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롬11:29 요절: 롬11:29
성령의 은사에 대한 세 번째 시간입니다. 첫 시간에는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무엇’이 아니라 성령님을 받는 것이 은사라는 점을 증거 했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단수로 사용될 때 성령님 자신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사란 사실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성령의 무엇이 아니라 성령 그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선물)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주신 목적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 아침 시간에는 내가 받은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에 대해서 말씀을 증거 했고 성령의 은사를 제대로 발견하고 그 은사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의 핵심은 사람이요, 직분이란 사실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시중의 기독교 서점이나 많은 주석들, 성경 공부 교재를 사서 읽어보면 [성령의 은사들]의 종류에 대해서 죽 나열하는 정도에 그치고 성경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령의 은사들이라고 하면 [병 고침, 기적, 예언, 방언, 통역, 마귀를 쫓는 축사] 등을 쉽게 떠올립니다. 병을 고치는 것이 사람이 하는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는 일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하는 일입니다. 기적을 행하는 일이 사람의 사역입니까? 하나님의 사역입니까?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방언이나 통역이나 예언이나 축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은사들은 구약의 대언자들에게 있었고 12 사도들이나 70인 제자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이런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도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은 주님께서 일시적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 결과입니다. 우리 안에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은사주의자들은 성령의 은사를 받기만 하면 받은 사람이 아무 때나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언제나 병을 고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누가 안수를 하거나 기도를 하면 무슨 병이든 낫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가 가졌던 은사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그런 은사가 있다고 주장하는 목사님들이나 부흥사들이 집회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실하게 객관적으로 검증된 예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의 은사들을 사용하고 활용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매 순간 모든 초점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 주 하나님께 맞추어져야지 자신에게 맞추어져서는 안 됩니다. 에베소서 3:20, 디모데후서 1:14절입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엡3:20). 활동하시며, 행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데 그런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이신데 지혜를 주시면 그것이 지혜란 은사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령은 믿음의 영이시기에 우리 안에 믿음을 드러내시면 그것을 우리는 믿음의 은사라고 말합니다. 성령께서는 사랑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은사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한 구절 더 보십시오.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네게 맡긴 그 선한 것을 지키라.](딤후1:14).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게 맡긴 그 선한 것”을 지키라고 한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우리 안에 주신 각양 직분들과 은사들입니다. 은사와 직분은 성령님을 의지하여 맡겨진 것들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능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주셨습니다. 이런 것들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해서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지킬 수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3:5과 4:7을 펴 보십시오. [이는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요, 오직 우리의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기 때문이니라.](고후3:5). 우리 자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이든 우리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어떤 은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은사는 영구적이거나 완전한 자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삼손이 받은 엄청난 힘은 주님의 말씀에서 떠났을 때 힘 역시 떠났습니다. 사울이 받은 성령은 불순종했을 때 사울을 떠났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범죄 했을 때 성령이 떠날 것을 두려워해서 기도했습니다. 신약 성도들은 주님께서 ‘영원히 거하시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 능력은 언제든지 소멸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만 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하나님과 깊은 친교의 관계를 유지하고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들이라고 불리는 어떤 권능도 우리 자신에게서 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평생 쓰고 남을 충전기를 하나 넣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플러그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졌나니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후4:7). 하나님이 주신 지혜, 하나님이 주신 권능, 하나님이 주신 무엇 무엇이 있다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0장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부정한 영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내쫓으며 온갖 질환과 온갖 질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10:1). 주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셨는데 이는 성령의 은사들이라 불리는 그런 것들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집들에게로 보내어 졌습니다. 