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에스겔 45:1-25

요절: 에스겔 45:15


우리는 말씀을 통해 천년 왕국에서 성전이 회복되고, 성전 제사나
율법과 각종 규례들이 다시 실행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이라고 자처하는 교회와 신학자들 중에는 갈보리의 십자가 희생이 하나님께 드린
마지막 희생물이요, 더 이상의 헌물(offering)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제 이것들을 사면하셨은즉 다시는 죄로 인하여
헌물을 드릴 필요가 없느니라.
](히1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천년 왕국 때에 성전, 제사장들, 헌물 등이 있으며 안식일과
율법이 지켜진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성경을 정확히 나누어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만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이 모순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영적 해석을 가하지 않고도 정확히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 제사장, 헌물들은 교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에 주어진 교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이전처럼 지파별로 땅이 분배되고 통치자들이 있고 제사장들이 재판을 합니다. 죄
헌물, 화평 헌물 등 구약에서 행해진 여러 가지 제사와 헌물들이 다시 드려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유업으로 주십니다. 이미 구약에서 한 번 역사적으로 실행되었던 일들이 모델이 되고, 그 실체가 천년 왕국에서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 친히 왕이 되시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됩니다.
공의와 화평이 다스리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런 시대를 꿈꾸지만 결코 어느 인간이나 어느 정부가 이룰 수 없습니다. 의와 공평이 물같이
넘치는 시대를 이루는 것은 모든 종교인들의 꿈이요 염원이며 자신들의 교리적 가르침으로 이루어낼 완성품으로 생각합니다. 캐톨릭은 로마 캐톨릭이 온
세계에 전파되고 교황이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전 세계를 종교적, 정치적으로 모두 지배하게 되는 날을 꿈꿉니다. 불교는 불교 교리가 온 세상에
전파되는 날이 불국정토가 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캐톨릭이 국교가 된 시대, 그런 나라들에서 의와 평화가 있었습니까? 불교가
국교인 그런 민족이나 나라들에서 그들이 말한 이상향이 이루어졌습니까? 전 국민의 절대 다수가 회교 신자인 나라들에서 회교적 이상 국가나 나라가
만들어졌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이 땅에는 어떤 종교적 가르침이 넘치더라도 타락한 인간 본성으로 인해 이상 국가의 근처도 갈 수 없습니다. 의와
화평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셔서 영원한 왕국을 세우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공의를 물같이, 의를 힘찬 물줄기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암5:24). 이 왕국의 도래를 우리는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다스리는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성소가 들어설 거룩한 땅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왕국의 크기는 일단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장소에 그 땅의
너비 그대로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메시아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성전이 자리 잡습니다. 미래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이미 이 일이 역사적으로 겹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1절입니다. [또 너희가 제비뽑아 이 땅을 나누어 상속으로
삼을 때에 이 땅의 거룩한 부분을 봉헌물로 [주]께 드릴지니 그 길이는 이만 오천 갈대요, 너비는 만 갈대라. 이 /땅/은 그 사방 모든
경계 안에서 거룩하리라.
](1).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 마침내 문자 그대로 온전한 이스라엘의 소유가 됩니다. 어느 나라나
민족도 영토 분쟁을 하지 못할 것이며, 이 땅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시비를 걸지 못합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치리할 때 이스라엘의 영토가
가장 넓었던 시절에도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을 전부 차지한 예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속으로 주신 땅에서 그들은 ‘거룩한 부분을 봉헌물’로
주께 드려야 하는데 봉헌물로 드려진 땅의 너비를 지금 단위로 하면 82.5 x 33Km 정도입니다. 거룩한 부분이라고 언급된 땅은 레위인
구역(4)과 성소가 있는 “예물을 드리는 장소”(1), 그리고 성읍의 소유(6)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거룩한 구역’은 천년 왕국의
성소를 중심으로 길이 이만 오천 갈대, 너비 만 갈대입니다. 이 땅은 사망 모든 경계 안에서 거룩하다고 말씀합니다. 주를 위해 드려진 구별된
땅이란 뜻입니다. “주께서 거기 계시다”란 이름의 도시이며, 왕의 보좌가 있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2-3절입니다. [그 중에서 성소를 세울 /땅/은 길이가
오백 /갈대/요, 너비가 오백 /갈대/로 사방으로 네모 반듯하며 그 주변 지역은 사방으로 오십 큐빗이 되게 하고 이 측량한 것 중에서 너는 길이
이만 오천 /갈대/와 너비 만 /갈대/를 측량하여 그 안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게 할지니라.
](2-3). 성소가 들어 설 땅의 너비는 길이
오백, 너비 오백 갈대의 정 사각형입니다. 성소와 지성소의 위치는 거룩한 땅 한 가운데입니다. 지성소의 크기는 이십 큐빗 이십 큐빗으로
정사각형입니다. [그가 /성/전 앞에서 길이를 측량하니 이십 큐빗이요, 넓이가 이십 큐빗이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것은 지성소니라,
하고
