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예수 그리스도 (15)
말씀: 마5:17-18
요절: 마5:17-18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말하면 적게는 십계명을 말하고 일반적으로는 모세 오경을 일컫습니다. 넓게는 구약 성경 전체를 율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자주 오용되고 오해되는 단어가 ‘율법’이란 말입니다. 누가 어떤 형제를 향해 “저 사람은 너무 율법적이다, 율법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라고 말하면 이는 욕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율법과 은혜’,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매우 강조하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런 공부를 통해서 많은 성도들이 은혜는 좋은 것이지만 ‘율법은 나쁜 것이다’, 복음은 좋은 것이지만 ‘율법은 악한 것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은 결코 악하거나 나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율법은 거룩한 것입니다. [그런즉 율법도 거룩하고 명령도 거룩하며 의롭고 선하도다.] (롬7:12). 또 한 가지 흔히 듣는 말 중에 하나는 “율법적이다”란 말입니다. 율법적이란 말은 영적이지 못하다, 복음적이지 못하다, 은혜가 부족하다는 등과 동의어로 사용합니다. 율법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거나 믿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율법 자체가 이미 영적입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알거니와 율법은 영적이나 나는 육신적이어서 죄 아래 팔렸기 때문이로다.](롬7:14). *율법은 영적이나.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율법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나 자신이 선하지 못하고, 육신적이란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하나님과 성경을 모독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율법은 적법하게 쓰면 선한 것입니다(딤전1:8). 오늘은 [율법과 그리스도]란 제목으로 율법의 수여자요, 율법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율법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율법을 주신 목적, 율법의 역할을 바울 서신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a. 율법은 사람들에게 죄를 알려 줍니다. 율법은 죄를 심히 죄 되게 합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더욱 넘치게 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또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가 넘치게 하려 함이거니와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더 넘쳤나니](롬5:20). 율법이 없으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인됨, 죄성, 죄를 범한 것들에 대한 절대 기준이 없기 때문에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죄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죄에 대한 세상의 기준은 세상에 득이냐 손해냐? 유익이냐 아니냐? 로 결정짓습니다. 세상의 기준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고 가변적입니다. 상대적입니다. 똑같은 일도 상황에 따라서, 상대에 따라서 죄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율법이 없다면 아무도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율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니 이는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욕을 알지 못하였을 것임이라.](롬7:7)고 했습니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해 주고, 범죄가 더욱 넘치게 합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셨습니다. 율법이 내 속에 들어오게 되면 자신의 죄인됨, 죄성, 죄의 실체가 환히 드러납니다. “율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니”란 말씀을 통해 율법의 역할과 목적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대체로 죄인이라 사실을 인정하고, 죄없는 사람은 없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죄 안 짓고 살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율법 없이도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요, 죄를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율법을 통하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율법이 들어올 때 우리는 출생의 비밀을 압니다. 내가 죄 가운데 태어났고, 죄악 중에 형성되었으며, 죄는 나의 행위 이전에 나의 본성이요, 나의 인격적 정체성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율법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통해 자신이 탐심의 소유자요, 탐욕이 있음을 알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율법이 없을 때는 그것이 죄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요, 정상적인 본능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율법이 없을 때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은 죄가 아니라 자연스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내게 왔을 때 그것은 크고도 무서운 죄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 자신이 타고난 죄인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인 인간들에게 죄를 알게 해주고, 죄성을 알게 해 주시기 위해 주신 율법의 역할입니다.
