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시33:6
성경의 첫 장 첫 줄은 누가 창조주이신가? 를 계시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창조주의 존재와 창조주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신앙의 가장 근본이요, 기초는 창조 신앙입니다. 창조주의 존재와 창조 사역을 믿는 것, 창조주가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고 믿는 것에서부터 모든 믿음이 시작됩니다. 우주의 원 창조는 과거 어느 시점인지 성경에서 정확히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창1:1). 시간의 기준 시점이 없기 때문에 성경은 “처음에-In the beginning”라고 말할 뿐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창1:1). 성경은 어떤 내용을 입증하거나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거나 이해를 구하는 식으로 설명하는 식이 아니라 믿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늘 유념해야 합니다.
흔히 성경을 읽는 성도들의 성경 접근 방법은 성경을 한 권의 제품 설명서나 사건 개요를 담은 문서처럼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읽다보면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 믿을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좀 더 설득력 있고, 논리적 근거가 있었으면 싶은데 그런 것이 없이 내용이 죽죽 넘어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지적 이해나 동의를 구하는 책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역사적 사실과 예언적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앞으로 행하실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성경적 기술 방법을 알고 거기에 맞게 접근해야 합니다.
만약 창세기 1: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창1:1)을 읽으면서 ‘처음에’가 언제이지? 라는 식으로 계속 고민하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무엇 때문에 창조하셨지? 무엇으로 창조하셨지? 누구와 창조하셨지? 물론 이런 의문은 계속 있을 수 있지만 창세기 1:1에서 다 해결 받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 전체를 통독해 나가면서 성령의 조명과 인도함을 받으면 다 해결됩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 창조주 하나님으로서의 성령에 대해서 증거하고자 합니다. 성령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누구신가? 란 질문에 가장 근본적인 답변입니다. 성령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나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란 점입니다. 욥은 구약의 어느 누구보다 창조주이신 성령에 대해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신의 영으로 하늘들을 단장(丹粧)하시고 자신의 손으로 그 구부러진 뱀을 지으셨나니](욥26:13)라고 했는데 이는 천문학적인 지식이나 천체 물리학, 우주 항공학이나 생물학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안 영적 지식입니다. 욥은 성령께서 하늘을 단장했다는 사실을 알고 고백했으며, 선포했습니다. 욥은 창조 신앙이 탁월했습니다. 그는 특히 성령의 창조 사역에 대해서 거듭 거듭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나를 만드시고 전능자의 호흡이 내게 생명을 주었느니라.](욥33:4). 그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으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성령께서 자신의 창조주이며, 생명을 주신 분이란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런 창조 신앙이야 말로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남이 나를 인정해 주고, 어떤 업적으로 평가를 받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드신 분, 내게 생명을 주신 분’을 알고 고백하는데서 비롯됩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이웃 사랑은 창조 신앙이 그 바탕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욥기에 나오는 엘리후의 이웃 사랑, 인간관 역시 창조 신앙이 그 밑바탕에 있었습니다. [하물며 통치자들을 외모로 받지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중히 여기지 아니하시는 그분께 /그리 말할 수/ 있겠느냐? 이는 그분께서 그들을 다 자신의 손으로 지으셨기 때문이라.](욥34:19). 혹시 이런 영적 사실을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의 삶은 보잘 것 없는 삶입니다. 나를 지으시고, 내게 생명을 주신 분을 육신의 부모나 조상으로만 한정한다면 그는 참으로 무지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육체의 아버지가 있듯이 영들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욥에게도 육신의 부모가 있었고, 엘리후에게도 육신의 부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육신의 부모나 조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진정한 아버지,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또한 우리 육체의 아버지들이 우리를 바로잡아도 우리가 그들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고 /이로써/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히12:9)고 합니다. 육체의 아버지들 vs 영들의 아버지들. 창조 신앙은 신앙의 시작이며, 근본입니다.