왕국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은혜의 복음이 아닙니다. 왕국 복음입니다. 또 한 구절을 보십시오. [이 일들 후에 또 {주}께서 다른 칠십 명도 세우사 친히 가시고자 하는 각 도시와 각 지역으로 둘씩 둘씩 앞서 보내시니라.] (눅10:1). 이번에는 70인 제자들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친히 가시고자 했던 도시와 지역으로 보내셨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전역에 주님의 말씀과 권능과 이적이 행해진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을 보내시면서 동시에 권능과 권위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거기 있는 병든 자들을 고치며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왕국이 너희에게 가까이 왔느니라, 하라.] (눅10:9). 오늘날 어떤 전도자들도 병든 자들을 고치며 복음을 전하는 일은 없습니다. 때로 아프리카나 먼 오지로 떠난 선교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병든 자들을 고친 예들이 많이 들리긴 합니다만 오늘날 이곳에서 이런 예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칠십 명은 주의 명령을 수행하고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합니다. [칠십 명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마귀들도 우리에게 굴복하더이다,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압할 권능을 주노니 어떤 방법으로도 너희를 해칠 것이 전혀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들이 너희에게 굴복하는 이 일로 기뻐하지 말고 오직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17~20). 이들은 주님이 주신 권능을 제대로 잘 활용해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들이 받은 권능과 권세, 마귀를 제어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뱀과 전갈을 밟는 이런 것을 [성령의 은사들]이라고 말하고 이런 것들을 받기를 간절히 열망합니다. 너무나 매력적이고도 황홀한 은사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저 역시 한 때 이런 은사들이 나를 통해 드러나기를 열망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제 손과 혀를 통해 이런 은사가 드러나면 교회는 전도하지 않아도 금방 가득차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들의 이런 능력은 일시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후에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왜 자신들은 쫓아내지 못했는가를 물었을 때, 은사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권능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 까닭은 너희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로다.](마17:20a). 주님은 그들이 이제 믿음으로 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 없이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마17:21)고 하셨습니다. 표적과 은사의 사역이 아니라 이제는 믿음과 기도와 금식으로 일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저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교회의 많은 병자들을 고칩니까? 교회 내에 누가 병고침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찾아내거나 초빙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병자를 고쳐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리라. 혹시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용서받으리라.](약5:15). 주님은 우리 속에 병자를 고치는 신유 은사자를 주시는 대신 우리 안에 믿음의 은사를 주시고,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고치게 하십니다. 우리 속에 마귀 들린 형제들이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믿음, 기도, 금식이 방법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권면하여 마귀의 올무에 빠진 자들을 돌이켜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안에 주어진 [성령의 은사들]을 발견하고 불일 듯일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을 주목해서 본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어떤 특별한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벨에게 어떤 성령의 은사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에녹에게 성령의 은사가 있었습니까? 노아에게는 놀라운 은사가 있었습니까? 오순절 교회나 은사주의 교회의 주장대로라면 믿음의 영웅들은 은사가 전혀 없는 무능력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들로써 승리의 삶을 살았고, 주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성령의 은사가 있었다고 믿을 수 있습니까? 이삭이나 야곱에게 어떤 영적 은사들이 발견됩니까?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다는 분명한 증거와 그에 따른 좋은 평판을 받은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지만 어떤 영적 은사들을 소유한 사람이란 증거를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구약의 믿음의 인물들 중에는 ‘주의 영이 임하사...주의 영으로 충만하여...’와 같은 증거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했던 예는 부지기수로 보지만 성령의 은사가 넘쳤다는 기사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구약에는 [성령의 은사]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요셉, 솔로몬, 다니엘에게 주신 지혜와 명철 정도가 성령의 은사라고 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갑니다. 하나님은 사역의 핵심 요건을 언제나 ‘성령 충만’으로 규정하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그는 무엇이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출애굽기 28:3에 몇 몇 기술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제사장들의 의복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너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 곧 내가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게 한 모든 자에게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아론의 의복들을 만들어 그를 거룩히 구분하게 할지니 그리하여야 그가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리라.](출28:3). 