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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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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케 하는 자들(08)

말씀: 마5:9 

산상 수훈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신 일곱 번째는 [화평케 하는 자들](peacemakers)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라 화평의 창시자이십니다. [이는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처럼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이시기 때문이라.](고전14:33). 우리 안에 혼란, 무질서, 시기, 다툼, 분냄 등의 성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화평의 상대어는 전쟁입니다. 나라나 민족 간의 전쟁만 전쟁이 아닙니다. 이웃과의 다툼이나 불화, 형제간의 다툼이나 불화 역시 전쟁입니다. 화평하지 못하고 이런 전쟁과 싸움은 어디서 나는 것입니까? [너희 가운데 전쟁과 싸움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속에서 싸우는 정욕(情欲)들로부터 나지 아니하느냐?](약4:1). 우리 지체 속에서 싸우는 정욕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결코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될 수 없고, 복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속에 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들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해 이르기를,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순례자인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벧전2:11)고 권면합니다.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대적합니다(갈5:17). 이런 까닭에 우리는 마음의 평안이 없고, 이웃과도 화평이 없습니다.

마음이 평안한 것이 최고의 복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분들이 많지만 참된 평안을 얻었다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참 평안을 얻는 방법을 아는 이도 적습니다. 내 안에 평강이 있으면 주위도 평안합니다. 가정을 보십시오. 아버지의 마음에 화평이 없으면 그 영향은 자식들, 아내에게로 옮아갑니다. 집 밖으로 나오면 친구, 친지, 이웃과 문제(trouble)를 일으킵니다. *troublemaker. 사람들은 기분이 좋다, 분위기 좋다는 정도를 평안이라고 생각하지만 평안은 그런 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근심과 염려로 불안해 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나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평안을 봅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나의 평안, 하나님의 화평 vs 세상이 주는 것-거짓 평안. 일시적인 평안.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세상의 지혜가 있듯이 화평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것과 세상이 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는 평안은 일이나 사건이나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와서 내 안에서 밖으로 나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주변 환경이나 일이나 사건을 통해서 밖에서 내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는 평안은 환경을 이기고 요동하지 않고 지속적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환경에 지배를 받고 일시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종교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준다고 자랑합니다. 불안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므로 교육을 통해서 평안을 얻으려는 이도 있습니다. 불안, 근심, 염려를 단지 심리적 현상으로 파악하는 이들은 평안과 기쁨 역시 단지 심리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들은 mind control을 통해서 스스로 마음속에 평안을 창조하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호흡법, 명상법, 도인법, 기(氣) 체조, 요가 등 다양한 방법론이 소개되고 있습니다만 이런 모든 시도는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훈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사야 45장, 26장을 펴 보십시오. 화평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make peace) 재앙도 창조하나니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 (사45:7). *peacemaker. 주님께서 평안을 만드십니다. 캐톨릭 신자들은 교황을 ‘평화의 사도’라고 외치지만 그는 단 한 사람의 영혼에도 참된 평안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인류의 평화에 공헌하고 이바지 한 사람들을 뽑아 해마다 노벨 평화상을 줍니다. 그러나 이들이 단 한 사람에게도 참된 평안을 끼친 예가 없습니다. 평안을 만드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안을 만드시고, 화평을 정하시고, 모든 일을 우리 안에서 이루십니다. [[주]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화평을 정하시리니 이는 또한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을 우리 안에서 이루셨음이니이다.](사26:12). *우리 안에서 이루셨음이니이다. 주님은 우리 안에 평화를 끼치시고,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빌2:13). 구약 성도들은 ‘화평 헌물’을 드리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실 화평의 실체, 주인공을 간절히 소망하며 기다렸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정하신 화평이란 어떤 교리나 철학이나 종교적 의무나 물질이 아니고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담이 범죄한 순간부터 화평을 잃어 버린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화평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을 화평의 헌물로 드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그분의 죽음, 보혈이 우리의 화평을 위해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찔림은 우리의 범죄들로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불법들로 인함이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사53:5). 화평은 우리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상태에 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 징벌을 받으심’으로써 우리 안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화해 헌물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화해 헌물을 친히 마련해 두시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도다.](롬5:1).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죽음이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을 때 화평케 하는 직분, 능력이 주어집니다. [이는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은즉 화해하게 된 자로서 더욱더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임이라.](롬5:10).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화평이시고, 우리의 화평이란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 두십시오. 미가서 5:2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다 같이 성경을 펴서 미가서 5:4-5을 봅니다. [또 그가 [주]의 능력과 [주] 자기 하나님의 이름의 위엄으로 서서 /그들을/ 먹이리니 그들이 머물 것이라. 이는 이제 그가 크게 되어 땅 끝까지 이를 것임이라. 이 사람은 평강이 되리라.](미5:4~5a). 이 사람=예수 그리스도. 주님께서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는 말씀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다고 하실 때 그 무엇은 실상 주님 자신입니다. 예를 들어 주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면 그것은 주님 자신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의를 주시겠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의이신 주님 그분을 받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평안을 주노라’고 말씀하시면 자기 자신을 내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는 화평의 헌물이 드려진 장소입니다. [또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멸하사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6). *한 몸으로. 주님은 십자가의 피를 통해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화평을 이루사 모든 것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음이니라.](골1:20).

