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눅11:13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은사는 [선물]이란 뜻입니다. 세상에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공짜라면 그저 좋아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잠언에 이르기를, [선물은 그것을 가진 자의 눈에 보석 같은즉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잠17:8)고 했고, [많은 사람이 통치자의 은총을 간청할 것이요, 선물을 주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잠19:6)고 합니다. 선물을 받기를 원하는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선물이 뇌물만 되지 않으면 그는 형통할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란 결국 성령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사람의 선물은 그를 위하여 길을 내어 주며 또 큰 자들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잠18:16)고 합니다. ‘사람의 선물’이 이러하다면 하나님의 선물은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이 바로 [영적 은사]입니다. 성령의 은사라고 할 때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 이전에 성령 그 자체가 ‘은사’란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성령의 은사와 은사들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흔히 성령의 은사(선물)라고 하면 초자연적이거나 초인적인 것, 초능력, 기적이나 이적 등을 행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병원에서 고칠 수 없는 병을 고친다거나 방언을 말하거나 예언을 하는 등의 일이 그런 것이 성령의 은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는 그런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우리가 받은 거의 모든 것이 다 선물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또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시며 자기의 모든 수고로 인한 좋은 것을 누려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알았도다.](전3:13)고 합니다. 먹고 마시고 일해서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은사)란 것입니다. 일해서 돈 버는 기쁨, 통장의 잔고가 늘어나는 기쁨을 최고의 기쁨으로 아는 사람들을 우리는 좀 한심스럽게 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가 일해서 벌어서 누리는 것이라면 그 기쁨 역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또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부와 재물을 주사 그것을 먹고 자기의 소유를 취하며 자기의 수고한 것을 기뻐할 권능을 주셨나니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로다.](전5:19). 여러분이 월급날이나 소득을 많이 올려서 누리는 기쁨은 어쨌든 간에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란 점을 알고 감사하며 기뻐하십시오.
영생도 선물이고(롬6:23), 은혜도 선물이고(엡2:8), 사랑도, 믿음도 선물입니다(고전12:9). 이런 선물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저주받은 생각입니다. 만약 영적 은사들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가난한 자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저주받은 자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물, 성령의 은사들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돈과 함께 네가 망할지어다.](행8:20).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돈이나 권력이나 재능이나 학벌이나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선물을 살 수 있는 길을 완전히 막아 놓으시고 오직 믿음과 은혜로만 얻게 하셨습니다.
☞ 성령의 은사 vs 성령의 은사들
성령의 은사가 단수로 사용될 때는 성령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공부할 때 단수와 복수를 무심코 넘겨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은사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께 주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이며, 성도가 구원받는 순간 즉각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은사(단수)와 성령의 은사들(복수)에 대해 구분해야 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회개하여 죄들의 사면을 얻고 너희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 성령님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은사)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령님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란 사실은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마실 물을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요4:10). 여기서 물/생수는 믿는 자에게 주실 성령님이란 사실은 요한복음 7장에 곧 바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누구의 해석이나 견해를 따를 필요도 없이 성경이 스스로 성경을 해석해 줍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더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마7:11).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듯이 하나님 아버지 역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더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 누가복음 11:13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더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바로 성령입니다. 구약의 어느 누구도 성령을 구한다고 성령을 받았던 예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성령을 구하는 자들에게 부어 주십니다. 유대인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사도행전에서 봅니다. 사도행전 10:45입니다. ‘고넬료’라는 이방인 백부장의 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할례에 속한 자들로서 믿는 자들 곧 베드로와 함께 온 자들이 이방인들 위에도 성령님을 선물로 부어 주시는 것으로 인하여 다 심히 놀라니](행10:45). 유대인들은 이방인들 위에 성령님이 선물로 부어 지는 것을 보고 심히 놀랐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데는 국경도 인종도 언어도 신분도 피부색도 성별도 학력도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든 언제든지 곧 바로 성령님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거역하겠느냐? 하더라.](행11:17). 누가? 하나님께서. 언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무엇을? 성령님을 선물로. 이것이 전부입니다.
