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출애굽기 34:1-7

요절: 출애굽기 34:5


하나님은 자신의 곁에 있는 반석 위에 모세를 서게 하신 후에
소원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는 육안으로 주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곁에 있던 반석은
물질로서의 반석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신 분이십니다(요1:1-3).


하나님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해 깨버렸던 돌 판의
율법을 새로 기록해 주시기 위해 다시 부르셨습니다.


1절입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두
개를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들에 있던 말들을 내가 그 판들 위에 쓰리니]
(1). 전에 주님은 모세에게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고, 십계명을 돌판 두 개에 쓰셔서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모세가 직접 돌판 두 개를 깎아 만들어서 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율법을 주시고, 그 돌판에 율법을 새기셨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조건부 언약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9:5-6절에 [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참으로 내 목소리에 순종하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내게 모든 백성들보다 뛰어난 특별한 보배가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이기
때문이라. 또 너희는 내게 제사장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너는 이 말들을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출19:5~6)고 합니다. “순종하고..지키면”이란 조건부 행위 언약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율법을 지킬 것을 맹세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세를 불러 율법을 주시고, 돌 판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와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내가
기록한 돌판들과 율법과 명령들을 네게 주리니 이것은 너로 하여금 그들을 가르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출24:12). 그러나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산에 올라간 40일 만에 이 언약은 박살나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돌 판을 깨뜨림으로써 언약이 파기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진멸해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맹세의 언약은 몇 년이 못되어 파기된 것이 아닙니다. 단 40일 만에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습니다.


주목해서 보십시오. 첫 번째 돌 판은 주님께서 깎으시고 친히
기록하셔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 돌 판은 모세가 깎아 만들어야 했습니다(1). 처음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깎아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중보자의 역할입니다. 우리 주님은 처음 율법을 조금도 폐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을 약화시키거나 변개시키지 않으시고 그대로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중보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모세가 깎아서
갔던 이 돌 판은 언약궤 속에 보관되었고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일을 행하시고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2절입니다. [/너는/ 아침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2). “아침에”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은 해가 중천에 떠서 일을 시작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항시 이른 아침부터 일하십니다. 주의 종들은 모두 아침부터 일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기도를 해도, 찬양을 해도 아침부터 해야 합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오 [주]여, 아침에 주께서 내 목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위를 바라보리이다.](시5:3)
했습니다. [그러하오나, 오 [주]여,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보다 앞서 가리이다.](시88:13). 한국
교회의 전통 중에 ‘새벽 기도’는 성경적 의미를 알고 실천하기만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기도 시간이 없습니다. 기도는 언제나 할 수 있지만
다윗은 아침에 기도를 했고, 그 기도에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찬양 역시 아침에 했습니다. [오직 나는 주의 권능을 노래하며 참으로
아침에 주의 긍휼을 크게 노래하리니 이는 나의 고난의 날에 주께서 나의 방벽과 피난처가 되셨음이니이다.]
(시59:16). 말씀을 듣는
일도 아침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주를 신뢰하오니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하심에 대하여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향하여 내
혼을 들어 올리오니 나로 하여금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알게 하소서.]
(시143:8).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시키실 때 아침 일찍부터
하도록 하시지 않는 예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유월절의 밤은 깊었지만 출애굽은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천히 이집트를 떠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는 아침 일찍 파라오를 만나러 들어갔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기도를 하셨고,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모세는 돌 판을 깎아서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시내 산의 높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산행을 하려면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산으로 출발해야 했음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라고 한 시각에 맞추기
위해서 모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해야 했습니다. 부활의 아침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침 일찍 무덤으로 간 여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비록 부활의 믿음이 없이 무덤으로 향했지만 가장 먼저 부활을 목격하는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침 일찍 주님께로 갔기 때문입니다.