](겔41:4). 하나님께서 땅과 성전을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인해 그 땅과 성전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바빌론 군대에 의해 이스라엘은 70년 간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이 되어 버렸고, 성전은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연약함으로 넘어지고 실패했을 때 실패로 영원히 끝을 내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첫 사람 아담의 실패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됩니다. 하나님은 이전보다 더 나은, 더 완전한 것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첫 언약 보다 더 나은 새 언약으로 회복됩니다.
이스라엘 역시 그러합니다.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나은 성전, 잃어버린 땅보다 더 넓고 좋은 땅을 얻게 됩니다. 이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인가 실패했다, 망했다 싶을지라도 주님 안에서 소망을 가지십시오. 반드시 그 문제에서 승리하는, 회복케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얻지 못한다면 저 하늘에서 그에 대한 상급과 유업의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4절입니다. [그 땅의 이 거룩한 부분은 [주]를 섬기러
가까이 나아올 제사장들 곧 성소에서 섬기는 자들을 위한 것이니 그곳은 그들의 집을 세울 장소요, 또 성소를 세울 거룩한 장소라.
](4).
거룩한 땅의 일부분은 제사장들과 성소에서 섬기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따로 땅을 유업으로 주시지 않고 이곳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성전 주변에 일만 갈대의 너비로 제사장들의 집이 자리 잡습니다. 주께 헌물로 드려진 땅이 제사장들의 몫이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제사장들의 유업은 주님 자신입니다. [[주]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서 상속도 없겠고 그들 가운데서
아무 몫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네 몫이요, 네 상속이니라.
](민18:20). 아론이 받았던 몫은 결코 적은 몫이
아닙니다. 그에게 눈에 보이는 땅이나 소유에 대한 상속이 없다 할지라도 그는 만유의 주요,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그의 몫이요, 상속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님께 어떤 보상을 바라고 계십니까? 영적 제사장들이 된 성도들은 땅의 보상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상속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들의 상속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안에서 그들에게 아무 소유도 주지 말라. 내가
그들의 소유니라
.] (겔44:28). 주님은 “내가 곧 그들의 상속이라. ...내가 그들의 소유니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안에서 그들에게
아무 소유도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소유를 얻기를 바라고 기도한다면 그는 실망하고 말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고,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약속을 받았지만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땅은 한 평도 받지 못했습니다. 해변의
모래알,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그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록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일들 후에 [주]의 말씀이 환상 속에서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防牌)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報償)이니라, 하시니
] (창15:1)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보십시오. 주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주셨습니다. 자신의 평안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압할 권능을 주노니
”(눅10:19)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요10:28)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주셨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무엇이든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이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8:32).
우리는 영적 제사장으로서 주님이 주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들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천년
왕국이나 땅의 소유가 아니라 영적 소유로 사는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신약의 영적 제사장들은 천년 왕국 때 땅을 통치할 왕의
직분을 겸직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지금이 아닌 다가올 세대에 주어질 것들에 대해 소망하고, 확신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5절입니다. [또한 레위 사람들 곧 그 집에서 섬기는
자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길이 이만 오천 /갈대/와 너비 만 /갈대의 땅/을 차지하되 스무 개의 방을 지을 소유로 차지하리라.
](5).
여기서 말하는 레위인들은 사독의 아들들이 아닌 레위인들입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섬기는 일꾼들이긴 하지만 제사장들이 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거룩한 구역 내에 있는 일부 땅을 소유를 받게 되는데 “스무 개의 방을 지을 소유”를 차지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자기
불법을 담당하리라.
](겔44:12b)고 말씀하시고, 이들이 성소에 가까이 나아와 주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셨지만 여전히 그들을 향해
긍휼을 베풀고 계십니다. 주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6절입니다. [또 너희는 이 봉헌물 곧 거룩한 부분의
맞은편에 너비 오천 /갈대/와 길이 이만 오천 /갈대의 땅/을 지정하여 이 도시의 소유로 삼을지니 이것은 이스라엘의 온 집을 위한 것이니라.
](6).
성읍의 소유 지역은 예루살렘 도시를 포용하는 지역으로서 각 지파의 몫에 상관없이 이스라엘 온 집을 위한 것이 됩니다. 예루살렘은 천년 왕국의
수도로서의 위상에 맞는 도시의 규모를 갖추게 됩니다. 이상 1-6절까지는 “주께 헌물로 드려진 구역”으로서 레위인들, 제사장들, 성읍의 소유로
분리된 땅에 대해 주어진 규례입니다.


