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
말씀: 마5:10
요절: 마5:10
산상 수훈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은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10)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어휘들을 대할 때 성경이 정의하는대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의(righteousness)는 성경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의의 길, 의의 병기, 의의 일, 의의 희생물, 의의 열매, 의의 판단, 의의 왕관, 의의 흉갑, 의의 겉옷, 의의 말씀, 의의 사역자 등 온통 의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의의 홀에 앉으신 의의 왕이십니다. 주님은 의의 가지이십니다. 예레미야 33:15, 23:15입니다. [그 날들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한 의의 가지가 자라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의와 의를 집행하리라.](렘33:15). 사람을 나무로 비유할 때 가지는 자식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라고 하며 자식이 많은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한 의의 가지가 자라나게 하리니”라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집안에서 일으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의이신 주님께서 이 땅에 ‘공의와 의’를 집행하십니다.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요, 한 왕이 통치하고 형통하여 땅에서 공의와 정의를 집행할 것이며](렘23:5). [의]란 의리가 아닙니다. 한국 말에는 형제 간에 ‘의’가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를 우애란 말처럼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런 개념은 성경이 말하는 의가 아닙니다. 의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의”란 세상이 말하는 사회 정의가 아닙니다. [의]란 국민의 자유, 인권, 평등의 실현을 위해 핍박받다가 죽은 영웅들의 업적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사회 부조리와 경제 정의, 언론과 사상의 자유, 민주화 운동 등을 위해 힘쓰다 고생한 많은 사람들이 후에 의인들로 칭송되지만 이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민족의 독립이나 해방, 남을 살리기 위해 죽은 이들을 ‘의사’라고 합니다. 우리는 암울한 근대사를 지내면서 독립 운동을 하다 죽은 몇몇 이들을 *** 의사(義士)라고 칭하며 존경합니다. 세상은 더 나은 사회와 국가 건설, 정치 제도의 변화, 자신들이 바라는 욕구의 성취를 위해 당한 희생을 ‘의’라고 정의하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는 [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늘들아, 너희는 위에서부터 의를 내리며 창공은 /의를/ 내려 부을지니라. 땅은 열려서 구원을 내게 하고 의도 함께 솟아나게 할지어다. 나 [주]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사45:8). 앞부분은 주님의 재림에 관련된 구절이고, 뒷 부분은 주님의 부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의가 없는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는 의의 소유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의]는 영이요, 말씀이요,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계시하실 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요, 양의 문이요, 빛이요, 생명의 빵이요, 참된 음료요, 참 포도나무요...” 등등 다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가장 위대한 계시는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란 선포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친히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선포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I AM). 주님은 자신이 구약 성경에 선포된 [구원자](Saviour)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에 한 분 하나님 외에 의로운 분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사람 중에는 아무도 의로운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신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너희가 거룩하신 분 곧 의로우신 분을 거절하고 살인자를 달라고 구하여](행3:14), *the Just.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거절한 것입니다.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의로우신 분’을 영접할 때입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지 사상, 철학, 교육, 이론, 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한 것입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의로운 사람이 필요합니다. 옷이 더러우면 갈아 입을 새 옷이 필요하지 신발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옛 사람이 새롭게 되는데는 천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스랍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새 사람이 필요할 뿐입니다.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신 이유와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라도 의로운 분을 영접하면 의롭게 되고, 거룩한 분을 영접하면 그는 거룩하게 됩니다. [대언자들 중에서 너희 조상들이 핍박하지 아니한 자가 누구였느냐? 그들은 의로우신 분의 오심에 관하여 미리 보여 준 이들을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분을 배반하여 넘긴 자요, 살인한 자가 되었나니](행7:52). 예수님의 초림은 “의로우신 분의 오심”입니다. 구약의 대언자들이 왜 핍박을 받았습니까?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미리 보여 주고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악한 현 세상을 지배하는 마귀는 의의 오심, 의의 출현을 반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의 오심에 대해 증거한 이들을 핍박하고 죽인 것입니다.
