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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단일한 눈



말씀: 마6:22-23
요절: 마6:22-23

눈은 신체의 모든 부분 중에 가장 중요한 지체 중의 하나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를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마음이 아니라 ‘몸의 등불’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눈을 등불(light)로 주셨습니다. 눈이 없는 것은 어둠 속에서 등불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눈을 감는 순간 유일한 빛의 통로인 창이 닫힌 듯이 온 몸이 어두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눈은 늙으면 약해집니다. 이는 신자든 불신자이든 구분이 없습니다. 모세는 120세가 되어도 힘이 약해지지 않고 그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았지만(신34:7), 이삭은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져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야곱 역시 말년에는 눈이 어두워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를 보십시오. [이제 엘리는 구십팔 세더니 그가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삼상4:15). 마치 전구의 수명이 다하듯이 우리의 신체는 각기 모두 수명이 다하면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이 사람들이었지만 노안(老眼)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육신의 눈과 달리 영적인 눈은 나이와 상관없이 더욱 밝아져야 합니다. 몸의 등불이 어두워진다고 해서 우리 속에 있는 등불(영)까지 어두워져서는 안 됩니다.

복음서에는 유난히 맹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소경들은 주님을 만날 때면 “눈을 열어 주소서”(마20:33) 외쳤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있었고(요9), 마귀 들려 눈 먼 자도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모든 불신자들은 육신의 눈만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눈은 소경과 같아서 주님을 볼 수 없고, 영적인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십니다.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함이요, 또 그들로 하여금 죄들의 용서를 받고 내 안에 있는 믿음으로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 가운데서 상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더이다.](행26:18). *사42:7인용. 영적인 눈이 열리면 주의 법에서 나오는 기이한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보여 주시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 주셨을 때 하갈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우물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 주시매 그녀가 우물을 보고 가서 부대에 물을 채워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니라.](창21:19).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눈이 열리면 생수의 샘, 생수의 강을 발견하고 마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의 눈을 여셨을 때 그는 주의 천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민22:31).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게하시의 눈을 열어 주셨을 때, 게하시는 영적인 군대를 보았습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여시사 보게 하옵소서, 하니 [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보라,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7). 우리에게는 육신의 눈과 영적인 눈이 모두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믿음의 눈은 천문학자들이 천체 망원경을 가지고 우주를 보는 것보다 더 멀리 봅니다.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이전 세계를 보고, 다가오는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눈에 가시란 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눈병을 ‘사탄의 사자’, ‘가시’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 23:13, [확실히 이것을 알지니라. 곧 [주] 너희 하나님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고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 마침내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너희가 멸망하리라.](수23:13). [여러 계시가 넘침으로 말미암아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임을 받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 육체 안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使者)를 주사 나를 치게 하셨으니 이것은 나로 하여금 분량 이상으로 높임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12:7). 주님은 우리 눈에 가시를 줄 수 있고, 눈을 열어 주실 수 있습니다. 장차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면 모든 눈 먼 자의 눈이 열리고 소경이 한 명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 귀먹은 자들이 그 책의 말씀들을 들을 것이요, 눈먼 자들의 눈이 어둡고 캄캄한 데서 볼 것이며](사29:18).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맹인이 눈을 뜨는 예는 없습니다. 복음을 믿는다고 해서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앉은뱅이 등의 장애가 모두 치료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마귀 들려서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벙어리가 된 경우에는 복음을 영접할 때 치료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치유의 은혜가 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반적인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을 통해 주님이 말씀하신 ‘단일한 눈’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22-23절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런즉 네 눈이 단일(單一)하면 네 온 몸이 빛으로 가득할 것이요,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이 어둠으로 가득하리니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등불이 어둡게 되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마6:22~23). 눈이 단일하다는 것은 외눈박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의 눈처럼 한 가지만을 보는 순전한 눈을 말합니다. 곁눈질하지 않고 대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눈입니다. 비둘기는 곁눈질을 하지 않습니다. 비둘기의 눈을 비뚤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의 눈이 그런 눈입니다. [그분의 눈은 강가에 사는 비둘기의 눈 같아서 젖으로 씻은 것 같고 알맞게 박혔도다.](아5:12). 단일한 눈이 아름답습니다. 인물의 90%는 눈이 좌우합니다. 주님께서는 신부인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아, 보라, 네가 어여쁘구나. 보라, 네가 참으로 어여쁘며 비둘기 눈을 가졌구나.](아1:15). 우리의 눈이 빛이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온 몸이 빛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예수님을 보면 우리 안에 빛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우리는 빛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은 빛을 만드는 기관이 아니라 비추어지는 빛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빛을 향해 눈을 들기만 하면 빛은 저절로 몸 안으로 들어옵니다. 단일한 눈은 단일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골로새서 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체를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單一)한 마음으로 하라.](골3:22). 에베소서 6: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엡6:6).