성령은 단지 기운이나 에너지, 힘, 영향력이 아닙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셨고, 나를 창조하셨습니다. [나를 모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모태 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욥31:15). 이 점을 잠시도 잊지 마십시오. 때로 허무주의, 염세주의에 빠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뿌리가 뽑힌 나무와 같고, 줄기에서 잘린 가지와 같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우주의 미아 같고, 마치 버려진 존재같고, 아무 소망도 없는 것입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 내게 생명을 주신 성령님과의 친교가 없는 종교는 죽은 종교이며, 그런 교리는 죽은 교리입니다. 자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이사야 64:8입니다. [오 [주]여, 그러나 이제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우리의 토기장이시오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사64:8). 주님이 나를 지으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만드셨고, 나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지으셨기에 주님이 나를 부르시고, 나는 주님께 응답합니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주께 응답하리니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원하시리이다.](욥14:15). 창조주 하나님, 나의 창조자를 찬양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마땅히 그분을 공경하고 섬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주를 찬양하리니 이는 /주께서/ 두렵고도 놀랍게 나를 만드셨음이니이다. 주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놀라우니 내 혼이 그것을 매우 잘 아나이다.] (시139:14). 다윗은 자신의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알고 찬양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경배입니다. 이것이 진리로 드리는 경배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찬양과 경배가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으로 알아낸 것이 아니며, 이론이나 반복 실험이나 관찰이나 법칙 등으로 증명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이며, 계시의 결과로 주어진 진리의 지식입니다. 계시는 믿음이 필요할 뿐입니다. 계시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입니다. 성경은 계시의 책입니다. 특히 창조에 관련된 부분은 전적인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히11:3). 이해의 수단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수련과 수행이 아닙니다. 고행이나 종교적 행위들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을 통해 깨닫습니다. 믿음을 통해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의 주체가 하나님, 말씀, 성령 이렇게 셋으로 나옵니다. 이는 창조 사역에서의 삼위일체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또 집마다 지은 자가 있으되 모든 것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히3:4).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말을 봅니다. 하늘과 땅의 창조자요,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곧 내 손이 하늘들을 펴고 하늘들의 모든 무리에게 명령하였노라.](사45:12). 이는 현대 과학이 아무리 부정해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우주 개발을 한다고 아무리 돈을 쏟아 붓고 먼 행성에 있는 먼지와 돌을 사진으로 찍어 오고 물질을 전송해 온다 해도 성경적 진리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가르쳐 주신 사실을 믿습니다.
사람은 보아서 아는 것이 있고, 들어서 아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들어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하나님의 존재와 인격과 사역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주기 때문에(롬10:17) 믿음으로 들을 때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늘들을 창조하신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친히 땅을 조성하고 만들고 견고하게 하였으되 땅을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거하도록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18). 하나님은 친히 하늘을 창조하셨고, 친히 땅을 조성하셨다고 스스로 선포하시며, 증거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계시입니다. 우리는 실험과 관찰과 연구의 결과로 귀납적으로 주님이 창조주란 사실을 도출해 내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말씀해 주신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약 성경을 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란 사실을 읽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1장은 창세기 1장을 주해(註解)해 주는 그런 내용입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느니라.] (요1:1~3).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계시해 주는 것입니다. 요한은 논리적 설명과 증거 대신에 놀라운 진리를 다만 선포해 주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신학교나 지성을 자랑하는 성도들은 선포된 계시를 믿는 대신 이해하려고 합니다. 믿기 전에는 결코 이해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거부하고 이해하고, 납득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의 교회는 성령의 능력이나 조명이나 계시대신 설명과 변증과 이론과 많은 견해들만이 들끓고 있을 뿐 진리를 확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fact)은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든 예언적 사실이든 사실과 사건은 일단 믿음으로 수용되어야만 합니다.
성경은 계속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니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분 안에 있으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니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고전8:6). 우리는 여기서 창조 사역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은 창조에서 함께 사역하셨습니다. 창조라는 모든 말 속에는 하나님의 권능과 신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놀랍고, 그 지혜가 놀랍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세상은 유형의 물질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무형의 말씀, 하나님의 창조적 권능, 입술의 기운]으로 지어진 것이란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유물론(唯物論)을 주창한 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를 달렸음을 봅니다. 만물의 근원이 화, 수, 목, 금, 토 오행(五行)이라고 동양의 사상 역시 어리석기 그지없습니다. 성경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히11:3b)고 말합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역시 물질이 아닙니다. 생명과 물질의 기원은 원자나 그 이하의 어떤 작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성령이란 것입니다.