7절입니다. [또 통치자를 위한 부분은 이 봉헌물 곧
거룩한 부분과 이 도시의 소유가 /된 땅/ 이쪽과 저쪽에 있되 이 봉헌물 곧 거룩한 부분의 앞과 이 도시의 소유가 /된 땅/ 앞에 있을 것이며
서쪽에서 서쪽을 향하고 동쪽에서 동쪽을 향하리니 서쪽 경계에서부터 동쪽 경계에 이르기까지 그 길이가 그 부분들 중의 하나와 마주 대할지니라.
](7).
7절부터는 통치자들의 소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통치자들의 몫은 주께 봉헌물로 드려진 거룩한 부분을 제외하고 동, 서로 경계에 이르기까지 전
지역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는 다른 지파들의 몫보다 훨씬 넓은 셈입니다. 하나님은 통치자들이 백성들의 유업을 취하여 그들을 수탈하거나 쫓아내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셨는데 그들에게 필요한 충분한 땅을 주었습니다. 통치자들이 받은 이 땅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상속할 수
있습니다(46:18).


8절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통치자의 소유가 이 땅에
있으므로 내 통치자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학대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이 그 땅의 남은 부분을 이스라엘의 집에게 그들의 지파대로 줄 것이니라
.](8).
구약에서 통치자들이 백성들의 땅을 탐내어서 그들을 수탈한 기록한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탐욕스런 통치자들은 공공연히 백성들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내쫓았습니다. 정치적 격변기일수록 이런 일은 허다합니다. 우리는 아합 왕이 나봇의 땅을 빼앗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을 봅니다. 천년
왕국에서는 제도적으로 통치자들의 땅을 명시해 두고, 백성들의 유업에는 아예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해 두셨습니다. 정치는 필요악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친히 다스리는 그 땅에서 통치자들은 백성을 학대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12지파의 통치자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물을/ 새롭게 하는 때 곧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라온
너희도 열두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19:28). 주님을 따른 사도들은 열 두 지파의 재판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신정 일치 국가에서 왕과 제사장은 겸직이요, 또한 사법권을 가집니다. “심판하리라”는 말씀은 구약의 재판관들을
생각해 보면 간단합니다. 사사기(재판관기)에 보면 그들이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총괄했습니다. 모세나 다윗, 솔로몬 역시 최고
재판관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이스라엘의 집에서 그들을 재판합니다. 주님을 따랐던 사도들은 주님으로부터 이런 약속을 받았습니다. [또 내
이름으로 인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아내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자마다 백 배를 받고 또 영존하는 생명을 상속받으리라.
]
(마19:29). 그들은 땅에서 이 약속의 성취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약속은 천년 왕국에서 열 두 지파의 통치자로 세움 받을 때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9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오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 이것이 너희에게 충분하니 /너희는/ 폭력과 노략을 제거하고 공의와 정의를 집행하며 내 백성에게서 너희가 강제 징수하는
것을 없앨지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9). “폭력과 노략을 제거하고
- 폭력과 노략은 타락한 인간 본성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힘이 없을 때는 자신 안에 폭력이나 노략이 전혀 없고 평화, 정의, 평등, 자유
등의 이상향을 꿈꿉니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돈의 힘이든 정치적 힘이든 군대의 힘이든 약간의 힘이 생기면 자신 안에 ‘폭력과 노략’이란 본성이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분출됩니다. 힘이 있으면 그 힘을 폭력과 노략을 위해 사용하고자 합니다. 돈이 있으면 육신의 쾌락과 오락을
추구합니다. 지혜가 있으면 악한 일을 꾀합니다. 마음이 타락한 상태에서 무엇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그것은 더욱 강력한 죄의 도구가 되고, 몸은
불의의 병기가 되어 버립니다. 사람들 중에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어떤 특정한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죄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죄성을 발휘할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인 경우입니다. 우리는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각계
각층의 권력자들, 고위 직급에 있는 공직자들, 재벌들의 부정과 부패를 보고 듣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사기, 절도, 공갈, 협박과 같은 좀도둑이
아니라 ‘큰 도둑’이라고 부릅니다.


