향목은
번성, 성공, 높음, 위엄의 영광, 위대함을 대표하는 나무입니다. 덕분에 교만, 거만함을 나타낼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나무로
묘사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나무를 꺾으시거나 뽑아 버리시거나 잘라 버리시거나 태워버리시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을 심판하시는 것이
됩니다. [[주]의 음성이 백향목들을 꺾으시나니 참으로 [주]께서 레바논의 백향목들을 꺾으시는도다.](시29:5). 레바논의
백향목은 이집트의 파라오 즉 세상의 통치자요, 가장 큰 자이며, 그 아시리아 사람이요, 적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인물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음성으로
적그리스도를 멸하십니다. *계1:16, 계19:15,21 참조할 것.
4-5절입니다. [물들이 그를 크게 하며 깊음이 그를 높이
세우고 자기 강들로 하여금 사방에서 그의 초목들 주변을 흐르게 하며 작은 강들을 내보내어 들의 모든 나무에 이르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높이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게 되고 그의 큰 가지들이 번성하며 물들이 많으므로 그의 작은 가지들이 뻗어 나가 길게 되었더니](4-5).
그 아시리아인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어떻게 주변 민족들을 다스리며 제국을 건설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백향목이 자라기 위해서는 풍부한 물이
필수적입니다. 마찬가지로 제국이 유지되고 강성해지려면 많은 주변 나라들, 민족들과 무역이 성행해야 하고, 조공을 바치거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
아래 두어야 합니다. ‘물들이 그를 크게 하며 깊음이 그를 높이 세우고’란 말씀은 이집트 사람들, 주변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아시리아 사람의 수하에 있었음을 말합니다. 자기 강들, 사방에서 그의 초목들이란 표현 역시 모두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점점 강성해지고 번성해졌습니다. ‘그의 높이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게 되고’란 말은 비교를 불허하는 그런 제국의 절대 왕권을 가지게
되었음이요, 그 권세가 사방으로 미치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훌륭한 사람을 일컬어 ‘거목-큰 나무’란 표현을 씁니다. 훌륭한
목사님들이나 부흥사, 선교사들을 일컬어 ‘영적 거목’ 또는 거성(巨星)-큰 별이란 표현을 씁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거목(巨木) 중의 거목이
되었습니다.
6절입니다. [하늘의 모든 날짐승이 그의 큰 가지들에 자기
둥지를 만들고 들의 모든 짐승이 그의 작은 가지들 밑에 자기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민족이 그의 그늘 밑에 거하였도다.](6). 제국의
왕을 ‘큰 나무’에 비유한 예는 느부갓네살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 4:11-12에 [그 나무가 자라서 강하게 되고 그 높이가
하늘에까지 닿아 그 모습이 온 땅의 끝에서도 보이며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그 나무 안에 모든 사람이 먹을 것이 있고 또 들의
짐승들이 그 밑의 그늘에 있으며 하늘의 날짐승들은 그 가지들에 깃들이고 모든 육체가 거기서 먹을 것을 얻더라.](단4:11-12)고
합니다. 거대한 나무에 날짐승들이 거기에 둥지를 틀고, 자기 새끼를 낳고, 그 그늘 밑에 거하듯이 거대한 제국이 형성되면 필연적으로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합니다. 역사상 이 지상에는 많은 제국들이 있었다가 소멸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왕국도 적그리스도의 왕국만큼 큰 제국을 형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지상의 거의 모든 민족들을 자신의 그늘 아래 둘 것입니다. 현재 UN은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가입되어 있지만 각국을
통제하는 제국의 힘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느덧 이것이 국제 사회에서 유일한 정치 집단이 되거나 다른 형태로 각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을 얻게 된다면 거기의 우두머리는 ‘적그리스도’일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 사람이 교황일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주님은 하늘의 왕국 비유에서 ‘채소가 거대한 나무’로 변하는 한
이상한 나무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모든 씨 중에 가장 작은 것이로되 자란 뒤에는 채소 가운데 가장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13:32). “채소 가운데 가장 커서 나무가 되매...”란 말씀을 보십시오. 종교로
시작하여 정치 집단으로 변하는 것, 교회로 시작했다가 정당이 되고 권력이 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는데 역사적 예로는 ‘로마 캐톨릭’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나라들, 민족들, 언어들이 마치 나무에 날아들어 둥지를 튼 새들처럼 들어있습니다.