욥기26:3을 펴 보십시오. [자신의 영으로 하늘들을 단장(丹粧)하시고 자신의 손으로 그 구부러진 뱀을 지으셨나니](욥26:13)라고 합니다. 여기서 성령의 창조 사역이 나옵니다. 그리고 동시에 마귀의 기원이 나옵니다. ‘그 구부러진 뱀’의 정체는 마귀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 하나님의 손이 마귀도 지었습니다. 성경은 옛뱀, 사탄, 용이라 불리는 마귀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네가 창조된 날부터 네 길들에서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 안에서 불법이 발견되었도다.](겔28:15). 마귀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사람이 그러하듯이 마귀 역시 동일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피조물들을 창조주 대신 섬기고, 경배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경배는 창조주께서 자신이 지은 피조물들에게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란 점에서는 다른 모든 피조물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창조주인 것처럼,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경배를 받고자 합니다. 사람들의 죄는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더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음이라.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롬1:25). 우리는 이런 점에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늘들을 단장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늘들이 아름다운 것은 성령께서 친히 단장하신 결과입니다. 우리는 성령은 진정한 디자이너이시며, 예술적 행위를 하시는 분이심을 봅니다. 주의 영이 임할 때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성령의 속성 때문입니다.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영감”입니다. 그림 그리는 친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창의적 아이디어, 즉 떠오르는 영감”이라고 말합니다. 붓을 놀리는 손재주는 어느 정도 배우면 그 기술이 거의 비슷하다고 합니다. 글 쓰는 사람, 노래 짓는 사람, 조각하는 사람, 연극이나 영화, 건축하는 사람 등 누구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기술이 필요하지만 기술을 배운 다음에 그들은 영감(Inspiration)을 필요로 합니다. 영감이 주어지면 일을 시작할 수 있지만 영감이 없으면 아예 일을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을 관찰하고, 무엇을 보면서 영감을 구합니다. [그러나 사람 안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영감(靈感)이 사람들에게 명철(明哲)을 주시나니](욥32:8). 하나님의 영이 단장한 하늘들을 보면서 경탄하고, 이치를 깨우치고, 조명을 얻습니다. 하늘에서 영감을 얻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모조품을 만드는 것이 전부이며,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자랑합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영감을 구하십시오. 특히 설교자들과 기도하는 성도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빛같이 쏟아지고, 비처럼 쏟아지는 영감을 구하십시오. 우리는 영감의 보고인 성경을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딤후3:16). 성령께서 단장한 하늘을 보십시오.
성령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2을 보십시오.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성령께서는 물들의 표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하는데 이는 생명을 부여 하시는 장면입니다. 마치 어미 닭이 계란을 품으면서 따스한 온기를 전하는 것과 같은 역할입니다. 물들이 풍성한 생명을 낼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그 위에 운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생명의 부여자로서의 역할을 하신 성령의 묘사입니다. 성령이 운행하시면, 성령의 바람이 불고, 그 호흡이 들어가면 생명은 살아나고 소생하는 것입니다.
시편 33:6절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으로 하늘들이 만들어지고 하늘들의 모든 무리가 그분의 입의 호흡으로 만들어졌도다.] (시33:6). 성경은 다시 한 번 성령의 창조 사역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하늘들의 모든 무리”란 말은 태양과 달과 별들은 물론이요 정사들, 권능들,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존재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런 모든 것들의 창조주이십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연과 만물, 사람들 속에 있는 주님의 입의 호흡에서 신성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 경의를 표하고, 경배하며, 섬겼습니다. 어떤 악인들 속에도 신적인 속성이 있음을 발견하곤 했던 것이 종교인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악한 사람일지라도 그 속에는 약간이나마 불성(佛性)이 있다, 신성이 있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흑인 노예 해방을 외쳤던 사람들은 “그들 안에도 신성의 불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뭇 잎 하나, 작은 생명체 하나를 보고 또 보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발견한 그 신성을 신성시하거나 경배해서는 안 됩니다. 만물을 단장하신 성령님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호흡이 어떻게 생명을 주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숨을 불어 넣으셔서 살아 있는 혼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의 호흡으로 인해 생명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창조주란 사실을 입증해 주는 또 한 구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주의 영을 보내시매 그것들이 창조되었사온즉 주께서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104:30). 성령은 창조하고 새롭게 하는 역할을 하십니다. 성령님은 처음 창조 때에 그러하셨듯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실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사람은 이전 사람, 옛 사람에서 새 사람이 됩니다. 죽은 사람은 살아납니다. 새로운 몸을 입게 됩니다. 성령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누구라도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여러분의 느낌이 어떠하든 간에 주님을 믿었으면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겉모습을 보아서는 전혀 모르겠지만 영이 새로워지고, 속사람이 새로워졌습니다. 이것이 모두 성령의 역사입니다. 디도서에 이르기를,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딛3:5)라고 합니다. 성령을 통해 사람이 새로워지고, 생각이 새로워지고(롬12:2, 엡4:23), 영이 새로워집니다.
