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성령의 은사(4)
말씀: 고전12:28-30 


성령의 은사에 대한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병 고침의 은사]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열렬히 사모하고 열광하는 은사이며,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성경에는 은사이면서 열매인 것이 있고, 은사이면서 표적인 것이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은 성령의 은사이면서도 동시에 열매입니다. 반면 방언과 병 고침은 성령의 은사이면서도 표적에 속합니다. 성경에는 은사들 가운데 표적으로 주어진 은사 4가지가 나오는데 1. 기적들 2. 병 고침(신유) 3. 방언들 4. 방언 통역입니다. 이 네 가지 은사는 사도들에게 표적으로 주신 은사들입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인내와 표적과 이적과 능한 행위로써 사도의 표적들을 행하였도다.](고후12:12). 사도 바울은 “사도의 표적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들에게는 [사도]란 표적이 있었습니다. 기적들을 행하고, 병을 고치고, 방언을 말하고, 통역하는 등의 은사들은 사도의 표적들입니다. [사도의 표적]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사도의 표적들은 사도들에게 주어진 표적이요, 사도가 아닌 자들은 행할 수 없습니다. 만약 사도가 아닌 사람들이 행한다면 이것은 사도의 표적이 아닐 것입니다. 신자(믿는 자)의 표적이 아닙니다. 병 고침은 사도의 표적입니다.

주님은 초대 교회 때에 교회 내에 대언자와 사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대언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기적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타언어들이니라.](고전12:28). 그러나 현재 어느 교회에도 대언자와 사도들은 없습니다.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교회에 대언자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모든 은사들을 현재 교회에 적용하려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현재 교회에는 사도와 대언자는 없지만 교사는 있습니다. 기적과 병 고치는 은사들은 없지만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은 있습니다. 타언어(방언)들은 없습니다. 통역도 없습니다. 이것들은 표적적인 은사들입니다. 어떤 선교사들도 외국어를 전혀 배우지 않고 능통하게 된 예는 없습니다. 대신 선교지로 나가서 빠르게 외국어를 습득하도록 지혜와 명철을 부어 주시는 예는 허다합니다. 이런 것들을 때로 오해하여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표적으로서의 은사는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사도들에게 주어진 표적이며, 사도들이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데 언어적 문제를 모두 제거해 주신 것입니다. 방언은 다음 시간에 다루겠습니다.

주님은 사도들에게 이런 표적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17-20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을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한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올려지사 영접(迎接)을 받으시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시니라. 그들이 나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막16:17~20). 여기서 [믿는 자들]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은사주의자들은 “성경을 봐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하지 않느냐?” 고 주장합니다. 반면 침례교도들은 그렇다면 “내가 독을 줄테니 마셔봐라. 독사 굴에 손을 넣어 보라”고 조롱합니다. 여기서 믿는 자들은 마가복음 16:14절에서 시작해서 읽으면 ‘사도들’이 됩니다. 그리고 20절을 보아도 역시 [사도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도들에게 성경이 완성되기 전까지 사도들의 표적을 통해서 복음 전파 사역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말씀이 일반 신자들 모두에게 해당된다면 은사들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믿는 자가 아니란 결론이 나고 말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표적들이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선한 고백과 선한 행위들과 성령의 열매들이 따라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짐으로써 더 이상 유대 땅에는 유대인이 살지 않고, 복음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로 전파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선포되었던 [왕국 복음]대신 이방인들에게 [은혜의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요한을 마지막으로 사도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사도는 계승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사도들의 표적’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병 고침에 대한 은사들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듯 한 강한 환상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듯이 복음서에서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전도 여행을 보내시면서 일시적으로 특별히 권능을 주셨던 제자들 외에 누구도 병 고침의 은사를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에서도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병 고침의 은사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성령 충만했던 120명의 성도들이 모두 놀라운 은사를 소유했던 것이 아닙니다. 병자들은 여전히 사도들만이 고쳤을 뿐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그리스도를 선포했을 때 많은 병자들이 나음을 입었는데 이 역시 주님의 은혜였지 빌립이 고친 것은 아닙니다.

사도들은 어떤 면에서 표적들과 다양한 은사들로 인해 일반 신자들이 결코 지닐 수 없었던 초능력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이런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신 표적이요, 제자들이 이스라엘 전역을 돌면서 왕국 복음을 전파할 때 주셨던 표적들입니다(마10, 눅10).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들에서 가르치시며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온갖 질환과 온갖 질병을 고치시니](마4:23). 주님은 모든 질병을 다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못 고치시는 질병은 없습니다. 여기서 ‘온갖 질환, 온갖 질병’이란 말씀에 주의하십시오. 주님은 병자의 믿음 상태에 관계없이 고치셨습니다. 주님의 치유 사역은 예외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반면 오늘날 치유 사역을 한다는 사람들은 결코 이와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고치지 못하는 병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온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들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모든 질환과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시니라.](마9:35). ‘모든 질환과 모든 질병’을 고치셨는데 이는 왕국 복음의 표적이었습니다. 이런 표적들을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그렇지 않는가? 란 점이 주된 논점입니다.