무엇을 바라보는가? 이것이 핵심입니다. 눈은 죄의 발단입니다. 눈은 입과 더불어 죄의 발단이었습니다(창3:6). 다윗이나 아간이나 게하시, 롯 등은 모두 눈으로 바라보는 데서부터 죄가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의 비극적인 삶의 실패는 ‘단일한 눈’을 갖지 못한데서 시작됩니다. 욥은 눈의 중요성, 눈으로 보는 것이 삶의 행동과 가치관, 복과 저주에 미치는 능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내 눈과 언약을 맺었거늘 어찌 처녀를 생각하랴?] (욥31:1)고 했습니다. *내가 내 눈과 언약을 맺었다. 오늘날은 VISUAL 영상 시대입니다. T.V, 영화 등 볼 것이 너무 많습니다. 화려한 칼러에 특수 음향으로 효과를 낸 영상물들을 보면 환상적입니다. 가정에 T.V가 집집마다, 방 마다 자리잡고 이제는 개개인마다 인터넷, 셀룰러 폰까지 눈을 유혹합니다. 신문, 잡지, 책과 같은 인쇄 매체 역시 눈을 사로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눈길을 끌고,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곧 성공입니다. 우리는 욥과 같이 “내가 내 눈과 언약을 맺었거늘”(욥31:1a) 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시편 101:3절, [내가 사악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곁길로 가는 자들이 행하는 일을 미워하오리니 그것이 내게 달라붙지 못하리이다.] (시101:3). 눈 앞에 사악한 것들을 두지 마십시오.

마지막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눈은 어떤 눈인지 보십시오. 베드로후서 2:14, [또 음욕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죄를 그칠 줄 모르며 동요하는 혼(魂)들을 속이나니 /이들은/ 곧 탐내는 습관으로 마음을 단련시킨 자들이요, 저주받은 자식들이라.] (벧후2:14). 범람하는 것이 음란물입니다. 저는 이곳 미국에 와서 한국의 서울보다 나은 한 가지라면 벽보입니다. 한국에서는 영화 포스터, 선전물, 광고물이 벽마다 붙어 있었습니다. 음란한 영화 선전 포스터들이 불법으로 사람들이 많이 나다니는 곳곳마다 붙어 있곤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로부터 어른들까지 혼들을 노략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가판대에는 지저분한 잡지들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동네마다 비디오 가게가 있어서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끌기 위해서 포스터가 걸려 있습니다. 식당에서는 한 명의 손님에게라도 술을 더 팔기 위해서 벽마다 음욕을 자극하는 사진들을 걸어 놓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할 일 중에 하나로 ‘그들의 그림과 부어 만든 형상을 다 멸하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르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의 모든 거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며 그들의 그림과 부어 만든 형상을 다 멸하고 그들의 산당을 다 허물며] (민33:51~52). 여기서 ‘그림’은 요즘 말로 하면 저질 사진, 영화가 됩니다. 이사야 3:16, [[주]께서 또 이르시되, 시온의 딸들이 오만하고 늘인 목과 음탕한 눈으로 걸으며 나다닐 때에 점잔을 빼고 걸으며 발로는 딸그랑 소리를 낸다, 하시는도다.](사3:16). 이것이 이 시대와 무엇이 다릅니까? 자신의 몸을 가리기 위해 입어야 할 옷이 어느덧 누군가의 눈을 끌기 위해 입는 옷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옷을 주신 것을 가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많은 여자들이 입는 옷은 누군가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보여 주기 위해 입고 있습니다.

눈이 단일하면 온 몸이 밝지만, 눈이 악하면 온 몸이 어두워지고 우리 안에 등불이 꺼지고 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등불이란 우리 속에 있는 영을 말합니다. 잠언20:27, [사람의 영은 [주]의 등잔불이니 뱃속의 모든 부분을 살피느니라.](잠20:27). 우리 속에 있는 영이 등불입니다. 이 불이 어두워지고 꺼지면 하나님이 천둥소리를 내어도 우리는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고, 번개로 비추어도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있는 등불을 어둡게 하거나 꺼지게 하지 말로 활활 타오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2:35, [너희 허리에 띠를 띠고 너희 등불을 타오르게 하며](눅12:35).