제사장의 의복은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보아왔던 디자인이 아니라 모세가 입으로 말해 주면 그것을 그대로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성막 제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이전에 꿈에도 본 적이 없는 독특한 건축물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고도의 전문 교육과 실전 경험이 풍부한 그런 전문가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성령으로 충만케 한 몇 사람을 통해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들이 바로 브살레엘과 아홀리압입니다. [보라, 내가 유다 지파에 속한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레엘을 지명하여 부르고 지혜와 명철(明哲)과 지식과 온갖 기술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그를 충만하게 하여](출31:2-3). 주님의 사역을 하는데 핵심은 언제나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에서 브살레엘과 아홀리압이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흔히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지 않고 ‘주의 영/성령’으로 충만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최고의 기술자는 성령 충만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오순절 및 은사주의 교회에서 시작된 ‘은사’ 열풍은 그들에게 사역을 수행할 어떤 힘과 지혜도 주지 못합니다. 성령의 은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데는 성령 충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든 성령의 열매든 핵심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엡5:18). 저와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이유는 성령으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이 [성령 충만]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세 곳을 펼쳐서 영적 은사들의 종류에 대해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2:6-8, 고린도전서 124-11,28, 에베소서 4:11에 성령의 은사들의 목록이 나옵니다. 목록을 쭉 뽑아보면 26가지입니다. 현재 교회에 존재하지 않는 대언자와 대언의 은사를 제외하면 24가지가 됩니다. 다스리는 은사와 통치는 같은 것으로 볼 때 23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 고침, 방언, 통역, 사도의 직분을 빼면 20가지로 줄어듭니다. 현재 어느 교회도 사도의 직분을 가진 자는 없습니다. 이 4가지는 현재 우리 교회 시대에 별로 해당 사항이 없는 표적으로 주신 은사입니다. 반복되는 은사들을 빼고 정리해 보면 총 16가지의 은사만이 현재 교회 시대의 저희들에게 적용됩니다.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된 병 고침, 방언, 통역을 부정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교회에 적용되지 않는 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것들이 표적으로 주신 일시적인 은사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성령의 침례와 동시에 성령 충만이 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방언을 말하고 각종 표적과 이적이 일어나는 성령의 은사들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오늘날 성도들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베드로는 방언을 말하고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일으키는 등의 놀라운 은사들을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은사들이 현재 우리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는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가? 성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주께 기름부음 받았다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제사장, 대언자, 왕이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이 세 가지 직분은 그 자체가 성령의 은사입니다. 직분이 은사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주님의 사명을 맡은 사람이 바로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엡4:11~12). 사도, 대언자, 복음 전도자, 목사와 교사라는 직분 자체가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주님은 교회에 사람을 주심으로 성령의 은사들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누가 저에게 당신이 받은 은사는 무엇입니까? 라고 하면 ‘목사와 교사’라고 말합니다. 대언자, 복음 전도자, 목사와 교사가 성도들과 이 땅에 주신 [성령의 선물]입니다.
제사장 역시 성령의 은사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섬김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것에 대하여 제사장 직분을 지키라. 내가 너희의 제사장 직분을 너희에게 섬김의 선물로 주었은즉 가까이 오는 낯선 자는 죽일지니라.](민18:7). 저와 여러분은 모두 왕가의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섬김의 선물(은사)을 받았습니다. 왕 역시 성령의 은사입니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롬12:8) 하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성령의 은사를 주실 사람들을 성령으로 충만케 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왕이요, 제사장이요, 대언자로서의 직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양한 은사들을 풍성하게 허락하시고 그 은사들을 써서 서로 섬기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은사로서의 직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십시오. 우리가 성령의 은사들을 받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기름 부어 주시는 사람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이 목사이든 교사이든 간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어떤 사람을 택하시고 일을 맡기시는데 그 직분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며, 그 일을 하도록 임명 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을 맡긴 후에 잘못된 인사였다고 후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물과 부르심에는 잘못이나 후회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적이고 정욕적인 삼손을 이스라엘의 사사(재판관)로 부르신 일에 후회한 적이 없으십니다. 그에게 성령을 충만케 부어 주신 일에 전혀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주님은 가룟 유다를 제자로 부르신 일에 전혀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자기 백성으로 부르신 일에 조금도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삶을 살든지 주님께서 ‘괜히 성령을 선물로 주었구나, 괜히 나의 자녀로 불렀구나’라고 말씀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물과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기 때문이니라.](롬11:29).