표적의 은사는 오순절 및 은사주의 교회에서는 오늘날 모든 신자들에게서 여전히 유효한 은사들이라고 강조하는 반면 근본주의 침례교 성도들은 이런 은사들은 현재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합니다. 표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히브리서 13:8을 주로 인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그래서 초대 교회 시절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표적이 동일하게 일어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세대주의자들은 이들이 세대를 잘 못 나누기 때문에 무지(無知)한 주장을 한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에게 일시적으로 행해진 표적을 지금 현 교회 시대에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 사역의 많은 부분은 병자들을 고치신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10:1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부정한 영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내쫓으며 온갖 질환과 온갖 질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10:1). 여기 보면 제자들은 “온갖 질환과 온갖 질병”을 고치는 권능을 받습니다. 이것이 ‘신유의 은사’입니다. 어떤 병은 고치고 어떤 병은 못 고치는 것이라면 주님이 주신 권능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9장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함께 부르사 모든 마귀를 제압하며 질병을 고치는 권능과 권위를 주시고](눅9:1). 여기 역시 질병을 고치는 권능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아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시니라.](마14:14). 주님께서는 병을 고쳐 달라는 사람들의 청을 다 들어 주셨고, 나아오는 자들도 고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에도 병을 고치셨습니다. 주님은 병자들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어디서나 병을 고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오늘날도 당시와 같이 제자들에게 동일한 병 고치는 권능과 권위를 주셨다면 이곳 미국에는 병원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병자는 가까운 교회로 가시오! 라고 하면 끝입니다. “병이 걸리면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시오”라고 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수많은 국가들에서 자신들의 나라에 병을 고칠 수 있는 선교사들을 보내주기를 요청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경험하듯이 그런 예는 전혀 없으며, 교회 내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있습니다.

기적, 신유, 방언, 방언 통역의 이 4가지 은사는 표적으로 주어진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표적으로 주어진 은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권위]를 증명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메시야란 사실을 알 수 있게 하셨는가? 간단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구하는 표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2:22, 고린도전서1:22입니다.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스스로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을 통하여 기적과 표적을 너희 한가운데서 행하사 그분을 너희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정받은 사람으로 삼으셨느니라.] (행2:22).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 기적과 표적을 행하셨습니까?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서입니다. 침례인 요한은 표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역시 표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벳이나 사가랴 역시 표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당대의 성령 충만했던 그 누구도 표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기적과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2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require)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 (고전1:22). [요구하다]라고 할 때 “require”란 단어는 표적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이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의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은 메시야에게는 메시야의 표적을, 사도들에게는 사도들의 표적을 요구합니다. 그 요구 사항에 응하지 못하면 가짜로 판명되고 거짓 메시야, 거짓 사도, 거짓 대언자로 드러나서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침례인 요한은 감옥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가 정말 메시야인지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그 사실을 물어 보게 하였습니다. [이제 요한이 감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을 듣고 자기 제자들 중에서 두 사람을 보내어 그분께 이르되, 오실 그분이 선생님이오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리오리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가서 너희가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다시 보이되 눈먼 자가 시력을 받으며 다리 저는 자가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며 귀먹은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일어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하라.](마11:2-5). 예수님의 답변은 침례인 요한에게 충분한 답변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자신이 행한 표적과 이적들을 기억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의 예언에 따라 지상 왕국을 건설할 자신들의 메시아를 감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사35:5,6, 61:1).