3절입니다.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게 하며 온
산에서 아무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양떼나 소떼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3). 이는 출애굽기 19:12에 있는 말씀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구속의 피를 입지 않고는 누구도 주 하나님 곁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곁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죄 씻음이
필요합니다. 율법으로는 아무 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이는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되
/주께서/ 더 나은 소망을 가져오심은 /완전하게/ 하였기 때문이니 우리가 이 소망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느니라.]
(히7:19).
예수 그리스도께서 짐승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는 그 공로를 힘입어 저 하늘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시간도 자신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구원하시며, 가까이 오도록 초청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나니 그 까닭은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仲保)하시기 때문이라.]
(히7:25).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자신을 믿는 자들을 능히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살아 있는 길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게 되었나니]
(히10:19). 여러분은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았습니까? 피로 씻음 받은 자만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 담대함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피만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걷어내고 은혜와 긍휼을 쏟아지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피’에 대해서 조사하다 킹 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어떤 역본에서도 피로 죄를 씻었다는 말씀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
(계1:5).
*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개역-계1:5). 피로 씻음받았다는 말대신 모두 다른 어휘들도 대체되어 있었습니다. 피로 씻음
받지 못하면 죄는 제거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피의 은혜로만 주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이 한
가지 진리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4절입니다. [모세가 돌판 두 개를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 돌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내 산에 올라가니]
(4). 모세가 돌 판 두 개를 들고
시내 산에 올라갔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율법을 기록하실 돌 판입니다. 돌 판에 기록된 율법은 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 판에 기록된
말씀을 주신 것은 후에 마음 판에 이와 같이 말씀을 기록해 주실 것을 예표 합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언약을 어기고, 율법을 깨뜨릴 때 하나님은
더 이상 돌 판에 말씀을 기록해서 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그 날들 이후에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 /중심/부에 두고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렘31:33). 하나님의 율법은 그들 마음 속에 기록되어 더 이상 지워지지 않고, 깨어지지도 않을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요 그리스도로 믿고 마음에 영접할 때 하나님은 돌 판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마음 속’에 말씀을 기록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돌 판을 가져오게 하셨지만 우리는 주님께 빈
손으로 맨 몸으로 나아가 마음 판에 기록해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누구에게도 돌을 깎아서 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이니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고후3:3). 우리가 할 일은 말씀을 마음 판에 기록하는 일입니다. 잠언 3:3에 [긍휼과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들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기록하라.]
(잠3:3)고 하십니다. 잠언 7:3에도 [그것들을
네 손가락에 묶으며 네 마음판에 기록하라.]
(잠7:3)고 합니다.


돌 판에 기록된 율법은 사람을 모두 죄 아래 가둡니다. 정죄와
저주를 선포합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영으로 기록된 말씀은 죄의 법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을 줍니다. 은혜 아래
있게 합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돌 판에 글로 새겨진 율법이 아니라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믿는 자들 속에 거하심으로 ‘말씀’은 마음속에 기록됩니다. 말씀은 더 이상 사람을 죽이는 ‘율법 조문’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살리는 ‘영’으로
주어졌습니다(고후3:6). 이전에 우리는 말씀, 율법, 진리 같은 말을 들을 때면 어련히 구약의 두루마리를 떠올렸습니다. 율법 조문에 어떻게
되어 있는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씀하면 성경책 이전에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
올립니다. 율법하면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진리하면 어떤 원리나 원칙과 같은 ‘문구’가 아니라 “나는
진리요”(요14:6)란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란 사실에 주목합니다. 구약에서는 조문이었지만 신약에서는 모든 것이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말씀도 인격이고, 영도 인격이고, 진리도 인격이고, 생명도 인격입니다. SOMETHING이 아니라 SOMEONE입니다. WHAT 이 아니라
WHO입니다. 참 하나님이시오,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빛, 진리, 생명, 길 등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든 간에 그 모든 실체는 ‘주
예수 그리스도’란 사실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정확히 모르는 성도들은 성경을 공부하지만 “이것이
진리이다. 저것이 진리이다.”고 교리 논쟁을 자주 합니다. 교파마다 신학이 다르고, 해석이 다르고, 주장이 다르고, 강조점이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다”란 사실을 간과한 채 자신들의 교리적 주장, 신학적 체계를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나는
진리요”란 말씀을 아십니까? 진리의 하나님, 진리의 말씀, 진리의 영, 진리의 길, 진리의 풍성함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우리는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마음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살아 주실 때 우리는 진리의 실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주]께서 구름 가운데 내려오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주]의 이름을 선포하시니라.]
(5). 모세가 산으로 올라갈 때 하나님은 구름을 타고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주의 이름]에 대해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칭호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칭호는 정확히 말해서 이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의 이름을 지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짓지 않는 이름도 있습니다. 바다의 생물 중 고래(창1:21)는 아담이 지은 이름이 아닙니다. 태양계를 보십시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등 이름이 있습니다. 모든 이름이 다 이교도 신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지만 하나님이 친히 이름을 붙인 별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Earth)입니다. 지상에는 많고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모든 신들은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 붙인 신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신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는 모세가 일찍이 물었던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I AM THAT I AM"( 출3:14)이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주님과 씨름을 했는데 이 때 주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야곱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원하오니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소서, 하매 그가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그가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하므로]
(창32:29). 주님은 야곱에게 이름을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은 그냥 하나님인 줄 알고 그
만남의 장소를 ‘브니엘’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들에서 주의 천사를 만났습니다. 마노아는 자신이 만난 주의 천사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마노아가 또 [주]의 천사에게 이르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영화롭게 하리이다, 하니 [주]의 천사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네가 이같이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은밀(隱密)하니라, 하니라.]