오늘날 오순절 신학이나 은사주의 운동으로 대표되는 ‘성령 신학’이란 대단한 어떤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님이 부어진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 안에 성령님을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곧 진리의 영이시라.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나니 이는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아나니 이는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실 것임이라.] (요14:16~17).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을 성령 침례, 성령의 인침, 성령의 기름부음, 성령의 내주하심, 성령의 성전 삼으심, 성령의 인도하심 등 다른 무슨 말로 표현하든지 간에 성도들 안에 성령이 오셔서 영원히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로 우리는 용어의 선정에 정확도를 기하고, 그 의미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일단 성령께서 믿을 때 믿는 자 안에 주어진다는 것이 ‘성령의 은사’요, ‘하나님의 선물’이란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른 위로자’가 누구인가? 성령님입니다.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다 기억나게 하시리라.](요14:26).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가르치시고, 기억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선물(단수)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잠깐 정리하겠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입니다(요14:16). 오순절에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약속대로 위로자로 이 땅에 내려 보내지셨습니다. 사도행전의 초반에 성령은 열두 사도가 손을 얹음으로 성령의 은사가 임하였습니다(행8:14-20). 그 이후로는 사도들이 손을 얹지 않아도 구원받는 순간 성령은 임했습니다(행10:45). 믿을 때에 성령께서 임하셨다!! ☞ 성령 침례 vs 성령 충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성령 충만과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는 것의 차이를 구분해야 합니다. 성령이 자신 안에 부어졌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로 그러할 수도 있고, 불신으로 인해 그러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느껴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모른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령 침례를 받으면 불을 받았기 때문에 가슴이 견딜 수 없이 타오르고 마음이 뜨겁고 방언이 터져 나오고 등의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체험이나 경험, 느낌이 없었던 사람들은 ‘나는 성령의 은사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성령을 달라고 부르짖게 됩니다.
성령 침례는 그리스도의 몸과 연관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각 개개인의 문제입니다. 성령 침례는 신자의 일생에 단 한번 그리스도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영적 유기체가 되는 일입니다. 성령 충만은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일입니다. 성령 침례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이전에는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령 충만은 구약에서도 흔히 보여 지는 일입니다.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및 사사들(재판관들), 엘리야, 엘리사 등의 대언자들은 성령 침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했던 사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반면 오늘날 교회가 겪는 어려움은 성령 침례를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성령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갔고, 그분의 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신자가 되었다고 모두 경험하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는 예외 없이 다 성령 침례를 받았지만 모든 신자가 다 성령 충만하지는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나 성령의 권능은 성령의 침례가 아니라 [성령 충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 ‘성령 받아라.’, ‘성령 세례’(침례)를 외치는 것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는 길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야지 성령 받기 집회를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 침례를 받는 일은 주님을 믿는 것이요, 성령 충만을 받는 일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 침례는 [받으라]는 명령이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성령 충만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는 명령이 있습니다. 성령 침례는 우리의 신분, 위치와 연관이 있다면 성령 충만은 성도로서의 권능 있는 삶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령 침례는 말씀드린 대로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일어나는 일이지만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전 생애동안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령 침례를 받는 데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 외에 어떤 전제 조건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이면 전부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주님께 헌신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결코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순절이 되기 전에도 성령으로 충만했던 사람들의 기사를 많이 봅니다. 침례인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엘리사벳도 그러했습니다. 마리아 역시 그러했고, 침례인 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성령 침례만 받고 성령 충만이 없는 것은 권능 있고, 열매있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성령 충만은 경험하지만 성령 침례는 받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는 여전히 잃어버린 자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발람이 성령으로 충만했고, 사울도 성령 충만했으며, 삼손도 성령 충만했던 사람이란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단수)는 하나님이 성령을 주심으로 인해 성령 침례도 있고, 성령 충만도 가능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님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은사)]이다.”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 성령의 은사들