고린도후서 12:7-10에서 우리는 바울이 어떤 병약함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상황을 보게 됩니다. 이 구절에서 "병약함"(infirmity)"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또한 "연약함(weakness)(9)으로도 번역 되었습니다. 바울은 세 번 이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였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거절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이 연약함이 하나님께서 바울의 영적 형통을 위하여 몸의 질병을 원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즉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랐고 기뻐했습니다(고후12:10). 이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완전한 예입니다. 우리는 시련으로부터의 치유와 해방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치유하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반드시 그분의 뜻을 따르고, 그 병이나 시련을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부족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전(全) 교회사에 걸쳐 하나님께서 택하신 종들은 많은 병을 겪었습니다. 영어 성경의 번역자인 윌리엄 틴데일은 1524년에 로마 카톨릭 당국에 체포되어 순교할 때까지 투옥되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추위로 계속해서 떨었고 감기와 오한을 앓았습니다. 틴데일은 병으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많은 유명한 찬송가들은 병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병이 든 가운데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샤롯 엘리오트(Charlotte Elliot)는 그녀의 전 생애 동안 아팠습니다. 화니 크로스비(Fanny Crosby)는 눈이 먼 채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95년 동안 눈이 멀었습니다. 그녀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네"(Saved by Grace)와 "주 예수 넓은 품에"(Safe in the Arms of Jesus) 등 수많은 찬송가를 썼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증거했습니다. "나는 얼마나 행복한 자인가! 비록 보지 못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으며 장차 만족할 것일세.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얼마나 많은 축복을 누리고 있는가! 눈이 멀었다고 탄식할 수 없으며 그러기를 원치 않네."

"예수가 거느리시니"(He Leadeth Me)를 작시한 윌리암 브래드버리(William Brathbury) "만세 반석 열리니"(Rock of Ages)을 작시한 어거스트 토플래디 (August Toplady), "주의 말씀 받은 그 날"(O Happy day)을 작곡한 필립 도드리드(Philip Doddrige)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Nearer,My God to thee)을 작곡한 시라 플라워 아담즈(Sara Flower Adams)는 평생 동안 결핵을 앓았고, 결핵으로 죽었습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When I survey the woundrous Cross)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Come We that Love the LORD) "기쁘다 구주 오셨네"(Joy to the World)을 작곡한 아이작 왓츠(Issac Watts)는 평생 동안 병을 앓았습니다. "죄 짐 맡은 우리구주"(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를 작곡한 요셉 스크리벤(Joseph Scribben)은 평생 동안 재난과 병을 앓았습니다. "Does Jesus Care"을 쓴 프랑크 그래프(Frank Graff)는 생애의 대부분을 병을 앓으며 보냈습니다.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Robert Murray Mcchyne)과 데이빗 브레이드너드(David Braidnard)는 당대의 가장 거룩한 사람들로 알려졌지만 모두 30세에 폐병으로 죽었습니다. (폰 로케, 성경은 치유에 관해 어떻게 가르치는가(What the Bible Teaches about Healings). 요한 캘빈도 병으로 죽었고, 죠지 휫필드 역시 질병을 앓았습니다. 병을 앓는다는 것이나 치유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비성경적이거나 은혜를 받지 못한 결과가 아닙니다. 병을 통해서 주님께서 이루실 일들이 있고, 연약함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완전한 능력을 보이실 수 있습니다. 연약한데서 주님의 강함이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특별한 4 가지 표적이 있습니다. 기적을 행하는 은사들이란 자연계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뛰어 넘는 어떤 일들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 법칙을 거스르거나 능가하는 능력입니다(고전12:28). 병 고치는 능력은 의료 행위나 약을 통하지 않고 고치는 초자연적 능력입니다. 육체적 질병이든, 정신적 질병이든 마귀로부터 기인하는 병이든 다 고칠 수 있는 능력입니다(고전12:9,28,30). 병 고침(신유)의 은사야말로 현대 기독교, 특히 오순절 운동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성경이 병 고침의 은사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그의 능력은 모든 질병을 고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핵심은 하나님이 병을 고칠 수 있으신가?에 있지 않고, 병 고침의 은사를 지닌 사람이 오늘날도 여전히 존재하는가? 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마4:23,24)이 18가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역을 유념해 살펴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를 발견한 장소에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줄을 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병을 다 고치셨습니다. 칸막이를 치실 필요도 없었고, 고칠 수 있는 병인지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은 완전하셨습니다. 실패도, 재발도, 요양기간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은 전적으로 무료이셨습니다 헌금을 거두지 않으셨으며, 책을 팔지도 않으셨고, 자선 남비도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치유를 요청하러 오는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치유를 요청하지 않는 사람도 고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일반적으로 손을 대지 않으시고 고치셨습니다. 극적 효과를 노리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안수를 해서도 고칠 수 있고, 멀리서도 고칠 수 있습니다. 병자의 상태를 보지도 않고 고치신 적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를 고치시기 전에 단 한 번도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병이 나음 받은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막7:36). 기적은 스스로 말하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의 치유사역은 대부분 이스라엘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백부장의 종과 같이 이방인도 있었지만 이방인들은 큰 믿음으로 주님께 간청함으로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병자에게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자와 불신자를 구분하지 않고 동시에 치유하셨습니다.