b. 율법은 진노를 이룹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나니 이는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죄도 없기 때문이니라.](롬4:15). 오해하지 마십시오. 율법이 없을 때에도 인간은 죄인이었고, 범죄가 있었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죄도 없기 때문이니라.”는 말씀은 주님이 정해 준 율법을 범한 죄가 없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죄인들을 정죄하고 저주합니다. 죄인들은 율법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율법이 없어도 사람은 이미 모두 죄인들입니다. 하나님은 범죄들로 인해 율법을 더하셨습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율법은 범죄들로 인하여 /주께서/ 더하신 것이요,](갈3:19b).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국가에 이전에 없던 신종 범죄가 생겨 날 때 즉시 법을 만듭니다. 아무런 범죄가 없는데 법을 만들지 않습니다. 법이 없을 때에 범죄는 사회적 지탄과 비난과 욕을 먹지만 법을 어긴 죄로 인해 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지면 그 법에 의해 진노와 저주와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을 율법을 통해 그 죄가 정죄와 진노를 받게 하고, 심판의 형벌을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들이 행하는 모든 범죄에 대해서 법을 정해 주셨습니다. 이로써 모든 사람들은 예외없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없다면 율법이 이루는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c.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입니다.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訓育) 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라.](갈3:24). 율법을 주신 주님은 율법을 통해 자신을 찾도록 하셨습니다. 율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율법의 성취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율법을 기록한 모세는 “나 같은 대언자”를 언급했고, 모든 대언자들 역시 주님의 오심을 예언했습니다.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 때 복음의 빛이 그 위에 임하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던 유대인들 역시 율법에서 자신들을 건져 줄 메시야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다렸습니다. 율법을 연구해 보면 그것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막이나 희생제나 절기나 다른 모든 규례들이 다 주님 한 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난 후에 구약을 읽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명확하게 계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를 살펴 봅시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것이기 때문이라.](요1:17)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율법은 예수님과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성경을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율법은 모세가 아니라 예수님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율법의 수여자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국회를 구성하거나 율법사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율법을 제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율법을 제정하셨습니다. 주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분이십니다. [이는 [주]가 우리의 심판자시요, [주]가 우리에게 법을 주시는 이시요, [주]가 우리의 왕이시니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사33:22), [율법을 주시는 이가 하나이시니 그분께서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네가 누구이기에 남을 판단하느냐?](약4:12).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교회에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씨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한 민족으로 삼으셨고, 친히 통치하는 한 왕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국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백성, 영토, 그리고 정부(주권)가 있어야 하는데 백성을 준비하셨고, 약속의 땅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항상 지켜 행할 법을 주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영토를 얻기 전에 먼저 주신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을 주시기 전에, 사울이나 다윗과 같은 왕을 주시기 전에 먼저 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법은 한시적인 법이었습니다. 율법은 율법의 수여자께서 성취자로 오실 때까지입니다. [이는 모든 대언자와 율법이 요한까지 대언하였음이라.](마11:13), [그러면 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율법은 범죄들로 인하여 /주께서/ 더하신 것이요, 천사들을 시켜 한 중재자의 손에서 정하신 것으로 약속을 받은 그 씨가 오실 때까지 있을 것이라.] (갈3:19). 율법을 주신 주님께서 친히 율법 아래서 태어나신 것은 우리를 대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예수님은 율법의 성취자이시다(마5:18). 주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성취하러 오셨습니다. 율법을 주신 주님께서 또 다시 법을 주는 자의 오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법을 주신 하나님께서 다시 법을 주시는 자를 보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창세기 49:10, 시편60:7입니다. [홀(笏)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실로가 오실 때까지 법을 주는 자가 그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니 그에게 백성이 모이리로다.](창49:10),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가 내 것이며 또한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힘이요, 유다는 나의 법을 주는 자로다.](시60:7). 이는 유다 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오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법을 주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친히 주신 법을 성취하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신약을 통해 구약을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돌 판에 기록한 법을 주셨으나 이제 다시 주시는 법은 마음 판에 기록해 주심으로 율법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그 날들 이후에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 /중심/부에 두고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렘31:33). 이 법은 문서로 된 율법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새 영을 주시고, 새 마음을 주심으로 그 속에 기록해 주시는 법입니다. 이 법은 사랑의 법, 믿음의 법(롬3:27), 생명의 법(롬8:2), 성령의 법(롬8:2), 의의 법(롬9:31), 그리스도의 법(갈6:2), 왕가의 법(약2:8), 자유의 법(약2:12)이라고 불립니다. 신약 성도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법이요, 계명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내 명령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모든 율법은 “사랑하라”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율법의 성취자로서 주님은 믿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오심으로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우셨습니다.
3. 예수님은 우리를 율법의 저주가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대속(代贖)하셨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는 다 저주받은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율법은 의인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자신의 몸으로 율법의 저주와 진노를 모두 지셨습니다. 주님 안에는 죄가 없었지만 주님 위에는 인류의 모든 사람의 죄가 다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린 주 예수 그리스도 위에 죄의 형벌, 죄의 심판을 집행하셨습니다. 이제 나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율법은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대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충만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셨나니 /이것은/ 곧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대속(代贖)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아들로 입양되게 하려 하심이라.] (갈4:4~5). 주님은 자신이 주신 율법에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율법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속하시고, 율법의 성취자가 되셨습니다. 사람들의 법은 시대가 변하면서 유명무실해 지는 법이 있고, 사문화 되어 버리는 법이 있습니다. 폐지해야 할 법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 하나의 율법도 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율법의 일점일획도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자신이 친히 담당하시고, 성취하셨습니다. 갈보리의 십자가에는 죄에 대한 율법의 저주, 심판이 문자 그대로 집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동시에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드러났습니다. 누구든지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신 주님을 믿을 때 더 이상 율법의 저주, 율법의 권능, 율법의 정죄와 속박 아래 있지 않고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됩니다.