이제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오순절 이후 성령의 은사들은 각 개개인 신자들에게 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들을 능력 있게 수행하기 위함이었으며, 영적 분별력도 주어졌습니다(고전12:4-11). 때로 타고난 재능과 성령의 은사를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능이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자연적이고 천성적인 것입니다. 이는 믿음과 상관없이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모를 잘 만나서 머리가 좋다, 그림을 잘 그린다, 운동을 잘한다, 노래를 잘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모든 재능은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재능이 아무리 타고나다 할지라도 그 재능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재능과 달리 성령의 은사들은 믿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어떤 일을 수행하도록 주시는 것입니다. 다양한 은사들이 나오는데 이는 전적으로 성령께서 자신의 뜻대로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같은 한 /성/령께서 행하사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11). 말씀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누가? 성령께서. 누구의 뜻대로입니까? ‘자신의 뜻대로’입니다. 다른 누구의 뜻이 아닙니다. 성령은 뜻과 의지를 가지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비인격적인 물질이나 힘이나 에너지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은 무엇이든지 자신의 뜻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자신의 뜻대로 선물들을 나누어 주십니다. 여러분이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자녀들에게 선물을 준비할 것입니다. 선물을 준비하는 이는 여러분이고, 여러분의 의지(뜻)에 따라 선물을 골라서 자녀에게 줍니다. 어떤 때는 받고 싶은 선물이 있느냐고 미리 물어 볼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아이의 취미나 성향을 봐 두었다가 적절한 선물을 줄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란 말씀은 인격적으로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란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말로 각 사람이라고 번역된 ‘각’(every)은 모든 사람 개개인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선물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고, 성령께서 전혀 선물을 주시지 않은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승하는 자에게는 보상이 주어지지만 이 땅에서 모든 성도들은 그가 누구든지 간에 성령님께서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영적 선물을 부여해 주십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지식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들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대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종류의 타언어들을, 어떤 사람에게는 타언어들 통역함을 주시거니와] (고전12:7~10). 이런 것들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는 직분들을 통한 성령의 은사가 나옵니다. 목사, 교사 등도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섬기는 일도 성령의 은사입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도들을 서로 섬기라고 성령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각각 은사(恩賜)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그 은사를 써서 섬기라.] (벧전4:10). 은사를 주신 목적은 섬기는데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하십시오. 섬김이야말로 은사의 목적입니다. 성령의 열매와 은사의 차이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습니다. 민수기 18:7입니다. [그러므로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것에 대하여 제사장 직분을 지키라. 내가 너희의 제사장 직분을 너희에게 섬김의 선물로 주었은즉 가까이 오는 낯선 자는 죽일지니라.](민18:7). 제사장 직분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섬김의 선물”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제사장은 섬김의 선물을 받아 섬기는 사람입니다. 은사는 섬김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은사는 섬기라고 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은사란 말은 주님이 주신 사역을 감당함으로써 교회를 세우고, 형제들을 세우는 일을 하라고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구약과 달리 신약의 모든 성도들은 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섬김의 선물’을 받아서 서로 섬겨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끼리는 그리 하지 못할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가장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지니라. 이는 사람의 아들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고 왔음이니라.](막10:43-45)고 하셨습니다. 섬김의 직분을 맡은 자가 바로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제자도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자랑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구원의 확인이 아닙니다. 은사는 영적 성숙이나 열매도 아닙니다. 어떤 성도가 놀라운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그만큼 영적으로도 성숙한 성도라는 말은 사람들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은사가 많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육신적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고전3). 이는 부모에게 장난감을 선물로 많이 받았다고 해서 그 아이가 더 성숙하고 철든 아이가 아니며, 좋은 학용품을 많이 선물로 받았다고 해서 공부를 잘 하는 것과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닌 것과 동일합니다. 영적 은사들은 열매가 아니라 일(사역)을 위한 도구입니다. 각양 은사를 소유하고 있었던 고린도교회 내에는(고전1:7a), 육신적이고 심각한 문제점들로 가득한 교회였습니다(고전1:11;3:1-4). 한 가지 영적 은사만을 가지고도 영적이 될 수 있지만, 다양한 은사를 지니고 육신적이 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성도도 모든 은사를 다 지닌 것은 아닙니다(롬12:5,6, 고전12:29,30). 성도들은 각기 성령의 뜻대로 고유한 은사들을 지니고 있으며 각 성도들이 자신이 받은 은사들을 가지고 동역해야 합니다. 서로 돕고 섬기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뛰어나기를 구해야 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들이 자신이 받은 은사를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고, 형제들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가 받은 은사는 주신 분의 뜻과 다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영적인 은사들에 열심이 있은즉 교회를 세우는 일에 뛰어나기를 구하라.](고전14:12).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교회를 세우는 일”을 구하라고 합니다. 모든 은사는 다 필요합니다. 이유는 우리가 서로 지체로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손과 발이 하는 일이 다릅니다. 눈과 귀가 하는 일이 다르듯이 성도들이 각자 받은 은사들은 고유의 역할과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A. T 피어슨 목사님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통찰력 있는 말을 했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은 은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서로 세움을 입어야 한다. 