이점은 오늘날 누구도 감히 하지 못하는 사역입니다. 병자를 안수해서 고치겠다는 사람이나 믿음을 요구하거나 다른 조건을 거는 사람들은 주님의 사역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의 치유 사역이 나옵니다.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의 치유 사역에 대해서 구체적인 4번의 사건과 일반적인 사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병자들이 있는 그 곳에서 병을 고쳤습니다. 고통 받는 자들은 병을 고침받기 위해서 와서 구하지 않았습니다(2,3). 사도들의 치유는 완전했습니다. 사도들의 치유 사역은 그들의 사역에서 아주 작은 부수적인 것이었으며, 항상 복음 전파를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13-26, 4:4). 사도들의 치유는 병자에게 믿음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치유는 능력을 필요로 하지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분명히 사람들의 질병을 치유하실 수 있고, 치유하십니다. 그러나 분명히 경계를 그어야 할 것은, “주님께서 뜻하시면”입니다. 우리는 치유를 구하기전에 주님께서 그것을 뜻하시는지 주의 깊게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병을 고침 받기를 구하는 것이 어떤 때는 큰 실수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경에서 이런 예를 보여 주셨습니다(사38:1-39:7). 히스기야 왕은 질병이 걸려 죽게 되자 하나님께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그의 질병은 치유 받았습니다. 그러나 확신하건대 그는 여러 차례 자신이 한 기도에 대해서 잘못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치유 받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의 결과 치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을 어떻게 치유해 주셨는지 놀라운 간증들을 듣습니다. 제 자신도 여러 번 치유의 경험을 했지만 제 아들 동주는 정말 여러 차례 질병에서 치유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런 치유의 역사들을 보았고, 지금도 앞으로도 동일한 치유의 역사를 기대하고 믿습니다만 제가 치유의 은사를 가졌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신유의 은사를 통해서 병을 고침 받거나 고친 적이 없고, 오직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한 적이 많이 있을 뿐입니다(약 5:13-15). 성경은 신유 은사자를 찾는 대신 이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 고난을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시편으로 찬송할지어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장로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리라. 혹시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용서받으리라.] (약5:13~15).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을 청할 것이 아니라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면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가 일으켜 세웁니까? “주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리라”.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다 병상에서 병이 완전히 나아서 수술하러 왔던 의사들이 그냥 돌아가는 일도 허다합니다. 암이란 진단을 받고 다시 한 번 정밀 조직 검사를 하러 몇 일 뒤 병원에 갔는데 암 세포 조직이 완전히 사라지고 깨끗이 나아 버린 예도 많이 있습니다. 에이즈에 걸렸다가 주님을 만난 후로 에이즈가 나아 버린 예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알 레이시 목사님은 1996년 5월 8일에 자기 아내의 병이 나은 이야기를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나의 아내는 신장을 파괴하는 희귀한 질병에 걸려서, 한 쪽 신장을 제거해야만 했습니다. 8년 후 동일한 징후가 나머지 신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의사는 신장의 2/3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허약해서 신장이식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는 신장이나 수술이 개발된 초기였습니다.) 나는 교회의 27명의 집사들을 불렀으며, 그들은 그녀에게 기름을 붓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즉시로 질병을 멈추게 하셨고, 말씀드리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21년을 살았습니다." 알 레이시 목사님은 성경에 있는 대로 믿고 행했을 뿐입니다. 주님은 완전히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런 신유의 예는 표적으로 주어진 은사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신자들에게 드러나는 주님의 은혜의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질병을 앓고 있지만 여전히 치유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치유하는 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바울의 동역자로 언급된 에바브로 디도는 치유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가 너희 모두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었으므로 심히 근심하였기 때문이요, 또 참으로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셨고 그에게 뿐 아니라 내게도 긍휼을 베푸사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기 때문이라.](빌2:26,27). 바울의 영적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디모데 역시 병이 있었지만 치유 받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있는 병을 위하여 포도즙을 조금 쓰라.](딤전5:23). 바울은 디모데의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뿐마 아니라 함께 전도 여행을 하던 동역자들도 병으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고치지 못했습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남겨 두었노라.] (딤후4:20). 사도 바울의 말년에는 이미 초반기 사역에서 보여졌던 많은 표적들과 은사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바울의 병 고치는 은사가 얼마나 강력하게 발휘되었던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으로 특별한 기적들을 행하시니 심지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질병들이 그들에게서 떠나고 악한 영들도 나가더라.] (행19:11~12). 이것은 정말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초기 사역에도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을 거리로 데리고 나가서 침상과 잠자리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의 그림자라도 그들 중 누구에게 덮이기를 바라고 주변 여러 도시에서 나온 무리도 예루살렘에 이르러 병든 사람들과 부정한 영에게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다 고침을 받으니라.] (행5:15~16). 이런 것들을 사도의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는 주후 65년경이 지나면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국가로서 다루시는 것을 마치셨을 때,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표적 또한 중단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누구도 치유를 받지 못했으며, 바울 자신도 의사인 누가의 간병과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는 의학적 권면을 잘 보아야 합니다(딤전5:23). 그리고 병든 자들을 위한 기도를 가르치는 야고보서를 보십시오(약5:13-16). 사도들의 사역이 끝난 무렵 더 이상 치유를 받았다는 기록이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병 고침의 은사에 대해서 어떤 가르침을 얻어야 합니까? 내가 몸이 아플 때 필요한 분은 유능한 의사이십니다. 주님은 Divine Healer이십니다. 몸을 고치실뿐만 아니라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의사이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오순절을 비롯한 은사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치유 사역 가운데 몸의 치유를 강조하는 반면, 세대주의를 비롯한 근본주의 침례교인들은 몸의 치유보다는 영적 치유를 강조합니다. 일부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은 주님의 치유 사역보다는 병원을 훨씬 더 의존합니다. 성경에서 주님이 치유하신다는 구절은 대환란 때 유대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처럼 적용하고 현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것처럼 믿습니다. 신유 은사를 지닌 거짓 은사주의자들을 지나치게 경계하다 성경적인 주님의 치유 사역까지 거부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치유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치유를 믿지 않는 것은 헛된 기도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고치시는가? 말씀을 보내셔서 고치십니다. [그분께서 네 모든 불법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시103:3), [자신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며 멸망들에서 그들을 건지셨도다.](시107:20). 이는 분명히 육신적 질병을 고치시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세상 병원은 사람의 영혼의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때로 심리학자들이나 정신과 의사들이 상담을 통해서 고치겠다는 시도를 합니다만 별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치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147:3). 주님은 놀라운 치료자이십니다. 마음 속의 미움, 분노, 시기, 원망, 불평 등 각종 병들을 다 고쳐 주십니다. 마음의 병이 나으면 육신의 병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 뿐 아니라 병을 담당하신 주님에 대해 증거 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벧전2:24). 이 말씀은 재림이 아닌 초림 때 십자가에서 이루신 주님의 사역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사야 53:5을 인용한 것인데 이렇게 증거 합니다. [그러나 그가 찔림은 우리의 범죄들로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불법들로 인함이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사53:5).