주님께서 이들에게 “폭력과 노략을 제거하고 공의와 정의를
집행하며”라고 말한다면 이들은 웃고 말 것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정 국가였던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 그러하였다면 이교도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천년 왕국 때 주님은 이스라엘 통치자들에게 “공의와 정의”를 집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강제 징수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정치 개혁은 민주주의, 언론의 감시, 시민 사회의 연대, 높은 시민 의식 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통치, 왕같은
제사장들이 이 땅에 통치자들로 세움 받음으로 이루어집니다.


10절입니다. [너희는 공정한 저울과 공정한 에바와 공정한
바스를 취할지니
](10). 통치의 기본은 바른 자, 바른 저울, 바른 ‘되’에 있습니다. 공정한 저울, 공정한 에바는 통치의 기본이
공평, 정당에 있음을 말해 줍니다. [너희는 재판을 할 때와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레19:35).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방에 다른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다른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너는 완전하고 공정한 저울추와 완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지니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게
되리니 이는 그런 일 행하는 자들 곧 불의하게 행하는 자들이 다 [주] 네 하나님께 가증한 자이기 때문이니라.
](신25:13~16).
구약은 율법은 있었지만 실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악한 저울과 속이는 추를 담은 자루를 지니고 다니는 자들을 깨끗하다 하겠느냐?](미6:11).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못함, 죄성, 마귀의 유혹 등등으로 인해 율법의 명령은 단지 기준에 지날 뿐이었습니다. 율법 앞에서
인간은 철저히 무능하고 불의하고 부정하며 죄인으로 드러날 뿐이었습니다.


천년 왕국에서 율법은 지킬 수 없는 율법이 아니라 모두 다
행해야 할 것들입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음으로 구약과는 달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마귀가 천년 동안 갇힘으로써 유혹자가
없어집니다. 주님과 부활한 의인들과 성도들이 통치자가 되어 그들을 다스립니다. 환경은 완전해집니다. 사람들은 천년 동안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의가 넘치는 시대, 의를 실행하는 그런 시대를 살아야 합니다.


11-12절입니다. [에바와 바스는 한 용량으로 하여
바스는 일 호멜의 십분의 일을 담게 하고 에바도 일 호멜의 십분의 일을 담게 하되 그 용량은 호멜을 따를 것이니라. 세겔은 이십 게라요, 이십
세겔과 이십오 세겔과 십오 세겔이 너희의 마네가 되리라.
](11-12). 구약 성도들에게 익숙한 도량형입니다. 우리는 현재 파운드, 갤런
등을 사용하고 세계 공용으로 미터법을 채용합니다. 천년 왕국에서는 주님께서 정해 주신 도량형이 있습니다. 에바, 바스, 호멜, 세겔, 게라 등의
단위를 씁니다.


저나 여러분에게 이런 도량형은 성경을 읽거나 설교 시간에만 듣는
것이라 익숙하지 않는데 에바와 바스는 같은 용량입니다. 일 호멜은 십 에바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220리터 정도입니다. 에바는 마른 곡식을 되는
되이고, 바스는 액체를 되는 용기입니다. 일 세겔은 이십 게라인데 11.4 그램 정도입니다. 마네는 60 세겔이고 금인 경우에는 일백 세겔입니다(왕상10:17,
대하9:16). 이 부분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은 성경의 도량형이란 표를 참고해서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13-14절입니다. [너희가 드려야 할 봉헌물은 이러하니
곧 밀 일 호멜에서 육분의 일 에바를 드리고 보리 일 호멜에서 육분의 일 에바를 드릴 것이며 기름의 규례 곧 기름의 바스에 관하여는 너희가 일
고르 곧 십 바스로 된 일 호멜에서 십분의 일 바스를 드릴 것이니 이는 십 바스가 일 호멜이기 때문이라.
](13-14). 백성들이 드려야
할 봉헌물의 양입니다. 이런 것들은 일종의 성전 세금입니다. 성전을 섬기는 이들은 땅을 상속으로 받지 않는 대신 이들이 내는 봉헌물로 양식을
삼습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헌금, 십일조 등의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교회의 성도는 구약의 십일조나 성전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마음에 정한 대로 헌물을 내는 것입니다. 구약이나 천년 왕국에서 성전에 내는 것은 강제 조항이고 율법으로 정해진 의무입니다. 이는 신약 성도들이
내는 헌금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이 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15절입니다. [또 이스라엘의 기름진 초장의 이백 마리
양떼 중에서 어린양 한 마리를 드릴 것이라. /너희가/ 음식 헌물과 번제(燔祭) 헌물과 화평 헌물로 /이것들을/ 드려 백성을 위해 화해를
이룰지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15). 양의 경우에는 이백 마리 당 한 마리를 취해서 드립니다. 양은 음식 헌물,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로 주님께 드리는 것인데 이 헌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화해를 이룹니다. 천년 왕국의 통치자들과 현재 교회 성도들의 차이입니다.
교회 시대에는 백성들을 위해 화해를 이루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으며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화해하게 하는 사역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사람들의
범법을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느니라. 그런즉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大使)가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너희에게 간청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
](고후5:18-20). 화해의 직분은
성도 각 개개인에게 맡겨졌습니다. 양을 잡아 헌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통해 화해케 합니다.


