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에스겔 46:1-24

요절: 에스겔 46:13


우리는 계속해서 미래에 있을 천년 왕국의 성전과 제사장,
통치자, 희생물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때로 천년 왕국에 대한 막연한 공상과 상상을 즐기는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천년 왕국에 대해서
들을 때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이상한 가르침이다 거부하기도 합니다. 유토피아, 무릉 도원, 에덴의 동산 등과 같은 이상향이 천년 왕국이라고
생각하다가 천년 왕국에서도 “죽음이 있다”, “성전이 있고, 율법이 있고, 제사가 있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천년 왕국에서도 유대인,
그리스도인, 이방인의 구분이 있다고 말하면 더욱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천년 왕국의 자연 환경은 회복되고, 동물들은 모두 초식 동물이 되고,
야수성이 제거되어 아이들과 놀 수 있습니다. 달빛은 햇빛 같고, 해는 일곱 배가 빛납니다(사30:26). 사막에 샘이 흐르고 사람의 수명이
나무의 수명처럼 길어집니다(사65:22). 천년 왕국에도 죄가 있는가? 당연히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천년 왕국에서 사람들은 오래 살기는
하지만 죽습니다. [거기에는 날수가 /많지 않은/ 어린아이나 자기의 날들을 채우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아이가 백 세에 죽을
것임이라. 그러나 죄인은 백 세가 되어도 저주받은 자가 될 것이니라.
] (사65:20). *죄인, 저주받은 자. 우리는 마음대로 상상을
하는 대신 성경이 말하는 대로 그 말씀에 근거해서 한 가지씩 확인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희 교회처럼 킹 제임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고, 말씀을
세대적으로 대상별로 나누어 보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어려울 것이 없는 문제들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에스겔 40장 이후의 이야기는 매우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구약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이야기이고, 그렇다고 교회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년 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다 부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천년 왕국의 사람들이 모두 이스라엘도 아닙니다. 육체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있고, 부활의 자녀들이 있고,
민족들이 있습니다. 에스겔 성전에 대한 기사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것이며, 이방 민족들이나 교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1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동쪽을 바라보는 안뜰의 문을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월삭이 되는 날에도 열고
](1).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일주일
체계입니다. 주님은 낮과 밤을 두심으로 하루를 만드셨고, 육일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는 일주일을 만드셨고, 달을 기준으로 월(month)을
만드셨고, 해를 기준으로 연한(year)를 만드셨습니다. 이 어느 것도 인간들이 임의로 정하거나 기준을 잡거나 개발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 어떤
황제나 독재자들이 자신의 이름이나 명령을 따라 연호를 제정하기도 하고 일주일 체계를 바꾸려는 시도를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규례입니다. 이는 구약, 신약, 천년 왕국을 가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일주일 체계를 만들어 주신 것은 이것이 인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예언적
마스터 플랜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
.] (벧후3:8). [이는 주의 눈앞에서 천 년이 단지 지나간 어제와 같으며 밤의 한 경점과 같기
때문이니이다
.](시90:4). 주님은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해서 심판에 대한 종결점을 알려 주셨고, 하루를 천년으로 계산해서 인류 전체의
역사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째 날에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기계적으로 6 천년 체계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일을 하시고 일곱째 날을 복 주신 것같이 이 땅 역시 일곱째 날에 해당하는 시각에 천년 왕국이 시작될
것임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왕국을 세우시고, 이 땅의 천년이란 안식이 주어집니다.


