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백성들에게
임한 주의 심판 -
말씀: 다니엘 1:1-2
요절: 다니엘 1:1-2
다니엘(Daniel)은 영어 킹 제임스 성경으로 12장 357절
11,606단어로 되어 있으며 기록 연대는 607 B.C.부터 수십 년간 다니엘에 의해 기록된 것입니다. 다니엘이란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이시다.”란 뜻을 지닌 이름입니다. 요한 계시록이 신약 성경의 맨 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비추는 조명탑 역할을 하듯이, 다니엘서는
구약성경의 맨 말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비춰주는 조명탑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다니엘서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한 권의 예언서이며,
역사서이며, 정치서인 이 책의 배경과 예언, 저자와 기록연대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 66권 중에 다니엘서만큼 혹독한 비평과 그
진위에 대한 논란이 많은 책은 거의 없습니다. 이는 성경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예언이 담겨 있지 않는 책이 없지만 구약에서는 다니엘, 신약에서는 요한 계시록이 단연 압도적입니다. 이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요한 계시록이 없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서를 봉인하셨습니다. 다니엘12:4, [오 다니엘아, 오직
너는 끝이 임하는 때까지 이 말씀들을 닫아 두고 이 책을 봉인하라.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음질하겠고 지식이 증가하리라.](단12:4).
그러나 사도 요한에게는 봉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말 그대로 Revelation입니다. 말 그대로 열린 책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의 예언을 공부하지 못하도록 “묵시문학”, “닫힌 책”이라고 하지만 이는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요한계시록 22:10, [또 그가 내게
이르되,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봉인하지 말라. 이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계12:10).
다니엘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이나 다른 소선지자들이 예언한
것과는 사뭇 다른 대언자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선지자의 사역은 백성들에게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다니엘의
사역은 환상을 통해 그에게 계시된 것을 책에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받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파하거나, 가르치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으며, 그렇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대언하라는 공식적인 임무가 맡겨진 것이 아니라 예언적인 은사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구약의
Apocalypse요, 계시록은 신약의 Apocalypse입니다. 이 두 권은 서로 짝을 이루기 때문에 어느 한 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해석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3번이나 『크게 사랑받은』(단9:23, 10:11, 10:19) 사람이라고 불렸습니다. 신약의 사도 요한
역시 “사랑 받는 제자”라고 불렸습니다(요13:23, 19:26, 20:2, 21:7, 21:20). 이 두 사람은 606 B. C.년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이어지는 전 세대를 다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환상을 통해 미래를 보았고,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이제 다니엘서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다니엘서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가 각각 6장씩 자연스럽게 나누어집니다. 1장에서 6장까지는 주로 “역사적 사건”을, 7-12장까지는 “예언적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두 가지 언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1-3:2과 8-12장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3:3-7:28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람어는 고대 시리아어였으며, 바빌론이 세계무대에 중심에 섰을 때, 상업과 외교에 사용된 공식 언어였습니다. 두 개의 언어로 된 점이
특이합니다. 이방인이 제국을 건설해서 역사의 중심에 섰을 때, 이방 제국과 관련된 부분은 갈대아어인 아람어로 기록했고, 유대인들과 관련된 부분은
히브리어로 기록했습니다. 이 사실은 다니엘서가 바빌론에서 유대인에 의해 쓰였음을 잘 설명해 줍니다. 더 확실한 증거로써 다니엘과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에스겔이 쓴 에스겔서의 히브리어와 문체가 동일합니다.
다니엘이란 인물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대언자들에
비해 다니엘에 관해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유다 지파였고 귀족이었습니다. 왕족은 아니었다할지라도 상당히 높은 가문에 속한
사람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는 느부갓네살이 유대를 처음 침략했을 때, B.C.606년 여호야김 치리 3년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가 바빌론에
잡혀갔을 때, 그의 나이는 약 20세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죽고 나서 공직에서
은퇴하였습니다. 벨사살 왕의 부름을 받아 그의 운명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그는 은퇴하고 다시 왕궁에 돌아 올 때 까지의 기간에 무슨 일을
하였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유다 민족의 포로기간인 70년의 세월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었습니다. 메대- 페르시안
제국 때, 다리오는 다니엘을 120개의 도를 다스리는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최소한 90세 이상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성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죄가 기록되어 있지 않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그는 일생 동안 잘못이나 죄라고 여겨질만한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정치인으로서 살았으며, 공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흠잡힐만한 어떤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사와 대화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그에게 나타나셨으며,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신약의 “믿음장”이라고 일컬어지는 히브리서 11장에 그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였으며』란 표현으로 다니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히11:33). 그는 예언적 정치가였습니다.
