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에스겔 47:13-23
요절: 에스겔 47:
구약에서 약속의 땅을 나눌 때 제비를 뽑아 나누었는데 천년
왕국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경계를 정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거할 땅은 구약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이미 약속하신 땅입니다(14).
하나님은 땅을 유업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땅은 사람이 거주하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주님의 것이지만 땅(earth)은 특별히
사람들을 위한 것이요, 사람들이 살도록 목적을 가지고 지으셨습니다. [이는 하늘들을 창조하신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친히
땅을 조성하고 만들고 견고하게 하였으되 땅을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거하도록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18). 사람들이 우주로 나가서 우주개발을 하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찾거나 생명체를 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다
소용없는 짓입니다. 사람에게 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 본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지 하늘을
어떻게 하라는 말씀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은 땅에서 취해졌습니다. [하늘과 하늘들도 [주]의 것이로되 그분께서 땅은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주셨도다.](시115:16). 이 땅 중에서 주님께서 특별히 지정하신 땅이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 중에서
성소가 들어서는 예루살렘은 또 거룩한 땅입니다. 모세가 섰던 그 땅은 황무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분께서
이르시되, 여기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하셨습니다. 지상에 거룩한 땅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이 땅에 관심이 있습니다. 캐톨릭, 유대교, 회교도 모두가 이 땅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땅을 차지하고 싶어 합니다. 주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주]께서 반드시 그 거룩한 땅에서 자신의 몫 유다를 상속하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라.](슥2:12). 주님께서 친히 택하신 이 땅은 유대 민족에게 다시 주어집니다. 그 누구도 이 땅을 정복하거나 차지할 수
없습니다.
13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땅의/ 경계는 이러하니 너희가 이 경계대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이 땅을 상속하되 요셉은 두 몫을 차지하리라.](13). 천년
왕국의 땅은 열 두 지파에게 분배됩니다. 레위인들은 이 땅의 분배에서 제외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주님이 그들의
유업이 되고 거룩한 구역 내에 “레위인들의 몫”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은 두 몫을 차지하라고 하셨는데 이는 창세기
48장에서 야곱이 한 약속으로 인한 것입니다. [내가 네게 네 형제들보다 한 몫을 더 주었나니 이것은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하였더라.] (창48:22). 요셉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각 한 지파씩 차지합니다. 에브라임이
타락했을 때는 그 이름이 요셉과 므낫세가 되어 역시 한 몫을 더 차지했습니다.
14절입니다. [너희가 이 땅을 상속하되 한 /지파/가
다른 /지파/만큼 상속할지니라. 이 땅에 관하여는 전에 내가 내 손을 들어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바 있나니 이 땅이 너희 상속이
되리라.](14). “전에”라고 하신 ‘전에’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말합니다. 사람의 약속은 몇 달, 몇
년이 지나면 흐지부지해지고 없었던 것처럼 되고 맙니다. 누가 몇 십년 전에 한 약속을 들고 와서 지키라고 요구하면 “그게 언제
이야기인데...”라고 펄쩍 뛰거나 황당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약속은 몇천년이 흐른 뒤에도 조금도 약해지지 않습니다. 주님은 어제 한
약속이나 사천년 전에 한 약속이나 매 한 가지입니다. 주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 6:26에 [그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실 분이시며 그분의 왕국은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분의 통치는 끝까지 이르리로다.](단6:26b)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런 성품으로 인해서 주님의 모든 말씀을 다 믿을 수 있고, 굳게 붙들 수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주님의 성품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는 내가 [주]요, 변치 아니하는 자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이 소멸되지 아니하였느니라.]
(말3:6).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주님의 거룩한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말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것들은 사라지려니와 오직 주는 지속하시겠고 참으로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아지리니 주께서 의복같이
그것들을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동일하시고 주의 연대는 끝이 없으리이다.](시102:26~27). 모든 것이 다 옷같이 낡아지고,
바꾸시면 바뀌지만 주는 동일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고
했고, 야고보 역시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1:17)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런 거룩한 성품은 모든 예언의 기록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통해
더욱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도 신실하십니다.