일하는 엿새 동안 닫아 두었던 문이 안식일에 열립니다. 월삭이란
말은 매월 첫째 날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동쪽 문을 여시는 것은 성도들을 맞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엿새째에 해당하는 날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지금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종으로서 주의 일을 해야 하는 시각입니다. 주님께서 문을 여시고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시는 그 순간까지 성도들은 열심히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2절입니다. [통치자는 바깥 문의 주랑(柱廊) 길로
들어와서 그 문의 기둥 옆에 서고 제사장들은 그를 위하여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예비할 것이요, 통치자는 그 문의 출입 통로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갈 것이로되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2). 구약에서는 통치자, 제사장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왕들은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버리고, 제사장의 특권을 침해하기도 했습니다. 신정 일치를 꿈꾸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통치자들이 꿈꾸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물리적 힘과 영적인 힘을 함께 가지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은 통치자들과 제사장들의 역할을 분리해 주셨습니다. 왕과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계1:6, 5:10). 웃시야를 보십시오. 그는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직분에 대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들에게 화를 낼 때에 [주]의 집 분향 제단 옆에서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솟으니라.
](대상26:19). 웃시야는
왕으로서 제사장의 특권을 침범한 죄로 현장에서 나병이 솟아올랐고, 죽을 때까지 격리 수용되었습니다(대하26:11). 사울 역시 왕으로서 제사장의
직분을 침범했습니다. [사울이 이르되,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이리로 내게로 가져오라, 하여 그가 번제 헌물을 드렸더니 그가 번제 헌물
드리기를 끝마치매 사무엘이 오므로 사울이 나아가 그를 맞으며 문안하니라.
] (삼상13:9~10). 이것은 명백한 월권이요, 범죄였습니다.
사무엘은 즉시 이 일에 대해서 책망했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삼상13:11a).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어리석게 행하였도다. 왕이 [주] 왕의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삼상13:13a).
웃시야나 사울과는 반대로 종교적 직무를 맡은 제사장들이 지상의 정치적 권력을 열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캐톨릭입니다. 기독교
정당들, 사회 단체들입니다. 이들은 종교의 힘을 바탕으로 정치적 힘을 얻고 싶어합니다. 성경대로 믿는 침례교도들은 철저하게 정교 분리를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천년 왕국 시대에 이스라엘은 여전히 제사장과 통치자의 역할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통치자들은 바깥문의 주랑 길로 들어 와서 그
문의 출입 통로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갑니다. 제사장들은 그를 위하여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예비합니다.


3절입니다. [이 땅의 백성도 이와 같이 안식일과
월삭(月朔)에 이 문의 입구에서 [주] 앞에 경배할 것이라.
](3). 백성들은 문의 입구에서 주 앞에 경배합니다. 이런 구절에서 신약
성도들은 천년 왕국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할 것인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을 위해 세운 성전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성전의 문 앞에서 주를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경배합니다. 우리는 신부로서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란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스가랴에 보면 이방인들은 성전 예배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주]께 거룩한 것이 될 것이요, 희생물을 드리는 모든 사람이 와서 이 솥들 중에서 취하여 그 가운데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주]의 집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슥14:21). 천년 왕국에서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구분이 있음을 보십시오.


4-7절입니다. [안식일에 통치자가 [주]께 드리는 번제
헌물은 흠 없는 어린양 여섯 마리와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라. 음식 헌물은 숫양 한 마리에 /밀가루/ 일 에바요, 어린양들에 대하여는 그가 드릴
수 있는 만큼 할 것이며 일 에바에는 기름 일 힌씩이니라. 월삭이 되는 날에는 흠 없는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어린양 여섯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헌물로/ 삼되 그것들은 흠이 없을 것이며 또 그는 음식 헌물을 예비하되 수소 한 마리에 /밀가루/ 일 에바요, 숫양 한 마리에도 일 에바며
어린양들에 대하여는 자기 손이 이룬 만큼 할 것이며 일 에바에는 기름 일 힌씩이니라
](4-7). 주님은 번제 헌물, 음식 헌물을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구약과 같은 것도 있고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음식 헌물은 태워서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양이 지정되어 있는 데 반해 “어린 양들에 대해서는 그가 드릴 수 있는 만큼 할 것이며”라고 합니다(4,7). 우리는 여기서 신약의 헌금
원리와 동일한 원리가 발견되는 것을 봅니다. [이는 내가 증거하노니 그들이 힘닿는 데까지 하였을 뿐 아니라 참으로 힘에 넘치도록 자원하여
하였으며
] (고후8:3). 힘 닿는데까지, 힘에 넘치도록 자원. 이것이 연보의 기본입니다. 또한 성경은 말하기를, [주(週)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
](고전16:2)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대로” 하면 될 것입니다. 빚을 내어서 작정 헌금을 하는 것은 성경적인 헌금이 아닙니다.


8절입니다. [통치자가 들어올 때에는 그 문의 주랑 길로
들어오고 그 길로 나갈지니라
.](8). 여기서 그 문이란 동문을 말합니다. 안식일과 월삭에 통치자들이 주께 드리는 헌물을 들고 올 때
출입이 허용됩니다. 이 문은 주님의 문이기 때문에 이 문으로 들어오면 이 문으로 다시 나가야 합니다. 다른 문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백성들이
출입하는 문과 동문의 출입 방법은 완전히 다릅니다. 백성들은 들어 온 문 길이 아니라 맞은 편 문 길로 나가야 합니다.