(삿13:17~18). 이 부분을 킹제임스 성경으로 보면 * And the angel of the LORD said unto him, Why
askest thou thus after my name, seeing it is secret? *비밀임을 알면서 어찌하여 네가 나의
이름을 묻느냐?(KJV)입니다.


어떤 분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고,
성자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성령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성령 하나님의 이름은 성령입니다. 로마서 10:13에 [이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임이라.]
(롬10:13)고 합니다. 우리는 ‘주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누구는 여호와라고
합니다. 누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럼 주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주의 이름이란 [주]입니다. 주의 이름”(the name of the
LORD)은 “주”(the LORD)입니다. “주의 이름”을 해석하자면, “주라는 그 이름”입니다. 주의 이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의 이름’이 ‘예수’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의 이름은 솔로몬이고, 다윗의 이름은 다윗이듯이 ‘주의 이름’은 주입니다. 증거 구절을
하나 보겠습니다. [그 때에 내가 주의 이름(the name of LORD)을 부르기를, 오 주여(O LORD), 주께 간청하오니 내 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시편 116:4). 주의 이름= 주. 이는 성경의 일관된 증거입니다.


[주]의 이름은 창세기 4:26에서부터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셋에게도 아들이 태어나매 셋이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주의 이름(the name of LORD)을
부르기 시작하였더라.]
(창세기 4:26). 이는 성경 기록상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아벨 역시 주님께 희생 헌물을 드렸고, 주님께서
받으셨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주님께 제단을 쌓았던 사람들은 세상의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고,
모욕과 수치를 당하며, 죽임까지 당하는 일은 초대 교회 때부터 있었던 일이 아니라 아벨 때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배”를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몇 구절을 보겠습니다. [거기서 벧엘의 동쪽에 있는 산으로 이동하여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더라. 그가 그곳에서 [주]께 제단을 쌓고 [주]의 이름을 부르니라.]
(창12:8). 아브라함은 주께
제단을 쌓고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경배(예배) 행위입니다. [그곳은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장소더라. 아브람이
거기서 [주]의 이름을 부르니라.]
(창13:4). 아브라함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제단을 쌓은 것의 관계성을 쉽게 일치합니다.
이삭 역시 그러합니다(창26:25 참조).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자체가 경배입니다.
“주여..”라고 부르는 분들은 이교도들이 의미 없이 헛된 반복을 하듯이 ‘주여, 주여’를 연발하는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참된
경배여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21). [주]의 이름은 헛되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다윗처럼 제단을 쌓고, 성전에 가서 희생물을 드리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감사, 찬양, 기쁨’과 같은 영적 희생물을 들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영적 제사장들입니다. [내가 주께 감사의 희생을 드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시116:17). 감사의
희생을 드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찬양의 희생을 드리십시오. 주님은 찬양의 희생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이름입니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너희는 [주]의 이름을 찬양하라. 오 [주]의 종들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하라.]
(시135:1), [그것들이 [주]의
이름을 찬양할지니 이는 그분께서 명령하사 그것들을 창조하셨음이라.]
(시148:5), [[주]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이는 그분의
이름이 홀로 뛰어나시기 때문이니 그분의 영광은 땅과 하늘보다 높도다.]
(시148:13).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주님께서 모세와 함께 산에서 “주의 이름”을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이 이름은 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체적으로 계시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행19:5),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당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김을 받고(고전6:11),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골3:17), 먹든지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합니다.