이 땅의 역사는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반복됩니다. 성도들이 의를 선포하고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라고 할 때 [의]는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는 복입니다. 마태복음 5:10과 11절은 병행 구절이기 때문에 10절의 “의로 인하여”란 말씀과 11절의 “나로 인하여”란 말씀은 정확히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이십니다. 시편 50:6, 97:6을 보십시오. [하늘들이 그분의 의를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로다. 셀라.](시50:6), [하늘들이 그분의 의를 밝히 드러내니 온 백성이 그분의 영광을 보는도다.](시97:6). 이는 재림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재림하실 때 하늘들이 영광스런 주님의 모습을 온 땅에 밝히 드러내는데 “그분의 의를 밝히 드러내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로써 이 땅에 태어나셨고, 율법의 모든 의를 성취하시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이미 앞에서 “하나님의 의이신 주님”에 대해서 증거 했지만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1:17, 로마서 3:21-22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복음에는 무엇이 계시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의는 꿈이나 환상이나 천사들을 통해서 계시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해 계시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죄가 전혀 없으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우리의 의로움을 위하여 부활하신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완벽하게 계시되어 있기 때문에 복음을 믿는 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의]가 되시기 위해서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로마서 3:21-22절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으니 곧 율법과 대언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자에게 그리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이는 거기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롬3:21-22).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란 복음을 통해 계시된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합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주님은 죄와 전혀 상관없는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의가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의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위에 성령을 통해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말합니다. 믿는 자들 위에 주님이 인격적으로 임하시고, 그 안에 거니십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선포합니다(롬8:9).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으면 그는 하나님의 의가 그 안에 있는 것이요, 의롭게 된 것입니다. [의]는 행위, 일, 인품, 성격, 업적, 성향, 가치관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입니다. 요한일서 5:12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찬 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의이시기 때문에 아들이 있는 자는 의가 있고, 아들이 없는 자는 의가 없습니다. 이는 모든 부분에서 다 성립합니다.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이 그리스도 예수를 미워하는 한(限) 마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이들을 미워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 대해 특별히 무슨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의이신 주님이 내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습니다. 어떤 일이나 행동 때문이 아닙니다. 어둠이 빛을 견딜 수 없듯이, 불의한 세상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마귀는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의는 불의를 드러냅니다. 의는 죄를 드러냅니다. 의는 마귀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너희가 아느니라.] (요15:18).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다는 것은 내 안에 주님이 계심이 입증되는 순간입니다. [내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요일3:13). 많은 종교인들이 선을 행함으로 세상의 존경을 받습니다. 세상이 정한 각종 상을 받기도 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수녀, 신부, 목사 등의 타이틀은 가지고 있지만 자신 안에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핍박을 받지 않고 존경과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없이 그리스도처럼 흉내를 내거나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려고 하거나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 보려고 애쓰거나 희생적인 사랑과 선을 행할 때 그는 세상의 칭찬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가 발견될 때 세상은 그를 미워하고 핍박합니다. 악을 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습니다.
이사야 59:16, 미가서 7:9입니다. [그분께서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중보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느니라. 그러므로 그분의 팔이 그분을 위하여 구원을 가져오고 그분의 의가 그분을 지탱하였으니](사59:16). 우리는 이 구절이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원은 구원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구원과 구원자는 같은 의미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그분의 의’란 말씀 역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였으므로 [주]의 격노를 담당하려니와 마침내 그분께서 내 사정을 변호하시고 나를 위하여 심판을 집행하시며 또 나를 인도하사 빛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분의 의를 보리로다.](미7:9). 우리는 모두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께 죄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내 사정을 변호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변호사이십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범죄하여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And if any man sin, we have an advocate with the Father, Jesus Christ the righteous : (요일2:1). 주님은 나를 위해 심판을 집행하시는데 자신이 친히 우리의 죄가 되시고, 저주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그 심판이 집행됩니다. 그리고 나를 인도하셔서 빛에 이르게 하심으로 “내가 그분의 의를 보리로다”(예수 그리스도를 본다)!!고 합니다. 이는 저 하늘에서 주님을 만나 볼 복된 소망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의”(the righteousness)란 사실을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보았습니다.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여 자기 의를 세우려고 애쓰면서 자기를 낮추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롬10:3~4).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란 율법이나 또 하나의 지켜야 할 규례나 의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이시며, 우리의 의이십니다. [[주]께서 우리의 의를 내어 놓으셨으니, 오라, 우리가 시온에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일을 밝히 알리자.] (렘51:10). 주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신 주님께서 “의로 인하여 핍박 받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의이신 주님에 대해서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주님으로 인해 가득 채움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주리고 목마를수록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놀라운 역설이지만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주님을 갈구하고 소망하며 헐떡이는 사람일수록 그 속은 성령으로 채움 받고 말씀으로 채움 받고, 지혜와 믿음과 은혜로 충만하게 됩니다. 