9절입니다. [그러나 엄숙한 명절에 이 땅의 백성이 [주]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 길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 길로 나가고 남문 길로 들어온 자는 북문 길로 나갈지니라. 사람이 자기가 들어온 문의
길로 되돌아가지 말고 그 길의 맞은편으로 나갈 것이며
](9). 백성들은 왔던 길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출애굽 때부터 반복적으로 가르쳐 주신 진리입니다. 이집트로 되돌아가지 말라. 성도들은 세상으로 되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를 때 뒤로 되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10절입니다. [통치자는 그들의 한가운데 있어서 그들이
들어갈 때에 들어가고 그들이 나갈 때에 나갈지니라.
](10). 명절에 주님을 경배할 때 통치자들은 백성과 함께 행동하며 그들 한 가운데
있어야 하고, 함께 출입해야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내가 이 일들을 기억할 때에 내 혼을 내 속에서 쏟아냄은 내가 전에 그 무리 곧
거룩한 날을 지키는 무리와 함께 기쁨과 찬양의 소리를 내며 하나님의 집에 갔었음이라.
] (시42:4). 다윗은 무리와 함께 하나님의
집으로 갔습니다. 통치자들은 하나님이 권세를 주신 사람이지만 주님 앞에서는 동일한 사람이요, 백성들과 함께 해야 할 사람입니다. 이 점은 모든
치리의 근본입니다.


11절입니다. [명절과 엄숙한 날에는 음식 헌물이 수소 한
마리에 /밀가루/ 일 에바요, 숫양 한 마리에도 일 에바며 어린양들에 대하여는 자기가 드릴 수 있는 만큼 할 것이며 일 에바에는 기름 일
힌씩이니라.
](11). 어린 양들에 대해서는 양이 정해져 있지 않고, 자기가 드릴 수 있는 만큼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까? 성도는 자신이 주님께 받은 만큼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만큼, 능력을 받은 만큼, 지혜를 받은 만큼 드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받지 않는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먼저 자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사람이 가진 대로 /주께서/ 받으실 것이요,
그가 갖지 아니한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후8:12).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풍성한 긍휼, 풍성한
은혜를 넘치도록 받을 때 우리는 넘치도록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께 받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주님께
아무 것도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지체입니다. [또한 너희 지체(肢體)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며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6:13).
우리 몸은 살아 있는 희생물입니다. 주님께 드리면 합당한 섬김이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롬12:1). 받은
것의 풍성함을 아는 만큼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받아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넘치도록
감사를 드리라.
](골2: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행위에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
](골3:17). 우리는 은과 금은 없어도 우리가 가진 것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 성령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손에, 내 입에,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적은 힘으로도 믿음이 있다면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이제 통치자가 자원하여 번제 헌물을
예비하거나 자원하여 화평 헌물을 [주]께 예비할 때에는 다른 사람이 그를 위하여 동쪽을 바라보는 문을 열어 줄 것이요, 그는 안식일에 예비한
것같이 자기의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예비한 뒤에 /밖으로/ 나갈 것이며 그가 나간 뒤에 문을 닫을지니라.
](10). 통치자가 자원하여
번제 헌물이나 화평 헌물을 주께 예비할 때는 동문 출입이 허용되었습니다. 율법에 정한대로 의무적으로 드리는 헌물도 중요하지만 자원 헌물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내가 주께 자원하여 희생물을 드리리이다. 오 [주]여,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내가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니
](시54:6)라고 했습니다. 자원하여 드리는 희생물은 물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 감사 등이 입술로 드리는 자원
헌물이 됩니다. [오 [주]여, 주께 간청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 헌물들을 받으시고 주의 판단들을 내게 가르치소서.](시119:108).
자원하여 드리고, 자원해서 행할 때 보상이 있습니다. [이는 내가 자원하여 이것을 행하면 보상(報償)을 얻으려니와 자원하여 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복음의 청지기직을 내가 맡았기 때문이라.
](고전9:17).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물을 드릴 때 동문 출입이 허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은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솔로몬은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집을 건축하려고 예비하여 저축한 이 모든 것이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대상29:16).
주권 신앙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임을 인정하고 자원하여 주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13-14절입니다. [너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양 한
마리로 날마다 번제 헌물을 예비하여 [주]께 드리되 아침마다 그것을 예비하고 또 아침마다 그 번제 헌물을 위하여 음식 헌물을 예비하되 곧
/밀가루/ 육분의 일 에바와 기름 삼분의 일 힌을 고운 밀가루와 섞을 것이니 /이것은/ 영속하는 규례로 항상 [주]께 드릴 음식 헌물이니라.
](13-14).
유월절 어린 양이 아니라 매일 드리는 어린 양입니다. 구약에는 아침, 저녁으로 한 마리씩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민28:3,4). 천년
왕국에서는 매일 아침에만 드리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날마다 드려야 할 것들. ****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슨 재물이
많아서 주님께 날마다 헌물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제사장으로서 영적 희생물은 날마다 드리고 아침마다 예비해서 드려야 합니다. 날마다
주께 드려야 할 영적 희생물은 찬송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은택(恩澤)을 더하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셀라.](시68:19).
[내가 날마다 주를 찬송하며 영원무궁토록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시145:2). 우리가 날마다 아침마다 드려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오 {주}여, 내가 날마다 주께 부르짖사오니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시86:3). [고난으로 인하여 내 눈이
애곡하나이다. [주]여, 내가 날마다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해 내 두 손을 내밀었나이다.
](시88:9). 우리가 날마다 드려야 할 영적
희생물은 입술의 고백입니다. 이는 간증일 수도 있고 전도일 수도 있습니다. [[주]께 노래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며 그분의 구원을 날마다
나타낼지어다.
](시96:2). 우리가 날마다 주님께 드려야 할 일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들으며 날마다 내
성문에서 지켜보고 내 문설주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잠8:34). 우리가 날마다 드려야 할 희생물은 기쁨의
희생물입니다(시27:6). 사도 바울이 날마다 기쁨으로 드렸던 희생물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 대한 나의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 없어지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
](고후4:16). 이미 전에 *날마다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한번
설교했습니다.