다니엘 1장입니다.
다니엘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요, 택함 받은 민족이었지만
평생을 타국 땅, 이방 제국 바빌론에서 종살이를 했다는 점은 마치 이 땅에서 성도의 일생을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다니엘은 왕족으로
태어났으나 그 시기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대언자 예레미야는 연일 유다의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외쳤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선대 요시야 왕은 개혁가요, 하나님 앞에서 산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성경의 평가를 보십시오. 열왕기하
23:25, [요시야와 같이 모세의 모든 율법대로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께로 돌아선 왕은 요시야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일어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23:25). 그러나 요시야의 위대함은 당대로 끝이었습니다. 믿음은 전수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대로 요시야의 아들, 손자들은 요시야와 같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런 비극적인 예를 수없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요셉 외에 어떤 아들도 믿음으로 살도록 교육하지 못했습니다. 다윗 역시 자식 교육에는 실패했습니다. 아론이나 모세, 사무엘
역시 자식을 성경대로 양육하지 못했습니다. 성경대로 믿는 저와 여러분은 자식의 신앙 교육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기도와 말씀으로 부지런히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말년에 요시야는 조국 유다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한
가지를 불순종했습니다. 주변의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이집트의 파라오느고가 앗시리아와 전쟁하러 가는 길에 유다를 통과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하자, 그것을 막다가 므깃도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역대기하 35:20-24을 보십시오. 백성들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왕으로
삼았으나 석 달만에 이집트의 파라오느고에게 쫓겨났습니다. 파라오느고는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여호야김은 이집트에 의해 세워진 왕이었으므로
당연히 이집트에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파라오느고를 격파하자,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왕위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그는 3년을 바빌론을 섬기다가 배반했습니다. 그는 외교적으로 자주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대군을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침공하고, 여호야김과 왕족들, 귀족들, 많은 젊은이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갔습니다. 이것을 역사에서는
1차 바벨론 유수라고 합니다(왕하24:1-4, 대하36:5-7). 다니엘이 바로 이런 시기에 살다, 이 때 포로로 잡혀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난세에 태어났고, 지독히도 불운한 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침공으로 인하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성전
기구의 얼마는 바벨론으로 옮겨져 이방 신전에 보관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대신 예루살렘의 거룩한 성전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이 있는 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공격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후 유다는 두 차례의 침략을 받고 B.C 587년 시드기야
왕 때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은 국가의 정치, 경제, 군사적 요인이나 국제적인 상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멸망한 것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단지 성경대로 믿는 침례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믿음 좋은 부모를 두었다는 이유로, 아니면 킹
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는 교회, 바른 성경을 가지고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참된 신앙을 소유해야 하며, 그에 따른 거룩하고,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지, 마치
성전을 믿는 유대인들처럼 성전 신앙을 소유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좀 더 상세하게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바벨탑
사건 이후로 언어가 혼란해져 흩어진 이후로 어떤 한 인간이 나머지 모든 족속을 정복하거나 통치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인 히브리 민족을 모든 민족의 머리로 삼고자 계획하셨으나, 그들은 우상 숭배로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스스로 이 특권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비롯해서 다윗, 솔로몬을 통해 주셨던 영원한 제국의 건설은
고사하고,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 간 비극의 역사를 유념해서 보십시오. B. C. 721년 북 왕국 열개 지파들이 사르곤(Sargon)1)에 의해
포로가 되었고, 115년 뒤인 B. C. 606년에 남 왕국 또한 바빌론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의 포로 기간’이
바빌론에서 시작되며(렘25:11) 남아 있던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던 2개 지파의 포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까지도 하나님은 어떤 민족이 세계를 정복하도록 허락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비록 수많은 제왕들이 정복 전쟁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욕에 불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힘과 권세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민족들 가운데 하나가 바빌론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앗시리아를 정복했습니다. B.C.605년 이집트의 왕이었던 파라오느고가 바빌론을
대적해서 싸웠지만 예레미야가 예언 한대로 유프라테스강의 서부 지역인 ‘칼케미쉬 전투’에서 느부갓네살에게 참패하고 말았습니다(렘46:1-26).