15-17절입니다. [이 땅의 경계는 이러하니 북쪽으로는
대해(大海)에서부터 헤들론 길을 거쳐 사람들이 스닷에 이를 때까지의 /지역/이니 곧 하맛과 브로다와 다마스커스 경계와 하맛 경계 사이에 있는
시브라임과 하우란 지경(地境) 옆의 하살핫디곤이라. 그 바다에서부터의 경계는 다마스커스의 경계인 하살에난까지요, 북쪽으로는 북쪽의 경계가 하맛의
경계까지니 이것이 북쪽 /경계/라.](15-17). 북쪽의 대해는 지중해를 말합니다. 지중해에서 헤들론 길을 거쳐 스닷에 이른다고 되어
있는데 창세기 15장에는 북동쪽의 위치는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창15:18)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고고학이나 성경 지리학 시간을 통해 이런
지역들을 하나씩 짚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유명한 지명 이름들은 익숙하지만 그 외에 지명들은 들어도 어디가 어딘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거니와 통독을 할 때도 그냥 스쳐 지나가며 읽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구절들에 유난히 신경이 많이 쓰이고 집중이 될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터전이요, 국경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절들은 이스라엘 외 다른 중동 국가들에게는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을
것이고, 믿고 싶지 않는 말씀입니다. 국경선 문제가 전쟁이나 외교적 협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지정해 버리신 까닭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18절입니다. [동쪽으로는 너희가 하우란과 다마스커스와
길르앗과 요르단 옆 이스라엘 땅과 그 경계에서부터 동쪽 바다까지 측량할지니 이것이 동쪽 /경계/요, 남쪽 /경계/는 남쪽을 향하여 다말에서부터
가데스의 다툼의 물에 이르고 그 강을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것이 남쪽을 향한 남쪽 /경계/요, 또 서쪽 /경계/는 그 경계에서부터 대해까지니
곧 사람이 하맛 맞은편에 이를 때까지의 /지역/이라. 이것이 서쪽 /경계/니라.](18-20). 이스라엘의 동쪽 경계는 요르단 강 동쪽
멀리 광야까지 뻗어나갈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남단 경계는 나일강까지 닿게 될 것입니다(창15:18). 지금 이집트 땅의 상당 부분이 이스라엘
땅으로 편입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서쪽 경계는 지중해까지입니다. 이 모양 전체를 그리면 마치 다이아몬드 같은 사각형이 됩니다.
21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는 이스라엘 지파들에 따라
너희를 위하여 이 땅을 나눌지니라.](21). 하나님은 지정해 주신 경계대로 이 땅을 지파별로 나누라고 하십니다. 천년 왕국에서 지파별
경계는 주님께서 직접 지정해 주셨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정복 전쟁을 벌여서 땅을 나누던 것과는 다릅니다. 탐욕이 잠재되어 있는 인간 본성상 무엇을
나누어 가진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누어도 불만이요, 저렇게 나누어도 불만인 것이 사람입니다. 자신이 다 차지해도 적다고 불평인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아파트 입주자들이 몇 동 몇 호에 들어갈 것인가 추첨을 하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서부 개척
시대에 땅을 나누는 방식을 보십시오. 말을 타고 달려서 깃발을 꽂으면 자기 땅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제비 뽑아 나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은 제비뽑아 나눌지니 그들의 조상들 지파에 속한 이름 수에 따라 그들이 상속받게 할 것이요, 수가 많은 자와 수가 적은 자 사이에
그 소유를 제비뽑아 나눌지니라.](민26:55,56).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기쁨이요, 사랑이요, 은혜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땅을
나누게 하셨고, 재물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많은 재물과 심히 많은 가축과 금, 은, 놋, 쇠와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 원수들로부터 노략한 것을 너희 형제들과 나눌지니라, 하니라.](수22:8). 이는 진정한 공산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 형제애의 기반 없이는 절대로 이런 나눔이 불가능합니다. 주님은 나누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전쟁에서 나가서 탈취한 물건도 똑같이 나누었습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탈취한 것을 둘로 나누어 그 절반은 전쟁에 나가
싸움을 했던 자들에게 주고 그 절반은 온 회중에게 주며] (민31:27). 이런 나눔에는 불만세력이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주님은 싸움을
했던 자들과 회중에게 절반씩 주게 했습니다. 다윗 역시 이 점에서 성경적 교훈을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이 일에서 누가 너희 말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오직 싸움에 내려갔던 자의 몫이나 물건 옆에 머물렀던 자의 몫이 같을지니 그들이 똑같이 나눌 것이니라, 하고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을 이스라엘의 법규와 규례로 삼았더니 이 날까지 이르니라.](삼상30:24-25). 이런 면에서 볼 때 구약의 이스라엘은 지금의