화평케 하는 자들이란 내가 힘으로, 돈으로, 외교적 노력으로 쌍방을 화해케 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 헌물이 되시고, 화평케 하시는 평강의 주님을 제시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세상은 힘(force)으로 화평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사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종식시키는 유일한 지혜입니다. 지금 UN에서는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어 “U.N 평화 유지군”을 창설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분쟁 지역에 나가 전쟁을 합니다. 이유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이란 화평을 지키는 자들(peace-keepers)이 아닙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peace-lovers)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복된 자들은 ‘화평케 하는 자들’-Peacemakers(화평을 만드는 자들)입니다. 화평을 만들기 위해서는 화평을 만드시는 이가 내 안에 거하시며 나를 통해 일하셔야만 합니다. 내 안에서 화평의 열매를 많이 맺어서 그 열매를 다른 이들이 값없이 따 먹어야 합니다.

우리말에는 “화평, 평강, 평안, 평화, 안녕” 등 이 부분의 어휘가 유난히 발달해 있습니다. 그만큼 불안정하고 화평이 없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한국은 약 950회 이상의 전쟁이 있었고 이는 평균 5년에 한 번 이상씩 침략을 당했다고 합니다. 화평을 만드시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불화와 다툼, 진노와 분쟁을 일으킵니다. 마귀 역시 그러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평을 이루시는 분이시며, 자신의 평강을 믿는 이들 속에 두심으로써 불안, 근심, 염려, 두려움을 이기는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화평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속에 화평이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화평은 고착된 이론이나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성령이 친히 맺으시는 열매입니다. 근심과 걱정과 불안과 염려와 혼동을 일거에 잠잠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마음이 평안할 때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마음이 평안할 때 죄와 악이 근접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평안할 때 의를 행할 힘이 생깁니다. 화평은 비인격적, 무인격적인 상태나 이론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는 인격적인 존재(personal being)입니다. [이는 그분께서 우리의 화평이시기 때문이라.](엡2:14a).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화평.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화평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다스릴 수도 있고 가르칠 수도 있고, 인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골로새서 3:15입니다. [하나님의 화평이 너희 마음 속에서 /너희를/ 다스리게 하라. 너희도 이 화평에 이르도록 한 몸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니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rule in your heart. 자, 보십시오. 우리를 다스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성령이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다스리는 것이 무엇(누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화평(=예수 그리스도)]이 우리 자신을 다스리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한 구절 더 봅니다.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keep your hearts and minds. 하나님의 화평(평강)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 지키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주인이 하나님의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될 때 그분께서 우리 마음을 평강으로 다스리시고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화평이 될 때 비로소 그는 화평케 하는 자들(peacemakers)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을 영접하긴 했지만 내 마음 속에서 온전히 주인 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할 때 우리는 이름 뿐인 그리스도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다스리고, 나를 통해 일하시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인생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주님께서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주님은 누구에게 평강을 주시는가?

① 주를 굳게 의지하는 자입니다. [주께서는 마음으로 주를 굳게 의지하는 자를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니이다.](사26:3). 평강은 곧 신뢰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신뢰할 때 마음은 완전한 평강으로 지켜질 것입니다. 요동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때 마음속에 토네이도가 일고 노한 파도가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어김없이 내 마음이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을 보거나 환경을 볼 때입니다. 주의 기록된 말씀 대신 자기 혼자만의 생각 속에 갇히고 상념에 잠기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내 마음 속으로 찾아 들면 어느새 마음 속의 노도같은 광풍과 파도는 잠잠해 지고 금방 고요해 지는 그런 평강을 누립니다. 청심환을 먹거나 신경 안정제가 주는 평강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는 평강이 참된 평강입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평안이 있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을 실족하게 할 것이 없으리로다.](시119:165).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때 마음 속에는 ‘큰 평안’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신문 기자들이 써 놓은 기사들, 뉴스 앵커들이 말하는 세상 소식, 전문가들의 견해, 이웃들의 말이 더 크게 들리기 시작할 때 마음 속 평강은 풀의 꽃처럼 말라 버리고, 안개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이는 누구나 흔히 경험하는 일들입니다. 여러분 안에 큰 평안을 얻고 싶다면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이 말하기를, [내 아들아, 내 법을 잊지 말고 네 마음으로 하여금 내 명령들을 지키게 할지어다. 이는 그것들이 네게 긴 날들과 오래 사는 것과 화평을 더할 것임이라.] (잠3:1~2). 말씀은 화평을 더합니다.