느부갓네살이 파라오느고를 완전히 짓밟음으로써 바빌론은 세계적 강국이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내친김에 파라오느고를 추적하여 이집트를 완전히
정복해 버린 후 말머리를 돌려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여호야김 재위 3년에 그곳을 포위하였습니다. 모든 저항은 빠르게 진압되었고, 도시는
빼앗겼으며, 여호야김 왕은 포로로 잡혀(B.C. 605) 바빌론으로 이송 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마침 본국에서 느부갓네살의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급히 귀환해야 했습니다. 그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 있던 금 기명들과 모든 보화들을 전리품으로
가져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 왕족과 고관들 자제들 중에 준수한 청년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들은 바빌론 왕궁에서 갈대아어를 비롯한
문학과 과학 등을 배웠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3년 후에 느부갓네살에게 반란을 일으켰지만
주님께서는 갈대아의 이웃 나라들인 시리아, 모아, 암몬 족속들을 보내 유대를 파괴하도록 보내셨습니다(왕상 24:1-4). 이 전쟁은 5년동안
계속되었고 여호야김 왕은 치욕스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렘22:17-19). 그리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어서
조상들이 행한 것과 같이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으므로 3개월밖에 치리하지 못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B.C. 598년에 예루살렘을 2차
침공해서 여호야긴을 폐위시키고, 왕자들, 고관들, 장군들을 비롯해서 10,000명의 포로들을 바빌론을 데려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1,000명의
장인들, 대장장이들도 모두 데려갔으므로 예루살렘에는 가장 가난한 극빈자들만 남게 되었다(왕하24:8-16). 이때를 흔히 포로의 수와 성격으로
인해 “포로기간”(바빌론 일차 유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바빌론이 멸망하고 고레스가 유대인들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라는 칙령이 떨어질
때까지 70년간의 포로 기간의 시작은 B.C. 606년이었습니다. B.C. 606년은 예언의 캘린더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 중의 하나이며, 기준이
됩니다. 주님은 70년간 이들을 바빌론에서 포로로 지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포로들을 데려가기 전에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삼촌(숙부)을 왕으로 삼았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라고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의 눈에 악한 일을 행하고 치리 9년째 바빌론 왕을
대적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다시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며, 2년 후(B.C.587)에 예루살렘의 성전과 도시를 파괴했습니다. 이때부터
‘유대 국가’는 공식적으로 지상에서 없어졌습니다(왕하 24:17-20, 25:1-21). 예레미야가 예언한대로 예루살렘 거민들은 모두
흩어졌으며, 그 도시는 70년간 폐허로 남게되었습니다(렘25:11). 느부갓네살은 B.C. 606년에 왕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이방인들의
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최초로 전 세계 제국을 제패한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의 통치 제
삼년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곳을 에워싸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집 기구 중 일부를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
그가 그것들을 가져다 시날 땅에 있는 자기 신(神)의 집에 이르러 그 기구들을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들여놓았더라.](1,2). 예레미야(렘25:8-11)는
여호야김 4년에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에 침공했다고 말하는 반면 다니엘은 여호야김 3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 같지만, 전혀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김의 재위 3년 말경에 그의 정복 전쟁을 시작하였고, 그 다음해 9월에
예루살렘은 정복되었습니다. 다니엘이 본 것은 정복 전쟁이 시작될 무렵을 말하는 것이며, 예레미야는 함락 시점을 본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에게 죄와 허물을 기억나게 해 주는 왕입니다. 여러분들은 여호야김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의 죄는 많고 많지만
가장 중요한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의 대언자를 핍박하고, 배척한 것입니다. 그는 대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펜 칼로 그것을 찢어 화로 위에 있는 불에 던져 버렸습니다(렘36:23). 예레미야 36:23,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했을 때에 왕이 펜 칼로 그것을 찢어 화로 위에 있는 불에 던지더니 마침내 그것을 찢어 화로 위의 불에 던지더니 마침내 그 두루마리 전부가
화로 위에 불에 소멸되니라.](렘36:23).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전혀 두려움을 모르는 왕을 가진 백성은
불행합니다. 국가에 그런 지도자를 갖고 있는 백성, 교회에 그런 목사를 가지고 있는 성도, 가정에 그런 가장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은 불행합니다.
