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약1:17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영적인 것들입니다. 에베소서 4:7-8과 야고보서 1:17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다, 하였도다.](엡4:7-8).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주께서 주신 선물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성령의 은사(선물)은 곧 하나님의 선물이요,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삼위일체의 진리를 보게 됩니다. 성령의 은사(선물)이 단수로 사용될 때는 성령 자신이 선물이란 사실을 배웠습니다. 주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선물은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선물이란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무엇만 많이 받는다면 그는 여전히 잃어버린 자요, 구원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다”고 합니다. 선물들이라고 할 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다루고자 하는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성령께서 뜻대로 주시는 선물은 곧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선물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에베소서 4:7-8은 시편 68:18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구절과 비교해 보십시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시며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이끄시고 사람들을 위하여 선물들을 받으시되 참으로 거역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받으셨나니 이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려 하심이로다.](시68:18).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선물을 사람들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반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선물들을 받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심으로써 아버지로부터 약속한 성령을 선물로 받으셨습니다(행2:33). 모든 권세를 받으셨습니다(마28:20).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것들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주님은 선물들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 가운데 거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최대의 선물은 주님 자신이 친히 우리 속에 거하시는 것입니다(골1:27).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 자신이 우리의 선물이며, 주님이 주시는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보상이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보호하심도 귀하지만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방패가 되시는 것이 더욱 안전합니다. 이런 점에서 주님은 우리 속에 거하시며 모든 것이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야고보서 1:17입니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1:17). 야고보 사도는 모든 선물(은사)이 다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은사라고 해서 성령님만 강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성령을 외치는 많은 교회들에서 성경적 진리를 간과한 채 이 시대는 성령의 시대라고 하면서 성령만을 외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의 선물이 곧 그리스도의 선물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려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모두 좋은 선물입니다. 악하거나 나쁜 것이 없습니다. 해로운 것도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완전합니다. 불완전하거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선물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선물 싫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선물은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때로 화해의 수단이기도 하고, 격려와 위로의 표시가 되기도 하고, 힘을 주고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중동 지역에서는 결혼하려면 신랑이 신부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선물은 당신을 얻고 싶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신부로 얻으시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로부터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꼭 저와 저희 가정에 주셨으면 하는 선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고, 지금까지 이미 여러 차례 어떤 선물들을 주셨는가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돈입니까? 출세나 성공입니까? 명예나 권세입니까? 아니면 장수(長壽)나 건강입니까? 무엇이라고 하더라도 저는 여러분을 “육신적이다, 세상적이다”라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두 출세하고 성공하고 부와 권세와 명예를 지니고 장수와 건강의 복을 누리는 것을 기복적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최소한 이런 것들을 제대로 사용할 줄만 알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풍요를 탓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 빈곤을 해결하려는 의지나 소원은 전혀 없이 물질적 풍요를 구한다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영적으로 타락했습니까? 그들에게 외적이 쳐 들어오고, 흉년과 기근이 몰려 들 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먹고 배부를 때 주님을 잊어 버렸고, 우상을 숭배했고, 음행을 일삼았습니다.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자가 되었도다. 내가 나를 위해 재물을 얻었은즉 사람들이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가 되는 불법 곧 내 안에 있는 /불법을/ 찾지 못하리라, 하거니와](호12:8). 먹고 배부를 때 타락했다는 것이 주님의 증거요, 역사의 증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왜 죄악으로 심판 당했습니까? 그들은 빈곤한 도시가 아니라 최고로 번성하고 먹을 것이 많았습니다. 대언자 에스겔을 통해 주님은 [보라, 네 동생 소돔의 불법은 이것이니 곧 그녀와 그녀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빵의 풍족함과 게으름이 많이 있는 것과 그녀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손을 강하게 하지 아니한 것과](겔16:49)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타락은 공히 물질적 빈곤이 아니라 영적 빈곤에서 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절대 빈곤이란 말이 있습니다. 먹고 살 것이 전혀 없는 정도로 가난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영적 빈곤입니다. 교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의 타락과 배교는 물질적 풍요와 영적 빈곤이 함께 할 때입니다.