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에스겔 37:15-28
요절: 에스겔 37:17,19
이스라엘의 민족적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주님께서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 됨에 대해서 언급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하나이면서도 열 두 족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 나라는 다윗과 솔로몬을 거치면서 두 왕국으로
갈라졌습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남 왕국 유다로 불렸고 나머지 열 지파는 북 왕국 에브라임으로 불렸습니다. 이 둘은 한 민족이 틀림없지만
오랫동안 반목과 갈등으로 전쟁을 하기도 하고 서로를 원수 대하듯 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당시에는 이 둘은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이방인 취급했습니다. 이들을 개로 여길만큼 인간 이하로 대접하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복음을 전하실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셨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행1:8)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마리아’를 분명히 언급하셨고 사도행전에는 복음 전파 통로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민족적 동질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마리아를 버렸지만 우리 주님은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대제사장의 기도를 드리실 때(요17장)
여러 가지 기도를 하셨지만 제자들을 향한 한 가지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으셨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 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것은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했던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좀처럼 하나 되기 어렵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하나 되기 어렵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교단과 교파를 봅니다. 이들은 교리적 문제로 분리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사소한 문제로 분열된 것들입니다. 하나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세상으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소위 교회일치 운동이나 교파
연합을 지지하는 말씀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종교 통합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복음 안에서, 영 안에서 하나되는 것을
믿습니다. 정략적 통합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혼합입니다. 자아를 포기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않는 이상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아버지께 받은 영광을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이유와 목적은 하나됨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2). 주님은 제자들이 하나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준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성령을 통해 여려 가지 은사를 받은 것은 하나가 되게 하시려는 주님의
뜻에 기인합니다. 우리는 서로 세워주는 일에 전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별과 분리를 외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세상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 됨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신 대로 제자들은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예를 사도행전 초반에서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형제들과 함께 한 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행1:14).
[오순절 날이 충만히 임하매 그들이 다 한 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니](행2:1). 성령이 오시기 전에 이미 그들은 하나가 되어
기도하고, 한 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었습니다. 성령이 임한 후에 그들의 모습 역시 동일합니다. [또 날마다 한 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나누면서 단일(單一)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으며](행2:46).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고, 능력과 학력과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성도들의 마음을 세상과는 날카롭게 분리시키지만 같은 믿음, 같은 영 안에서는 하나로 일치시킵니다. 십자가의 피가 우리 각인의 마음에 뿌려질 때
우리는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와 사마리아가 하나가 되고, 유대인과 헬라인이 하나가 됩니다. 십자가는 멀리 떨어진 것을
가깝게 하며, 원수된 것을 화해하게 합니다.
15-16절입니다. [[주]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 사람의 아들아, 또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의 동료 이스라엘의 자손을 위하여, 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요셉과 그의 동료 이스라엘의 온 집을 위하여, 라 쓰며](15-16). 유다와 그의 동료
이스라엘 자손이란 유다와 베냐민을 말합니다. 에브라임의 막대기 요셉과 그의 동료 이스라엘이란 나머지 모든 지파를 말합니다. 유다는 남 왕국을
대표하고 에브라임은 북 왕국을 대표합니다. 주님은 본래 한 왕국이던 이들을 솔로몬의 우상 숭배로 인해 르호보암 때 찢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솔로몬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히야가 자기 위에 입은 그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취하라.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이 왕국을 솔로몬의 손에서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왕상11:30~31).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왕국을 이렇게 나누신 것은 전적으로 솔로몬의 배교에 기인한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들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 족속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에게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걷지 아니하고 내 눈에
올바른 일을 행하지 아니하며 내 법규와 내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왕상11:33). 죄는 왕국의 약화를 가져오고 죄는 언제나
분리를 가져옵니다. 이 때 둘로 갈라진 이후로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까지 이들은 결코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합하신 것은 사람이 나누지 못하고, 하나님이 나누신
것은 사람이 합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이 바벨을 쌓아 교만했을 때 주님은 언어를 흩으시고 온 땅으로 사람들을
흩어 버리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죄로 인해 두 왕국으로 갈라졌습니다. 죄는 금슬 좋은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갈라놓고, 형제들도 갈라놓습니다.