주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자들이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명령해 주셨습니다. 신명기 17:18-19, [그가 자기 왕국의
왕좌에 앉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 있는 그것에서 이 율법을 책으로 한 권 필사하여 평생토록 자기 곁에 두고 읽어서 주 자기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법규를 지켜 행할 것이니라.] 여러분과 저는 주님 앞에서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물어 볼 필요가 없습니다. 평생토록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하고, 주 우리의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배우고, 말씀을
행해야 합니다. 누구도 성경을 더하거나 빼거나 변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도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비틀고, 불신하고, 평론하는
것이 성도의 할 일이 아닙니다. 성도의 할 일은 날마다 읽고, 읽는 그대로 믿고, 믿는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호야김 왕은 단순한 불신자가
아니라 말씀을 대적하고 공격하는 사악한 왕이었습니다. 예레미야 36:26, [오히려 왕이 함멜렉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미야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대언자 예레미야를 붙잡으라 하였으나 주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렘36:26). 여호야김은 주의 대언자들을 핍박하고 멸시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6:29-31, [또 유다 왕 여호야김에게 이르기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네가 이 두루마리를 태우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거기에 기록하기를, 바빌론 왕이 반드시 이 땅을 멸하고 이곳에서 사람과 짐승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므로 주가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다윗의 왕좌에 앉을 자가 그에게 없겠고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열기를, 밤에는 서리를 맞으리라.
또 내가 그와 그의 씨와 그의 신하들을 그들의 불법으로 인하여 벌하리라. 내가 그들과 예루살렘 거주민들과 유다 사람들을 향하여 선포하였으나
그들이 귀를 기울이지 아니한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라.](렘36:29-31).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그의 비참한 죽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불에 태운 그의 죄에 대해 주님이 내린 가장 무서운 벌은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1, [요시야는
여고니야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으니 그 무렵에 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니라.](마1:11). 요시야는 분명히 아들 여호야김을 낳았고,
그가 왕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신약 성경은 그의 이름을 족보에서 지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 역시 족보에서 지워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말씀을 두려워하십시오.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모든 좋은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시편
34:7, [주의 천사가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건지는도다.](시34:7). 주님은 주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떠는 자들을 돌보십니다. 이사야 66:2,5 [...주가 말하노라. 오직 가난하고 영으로 통회하며 내 말에 떠는 자는 내가 보살피느니라.](사66:2).
여호야김이 주의 말씀에 떨었더라면 그와 민족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주의 말씀에 떠는 자들아, 너희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고 내 이름으로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주께서 영광을 받으소서, 할지라도 (배교자들의 특징이다.
그들은 항상 주의 이름으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다.) 그분께서 나타나사 너희의 기쁨이 되실 것이요, 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사66:5). 성경을 손에 들고 다니는 성도들이 주의 말씀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교는 주님과 주의 말씀 앞에 두려워 떨 줄 모르는 성도들에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잠언 13:13, [누구든지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나 명령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잠13:13).