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가련한 것과 비참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도다.] (계3:17). 저와 여러분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분들 가운데 물질적 풍요와 건강과 출세와 성공을 사모하는 분들이 있다면 먼저 영적 빈곤을 해결할 수 있기를 구하십시오. 들에 소출이 풍성하기를 바라는 만큼, 수입이 늘어나기를 원하는 만큼 내 안에 성령의 열매, 의의 열매(고후9:10, 빌1:11)가 더욱 풍성하기를 원하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두 크고 좋은 집을 갖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 집에 사는 가족들 간에 의와 기쁨과 즐거움, 평강이 없다면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좋을 것이 무엇입니까? 부부 간에 뜨거운 사랑이 있고, 자녀 간에 형제 우애가 있고 서로 간에 섬김과 희생이 있는 집이 아니면 아무리 크고 넓은 집에 산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투는 여자와 함께 넓은 집에서 사는 것보다 지붕 모퉁이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9). 한 마디로 좋은 집(house)을 구하기 전에 좋은 가정(home)을 일구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모든 면에서 그대로 적용됩니다. 좋은 침대를 구하기 전에 단 잠을 구하십시오. 경치가 좋은 넓고 좋은 방에 비단 금침을 깔아 놓은 방에서 불면증으로 뒹구는 것보다야 헛간에서 자더라도 단 잠을 자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성령의 은사는 우리에게 집을 주기 전에 가정을 주고, 침대를 주기 전에 잠을 주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네가 누울 때에 무서워하지 아니하겠고 참으로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잠3:24). 잠이 달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아십니까? 걱정 대신 평강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이 잠이 답니다. 주를 신뢰하는 자라야 잠이 달고, 몸이 아프지 않아야 잠이 답니다. 단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잠을 자고 깨는 일에도 주님이 함께 하실 때 단잠을 잘 수 있습니다. [내가 누워 잠이 들고 또 깨었으니 이는 주께서 나를 떠받쳐 주셨음이로다.](시3:5). 주님이 여러분을 떠 받쳐 주시는 것이 단잠의 비결입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이는, [주]여, 주께서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기 때문이니이다.](시4:8). 주님이 지켜 주시는 것이 단잠의 비결입니다. 수면제보다 더 평안한 잠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머니의 법을 버리지 말고 그것들을 계속해서 네 마음에 묶어 두며 네 목에 매어 두라.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고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깰 때에 너와 말하리니](잠6:20-22). 잘 때에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고급 침대에 멋진 방을 구하기 전에 이런 잠을 잘 수만 있다면 아마 침대 탓을 하거나 고급 침대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가재도구를 구하는데 마음이 빼앗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라고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이해하십시오. 그것이 꼭 초자연적이거나 초인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물론 병 고침이나 예언이나 방언이나 방언 통역이나 기적을 행하는 등의 초자연적인 은사들이 있습니다만 그런 것들 이전에 우리는 마음속에 사랑이나 믿음과 같은 이런 은사들을 추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사도들의 표적을 은사로 구하느라 정작 구해야 할 은사들에 소홀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방언의 은사보다는 섬김의 은사가 훨씬 더 절실히 필요합니다. 성경적 예언이 아닌 점치는 영에 사로잡힌 거짓 은사들을 자랑하는 사람들보다 권면하는 은사가 훨씬 더 요긴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때로 신유(병 고침)의 은사가 있다고 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믿음의 기도”를 통해 병 낫기를 구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형제들을 세우고 교회를 세웁니다(고전14:12).
바울 사도는 [선물]이란 말을 참으로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물은 [영적 선물]입니다. [내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은 너희에게 어떤 영적 선물을 나누어 주어 너희를 굳게 세우고자 함이니](롬1:11).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했던 영적 선물이 무엇입니까? 복음의 진리입니다. 성도들에게 성경을 통해 영적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간절히 주고자 했던 선물이었습니다. 그가 로마 교회에 거액의 헌금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손발에는 사슬이 묶인 채 감옥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그는 2년 동안 셋집에서 하나님의 왕국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을 부지런히 가르치는 것(행28:31)이었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다스리는 것도 은사입니다. 섬기는 일도 은사입니다. 다 같이 로마서 12:6-8을 보겠습니다. 여기에는 교회 내의 성도들이 받은 은사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으니 대언이면 우리가 믿음의 분량대로 대언하고, 혹은 사역이면 우리의 사역하는 일로 섬기며,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권면하는 자는 권면하는 일로 하고, 주는 자는 단순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롬12:6~8). 대언, 사역(섬김), 가르치는 일, 권면하는 일, 주는 것, 다스리는 것, 긍휼이 교회에 주시는 성령의 은사라는 것입니다. 여기는 신유나 방언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섬기는 것과 주는 것도 성령의 은사란 점에 주목하십시오. 이런 은사들이야 말로 교회를 세우고 형제들을 완전하게 하며 섬기는 일을 하는 그런 것들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은사들이 예외 없이 다 영적 선물들입니다. 물질적이거나 육체적이거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은사들을 받아서 사용하게 되면 그것은 모두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들이 됩니다. 우리는 받은 은사들을 사용함으로써 일로, 열매로 드러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역자가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른 결과라고 말합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라 그분의 권능이 효력 있게 활동함을 힘입어 내가 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노라.](엡3:7). 복음의 사역자는 성령의 은사가 바울 안에 주어진 결과입니다. 사도 바울이 병 고침이나 방언(외국어)의 은사를 받았다는데 열광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가 받은 은사들의 핵심은 [대언, 사역(섬김), 가르치는 일, 권면하는 일, 주는 것, 다스리는 것, 긍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했던 선물이 바로 이런 것들이었고, 저와 여러분이 구해야 할 은사들 역시 영적인 은사들입니다.