성령께서 누군가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쓰시겠다고 하면 어부로서의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게 하실 것입니다. 목자로 쓰시기로 했다면 목자의 품성과 자질을 갖추게 하십니다. 교사로 쓰시기로 정하셨다면 그에 맞는 교육과 환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은사는 어느 날부터인가 초자연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부어진 것들을 환경과 삶에서 점진적으로 체험하면서 개발됩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재능을 주셨다고 해도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되고 맙니다. 제대로 발휘되지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 놓이게 되면 그는 성령의 은사를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됨을 기억하십시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자신의 힘과 능력과 지혜를 발휘하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나타나심입니다. 모든 성도들에게는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성령의 나타나심이 있어야 합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 주님은 분명히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빛으로 드러나든 향기로 드러나든 열매로 드러나든 선한 행위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이유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열매와는 약간 다릅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도의 품성, 인격, 하나님의 형상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는 일(사역)과 연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거나 주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절이 되면 선물을 한 꾸러미씩 사서 고향으로 향하는 그런 풍습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크리스마스를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알고 선물을 사서 주고받습니다. 자녀에게 주는 선물, 아내나 친지들에게 선물을 챙기는 것은 누구나 다 해 보았을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기를 좋아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선물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신하는 왕으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선물을 받으면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에게 선물을 받는 것이 가장 즐겁고 기쁜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며, 풍성히 주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이라도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지혜를 구하면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구하면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열망하고 사모하는 자들에게 그것들을 주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더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마7:11). 성령의 은사들 역시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이 주어집니다. 구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주어진 것이 있을 수 있고 부족한 것을 절감하고 구할 때 ‘좋은 선물’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를 구하고, 명철이 부족하면 명철을 찾고 구하십시오. 영적 은사는 주님께서 보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주신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야고보서 1:17과 1:5을 보십시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1:17). 모든 선물은 위에 계신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들(선물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성령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분이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늘로부터 선물을 영적 선물을 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이 주시는 은사들을 필요로 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5).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지혜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선물입니다. 이 땅을 살면서 악을 피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이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소원하십시오. 열망하고 구해야 합니다.
성령 침례와 달리 [은사]는 구하고 찾고 얻어야 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이런 원칙에 따라 솔로몬이 구한 것이 바로 지혜로운 마음, 분별력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이전에 없던 놀라운 영적 은사를 받아서 백성들을 선악 간에 재판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누가 주의 이 큰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그러므로 깨닫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나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니라.](왕상2:3). 우리 역시 ‘깨닫는 마음’을 얻도록 기도함으로써 성경을 읽을 때나 기도할 때나 설교를 들을 때나 어떤 사건 와중에서도 늘 주님의 뜻을 선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 가운데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에서 결코 배울 수 없는 지식과 지혜를 은사로 소유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도 은사입니다. 섬김과 다스림도 은사입니다. 긍휼을 베푸는 것과 주는 것도 은사입니다. 지금까지 받는 데만 익숙하고 베푸는 삶을 살아 보지 않았다면 이제 ‘주는 자’의 삶이 복되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열렬히 주님께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은사를 주실 것입니다.