죄는 동료들을 갈라놓습니다. 죄는 내 자신의 마음마저 갈라놓습니다. 죄가 내 속에 들어오면 가족, 이웃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 마음이 갈라지고
나누어집니다. 정신 분열, 다중 성격 장애 등이 모두 그런 것입니다. 다윗은 기도하기를, [오 [주]여, 내게 주의 길을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 안에서 걸으리니 내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사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하소서.](시86:11).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해 주시기를 구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단일한가? 하나가 되어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호세아
10:2에 [그들의 마음이 나뉘었으니 이제 그들이 잘못한 자로 드러나리라. 그분께서 그들의 제단들을 파괴하시고 그들의 형상들을 못쓰게
하시리니](호10:2). *하나님은 상한 마음을 고치시고 싸매시고 기름을 부어 치유하시지만 ‘나누어진 마음’은 책망하시고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두 막대기에 이것을 쓰게 하신 것은 이 둘을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17절입니다.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결하여 한 막대기가
되게 하라. 그것들이 네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17). 주님은 에스겔에게 두 막대기를 서로 연결해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실물 설교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보통 분리된 나라들은 통일을 향한 부단한 노력과 엄청난 비용을
치르면서 정치적 통합 과정을 겪습니다. 전쟁을 통해서든지 연방제를 채택하든지 간에 하나가 되려는 여러 가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통일을 향한 열망이나 노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에스겔 대언자 시대에는 그런 노력을 할 수도 없었던 것이 북 왕국은 이미 멸망해 버렸습니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에는 더욱더 물과 기름의 관계로 적대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두 왕국을 하나가 되는 일은 인간적 노력이나 정치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하나됨은 연방제 통일이나 전쟁에 의한 굴복이나 경제력을 앞세운 흡수 통합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리를 보내심으로써 신앙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요 하나님으로 믿고 받아들일 때, 왕이신 주님의 통치를 받을 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됨의
요체는 군대나 돈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분리된 왕국을 하나되게 하는 것, 원수된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며 하나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진리 안에서, 믿음 안에서, 영 안에서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18절입니다. [네 백성의 자녀들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는 이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18). 유다 사람들이 에스겔을 향해서 에스겔이 하는 실물
설교의 의미를 묻습니다. 막대기에 쓴 글들이며 두 막대기를 하나로 만든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에게 보여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는 일은 너무나 훌륭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는 것 역시 좋은 일입니다. 무관심은 불신만큼이나 무서운 죄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민족의 운명에 대해서 설교하는 에스겔을 통해 그 의미를 물었습니다.
19절입니다.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요셉의 막대기와 그의 동료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데려다가 그들을 유다 곧
유다의 막대기와 함께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라.](19). 하나님은 에스겔의 입에
이렇게 답하도록 답변을 주셨습니다.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요셉의 막대기와 동료 이스라엘 지파들을 데려다가 유다의 막대기와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합니다. 통일, 연합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타협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이들을 이끌어 오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시켜
주십니다. 하나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과 화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원수라도 화목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길들이 [주]를
기쁘시게 하면 그분께서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와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16:7).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이스라엘을 나누셨듯이 이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들을 하나가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연합, 통일의 바탕은 언제나 주님이셔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가 될 때
세상은 적그리스도 아래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대적합니다. 대환란기에 그런 일이 있고, 천년 왕국이 끝날 무렵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있습니다. 주님은 반역자들을 한꺼번에 심판하시기 위해서 그들의 연합을 허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것은 강대국의 점령 때문이 아닙니다.