4. 예수님은 율법의 끝마침이 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롬10:4). 주님은 율법의 성취자요, 끝마침이 되십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율법을 행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율법 폐기론자나 율법 무용론자들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율법의 끝마침이 되셨고, 주님 자신이 친히 의가 되시기 때문에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되고자 하는 노력이나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율법의 마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행위가 아닌 성령의 열매로써 율법의 모든 의를 능가하는 의를 드러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끝마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노력하다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율법을 성취하셨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누구나 스스로가 모든 율법을 성취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 전가 시키셨습니다. 대신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행한 모든 의로운 행위들을 우리에게 전가 시켜 주십니다.
5.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몸으로 율법을 없애셨다. [원수 되게 하는 것 곧 규례들에 수록된 명령들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없애셨으니 이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 화평을 이루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멸하사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2:15-16). 주님은 자신의 몸으로 우리를 정죄하는 모든 규례들을 남김없이 다 폐기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이해하지 마십시오. 죄인들에게 내려진 율법의 형량, 심판, 저주와 진노 등이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몸에 집행됨으로써 그런 율법의 규례들이 더 이상 믿는 자들 위에는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런 규례들이 힘을 잃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죄의 값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벽히 지불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내가 지은 모든 범죄 기록들을 말소해 버리면 범죄자들에게 가해질 모든 형벌은 자동으로 소멸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죄 값을 완벽히 지불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향해 발부된 ‘규례들에 수록된 명령들의 율법’은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날아 든 손으로 쓴 규례들은 모두 주님께서 취해 가셨습니다. 나의 이름 앞으로 날아 온 Police report, 검찰의 기소 내용, 법원의 판결문, 관공서의 행정 명령 등 나를 짓누르는 모든 명령서들을 주님이 다 취해가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마귀의 고소, 하나님의 진노 등 나를 고소하는 고소장에는 내가 범한 죄들과 그에 따라 받아야 할 형벌들을 적은 각종 규례들이 빽빽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규례들을 다 지워 주시고, 그 모든 것들을 다 취해 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손으로 쓴 규례들 곧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政事)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골2:14~15).
이제 누가 나에게 고소장을 발부하거나 영장을 청구하거나 배상을 요구하면 그것은 거짓으로 발부된 것이요, 반송해 버리십시오. 이미 나는 나를 대신해서 이 모든 것을 다 처리해 주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행여나 마음속으로 마귀의 고소장이 날아들면 즉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모든 규례들을 지우셨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위에는 나의 모든 것을 기록한 규례들이 있습니다.
6.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우리를 율법에 대해 죽게 하셨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게 되었으니](롬7:4a). [내가 율법을 통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고자 함이라.](갈2:19). 주님의 죽으심은 나를 율법에서 건져내셨을 뿐 아니라 율법에 대하여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죄에 대해, 율법에 대해, 세상에 대해 나의 자아가 못 박히는 죽음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입니다. 율법이 죽은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 내가 죽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죄와 율법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나의 옛 사람, 본성, 자아가 살아 있는 한 율법을 지킬 수도 없고, 율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죽음은 율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율법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참된 안식과 자유와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죄도 율법도 죽은 자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까? 죄의 쏘는 것이 사망이요, 죄의 권능이 율법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죽음이 사실이듯이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죽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쉽게 흥분하고 다혈질적인 사람이 어느 날 성질이 죽어 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성질이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주위가 조용해지고 여러 사람이 평안해 집니다. 걸핏하면 혈기를 부리는 사람이 혈기가 죽어 보십시오. 이제 인간되었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나 본성이 악한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율법에 대해 죽고, 세상에 대해 죽어 보십시오. 진정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믿음의 좋은 평판이 뒤따를 것입니다. 나의 옛 사람이 죽고, 자아가 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이 성령을 통해 드러나는 놀라운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7. 예수님은 죄인들을 율법대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죄인들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심판하십니다. 나의 죄를 기록한 손으로 쓴 규례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주님의 피로 모두 지워지지 않았다면 율법의 저주를 몸소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지옥 형벌입니다. 율법의 성취자요, 율법의 끝마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는 이미 죄에 대해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죄인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석에 서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율법의 역할- 율법은 죄를 더욱 죄가 되게 한다. 율법을 통해 죄를 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다.
예수님은 율법의 수여자요, 성취자요, 끝마침이 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우리를 대적하는 규례들을 없애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율법에 대해 죽게 하셨다. 예수님은 율법대로 심판하신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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