하지만 우리는 실증적으로, 현실적으로 아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 순간 모든 질병이 떠나지 않습니다. 당뇨병 환자는 여전히 당뇨를 앓고, 치과에 갈 사람은 여전히 치과에 가야 합니다. 눈이 아픈 사람은 안과로 가야하고, 암 환자는 지속적으로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기적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후에는 말씀을 보내셔서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할 수 있고, 주님이 맞으신 채찍에 근거해서 치유를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의 질병은 70% 이상은 마음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마음의 변화가 있으면 신체적 질병의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 영적 평안과 기쁨이 있고, 참된 은혜가 있으면 몸의 질병은 이미 70% 이상 회복된 것이나 같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주시면 그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셔서 고침을 주십니다. 완전한 치유 사역은 천년 왕국에 있는 일입니다. 천년 왕국 때는 십자가를 믿음으로 낫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낫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 시대에 우리에게 있는 치유 사역은 말씀을 듣고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장로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리라. 혹시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용서받으리라.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라. 의로운 자의 뜨겁고 효력 있는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약5:14-16).

오늘날 성도들이 이외로 질병으로 오랫동안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을 봅니다. 질병을 통해 은혜 가운데 있고, 질병을 통해 성령이 충만해졌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질병을 통해 믿음이 약해지고, 고통을 당한다면 당연히 나음을 입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병 낫기를 기도해도 마음속에 거의 믿지 않고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낫습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고난은 분명히 천년 왕국 성도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순절 교회나 은사주의자들처럼 거짓 은사들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믿음의 기도]를 통해 병든 자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약5:14). 믿고 구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성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어떤 질병은 나음 받는 것보다 안고 살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기도를 해도 나음을 입을 수 없습니다.

첫째, 주님께서 연약함을 통해서 강하신 능력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둘째,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셋째,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게 하실 때도 그러합니다. 넷째, 믿음을 단련하시고, 성장케 하기 위함입니다. 다섯째,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고침을 받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보내 주셔서 고쳐 주시기를 구해야 마땅합니다. 교회는 치유의 은사를 지닌 사람들을 찾는 대신 우리 자신이 [믿음의 기도]를 함으로 병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병을 기꺼이 짊어질 준비도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이든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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