그렇다고 단지 여호야김과 같은 왕들의 죄악으로만 인해서 유대의
온 민족과 백성이 포로로 잡힌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십계명 중에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 행하라는 계명과 안식년을 지키라는 주님의 계명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소출을 좀 더 얻기 위해서 7년마다 땅을 쉬게 하라는 명령을 저버리고, 490년간이나 계속 농사를 지었던 것입니다. 레위기
25:3,4 [너는 육 년 동안 네 밭에 씨를 뿌리며 육 년 동안 네 포도원을 가꾸어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칠년 째 되는 해에는 그 땅에
안식하는 안식이 있게 할지니 이것은 주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네 밭에 씨를 뿌리거나 네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레25:3,4). 유다
민족은 이 명령에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은 마땅히 쉬어야 할 70년의 안식년을 쉬지 못했고, 지력은 고갈되어 갔습니다. 주님은
유다 민족을 심판하시고, 땅에 안식을 주셨습니다. 역대기하 36:21, [이로써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주의 말씀이 성취되어 마침내 그
땅이 자기의 안식을 누렸으니 이는 그 땅이 황폐한 동안 안식을 지키고 칠십 년을 마쳤음이더라.](대하36:21).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는 교훈을 철저하게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구약의 역사를 통해, 교회사를 통해 말씀에
대한 불신과 불순종하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갚으시며, 보응하시는 주님의 성품을 철저히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농담하시거나 장난하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뭔가를 하라고 했을 때, 우리는 반드시 그것에 순종하거나, 값을 치르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선택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몫입니다. 불행하게도 여호야김 왕이나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버렸습니다.
다시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의
통치 제 삼년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곳을 에워싸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집 기구 중 일부를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 그가 그것들을 가져다 시날 땅에 있는 자기 신(神)의 집에 이르러 그 기구들을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들여놓았더라.](1,2).
하나님께서 유다를 느부갓네살에게 넘겨주신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숭배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주변에는 여러 이방 민족들이 나름대로 다양한 우상들을 숭배했습니다. 우상 숭배에는 하나님의 심판 외에 달리
치료책이 없습니다. 바빌론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입니다. 모든 우상 종교는 다 바빌론에서 출발하고, 거기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2절에서 시날
땅이라고 하는 이 곳은 바빌론의 중심지인 동시에 바벨탑을 쌓았던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숭배하고, 거기에 빠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우상
숭배의 본거지인 바빌론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나는 더 이상 너희들의 우상 숭배의 죄를 어떻게 할 수 없구나, 우상이 무엇인지,
직접 보고, 접해 보아라. 70년이면 충분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로 유대 민족은 지금까지 단일신,
유일신 종교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들은 망했지만 최소한 바알이나 다른 이방 신을
섬기지는 않았습니다. 로마의 압제 가운데서도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철저하게 지켰으며, 그 이후 2000년간의 나라없는 이방 생활
가운데서도 신앙이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70년간 바빌론 포로 생활을 통해 그들은 우상의 실체와 그 허망함에 대해서 뼛속 깊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바빌론으로 보내셔서 그들이 한때 사랑하고, 숭배했던 거짓 신들을 미워하고, 허무한 것을 배우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섬기고 믿는 주님이 얼마나 거룩하고 위대한 분이신가를 배우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날 배교한 성도들을
징계하시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때로는 죄악 가운데 버려 두심으로, 은혜를 갑절로 깊이 깨닫게 하시는 역설과 모순의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 가고, 또 기울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때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응답해 주시고, 그것으로 가득 차도록 허락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 상태대로 우리를 취하시고, 응답하십니다. 에스겔14:5,6
[이것은 이스라엘의 집이 다 자기 우상들로 말미암아 나와 사이가 멀어졌으므로 내가 그들의 마음 상태대로 그들을 취하고자 함이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의 집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회개하고 너희 자신을 돌이켜 우상들을 떠나라. 너희 얼굴을 돌려 너희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겔14:5,6). 이 말씀은 무섭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선하고 순수한 양심을 소유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늘 겸손히 그리스도의 마음을 덧입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의 죄에 대해 용서와 긍휼없이 대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며, 죄를 용서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시며,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이 임했다는
것은 그 죄악이 극에 찼음이요,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악한 마음 때문입니다. 역대기하 36:15,16, [주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거하는 곳을 불쌍히 여기사 자신의 사자들을 통하여 백성에게 말씀을 보내고, 늦기 전에 일어나 보내셨으나//(심판하시기 전에
주님이 한 일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들을 멸시하며 그분의 대언자들을 학대하여(사람들이 한 일입니다.) 마침내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향해 진노하사 구제할 방법이 없게 되었으니(주님이 하신 일입니다.)](대하36:15-16). -이것은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다시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유다 왕 여호야김의 통치 제
삼년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곳을 에워싸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집 기구 중 일부를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
그가 그것들을 가져다 시날 땅에 있는 자기 신(神)의 집에 이르러 그 기구들을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들여놓았더라.](1,2).