현대의 어떤 민주 국가에서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엄정한 사회 질서와 높은 영적 도덕성, 성숙한 시민 의식이 있었습니다. 이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대언자들과 제사장들의 신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가지려고 하기보다 나누어 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형제들과 무엇인가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은 성도의 기본입니다. 성령 충만했던 성도들로 구성된 초대 교회를 보십시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지내며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자기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대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행2:44~45).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어떤 교회도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나누어 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형제들과
무엇인가를 나눌 수 있는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 [선을
행하게 하며 선한 일들에 부요하고 베풀기를 좋아하고 기꺼이 나누어 주게 하라.](딤전6:18). 우리는 영적 교제와 물질적 나눔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가르침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함께 모든 좋은 것을 나눌지니라.](갈6:6). [오직 선을 행하는
것과 나누어 주는 것을 잊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이 같은 희생을 매우 기뻐하시기 때문이니라.](히13:16). 나눔은 인간의 육신적
본성을 거스르지만 성령의 성품을 따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움켜잡고 한 곳으로 모으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든 나누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소유의 나눔에서 생명까지도 내어 주는 그런 나눔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다정하게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혼까지도 너희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고자 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소중한 자들이기 때문이라.](살전2:8). 하나님은 나누시는 분이심을 알고,
‘나눌지니라’는 말씀에 따라 나눔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믿음을 나누고, 영적 은사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친교를 나누고,
무슨 좋은 것이든 나누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22-23절입니다. [너희가 이 땅을 나누되 제비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 머무는 타국인들 곧 너희 가운데서 자녀를 낳는 자들에게 상속이 되게 할지니 너희는 그들을 이스라엘의 자손들 가운데서 그
나라에서 태어난 자와 같이 여길 것이요, 그들도 이스라엘의 지파들 가운데서 너희와 함께 상속을 차지하게 하되 타국인이 어느 지파 안에 머물든지
너희는 그 지파 안에서 그에게 그의 상속을 줄지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22-23). 구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는데 천년 왕국에서는 이스라엘 땅에 사는 타국인들에게 땅을 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으로 귀화한 타국인, 유대 땅에 이민와서
정착한 타국인들에게 땅을 주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곳 미국에 살면서 이민 정책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이곳은 다민족 다인종 사회인데다
전 세계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이 몰려 들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을 대하는 기본적인 원리는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위정자들이 성경을 펴서 이스라엘이
타국인들에 대해서 해야 하는 법규들을 모델로 삼아 법을 제정하고 제도를 정비하면 됩니다. 모든 법은 성경 속에 그 모델이 있습니다.
48장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읽고 넘어가는 정도로 끝을
내겠습니다. 하나님은 각 지파별로 땅의 경계를 정해 주십니다. 1-7절입니다. [이제 지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북쪽 끝에서부터 사람이
하맛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헤들론 길 지경(地境)까지와 북쪽으로 다마스커스의 경계인 하살에난과 하맛 지경까지의 이 /지역/은 단의 몫이니 이는
그의 동쪽과 서쪽 양쪽이 이러하기 때문이니라. 단의 경계 옆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아셀의 몫이요, 아셀의 경계 옆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납달리의 몫이요, 납달리의 경계 옆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므낫세의 몫이요, 므낫세의 경계 옆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에브라임의 몫이요,
에브라임의 경계 옆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르우벤의 몫이요, 르우벤의 경계 옆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유다의 몫이라.](1-7). 천년
왕국에서 지파별로 분배 되는 땅은 여호수아에서 보여 지는 장면과는 많이 다릅니다. 단 지파에서부터 유다 지파까지 북쪽에서부터 땅의 분배에 대해서
기록하셨습니다.
8절입니다. [유다의 경계 옆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헌물로 드릴 /땅/이라. 그 너비가 이만 오천 갈대요, 길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다른 부분의 길이와 같으며 성소가 그 한가운데
있을지니라.](8). 하나님은 땅의 한 가운데 부분을 통치자들의 몫으로 봉헌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성소는 언제나 한 중앙입니다. 주님의
처소는 정 중앙입니다. 주님은 우리 한 가운데 계십니다.