7절입니다. [그의 뿌리가 큰 물들 곁에 있으므로 그가
이와 같이 크게 되고 그의 가지들이 길어 아름다웠더라.](7). 그의 뿌리가 큰 물들 곁에 있었다는 것은 그가 큰 나무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큰 물들이 있는 곳은 어디나 사람이 모여 듭니다. 산업이 번성합니다. 세계의 문명 발상지라고 일컫는 곳은 모두 큰
강들이 있는 곳입니다. 나일강, 유프라테스 강, 티그리스 강 등은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젖줄이었습니다. 아시리아는 티그리스 강과 더불어 성장했던
민족입니다. ‘큰물들 곁에 있었으므로’ 크게 되고, 가지들이 길어 아름다워졌습니다. 나무는 물가에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크게 됩니다. 우리는
악인들의 형통함을 너무나 자주 봅니다. 이들에게도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뿌리가 있고 큰 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큰 강이 없습니다. 그들의 땅에는 나일 강이나
유프라테스 강과 같은 강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네가 들어가서 소유할 땅이 너희가 나온 이집트 땅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니 거기서는 너희가 씨를 뿌린 뒤에 채소밭에 물을 대듯 발로 물을 대었거니와 너희가 가서 소유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흡수하는 땅이요, 또 [주] 네 하나님께서 보살피시는 땅이니 한 해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 네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11:10~12)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땅은 이집트 땅과 다릅니다. 이집트에서는 “씨를 뿌린 뒤에 물을 대었지만”
이스라엘은 물을 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받아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큰 강 대신 ‘깊은 샘’을 주셨습니다. [이는
[주] 네 하나님께서 좋은 땅으로 너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니 그곳은 시내가 있고 골짜기와 산에서 흘러나오는 샘과 깊은 곳이 있는 땅이요,]
(신8:7). 이는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받아서 살되 우리 안에 깊은 샘이 있어야
합니다.
8절입니다.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백향목들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고 전나무들이 그의 큰 가지들과 같지 못하며 밤나무들이 그의 작은 가지들과 같지 못하여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그 어떤 나무도
아름다움에서 그와 같지 못하였도다.](8). *it이 아니라 him(그를)이란 말에 주목하라. 나무가 그냥 나무가 아닌 ‘인격적 존재’인
누구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가장 아름답고 지혜가 충만한 존재로 지음 받았던지라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그 누구도 그와 비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덮는 그룹으로 지음 받았으며 피리와 북이 그 안에 예비되어 있었으며, 하나님의 보좌를 덮는 그런 위치에 있었습니다.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그룹이요, 덮는 /그룹/이라. 내가 너를 그렇게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위에 있었고 불타는 돌들 한가운데서 오르내렸도다.]
(겔28:14). 그러므로 피조물들 중에 누구도 그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그 어떤 나무도 아름다움에서 그와 같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마귀는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완벽한 아름다움의 소유자였기 때문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그의 작은 가지를 많게 하여 그를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그를 시기하였느니라.](9). *시기(env)- 부러워하였다. 마귀를 아름답게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시고, 모든 능력을 부여하신 분도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란
영적 존재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를 시기하였다”고 하는 것은 무슨 문제가 터졌거나 그의 탁월한 아름다움으로 인해 ‘부러워하였다’는 정도의
의미입니다.
10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네가 높은 /키/로 말미암아 네 자신을 높였느니라. 그가 자기 꼭대기를 굵고 큰 가지들 가운데로 뻗었으며 그의 마음이 자기의
높은 /키/로 말미암아 높아졌느니라.](10). 주님은 어느덧 나무에 비유했던 말씀을 직접적으로 한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적그리스도는 마귀가 한 사람으로 육화해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의 정체를 추적하면 3절에는 제국의 통치자요 앗시리아 사람인 이집트의
파라오로 묘사되고, 8-9절에서는 하나님의 동산에 있었던 뛰어난 나무로 묘사되며, 10절에는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누구입니까? 환란 시대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자”는 신약 성경에서 주로 묘사하는 마귀의 정체성입니다.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를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2:4). *사1414, 겔28:2 참조.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자신을 낮추신 분이십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빌2:8). 주님은 스스로를 낮추시고 또 낮추셔서 땅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자신을 또 높입니다. 현대 교육은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마귀의 영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을 낮추어 복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반복적으로 ‘자신을 낮추어’라고 말씀합니다.