둘째, 아무도 모든 은사를 다 지닌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겸손해야 한다. 셋째, 모든 은사들은 한 몸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넷째, 모든 은사는 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만족해야 한다. 다섯째, 모든 은사들은 서로 돕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서로에게 신실해야 한다. 여섯째, 모든 은사는 온 몸을 건강하게, 힘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어떤 은사도 함부로 허비되어서는 안된다. 일곱째, 모든 은사는 주님의 충만한 힘의 능력 가운데 의지한다- 그러므로 모두는 주님과 지속적으로 연합되어야 한다. 이 짧은 글은 성령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합해야 하며 돕고 세우는 일에 얼마나 강력하게 일치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혼자 하실 수 있고, 교회 내에 영웅을 만들든지 슈퍼 스타를 만들어서 일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성도 모두에게 골고루 은사를 주셔서 함께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한 명에게 100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100명에게 한 가지씩 일을 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한 마음, 한 영, 한 믿음과 같이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별없는 통합이 아니라 성령과 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교회란 바로 성령의 은사들이 조화롭게 나타나는 곳이요,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때로 성도들 가운데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초자연적인 능력이 생겨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거나 영적 생활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매우 영적이 된 것처럼 만족하는 모습도 봅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도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한 고로 오해한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제대로 사용될 때만 덕을 세웁니다. 성령의 은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은사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품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요,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고 성장되어 가는 과정이며,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일입니다.
☞ 은사들의 목적
영적 은사의 목적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영적 은사들의 목적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계4:11). 욥기에 이르기를, [/그대는/ 기억하여 그분께서 하신 일 곧 사람들이 주목하는 일을 높일지어다.] (욥36:24)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일을 높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돈과 명예만 밝히는 것 같아도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믿음, 소망, 사랑, 희생, 섬김, 봉사 등과 같은 가치들입니다. 이들은 이런 것들에 감동하고 칭찬하고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매 순간 성령이 주신 은사들을 활용해서 믿음과 사랑과 희생과 섬김 등을 실천하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여서 다 함께 이와 같이 노래하고 결의해야 합니다. [오 나와 함께 [주]를 찬미하고 함께 그분의 이름을 높이세.] (시34:3). 은사들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들이 그렇게 살지 않고, 모든 교회가 배교로 치닫고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스스로 결단하십시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감사로 그분을 크게 높이리니] (시69:30). 나는 찬양과 감사로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은사를 주시는 또 하나의 목적은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입니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여러 차례 말씀드린 것입니다. “섬기고 세워주라.” 이 한 가지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가 있고, 대언자가 있고, 복음 전도자, 목사와 교사가 주어진 일은 모두 이 한 가지를 위해서입니다.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엡4:11~12). 성도들을 섬기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며, 이 일을 위해서 주님은 은사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연약한 형제들의 믿음을 세워주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병으로 고통당하는 형제들을 위해서 병 고침의 은사도 필요합니다. 해외 선교를 위해서 때로 방언(외국어)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어린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는 섬김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왜 필요합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그 사랑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대언(예언)이 왜 필요합니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가르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앞으로 있을 일들을 알고 현재의 삶을 경건하고 거룩하게 하며 매사에 절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은사의 목적을 분명히 말합니다. [성도들을 완전하게 섬기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엡4:12). 이런 목적으로 은사들을 열망하고 구한다면 참으로 바르게 구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는 정반대로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방언 은사, 예언 은사, 통역 은사, 병 고침(신유)의 은사들을 추구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 받고, 인정받고, 경건한 체 하려 하다 보니 필요합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봅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언을 왜 합니까? 누구를 완전하게 하지도 못하고 섬기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도 아닌 그런 방언을 시끄럽게 하는 것은 성경적인 은사도 아니거니와 행여나 성령의 은사라고 한다면 그는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교회에 다민족, 다인종, 다언어가 완전히 섞여서 예배를 본다면 방언이 필요하고, 통역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모든 회중이 같은 말, 같은 종족이라면 방언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이런 은사들을 일컬어 거짓 은사라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거짓 선물을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들과 바람 같으니라.](잠25:14). 은사(선물)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성령의 열매로서의 인격적인 변화와 부흥을 경험하기를 열망하십시오.