9절입니다. [너희가 [주]께 봉헌물로 드릴 /땅/은
길이가 이만 오천 /갈대/요, 너비가 만 /갈대/라.](9). 봉헌물로 드려지는 땅은 남북으로 레위인들의 구역과 성읍의 소유 중간에 끼여
있는데 남북의 길이가 만 갈대가요, 동서간의 너비가 2만 오천 갈대입니다. 이 구역 중간에 주님의 성소가 자리 잡습니다.
10절입니다. [이 거룩한 봉헌물은 그들 곧 제사장들을
위한 곳이니 북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갈대/요, 서쪽으로 너비가 만 /갈대/요, 동쪽으로 너비가 만 /갈대/며 남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갈대/라. [주]의 성소가 그 한가운데 있으며](10). 하나님께 드려진 봉헌물로서의 땅은 실제로 제사장들을 위한 곳입니다. 제사장들은
이곳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천년 왕국에서는 땅을 소유합니다.
11절입니다. [이 /땅/은 사독의 아들들 가운데 거룩히
구별된 제사장들을 위한 것이라. 그들은 나에 대한 책무를 지켰으며 이스라엘 자손이 곁길로 나아갔을 때에 레위 사람들이 곁길로 나아간 것같이
곁길로 나아가지 아니하였느니라.](11). 하나님은 레위 사람들이 백성들의 우상 숭배 때에 그들을 지도하고 책망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곁길로 가버린 레위인들에게 제사장의 영광스런 직분을 빼앗아 버리시고 성전의 잡무를 맡기셨습니다. 대신 사독의 아들들에게 거룩한 제사장 직분을
전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땅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따르고 섬긴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실제적인
예입니다.
12절입니다. [그 땅에서 취하여 드린 이 봉헌물은 레위
사람들의 경계 옆에 있으며 그들을 위하여 가장 거룩한 것이 될지니라.](12). 거룩한 구역 내의 제사장들이 차지하는 땅은 가장 거룩한
것이 됩니다.
13절입니다. [제사장들의 경계 맞은편에서 레위 사람들은
길이 이만 오천 /갈대/와 너비 만 /갈대/의 땅을 차지할지니 그 전체 길이는 이만 오천 /갈대/요, 너비는 만 /갈대/라.](13).
레위인들이 비록 제사장의 직분을 맡지 못해도 ‘거룩한 구역’ 내의 일부를 유업으로 받는데 그 크기가 거룩한 봉헌물의 크기와 동일합니다.
14절입니다. [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고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첫 열매를 다른 데로 돌리지도 못하리니 이는 그 땅이 [주]께 거룩하기 때문이라.](14).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땅은
매매하거나 누군가와 교환하는 따위의 일체의 상거래가 금지됩니다. 그 땅에서 나오는 첫 열매 역시 교환, 매매가 금지됩니다. 이는 그 땅이 주님께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15절입니다. [그 이만 오천 /갈대/의 맞은편 너비에
남아 있는 오천 /갈대/는 이 도시를 세울 장소가 되어 /사람이/ 거하는 곳과 주변 지역이 되며 그 도시가 그 한가운데에 있을 것이니라.](15).
이번에는 성읍 소유 구역입니다. 이 부분은 이스라엘 12 지파 모두의 소유가 되는 성읍입니다.
16절입니다. [그 치수는 이러하니 북쪽이 사천 오백
/갈대/요, 남쪽도 사천 오백 /갈대/며 동쪽도 사천 오백 /갈대/요, 서쪽도 사천 오백 /갈대/라.](16). 사면이 사천 오백 갈대씩
정사각형 모양입니다.
17절입니다. [이 도시의 주변 지역은 북쪽으로 이백 오십
/갈대/요, 남쪽으로도 이백 오십 /갈대/며 동쪽으로도 이백 오십 /갈대/요, 서쪽으로도 이백 오십 /갈대/라.](17). 도시의 주변
지역이란 말은 성읍 외곽을 말하는데 이백 오십 갈대씩 테두리를 치고 있습니다.