느부갓네살은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용맹스러울 뿐만 아니라 총명한 왕이었습니다. 보통 왕들은 정복지의 여자들을 약탈하여 데려갑니다. 그리고,
양민들의 재물을 약탈합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뛰어난 청년들, 기술자들을 잡아갔습니다. 이는 제국의 기초를 놓고, 자신에게 충성할 사람들을
기르고자 하는 안목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를 주목해 보십시오. 성경은 느부갓네살이 이렇게 하도록 하신 한 분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께서...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라고 말씀합니다. 1절과 2절을 읽을 때, 왕이 몇 명 나오는지 보십시오.
정복자 느부갓네살 왕과 거기에 패한 유다 왕 여호야김 두 명의 왕만을 보시는 분은 성경을 제대로 보신 것이 아닙니다. 이 둘보다 더 위대한 왕,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주께서...그의 손에 넘겨주시매](2).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언제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주님은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뒷짐지고 멀리서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고, 인도하시며, 자신의 뜻대로 운행해 가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핵심은 느부갓네살이나 유다 왕 여호야김이 아니라 [주께서...]라고 말씀하신 주님이십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겸손히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조차 자신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27:6,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내어 주었고 또 들의 짐승들도 그에게 주어 그를 섬기게
하였느니라.](렘27:6). 주님은 사탄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주님은 주권자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을 주권 신앙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control하신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한없는 위로를 받습니다. 느부갓네살의 통치는 잠시이지만, 주님의
통치는 영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순되어 보이는 현실, 힘들고 고통스러워 보여도 그 속에는 주님의 깊은 섭리적 손길이 있음을 믿고,
인정하십시오. 나의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우리는 오늘 주님의 심판과 징계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심판은 말씀에 불순종에 대한 결과이다. 주님은
우리를 아끼시고, 말씀을 보내시지만 회개하지 않고, 거역하고, 불순종을 일관할 때, 심판이 임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말씀에 두려워하라.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에 떠는 것입니다.
셋째, 심판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가르침이 있다. 70년의 포로
생활을 통해 우상 숭배를 철저히 청산했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와같은 심판의 용과로를 통과함으로 믿음의 순수성이 정련됩니다. 택하신
자들의 심판은 제련과 정련의 과정입니다.
넷째, 주님은 성도들의 마음 상태대로 취하시며, 응답하신다.
주님은 성도들의 마음 속의 우상의 수효대로, 그 마음 상태대로 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순수하고 선한 양심을 갖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아래, 말씀의 물로 씻음 받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주님은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다. 주님은 느부갓네살을
자신의 종으로 사용하시며, 모든 권세는 그분에게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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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르곤왕조의 시조. 전왕 샬마네세르 5세의 죽음에 편승하여
왕위를 빼앗아 즉위하였다. 정책은 선왕의 것을 그대로 계승하였지만, 군사적으로는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북쪽의 왕국 이스라엘을 괴멸시킨 뒤(BC
722~BC 721) 백성을 아시리아로 이주시켰으며, 하마(Hama) 및 다마스쿠스를 격파하였다(BC 720). 아르메니아를 약탈하고
카르케미시를 탈취(BC 717), 키프로스로부터 충성의 맹세를 받았고(BC 709), 바빌론에서 엘람(Elam)을 분리시켰다. 바빌론의
메로다크발라단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스스로 바빌론왕이 되었으며(BC 710), 정복지의 백성을 제국의 변경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썼다.
니네베 북쪽 산지(山地)인 두르샤루킨에 장대한 궁전을 건설하였으며, 소아시아의 수메르인(人)을 치다가 전사하였다. 왕위는 아들 세나케리브가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