주님은 화해 헌물이 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라/.
](요일2:2). [사랑은 여기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고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신 것이라.
](요일4:1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더 이상의 화해 헌물이 필요치 않습니다. 주님 한분으로 족합니다.


16-17절입니다. [이 땅의 모든 백성은 이스라엘의
통치자를 위하여 이 봉헌물을 드릴 것이며 통치자의 몫은 명절과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의 집의 모든 엄숙한 날에 번제 헌물과 음식 헌물과 음료
헌물을 드리는 것이니 그는 죄 헌물과 음식 헌물과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예비하여 이스라엘의 집을 위해 화해를 이룰지니라
.](16-17).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치자들을 위하여 봉헌물을 드려야 합니다. 통치자들은 백성들이 드린 봉헌물들을 받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이스라엘의 집을 위해
화해’를 이룹니다. 이 제사는 개개인의 죄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집 즉 민족적인 것임에 유의하십시오. 명절, 월삭, 안식일, 엄숙한 날 등 모든
것이 구약에서 이미 언급된 것들인데 그들은 천년 왕국 때 모형으로서가 아니라 이미 십자가를 통해 성취된 율법을 실제로 드림으로써 ‘화해’를
이루는 것입니다.


18-20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첫째 달 곧 그 달 첫째 날에 너는 흠 없는 어린 수소 한 마리를 취하여 성소를 정결하게 할지니 제사장들이 그 죄 헌물의 피를
취하여 그 집의 기둥들과 그 제단 선반의 네 모퉁이와 안뜰 문의 기둥들에 바를 것이요, 그 달의 일곱째 날에도 너는 잘못하는 자와 단순한 자를
위하여 그리할지니 너희는 그렇게 하여 그 집이 화해를 이루게 할지니라.
](18-20).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규례입니다. 첫째 달 첫째
날에 즉 아빕월 첫째 날입니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에는 니산 월(느2:1)이라고 불렸는데 이 달 14일이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
1월 1일과 7일에 성소 구석구석에 수소의 피를 바르도록 하셨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하게 된다”는 말씀대로 성소의
정화는 피로써 이루어집니다. 피의 목적은 화해입니다. 이런 모든 의식을 통해 이들이 십자가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과 천년 왕국에서 이스라엘은 율법의 의식과 규례를 통해 진리이신 주님을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첫째 달 곧 그 달 십사일에 너희는
유월절을 이레 동안의 명절로 지키며 누룩 없는 빵을 먹을지니라
.](21). 천년 왕국에서도 구약과 동일하게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켜야
합니다.


22-24절입니다. [그 날에 통치자는 자기와 그 땅의
모든 백성을 위해 수소 한 마리를 예비하여 죄 헌물로 삼을 것이요, 또 이 명절의 이레 동안에 그는 [주]를 위하여 번제 헌물을 예비하되 곧 흠
없는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날마다 이레 동안 예비하고 또 날마다 새끼염소 한 마리를 예비하여 죄 헌물로 삼을 것이며 또 음식
헌물을 예비하되 수소 한 마리에는 /밀가루/ 일 에바요, 숫양 한 마리에도 일 에바며 일 에바에는 기름 일 힌씩이니라
.](22-24).
이 부분은 구약의 율법과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유월절 7일 동안에는 수송아지 2마리, 숫양 1마리, 일년 된 어린 양 일곱 마리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으나 천년 왕국에서는 어린 양 일곱 마리가 삭제되고 수송아지가 일곱 마리로 증가 됩니다.


25절입니다.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오일에도 통치자는
이레 동안의 명절에 이와 같이 행하되 죄 헌물과 번제 헌물과 음식 헌물과 기름/의 규례/대로 행할 것이니라
.](25). 장막절입니다. *레23:39.
이로써 이스라엘은 율법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신약 2000년 교회사는 그들에게 아무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구약과 환란 천년 왕국이 그들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과 유대인들에게 해당하는 하나님의 경륜이 다르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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