18-19절입니다. [이 거룩한 부분의 봉헌물 맞은편에
길이 방향으로 남아 있는 /땅/이 동쪽으로 만 /갈대/요, 서쪽으로 만 /갈대/라. 이 /땅/이 이 거룩한 부분의 봉헌물 맞은편에 있을 것이며
거기서 나는 소출(所出)은 이 도시를 위하여 섬기는 자들을 위한 양식으로 삼을지니라. 이 도시를 위하여 섬기는 자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나와 이 도시를 위하여 섬길지니라.](18-19). 거룩한 부분의 봉헌물 맞은 편에 접해 있는 땅은 이 도시를 위하여 섬기는 자들을 위한
양식으로 사용됩니다.주님은 섬기는 자들은 주님께서 양식을 주십니다. 이는 어느 시대나 변함없는 성경적 원리입니다.
20절입니다. [봉헌물/로 드리는/ 이 땅은 총 이만 오천
/갈대/에 이만 오천 /갈대/라. 너희는 이 거룩한 봉헌물을 네모 반듯하게 그 도시의 소유와 함께 드릴지니라.](20). 이 땅은
레위인들의 구역, 제사장들의 구역, 성읍의 소유를 모두 포함합니다.
21절입니다. [이 거룩한 봉헌물과 이 도시의 소유 이쪽과
저쪽에 남은 땅은 통치자를 위한 것이니 곧 동쪽 경계 방향으로 이 봉헌물의 이만 오천 /갈대/ 맞은편과 서쪽은 서쪽 경계 방향으로 이만 오천
/갈대/ 맞은편이요, 또 다른 부분들 맞은편이니 /이것은/ 통치자를 위한 /땅이라/. 이 /땅/은 거룩한 봉헌물이며 그 한가운데에 그 집의
성소가 있으리라.](21). 통치자들의 땅에 대한 말씀입니다.
22절입니다. [또한 레위 사람들의 소유와 이 도시의 소유
곧 통치자의 /소유/ 중간에 놓인 곳에서 떨어진 땅 곧 유다의 경계와 베냐민의 경계 사이가 통치자를 위한 /땅/이니라.](22). 레위인
소유와 이 도시의 소유에서부터 양쪽이 모두 통치자의 소유가 됩니다.
23-29절입니다. [나머지 지파들로 말하건대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베냐민의 몫이요, 베냐민의 경계 옆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시므온의 몫이요, 시므온의 경계 옆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잇사갈의
몫이요, 잇사갈의 경계 옆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스블론의 몫이요, 스블론의 경계 옆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갓의 몫이요, 갓의 경계 옆으로
남쪽에는 그 경계가 남쪽을 향하여 다말에서부터 가데스의 다툼의 물에 이르고 대해(大海)를 향하여 그 강에 이르나니 이것은 너희가 제비뽑아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상속으로 나누어 줄 땅이요, 또 이것들은 그들의 몫이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23-29). 나머지
지파들의 유업에 대한 분배입니다.
30-34절입니다. [북쪽에서 이 도시의 나가는 곳이
이러하니 측량하면 사천 오백 /갈대/라. 이 도시의 문들은 이스라엘의 지파들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쪽을 향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동쪽에도 사천 오백 /갈대/요, 또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남쪽에도 사천 오백 /갈대/요, 또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서쪽에도
사천 오백 /갈대/요, 또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라.](30-34). 예루살렘 성읍의
사면 문 이름입니다. 문 이름은 열 두 지파들 이름을 딴 것입니다.
35절입니다. [그것은 측량하면 사방으로 만 팔천
/갈대/라. 그 날 이후로는 이 도시의 이름을, [주]께서 거기에 계신다, 라 하리라.](35). 예루살렘의 이름이 “주께서 거기에
계시다”가 됩니다. 주님께서 친히 이 땅 예루살렘에 계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달이 당황하고 해가 부끄러워할 것이요, 만군의
[주]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시며 자신의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시리로다.] (사24:23). 주님이 통치하는 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천년 동안 의의 왕국이 이 땅에 세워지고, 각 민족마다 예루살렘으로 경배하러 올라옵니다(슥14:16,17). 주님은 예루살렘의
이름이 “주께서 거기 계시다”가 될 것임을 이사야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광채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타는 등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안식하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인들이 네 의를, 모든 왕들이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주]의 입이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 것이며] (사62:1~2).
주님께서 세우실 왕국의 이름이 기록됨으로써 에스겔서는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