6절입니다. [[주]께서 그 앞으로 지나가시며 선포하시되,
[주]로다.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이로다.]
(6). 주님께서 친히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모세나 아론을 통하지 않고 친히 자신을 계시하시고 선포하신 설교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긍휼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공의’가 아니라 긍휼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긍휼이 필요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절박한 기도 제목을 가졌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하지 않고,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둥병자가 소경 등이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바라보고, 그 긍휼에 한 가닥 소망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향해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긍휼”을 약속하셨습니다(행13:34). 율법에 따르면 다윗은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확실한 긍휼’로 인해서 율법의
정죄와 저주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입니다. 은혜, 오래 참음,
선함, 진리는 모두 우리 주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런 모든 것들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이제 육신을 입으신 주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이 땅에 거하지
않습니다. 대신 성령을 통해 믿는 성도들 안에 거하시면서 자신의 이런 모든 성품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몸을 주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내어 드릴 때(롬12:2)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지로 삼으셔서 열매를 맺으시고, 등으로 삼으셔서 빛을 발하시고, 향유 그릇으로 삼으셔서 향기를
발하시며, 세상 속에 소금처럼 두심으로 맛을 나게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힘과 지혜와 명철을
그만두고 오직 주님을 신뢰함으로써 성령께서 이루시도록 자신을 전적으로 양도(YIELD-내어 드리라)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7절입니다. [내가 긍휼을 수천에게 베풀며 불법과 범죄와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이것이 결코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아니며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하여 삼대와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
(7). 하나님은 불법과 범죄와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죄인들의
죄가 깨끗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주님의 긍휼로 용서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긍휼로 불법과 범죄와 죄를 용서받을
뿐입니다. 죄를 제거하는 일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죄를 제거해 주셔야만 합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용서받은 죄가 완전히 제거됩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요1:29). [이는 그리하였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창세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세상 끝에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음이니라.]
(히9:26).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요일3:5). 아담으로부터 모든
사람의 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제거됩니다. 지하에 있던 혼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가 제거되었을 때 무덤이 갈라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늘에 있던 에녹, 엘리야, 모세 등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가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시,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의 죄를 제거하는 피 입니다. 십자가 없이도 용서는 가능합니다. 복음서에 많은 죄인들은 주님으로부터 용서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 역시 십자가에서 제거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로 오해하는 한 가지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하여 삼대와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는 부분입니다. 조상들의 죄, 가계에 흐르는 저주 등으로 해석되는
부분입니다. 지금 내가 일이 잘 안 풀리고 돈이 안 벌리고, 가정에 불화가 있고, 시험에 자꾸 떨어지고, 가족들이 병을 앓고 등등의 일들이
조상들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남의 탓 하기를 좋아하는 한국 민족의 습성은 이런 데서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죄와 불법에 따른 저주가 걷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세 오경을 비롯해서
많은 구절들이 조상들의 죄의 결과가 후손에게 미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주는 인자하심을 수천의 /사람들/에게 베푸시며 아버지들의 불법을
그들 뒤에 오는 그들의 자손들의 품에 갚으시오니 주의 이름은 크신 이, 능하신 하나님, 만군의 [주]시니이다.]
(렘32:18).
아버지가 우상을 숭배할 때 자식들은 자연스럽게 우상 숭배에 젖어듭니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러합니다. 조상들이 심판을 받으면 그
정치적,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삶의 모든 부분이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3-4대는 물론이고 더 오래갈 수도 있습니다. 죄의 결과는 한
민족, 한 국가, 한 사회, 한 가정은 물론이고 개개인들에게 모두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가계에 흐르는 그런 불신과 우상 숭배에 따른 저주를
끊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후로는 조상들의 죄가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 날들에 그들이 다시는 말하기를, 아버지들이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 자녀들의
이가 시려서 진저리치게 되었다, 하지 아니하겠으며 오직 사람마다 자기 불법으로 인해 죽을 것이요,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자기 이가 시려서
진저리치게 되리라.]
(렘31:29-30). 주님은 각 사람의 죄를 각 개인에게 물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보라, 모든 혼은 내
것이라. 아버지의 혼과 마찬가지로 아들의 혼도 내 것이니 범죄하는 그 혼은 죽을지니라.]
(겔18:4).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된 일이냐?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는도다. 아들이 율법에 맞는 일과 옳은 일을 행하며 내 모든
법규를 지켜 행하였을진대 그는 반드시 살리라. 범죄하는 그 혼은 죽을지니라. 아들이 아버지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며 아버지가 아들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로운 자의 의가 그 의로운 자 위에 임하겠고 사악한 자의 악이 그 사악한 자 위에 임하리로다.]

(겔18:19~20). 주님은 조상들의 죄를 자식들에게 묻지 않으십니다. *벧전1:18-19: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대속(代贖) 받은 것은...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1:18-19).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영원한 저주에서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모든 저주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더 이상 조상 탓, 남 탓, 환경 탓 하지 말고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서 발견하고 주님의 해결책인
십자가와 그 피 아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씻음 받고, 그 죽음으로 나의 육신의 정과 욕심이 해결 받을 때
우리는 참된 자유와 해방과 하늘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복을 받은 존재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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