낮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해야’ 합니다. 성경의 인간 관계는 한 마디로 복종입니다. 상호 존중이 아니라 상호 복종입니다. 신하는 왕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국민은 권세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언론이나 학교에서, 학자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간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어떻게 복종하는가? 자신을 낮추어 복종합니다. [아내들아, 너희 자신을 낮추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 [아내들아, 너희 자신을 낮추어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것이 {주} 안에서 합당하니라.](골3:18).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 제자는
스승에게, 종은 주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교회에 온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너희 자신을 낮추어 복종하라.](히13:17a). 저는 한 때 반역의 영이 충만해서 이런 말씀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교회 내에서까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마음 속에서 마구 솟아 올랐습니다. 반골(反骨) 기질이 있는데다 강한 야성(野性)을 지닌
사람으로서 순종, 복종이란 단어는 정말 싫었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영에 사로잡힌 것인지 모르고 성경적 가치관을 인본주의적 가치관으로 마구
공격하면서 개성이요, 기질이라고 합리화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교회 내에서 성도 상호 간에는 평등의 관계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교회 내에는
계급이 없다. 맞습니다. 교회 내에는 차별이 없다. 맞습니다. 하지만 상호 존중, 상호 평등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복종의 관계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젊은 사람들아,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 자신을 낮추어 장로에게 순복하고 참으로 다 서로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으라.
이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니라.](벧전5:5). 어떻게 복종합니까? ‘너희 자신을
낮추어’ 복종합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고전2:16)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마음이라.](빌2:5)는 것이 바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낮추면 낮출수록 큰 자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자가 됩니다. [너희는 이러한 사람들과 또 우리와 함께 도우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너희 자신을 낮추어 복종하라.](고전16: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너희 자신을 낮추어 다른 이에게 복종하라.](엡5:21). 그냥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복종하는 것입니다. [{주}의 눈앞에서 너희 자신을 낮추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자신을 얼마나
낮추어야 합니까?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아는 만큼 낮출 수 있습니다. 십자가형을 언도 받은 중죄인이란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다윗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오니 사람들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멸시거리이니이다.](시22:6). 욥기에
빌닷은 이르기를, [심지어 달을 바라보아도 그것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참으로 별들도 그분의 눈앞에서는 순수하지 아니하거늘 하물며 벌레인
사람이야 어떠하겠느냐? 벌레인 사람의 아들이야 어떠하겠느냐?](욥25:5~6)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이 부정한 입술을 지닌 사람임을
발견하고 망하게 되었다고 통탄을 했습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정확히 볼 때 우리는 자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없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것은 자의적 겸손이거나 자기 의를 쌓아나가는 것 뿐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것을 통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11-12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를 이교도들 중에서
힘센 자의 손에 넘겨주었으니 이 힘센 자가 반드시 그를 처리하리라. 내가 그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그를 내쫓았느니라. 타국인들 곧 민족들 중에서
무서운 자들이 그를 자르고 내버려 두었으므로 그의 작은 가지들은 산들 위에와 모든 골짜기에 떨어졌고 그의 큰 가지들은 땅의 모든 강들 곁에서
꺾였으며 땅의 모든 백성은 그의 그늘에서 떠나 그를 내버리매](11-12). 11절부터는 다시 이집트의 파라오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이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대언하시는 주님의 기술 방법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 즉 [그 아시리아 사람]을 멸했던 것처럼 적그리스도 역시 그렇게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역사를 자세히 공부하는 것은 그 역사적 사건이 미래의 사건을 예표하고 보여주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등에 대한 말씀들은 흘러간 역사가 아니라 환란 때 적그리스도의 왕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3-14절입니다. [하늘의 모든 날짐승이 그의 폐허 위에
머물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의 작은 가지들 위에 있으리니 이것은 그 물들 곁의 모든 나무 중 어느 하나라도 자기의 높은 /키/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을 높이지 못하게 하고 자기 꼭대기를 굵고 큰 가지들 가운데로 뻗지 못하게 하며 또 물을 마시는 모든 나무가 스스로 높이 서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는 /이미/ 그들이 다 죽음에 넘겨져서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사람들의 자녀들의 한가운데서 땅의 아랫부분에 이르렀음이니라.](13-14).