15절입니다. [그들이 이와 같이 아침마다 어린양과 음식
헌물과 기름을 예비하여 항상 드리는 번제 헌물로 삼을지니라.
](15). 저녁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아침마다 드리는 희생물은 구약과
동일합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마다 자기가 먹을 만큼 만나를 거두게 하셨습니다(출16:21). 제사장들은 아침마다 향을 태워야
했습니다(출30:7). 이런 일은 결코 거를 수 없었습니다. 영적 제사장들인 저와 여러분이 매일 아침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주님은 아침마다 일깨우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주} [하나님]께서 학식 있는 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하여금 피곤한
자에게 때에 맞는 말을 할 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일깨우시되 나의 귀를 일깨우사 학식 있는 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는도다.
](사50:4).
아침에 말씀을 읽고 기도할 때 많은 주님께서 일깨우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아침에 도우십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니 주는 아침마다 그들의 팔이 되시오며 고난의 때에 또한 우리의 구원이 되시옵소서.
](사33:2).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신실하심이 크시도다.](애3:23)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주님께
나아오는 거룩한 습관을 들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6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만일 통치자가 자기 아들들 가운데 하나에게 선물을 주면 그 선물의 상속이 그의 아들들의 것인즉 상속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소유가 되려니와
](16).
천년 왕국 기간에 백성들은 자식을 낳습니다. 자식에게 상속을 줄 수도 있습니다. 장가가거나 시집가지 않는 부활의 자녀들과 오해가 없기 바랍니다.
천년 왕국의 이스라엘의 통치자는 다윗이고,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통치자는 열두 사도라면 이 외에 다른 통치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식을
낳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 상속을 줄 수 있습니다.