인도처럼 종교적 문제로 갈라진 것도 아닙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북 왕국이 독립한 것은 솔로몬의 집권 말기부터 있었던 높은 세금과 노역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표면적 이유에 불과할 뿐입니다. 성경은 그들의 분리는 우상 숭배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민족을 찢으실 수도 있고, 다시 하나로 만들어 주실 수도 있습니다. 높일 수도 있고, 낮추어 버리고 아예 없애
버리실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먼저 북 왕국이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설마 자신들이 멸망하리라고 믿지 않았던 남 왕국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빌론의 강력한 군대에 의해 멸망하고 성전이 불타 버렸습니다. 자신들이 바빌론으로 포로 잡혀 옴으로써 이들은 민족의 공멸이란 그런 위기를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제 돌아갈 땅 마저도 없고 민족도 사라지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때 주님은 에스겔을 통해 미래에
회복될 이스라엘, 죽은 자들의 부활, 분리된 두 왕국의 하나 됨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현실을 볼 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들이지만
주님은 완전히 절망의 나락에 앉아 있는 그들에게 천년 왕국의 모습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주 안에서는 결코 멸망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주님은 자신의 것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 속에 가진 것이 없고, 자신감도 사라지고, 능력도 사라질 때 우리는 주님이 보여
주시고 들려주시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그 순간에 주님의 강함이 되십니다. 우리의
무지는 주님의 지혜가 드러나는 때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주님의 부활의 생명이 드러나는 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설의 진리를 깊이
체험하며 삽니다. 마음속에 사형 선고를 받은 듯 할 때 강력한 부활의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질 때 영광을 봅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삶입니다. 우리는 천년 왕국과 그 때에 세워질 성전과 주님의 통치에 대한 가장 풍성한 계시가 임한 때가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가장 비참한
포로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대선지서들이 언제 주어졌는지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가장 비참하고
힘든 때 가장 많은 계시, 가장 풍성한 말씀이 그들 위로 쏟아졌습니다.
20-21절입니다. [네가 /글을/ 쓴 막대기들이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 손에 있나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을 그들이 가서
/거하던/ 이교도들 가운데서 취하여 내고 사방에서 그들을 모아 그들의 땅으로 데려오며](20-21). 이 말씀은 오랫동안 예언이 아니라
상징이나 비유로 여겨졌던 구절입니다. 약 2,000 년 간 온 세상에 흩어져 유대인이란 희미한 흔적뿐인 이들이 다시 모여서 영토를 찾고 나라를
세운다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보통 대부분의 나라들의 독립이나 국가 건설은 주권의 상실이 전부이기 때문에 무장
투쟁이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영토와 나라를 구성할 백성은 그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땅 자체를 잃어 버렸고, 온 세계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 민족에 동화되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이 가서 거하던 이교도들 가운데서
취하여 내십니다. 1918년부터 시작된 시오니즘은 1928년에 불이 붙었고 1948년에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역사적 성취가 있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에는 지파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였습니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에는 아직도 고국으로 귀환하지 않고
여전히 이방 땅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영토는 모든 유대인들이 귀한해서 살기에는 너무나 비좁습니다. 예언이 극히
부분적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대 환란을 거쳐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광대한 땅을 모두 차지할 것입니다.
22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산들이 있는 그 땅에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어 한 왕이 그들 모두에게 왕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겠고 다시는 두 왕국으로 나뉘지 아니하리라.](22).
다시 회복된 이스라엘은 한 민족이요, 한 왕이 다스리는 단일 신정 국가입니다. 이제 이후로는 다시 다른 민족의 밥이 될 일이 없고, 흩어질 일도
없습니다. 주님은 다윗을 통치자로 세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좌에 앉으십니다. 낯선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에게 들려지는 이
약속의 말씀은 마치 우리가 장차 임할 재림과 그분의 왕국을 소망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타국에 포로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약속을 주셨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바빌론에서 죽어 뼈를 묻을지라도 주님은 그 뼈에 숨을 불어 넣어서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되돌아 가 한 왕국을 이루어 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면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이 땅에서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무덤 속에 잠자는 우리를 살리시고 생전에 설교를 통해 듣고, 성경에서 보았던 약속대로 하늘로 불러 올리시고, 천년 왕국에서
살게 하십니다. 새 예루살렘에 거처를 마련해 주십니다. 죽음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망의 권능, 무덤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23절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자기 우상들과 역겨운 것들과
그 어떤 범죄로도 자기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의 모든 거처 곧 그들이 범죄하던 곳에서 그들을 구원하고 정결하게 씻으리니 그리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23). 솔로몬이 건축했던 예루살렘의 성전이 불타고 소실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소실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높고 높으신 곳에 거하십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당하는 모든 환란은 우상 숭배란 범죄로 인한 것입니다.