③ 주께 가르침을 받을 때 화평이 있습니다. [네 자녀들이 다 [주]께 가르침을 받으리니 네 자녀들에게는 큰 평강이 있을 것이며](사54:13). 이는 소위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직통 계시, 영안이 열림, 영 체험 등과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자녀를 진리로 가르치십니다. 때로는 매를 들고 징계하시며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대장으로서 하나님의 군대요, 그리스도의 군사 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순종과 복종을 배우도록 하십니다. 이런 과정을 온전히 감당할 때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혼이 안식을 찾으리니](마11:29). *내게 배우라. 누구라도 배우지 않고 온전해 질 수 없습니다. 생명은 배움이 아니라 탄생으로 되는 것이지만 제자는 배움과 훈련으로 됩니다.

④ 주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라. [네가 내 명령들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하였더라면 네 화평이 강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사48:18).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선생님이 학생에게, 코치가 선수들에게, 왕이 신하에게, 주인이 종에게 ‘말을 잘 듣는다’고 말하면 그는 잘 순종한다는 뜻이고, ‘말을 안 듣는다.’고 하면 ‘불순종한다’는 뜻입니다. 귀를 기울이라는 것은 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누구를 책망할 때,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면 그는 불순종, 불이행, 반항, 권위를 업신여기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종이 주인에게 평생토록 귀속될 때 재판관에게로 가서 귀를 뚫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출21:6, 신15:17). 종의 귀를 뚫는 것은 주인이 말하는 바를 듣고 순종하겠다는 표시입니다. 입술이나 혀를 뚫지 않고, 코를 뚫지 않고 귀를 뚫는 것은 종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설교로 듣기는 하지만 몸으로, 행위로 순종하지 않을 때 주님은 그에게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의 명령들에 귀를 기울이면 화평이 강 같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⑤ 의를 행할 때 화평이 임합니다. [의의 일은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확실한 안전이니라.](사32:17). 주님은 성도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하셨습니다. 의가 없는 화평은 거짓 평안입니다. 마귀는 세상에 거짓 평안을 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마음이 평안하고 어떤 이는 인정을 받아야 마음이 평안합니다. 대중 가수들은 자신이 부른 노래가 얼마나 팔렸는지, 자신이 노래를 부를 때 몇 명의 사람이 모였는지에 따라 기쁨과 실망이 교차합니다. 그들은 음반 판매 수나 사람들의 인기도에 촉각을 세우며 불안한 나날을 보냅니다. 학문적 업적이나 명성을 얻은 학자들, 교수들은 자기 분야에서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거나 자신의 오류를 비평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고 그런 일에 평안을 잃어버립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자신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 앞에서는 주눅이 들고 마음이 평안하지 못합니다. 권세자들은 자신보다 더 높은 권세자들과 함께 있을 때 불안해합니다. 타락한 인간 본성은 무엇을 소유함으로써 평안을 얻고자 하지만 그 평안은 항상 비교 대상이 있고, 비교 우위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없는 열등감과 수치를 느낄 때가 허다합니다. 심지어 목회자들도 자신의 교회가 크고 성도가 많을 때는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성도가 거의 없고 적은 교회의 목회자들은 마치 무슨 죄를 지은 죄인들처럼 엎드리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의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일, 육신의 일은 잘하면 교만이요 잘못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불리는 절망입니다. 교만과 열등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과 의를 구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평가에 초연하며 평안합니다. [의의 일은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확실한 안전이니라.](사32:17)고 한 말씀 그대로입니다. 긍휼과 진리, 의와 화평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늘 함께 다니며 하나가 떨어져서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義)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85:10). 의와 화평!

⑥ 성령 충만하십시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갈5:22). 화평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맺으시는 열매입니다. 열매는 씨앗이 있고, 자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열매는 생명의 결과이지 일이나 행위의 결과가 아닙니다. 영이요 생명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밭에 뿌려지고 자랄 때 비로소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꾸준히 거해야 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요15:4-5). 주님 안에 꾸준히 거할 때 성령의 열매인 화평이 우리 속에 풍성히 맺히게 됩니다.

화평을 얻은 이는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는데 이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직분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으며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화해하게 하는 사역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사람들의 범법을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느니라.](고후5:18-19). 복음을 든 전도가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신분상, 법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복음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땅을 통치하는 왕권을 소유한다는 의미입니다(신약 개론-요1:12참조). 이 땅을 지배하고 다스린 자들을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렸고, 아담 역시 땅을 다스리라는 명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렸으며,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신약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땅을 다스리는 지배권”을 지닌다는 의미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 아래서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복음으로 하나님과 화해케 하고 하나님과 화평하는 관계를 만들어 주는 이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화평하고 하나님의 화평을 마음 속에 누리며 화해하게 하는 사역,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맡아서 일하는 이들이 누리는 복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 사역을 잘 감당할 때 그는 천년 왕국에서 많은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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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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