창조 때 행하신 성령의 특별한 역사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에 생명을 부여하시는 일은 성령께서 하셨습니다.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성령의 가장 기본적인 사역이며, 성경의 여러 곳에 나옵니다. 특히 창조 때에 성령은 생명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미 살펴 본 구절들에 언급했습니다만 요한복음 6:63, 고린도후서3:6; 시편104:30, 욥기 33:4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호흡이요, 생명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령은 질서와 자유의 부여자이십니다. 창조는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 졌습니다. 물속에서 하늘에서, 땅에서(사40:12) 그리고 특히 하늘들을 지을 때 순서대로 지었습니다(욥26:7-13). 무질서, 혼란은 마귀의 작품이지 하나님의 작품이 아닙니다. 마귀는 혼란의 창시자입니다. 주님은 질서와 자유를 통해 화평을 주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행할지니라.](고전14:40).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제 {주}는 그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3:17)고 합니다. 부자유, 자연스럽지 못한 것 등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가장 큰 자유를 누립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과도해 보여도 지나치지 않으며, 부족해 보여도 만족을 알며, 혼란이 없습니다. 셀 수 없는 별들이 많아도 모두 질서 정연하게 조화롭게 움직입니다. 자연은 법칙을 거스리지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성품을 잘 보여 주는 예들입니다. 우리 속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처럼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이시기 때문이라.](고전14:33).
셋째, 창조주 성령께서 하신 사역은 단장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하늘을 단장하시고 땅의 지면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진정한 건축자요, 디자이너이시며, 예술가이십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충만할 때 그는 예술적 재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시편 33:6, 104:30과 욥기 26:13을 참조하십시오. [자신의 영으로 하늘들을 단장(丹粧)하시고](욥26:3a), [주께서 주의 영을 보내시매 그것들이 창조되었사온즉 주께서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104:30).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은 성령님의 창조와 더불어 단장하는 역할입니다. 주인이 집을 지어 놓은 후에 집을 가꾸는 것 역시 주인의 몫입니다. 골격을 지은 후에는 페인트를 바르고,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추고, 화단을 꾸미는 것처럼 성령께서는 모든 만물들을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넷째, 성령께서는 지으신 피조물들을 보존하십니다. 우주의 보존은 흔히 그리스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에 ‘자신의 권능의 말씀’을 붙들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 역시 보존의 사역을 하십니다. 시편104:29-30에는 성령의 창조사역 뿐만 아니라 성령의 새롭게 하는 사역을 말씀해 줍니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금방 낡아져서 없어져 버립니다.
그렇다면 창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이는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이요,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 하더라.](계4:11). 여기서 우리는 생의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됩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이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들이지 결코 우연히 지음 받았거나 실수로 이 땅을 사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창조의 목적은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곧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자라. 이는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를 창조하고 그를 지었으며 참으로 내가 그를 만들었음이라.](사43:7).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이므로 다른 이야기는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했다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삶의 좌표와 목표를 제시해 준 것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창조하셨는가? 주님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음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골1:16). 모든 것이 주님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합니까? ‘주님을 위하여!’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삶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신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하시며, 주님의 뜻대로 살도록 힘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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