은사는 열망해야 합니다. 최상의 은사들을 추구하고 사모하십시오. 여러분은 방언이 좋습니까? 필요한 자를 돕고 베푸는 것이 좋습니까? 깨닫는 말 다섯 마디로 형제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이 좋습니까? 알지 못하는 방언 일만 마디로 혼자 몇 시간씩이나 따따부따 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까? 주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느니라](행20:35)고 하셨지만 ‘방언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섬기는 자는 으뜸이 되는 길이지만 방언하는 자가 으뜸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막10:44-45). 성령의 은사를 받아 섬기는 자는 주님의 보상이 있지만 성령의 은사를 받아 방언하는 자에게 보상이 약속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권면하는 일이나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은사입니까? 이런 은사를 통해 형제들이 서로 권면하고 서로 가르칠 때 영적 세움을 입고 강건해 집니다.
때로 성도들은 방언(외국어)을 성령의 은사로 크게 생각해서 이것이 자신이 구원받은 증표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증거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는 듯합니다. 방언은 일시적 표적이요, 은사이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해야 할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가장 좋은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또한 너희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리라.](고전12:31). “가장 좋은 은사들”이라고 복수형입니다. 가장 좋은 은사들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은사들 중에 대언이나 방언이나 병 고침 외에도 [섬기는 것과 가르치는 것과 권면하는 일과 주는 일과 다스리는 것과 긍휼을 베푸는 일]이 있습니다(롬12:7-8). 이런 일들은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돕고 완전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모든 은사들을 다 가질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은사들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은사들을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지혜의 은사도 있기 마련입니다. 지식의 은사가 있으면 가르치는 은사가 동반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은사가 있으면 거의 모든 은사들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하는 띠요, 율법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들은 서로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1:29, 히브리서 2:4절을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의 선물과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기 때문이니라.](롬11:29).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하나님의 선물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불러서 맡기신 사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매우 다양하고 많습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연 환경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우리는 값없이 사용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주셨습니다. 이것은 선물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호흡 역시 선물입니다. 이런 것 외에 성경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류 최대의 선물은 주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과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에 대해서 전혀 후회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떤 영적인 은사(선물)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둘째, 성령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모든 일을 하십니다. 성령의 선물(은사)이라고 할 때 선물은 성령 그 자체, 자신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믿는 순간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우리 속에 거하게 됩니다.
셋째, 영원한 생명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유한합니다. 영적 생명은 영원합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니라.](롬6:23). 영생은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이 생명은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넷째,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 분명합니다.
다섯째,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호흡을 불어 넣으신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영적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결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영적인 양식들을 취합니다.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성경이야 말로 우리가 언제나 곁에 두고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사용해야 할 것들입니다.
위에서 말한 이 다섯 가지 하나님의 선물은 말 그대로 선물입니다. 누구도 노력으로 구할 수 없고,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애쓰고 힘쓴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믿음으로 취하면 됩니다. 성령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우리 안에 일하시며 다양한 은사를 주십니다.
히브리서 2:4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뜻에 따라 표적과 이적과 다양한 기적과 성령님의 선물들로 그들에 대하여 증거 하셨으니](히2:4). 주님은 표적, 이적, 기적은 물론이요 ‘성령님의 선물들’로 자신을 증거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선물들(은사들)이 각인에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증거 방법입니다. 성령님의 선물들이 우리 안에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증거 됩니다. 우리는 받은 은사들을 통해 주님을 증거 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드러나 증거를 하십니까? 바로 성령님의 선물들로 하십니다. 우리 안에 주신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열매를 맺고, 영적인 일을 수행할 때 하나님이 증거 됩니다.
은혜의 선물이 없이는 누구도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사역자가 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르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라 그분의 권능이 효력 있게 활동함을 힘입어 내가 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노라.](엡3:7). 복음의 사역자가 되는 방법은 신학교 졸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즉 성령의 은사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 바로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돕는 자(주는 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되고, 가르치는 자가 되고, 다스리는 자가 되고, 권면하는 자”가 되면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은사란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바른 성경적 조명을 받으시고, 성령의 은사들을 계속해서 더욱 뜨겁게 불일듯 일으켜서 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 바랍니다.
☞ 헌신과 결단의 시간: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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