이집트의 파라오,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등 그 이후의 모든 제국들이 다시는 자신을 높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나무들이 사람들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들의 마지막은 “땅의 아랫부분” 즉 지옥입니다.
15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그가 무덤에 내려간 날에 내가 그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며 깊음을 덮어 주고 그곳의 홍수를 막으며 큰 물들을 멈추게 하고 또 레바논으로 하여금
그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며 들의 모든 나무가 그로 인하여 활기를 잃게 하였느니라.](15). 우리는 요한 계시록에서 적그리스도의 멸망이
온 세상의 슬픔이 되는 것을 봅니다. 땅의 왕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민족들이 모두 애곡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용을 섬기고, 적그리스도를
따르던 이들이 그의 멸망에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들의 운명은 마귀와 함께 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깊은 구렁에 가두어 두십니다.
16절입니다. [내가 그를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지옥에 내던질 때에 민족들로 하여금 그의 떨어지는 소리로 말미암아 요동하게 하였은즉 물을 마시는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최상급 가장 좋은
나무들이 땅의 아랫부분에서 위로를 받으리라.](16). 마귀의 처소는 깊은 구렁입니다. 마귀 뿐 아니라 마귀의 천사들 역시 그러합니다.
지옥은 본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한 곳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마25:41). 마귀가 사슬에 결박되어 바닥없는 구덩이에 던져지는 모습은
요한계시록 20:2-3에 나옵니다. [용을 붙잡으니 저 옛 뱀 곧 마귀요 사탄이라. 그 천사가 그를 붙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바닥 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어 가두고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이 차기까지는 더 이상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뒤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리라.](계20:2-3). 이들이 던져질 때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최상급 가장 좋은 나무들이 땅의 아랫부분(지옥)에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에덴의 모든 나무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들은 베드로전서 3:19-20에 나오는 “감옥에
있는 영들”, 유다서 1:6에 언급된 자기 거처를 떠난 천사들일 것 같습니다. [또한 자기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으며](유1:6) 한 때 마귀를 시기했고, 땅에 내려와
범죄했던 천사들이 마귀가 깊은 구렁에 던져질 때 비로소 ‘위로’를 받게 됩니다. 감옥에 있던 죄수들은 자기보다 더 큰 범죄자들이 세상에서 활개를
칠 때 마음이 상하지만 그가 잡혀서 무기징역에 처해지거나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 들어올 때 큰 위로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마귀가 심판을 받아 사슬에 결박된 채 지옥의 깊은 구렁에 던져질
때 그들이 받을 위로가 얼마나 큰지 지옥에는 오랜만에 환호성을 지르게 될 것이요, 이들의 소리로 땅이 진동을 하게 됩니다(16).
17-18절입니다. [그들도 그와 함께 지옥으로 내려가
칼에 죽임을 당한 자들에게 이르렀나니 그들은 전에 그의 팔이 된 자들이요, 이교도들의 한가운데서 그의 그늘 밑에 거하던 자들이라.](17).
파라오의 팔이 되었던 자들이 모두 칼에 죽임을 당해 지옥에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대환란 때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칼에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며 이들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적그리스도를 따르고 경배하며 그의 팔이 되었던 자들 역시 그러합니다. 에스겔 32:31에
[파라오가 그들을 보고 그 모든 무리로 인하여 위로를 받으리니 곧 칼에 죽임을 당한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가 그러하리로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겔32:31)고 말합니다. 마귀는 자신이 지옥으로 이끌어 온 혼들을 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18절입니다. [영광과 위대함에서 네가 에덴의 나무들 중에
누구와 같으냐?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땅의 아랫부분으로 내려갈 것이요, 칼에 죽임을 당한 자들과 함께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한가운데 누우리라. 이들은 곧 파라오와 그의 모든 무리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18). 마귀에 대한 말씀입니다. 에덴의
어떤 나무도 영광과 위대함에서 마귀를 따를 수 없습니다. ‘에덴의 모든 나무들’은 영적 존재들이며, 마귀의 천사들입니다. 이들은 지옥으로
내려가며, 모든 불신자들도 그러합니다. 마귀는 지하 세계에서는 여전히 왕입니다. 그는 그들 한 가운데 눕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의 파라오를 통해 단지 정치적, 외교적 국제
관계를 말씀해 주신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들에 대한 영적 진리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