영적 갈증과 허기를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성도가 된 후에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는 채움 받은 경험도 없을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채움을 받고,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부터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일을 봅니다. 아벨을 보십시오. 그는 의로웠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욱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려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에 대하여 증거하시느니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지금도 말하고 있느니라.](히11:4).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욱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려 “의로운 자”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아벨은 인류 최초로 “의로운 자”란 증거를 얻었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첫 사람입니다. 그는 아버지 아담이나 어머니 하와나 어떤 형제들로부터 ‘의롭다’는 증거를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영광스럽게 되고, 높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어이없는 죽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벨의 죽음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가인의 시기심 때문이다. 종교 분쟁이다. 하나님의 편애 때문이다. 아담이 뿌린 죄의 열매를 자식이 거둔 것이다.”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성경은 아벨의 죽음이 “의롭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 그는 저 사악한 자에게 속하여 자기 형제를 죽였으니 무슨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 행위는 악하되 자기 형제의 행위는 의롭기 때문이라.](요일3:12). 아벨은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성경은 이 세대를 일컬어 노아의 날들, 롯의 날들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오직 노아의 날들과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이는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알지 못하였음이니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노아의 날들에 세상은 얼마나 살기가 좋았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의 날들에는 [의의 선포자 노아]가 있었습니다(벧후2:5). 의의 선포자 노아”란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반면 롯의 날들에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의 선포자가 없었습니다. 다만 아무도 모르게 홀로 혼의 고통을 받는 “의로운 롯”이 있었을 뿐입니다. [사악한 자들의 더러운 행실로 인하여 괴로움을 받던 의로운 롯을 구해 내셨으니](벧후2:7). 롯은 하나님을 알고, 심판에 대한 경고를 듣고 믿었습니다. 그는 의의 선포자가 아니었습니다. 사위들도 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을 때 그들은 농담으로 여겼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의의 선포자인 노아처럼 살 것인가? 홀로 혼의 고통을 당하며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은 롯처럼 살 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이곳 서구 사회처럼 종교의 자유와 다원성이 법적으로 보장된 나라에 사는 성도들에게 이 말씀은 좀 요원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지구촌의 반(半) 이상은 복음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박해를 받습니다. 회교권 국가, 공산주의 국가들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캐톨릭 국가들 역시 성경적인 복음 신앙은 박해의 대상입니다. 이곳 미국에 사는 성도들과 교회가 겪는 고통은 ‘의로 인하여’ 받는 핍박이 아니라 ‘돈이 없음’으로 인해 받는 고통이 제일 커 보입니다. 교회를 짓고 확장하는 일, 선교 사업이나 기타 어떤 일을 하는데 그들은 돈이 없음으로 인해 고통을 받습니다. 성도들 역시 사정은 비슷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주로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한 가지는 돈이고 또 하나는 건강입니다. 이렇다 보니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일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소한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음으로 인해 하늘의 왕국을 소유하는 복을 누리는 성도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일이 없다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거나 ‘의롭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성경대로 살면 같은 세상은 물론이요, 육신적인 성도들조차 우리를 ‘광신자’라고 욕하고, 성경대로 살지 않으면 싸잡아서 ‘위선자’라고 비난합니다. 성도들은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반드시 핍박, 비난, 모욕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성도들이 아예 “의를 구하지 않기 때문”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우리가 먼저 구해야할 것-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의(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의 왕국은 그들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고난, 박해, 모욕을 받으면 그는 복된 자요, 행복한 자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말하기를, [그러나 너희가 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면 행복한 자니 그들이 두렵게 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불안해하지도 말며](벧전3:14)라고 합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사람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험담을 무서워하지 말라.](사51:7). 하늘의 왕국은 주님을 섬기고, 주님과 함께 박해를 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여덟 가지 복을 가르치시고 선포하시면서 [영이 가난한 자들, 의로 인하여 핍박 받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으로서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거듭나면 들어갈 수 있는 영적인 왕국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영적 신분, 지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내적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하늘의 왕국은 미래적인 것입니다. 외적이고, 물리적이고, 정치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하늘의 왕국은 행위와 관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5:19-2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가장 작은 이 명령들 가운데 하나를 어기고 또 그와 같이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는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로되 누구든지 이 명령들을 행하고 가르치는 자 곧 그는 하늘의 왕국에서 큰 자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義)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코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19-20). 행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거듭 말씀드리지만 하늘의 왕국은 행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믿음의 행위가 없을 때 그는 아무 보상도 없을 것입니다. 하늘의 왕국에서 주님과 함께 통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얻은 성도들이 하늘의 왕국에서 왕과 제사장으로서 천년을 통치할 수 있는 복은 의로 인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이란 주님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말씀으로 인하여 박해와 핍박을 받을 때 하늘의 왕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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