[영적인 선물]이란 말은 육체적이고 물리적이고 땅에 속한 것들이나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영이신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하늘에 속한 것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며, 내적이란 의미입니다. 육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육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구할 수 없고 얻을 수 없습니다. 물리적(physical)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몸보다는 영과 혼(마음)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땅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땅에서 나는 것들로는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영적 은사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으로 보이게 드러나는 것이며, 내적이지만 외적으로 나타나 보이며, 하늘에 속한 것이지만 땅에서 실현되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내적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이나 믿음의 결과는 행동으로 말로 삶으로 분명하게 납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이라고 해서 마냥 뜬구름 잡는 식으로 정신세계/영적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 평강 등은 내적이고 영적입니다. 그러나 기쁨과 평강의 결과는 육신의 얼굴에 드러나며, 생각과 말과 삶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 보입니다. 영적 은사들은 모두 지극히 영적이지만 그 결과는 일상생활의 삶의 원동력이며 결과로 드러납니다. 저와 여러분이 받은 선물들을 활용한다면 우리의 삶이 영적으로 영위되는 것입니다.
나무를 보십시오. 나무의 핵심은 뿌리입니다.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물을 흡수하고 양분을 흡수해서 물관과 체관을 타고 가지로 흘러갑니다. 그런 것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잎이 열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드러나 보입니다. 성령의 역사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의 뿌리는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가지들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입니다. 머리속의 창의력, 상상력, 사고력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작품이든 말이든 일이든 그 무엇으로 행해질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생각과 사상과 정신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능력은 이 땅에서 볼 수 없습니다. 성도들을 통해서 사랑이 실천되고 믿음이 드러날 때 세상은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주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주시고 드러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극적인 것은 성도들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들은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고 자신이 받고 싶은 소원을 구하는데 정신이 팔려 헛된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는 남들이 가진 그런 은사들이 아무 것도 없다고 허탈해하거나 열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에 따르면 모든 성도는 예외 없이 성령이 주신 은사들을 이미 소유하고 있습니다(고전12:7,11, 엡4:7, 벧전4:10).
저는 이 시간 자신이 가진 영적 은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진지한 성도라면 누구나 자신이 어떤 영적인 은사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저마다 분명히 다른 은사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하기를, [그런즉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으니](롬12:6a)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모두 동일한 은사의 소유자는 아닙니다. 이는 주님께서 골고루 나누어 주심으로써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어 교회를 세우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얼굴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이 은사 역시 모두 다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입니다. [이제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무는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활동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같으시되] (고전12:4~6). 은사, 직무, 활동은 다양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은사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다름입니다. 손과 발은 다릅니다. 눈과 귀는 다릅니다. 이는 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기능과 직무의 차이요 ‘다름’입니다. 은사와 직무와 활동의 다양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지체(肢體)는 많이 있고 그 한 몸의 모든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고전12:12). 양손과 양발, 이목구비(耳目口鼻), 오장육부가 모두 한 몸을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 지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보십시오. 아주 쉽고 단순한 예를 통해 성령의 은사들의 다양성을 설명해 줍니다. [몸은 한 지체가 아니요, 여럿이라.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이로써 몸에 속하지 아니한 것이냐? 만일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이로써 몸에 속하지 아니한 것이냐?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기뻐하시는 대로 지체들을 각각 몸 안에 두셨느니라. 만일 이것들이 다 한 지체라면 몸은 어디 있느냐? 그런데 이제 지체는 많으나 오직 한 몸이라. 눈이 손에게 이르기를,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하거나 머리가 발에게 이르기를,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럴 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들이 오히려 더 필요하고 또한 우리가 덜 귀한 것으로 여기는 몸의 지체들을 더욱 귀한 것으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부분들은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나니] (고전12:14~23). 은사를 지닌 사람들이 모두 지체 하나 하나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주님은 내 안에 무슨 은사를 부여해 주셨는가? 살펴보십시오.
☞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하자.