저는 설교자로서 늘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을 주시도록 은사를 구합니다. 믿음의 은사를 구하기도 하지만 가장 열렬히 구하는 은사는 사랑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친히 그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는/ 가장 좋은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또한 너희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리라.](고전12:31). 성경은 가장 좋은 은사들을 설명하면서 대언하는 은사, 모든 신비와 지식을 아는 것,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최상의 은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대언하는 은사가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알며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13:2). 그렇다면 우리가 간절히 사모해야 할 최상의 은사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며 동시에 성령의 은사입니다. 믿음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것들을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신 영적 은사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주신 은사들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주님을 욕되게 할 수 있고, 성령을 슬프시게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게으른 종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준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영적 은사를 욕되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사용하지 않고 묻어둠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지도 못한 채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습니다(딤전4:14, 딤후1:6). 때로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표적으로 주신 은사들을 흉내 냄으로써 자신의 영성과 능력을 자랑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잠25:14). 은사들을 사용하되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 역시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은사들이 얼마나 헛되이 사용되고 있습니까? 우리는 저 하늘에 가서야 육신적으로 악하게 사용된 은사들을 발견하고, 그렇게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들이 사역에서 부지기수로 행해졌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간절히 사용하기를 바라시고, 사역에 부르셨지만 응답하지 않음으로써 이 생(生)을 헛되이 허비해 버린 사람들도 같이 발견될 것입니다. 영적 은사에 관련된 가장 악한 한 가지는 그 은사들을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Linton Smith. Jr).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서 함께 성경을 더 찾아보게 될 것입니다. 때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놀랍도록 축복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셨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주신 성령의 은사를 축복하신 결과입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주신 은사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죄와 허물로 얼룩진 그 개인을 축복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자신의 육신으로 뿌린 씨를 그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인가 의심이 들 정도인 사람이 얼마나 능력 있고 열심히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지 놀라울 때가 있습니다. 저의 짧은 생각에는 저런 사람이 주의 일을 하는 것은 주님과 교회를 욕되게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기도 응답도 잘 받고, 일도 잘하는 경우는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합니까? 은사는 열매와 별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 하늘에 올라갔을 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많은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고전3:12-15). 이 땅에서 유명세를 날렸던 사역자들이 거의 받는 것이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계의 지도자들이라 해도 그들의 죄와 육신적인 일들로 인해 그리스도로부터 어떤 상급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어떻습니까? 아무 일도 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칭찬을 받고 풍성한 상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은사들을 모두 주님이 목적하신대로 쓸 수 있는 영적 분별력과 성숙한 성장이 있기를 더욱 소원합니다.
영적 은사들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만큼 더 성숙해야하며, 주님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12:6-8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 내에서 각자의 은사들을 잘 활용하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그로 하여금”과 같은 말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고, 자신이 아닌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 헌신과 결단의 시간: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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