17절입니다. [만일 통치자가 자기 상속 중에서 자기 종들
가운데 하나에게 선물을 주면 그것은 자유의 해가 이르기까지 그 종의 것이 되고 그 뒤에는 그 통치자에게로 되돌아가리니 오직 통치자의 상속은 그의
아들들을 위해 그들의 소유가 되리라.
](17). 천년 왕국에도 종이 있습니다. 자유의 해란 것은 구약의 환희의 해(레25:10)와 동일한
것입니다. 종들은 자유를 얻을 때 통치자에게 받은 상속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흔히 천년 왕국에는 신분이 철폐되고, 계급이 없는 그런 이상적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 왕국은 재정 일치의 신정 국가요 절대 왕정의 국가입니다. 통치자들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서 그분의 뜻대로 권한을 행사해야 합니다. 백성이 있고, 종들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 왕처럼 섬김 받으며 살고자 하면
다가오는 세상에서 종이 될 것이요, 이 땅에서 종으로 섬기며 사는 이들은 다가 올 세상에서 왕으로서 섬김받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다가올 세대의 삶을 결정지어 줍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사실을 기억하고 미래를 대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잠시 받는 고난, 잠시 세상에서
맛볼 영광을 위해 천년의 기간과 그 이후에 이어질 영원의 삶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18절입니다. [또한 통치자는 백성을 그들의 소유로부터
몰아내려고 /그들을/ 학대하여 그들의 상속을 취하지 말 것이요, 오직 통치자는 자기 자신의 소유에서 자기 아들들에게 상속을 주어 내 백성이 각각
자기 소유에서 흩어지지 아니하게 할지니라.
](18). 통치자들이 상속을 주려면 자기 소유에서 주어야 합니다. 백성들의 재산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셨습니다. 이제 다시는 흩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통치자들의 잘못된 통치,
억압, 학대 등이 있으면 백성들은 흩어지게 됩니다. 주님은 통치자들이 권력을 임의대로 쓰지 못하도록 통제 하십니다. 율법대로 의와 공평으로 모든
권력이 행사될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원인 중에 하나가 통치자들의 비리와 폭정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다가올 세상에서는 통치자들로
인해 백성들이 고난을 받는 일이 없을 것임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19절입니다. [그 뒤에 그가 나를 데리고 그 문 옆의
입구를 통해 북쪽을 바라보는 제사장들의 거룩한 방들에 들어가니, 보라, 서쪽을 향하여 양쪽에 한 장소가 있더라
.](19). 에스겔은 다시
성전 안뜰로 인도되어 ‘제사장들의 거룩한 방들’에 들어갔습니다. *42:13에 나오는 방이다.


20절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곳은 제사장들이 범법
헌물과 죄 헌물을 삶으며 음식 헌물을 구울 곳이니 이것은 그들이 그것들을 가지고 바깥뜰로 나가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고
](20).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거룩한 방을 주고, 범법 헌물과 죄 헌물을 삶을 부엌, 음식물을 구울 곳을 주신 것은 그것들을
바깥으로 가져가서 백성들과 접촉하는 일이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거룩한 것에 닿는 것은 거룩해지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밖에서 삶거나 구울 경우
백성들까지 거룩히 구별되어 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몸을 거룩히 구별해야 합니다. 우상들의 전과 일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몸은 음행으로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제사장들을 백성들과 거룩히 구별하셨듯이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과 거룩히 구별되어 있습니다. [/전에는/
너희 가운데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김을 받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
](고전6:11).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시고 정결하게 하시며](엡5:26).
하나님이 거룩히 구별케 하신 것들을 속된 것과 혼합해 버리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을 거룩히 구별해야 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더럽히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저마다 거룩히 구별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그릇을 소유할 줄 알되](살전4:4), [그러므로
사람이 이런 것들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하게 쓰는 그릇 곧 거룩히 구별되어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 그릇이 되리라.
](딤후2:21).


21-23절입니다. [또 나를 데리고 바깥뜰로 나가서 나로
하여금 그 뜰의 네 구석을 지나가게 하니, 보라, 뜰의 구석마다 또 뜰이 있는데 그 뜰의 네 구석에서 뜰들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 길이는 사십
큐빗이요, 넓이는 삼십 큐빗이라. 이 네 구석이 한 치수더라. 이 구석들 안에 곧 네 구석의 사방에 건물이 한 줄로 늘어 서 있는데 사방으로
/건물이 늘어 선 곳/ 밑에는 삶는 곳이 설치되어 있더라.
](21-23). 바깥 뜰에도 벽을 따라 사방에 헌물들을 삶는 곳이 있었습니다.
고기를 삶을 수 있는 솥 단지가 걸려 있는 일종의 노천 부엌과 같습니다. 삶는 자리는 부뚜막입니다. 백성들이 가지고 온 것을 레위인들이 여기서
삶아서 제사장들이 안으로 가져갑니다. 레위인들은 안에서 주님을 섬기지 못하고 백성들이 가지고 온 헌물들을 삶는 일과 같은 각종 허드렛 일을 하게
됩니다.


24절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곳은 삶는 자들을
위한 장소니 여기서 이 집의 섬기는 자들이 백성의 희생물을 삶을 것이니라, 하더라.
](24). 주님은 성전 구석 구석의 치수와 구조물,
용도를 다 설명해 주셨습니다. 백성의 희생물을 삶은 곳을 보여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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