① 성경에서 찾아보라. 성경에서 영적 은사와 관련된 본문들을 차분히 읽어 보시면 내 안에 있는 은사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14장, 에베소서 4장, 베드로전서 4장 등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서 읽다 보면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었던 분야였는데 구원받은 후 확실하게 달라진 부분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공중 설교, 가르치는 능력 등... 다양하게 점검해 보십시오. 은사는 훈련에 의해 개발될 수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섬김 받기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섬기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섬김의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이전에는 받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주는 것을 좋아한다면 ‘주는 것’의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안수를 통해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게 된 하나님의 은사를 네가 불붙이게 하려고 너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노니] (딤후1:6). 디모데가 받은 것은 가르치는 일과 권면하는 일이었습니다. 때로 사역자들은 안수를 통해 새롭게 능력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안에 주어지면 은사들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② 안수 vs 은사. 일반적으로 지역 교회는 목사, 선교사, 교사, 집사, 부흥사(복음 전도자) 등에게 안수를 줍니다. 이 안수는 단순한 요식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은사를 부어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분명히 안수를 통해서 은사를 받았습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회에서 안수할 때에 대언으로 네게 주신 그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딤전4:14). 사도 바울도 아나니야에게 안수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행9:17). 이런 성경적인 근거로 해서 목사님들이 집회 때에 아무에게나 앞으로 나와서 안수를 해 주는 일이 있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안수는 사역자의 파송, 임명과 병자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뜻 아무에게나 해서는 안 됩니다. 은사를 얻고 싶은 소원에 안수만 받으면 방언을 하고, 병이 낫고, 어떤 은사를 얻게 되는 줄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안수에 대한 주의 사항이 경고로 주어져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선뜻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죄들에 가담하지 말며 네 자신을 순결하게 지키라.](딤전5:22).
③ 열망하는 은사가 있는가? 영적 은사는 열망하고 사모할 때 주어질 수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가장 좋은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라.](고전12:31a)고 했습니다. [사랑을 따르고 영적 은사를 사모하되 특별히 대언을 하려고 하라.](고전14:1)고 말합니다. 영적인 은사들에 무지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고전12:1). 영적 은사들을 알고, 사용하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은사들에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영적인 은사들에 열심이 있은즉 교회를 세우는 일에 뛰어나기를 구하라.](고전14:12). 교회에 필요한 것들이 있는데 현재 전혀 없다면 구하십시오. 이 교회는 섬기는 사람이 필요하구나! 다스릴 사람이 필요하구나! 가르치는 일, 권면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기 위해 은사들을 구하십시오. 그래서 내 안에 그런 은사가 주어지면 그 일로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열망하는 어떤 것들이 이전에는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면 성령의 은사가 주어진 것입니다. 영적 은사를 소유하는 것은 각별한 영적 욕구에 의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야나 꼭 이루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일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분야에 관련된 은사를 주셨을 수 있습니다.
④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통해 하는 사역은 열매를 맺고, 축복을 동반할 것입니다(롬15:19). 인내심을 가지고 당신이 소유한 영적 은사를 찾으십시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할지라도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면서 주신 은사들을 완전하게 하는데 마음을 기울이시면 때가 되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설교자임에도 설교의 능력이 없어 고민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놀라운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재능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의해서 잘 되고 있다면 성령의 은사가 주어진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머리에 아무 생각이 없는데 일을 하려고 작정하고 시작만하면 일에 대한 지혜가 생기고 막힘없이 술술 풀리는 그런 것이 있다면 여러분 안에 은사로 주어진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문을 구하십시오. 여러분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잘 관찰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발견하지 못한 은사를 이미 알아차리고 있을 것입니다. “형제는 무슨 은사가 있는 것 같애!”라고 말해 주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같은 소리를 여러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자신 안에 있는 은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영적 은사들에 대해 정통하고 있는 다른 형제들과 교제의 시간을 많이 가져 보십시오.
⑥ 다양한 교회 사역에 동참해 보십시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참여해 보면 자신의 은사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부딪혀서 일을 해보면 자신도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재능이나 기호를 발견하게 되고 은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대학원 박사 과정 학위 논문 자료를 구하러 프랑스에 갔다가 돌연히 요리 학원에 등록하여 일류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⑦ 끊임없이 자신의 관심분야를 점검해 보십시오. 잘 하지 못하지만 계속해서 관심이 끌리고 하고 싶은 소원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그 안에 그런 은사가 주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상은 간략하게 여러분들이 자신이 가진 은사들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참고 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함도 중요하지만 필요를 구하십시오(빌4:19). 형제들을 돌보아 주고, 섬길 수 있는 무엇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고 구하십시오.
☞ 헌신과 결단의 시간: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주제별(글) > 성령을 알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의 은사(04) (0) | 2006.12.03 |
---|---|
성령의 은사(03) (0) | 2006.12.02 |
성령의 은사(01) (0) | 2006.11.28 |
성령의 열매(19) - 절제 (3) | 2006.05.02 |
성령의 열매(18) -온유 (0) | 2006.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