이제 새롭게 왕국이 건설되면 이들은 우상들이나 역겨운 것들과 어떤 범죄로도 자기 자신을 더럽히지 않을 것입니다. 우상의 본 고장인 바빌론에서
이들은 우상의 실체를 경험했고, 우상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로 이들은 우상 숭배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외적
행위에 관련된 우상 숭배 외에 마음의 탐심, 육신의 정욕 등의 모든 죄로도 자신을 더럽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이미
앞에서 다루었습니다. 음행, 우상 숭배, 혀, 쓴 뿌리, 마음 속에 가득한 것들이 우리를 더럽히는 것인데 주님은 이들 안에 새 영을 부어
주시고, 새 마음을 주시고, 속에다 율법을 기록하심으로써 어떤 범죄로도 자기 자신을 더럽히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구원하시고,
정결하게 씻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말씀, 성령으로 이들을 정결하게 씻김으로써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24절부터는 천년 왕국과 그 이후의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으리라. 그들이 또한 내 법도 안에서 걸으며 내 법규를 지켜 행하리라.](24).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으십니다. 앞에서 다루었던 내용 참조할 것.
25절입니다. [그들이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너희 조상이 거하던 땅에 거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자녀들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통치자가
되리라.](25). 그들이 거하게 될 땅은 이미 확정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땅입니다. 지금까지는 이교도들에게 수시로
뽑히고 무너졌지만 이제 더 이상 이 땅에서 쫓겨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왕조가 망하는 일도 없습니다.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는 뽑히지 아니하리라. [주] 네 하나님이 말하노라.](암9:15). 주님이 친히 세우신 영원한 왕국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이 장면은 천년 왕국과 그 이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26절입니다. [또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어 그들과
함께하는 영존하는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에게 처소를 정하여 주고 그들을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들의 한가운데 세워 영원히 있게 하리라.](26).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시내 산에서 맺었던 언약이 아니라 새 언약을 맺으십니다. 화평의 언약이라 불리는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을 새
언약입니다.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에 따른 것이 아니니 내가 그들의 남편이었을지라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그 날들 이후에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 /중심/부에
두고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다시는 그들이 각각 자기 이웃이나 자기
형제를 가르쳐 말하기를, /너는/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의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나를 알 것임이요,
또 내가 그들의 불법을 용서하고 다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 (렘31:31~34). 이스라엘은
번성하게 되고, 주님의 성소가 다시 이스라엘 한 가운데 세워지는데 영원히 있게 됩니다. *“영원히”란 말에 주목할 것. 천년 왕국을 거쳐 영원
세계에서 이스라엘은 이 땅에 살게 된다.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새 예루살렘에 살게 된다. 우리는 영원 세계에서도 여전히 이스라엘, 그리스도인,
이방인이 구분되어 있음을 본다.
27절입니다. [내 장막도 그들과 함께 있으리니 참으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27). 유대인들의 3대 절기 중에 하나인 장막절은 천년 왕국에 자신들 한 가운데
거할 주님의 장막, 주님의 성소를 기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2000년 전에 손으로 짓지 않는 장막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獨生)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거하시매- tabernacle. 주님께서 친히 몸을 입으신 성소가 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이라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졌습니다. 주님이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이셨습니다.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히10:20). 주님은 부활, 승천하시고 이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천년 왕국에 세워질 성전의 모습은
에스겔 끝 부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주님이 친히 성전이 되심으로 손으로 지은 성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또 내가
그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전능자와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성/전이시기 때문이라.] (계21:22).
우리는 모두 새 예루살렘에 거할 것입니다. 지상의 유대 땅에 세워질 성전에는 성소가 있습니다. 주님은 에스겔을 통해 장차 세워질 성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28절입니다. [내 성소가 그들의 한가운데 영원히 있게 될
때에 나 [주]가 이스라엘을 거룩히 구별하는 자인 줄을 이교도들이 알리라.](28). 이스라엘 한 가운데 영원히 있게 될 주님의 성소는
모든 이교도들에게 하나님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합니다. 지상의 모든 이방 민족들은 주님을 섬기고 이스라엘을 열방의 머리가 되고 제사장 왕국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