어떤 경우에 우리 안에 있는 등불이 어두워집니까? 누구든지 사악한 눈을 가질 때 그 안에 있는 등불(영)은 꺼집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볼 때 우리 안에 있는 등불이 어둡게 됩니다. 악한 눈을 가질 때 그 사람 안에 있는 영은 어둠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 시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이브는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보았을 때 눈이 그 속에 어둠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영적 분별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문둥병자 나아만이 내어 놓은 예물들을 보았을 때 그 안에 있던 등불이 어두워지고 꺼져 버렸습니다. 아간 역시 그러합니다. 그는 저주받은 물건들을 보았을 때 금과 은과 옷을 몇 벌 취했습니다(수7). 그 즉시 아간의 눈은 어두워지고 심한 어둠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잠언 13:9, [의로운 자의 빛은 기뻐하나 사악한 자의 등불은 꺼지리라.](잠13:9). [너는 악한 자들로 인하여 초조해하지 말며 사악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지니 이는 악한 자에게는 보상이 없으며 사악한 자의 등잔불은 꺼질 것임이니라.] (잠24:19~20). 욥기를 봅시다. 욥기18:5-6, 21:17, [참으로 사악한 자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을 내지 아니할 것이요, 광명은 그의 장막 안에서 어두워지고 그의 등잔불은 그와 더불어 꺼질 것이요,] (욥18:5~6). [사악한 자의 등불이 얼마나 자주 꺼지는가! 멸망이 그들에게 얼마나 자주 닥치는가! 하나님께서 친히 분노하사 슬픔을 나눠 주시는구나.](욥21:17).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베일은 벗겨지고, 눈에 있던 비늘도 벗겨집니다. 어둠은 걷힙니다. 이는 우리의 체험이고 간증입니다. 세상에 오신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 안에는 어둠이 없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등불이 꺼지는 또 하나의 예는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할 때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면 그 사람의 등불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꺼지리라.](잠20:20). 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지만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불효하는 이들은 눈이 어두워지고, 등불은 꺼지고 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등불은 언제 꺼지는가? 친구들에게 아첨할 때입니다. [자기 친구들에게 아첨하는 자의 자녀들은 눈이 어둡게 되리이다.](욥17:5). 아첨과 뇌물은 눈을 어둡게 하고 재판을 굽게 하며, 공의를 짓밟고 불의를 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거짓말과 더불어 아첨하는 말을 매우 엄하게 다룹니다. [자기 이웃에게 아첨하는 자는 자기 발에 그물을 치는 자니라.](잠29:5). [[주]께서 아첨하는 모든 입술과 교만한 것들을 말하는 혀를 끊으시리니](시12:3). 이 말씀을 통해서 아첨하는 입술을 지닐 때 왜 눈이 어둡게 되고, 등불이 꺼지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등불은 언제 꺼지는가? 형제를 미워할 때입니다. [빛 가운데 있다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도 어둠 가운데 있는 자라....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가운데 있고 어둠 가운데서 걸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요일2:9,11).

그렇다면 우리의 눈을 밝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 주님이시다. 주님은 눈을 밝히시는 분이시다.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눈을 밝히십니다. [가난한 자와 속이는 자가 서로 만나거니와 그 두 사람의 눈을 밝게 하시는 이는 [주]시니라.](잠29:13), [너희의 지각(知覺)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엡1:18). 하나님께서 눈을 밝혀 주시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들을 알게 됩니다. 주님이 눈을 밝혀 주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존재나 살아계심, 그분의 성품을 인지할 수 없지만 눈을 밝혀 주실 때 놀라운 것을 보게 됩니다. 육신의 눈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2. 주님은 어둠을 밝히시는 분이시다. 주님께서 어둠을 밝혀 주시고, 내 등불을 밝혀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무엘하 22:29, [오 [주]여, 주는 내 등불이시오니 [주]께서 내 어둠을 밝히시리이다.](삼하22:29), 시편18:28, [주께서 내 등잔불을 밝히시리니 [주] 내 하나님께서 내 어둠을 밝히시리이다.](시18:28). 주는 내 등불이시고, 내 등잔불을 밝히시는 분이십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고, 앞이 보이지 않는 분들은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빛을 밝힐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의 등불이십니다. 내 안에 있는 등잔불을 밝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 아니라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을 앙망하고 주님이 행하실 일들을 믿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바람에 몸을 싣고 하늘을 날 수는 있어도 결코 바람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물결치는 파도 위에서 써핑을 할 수는 있어도 파도를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바람을 일으키고, 바람을 일으키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빛을 주시는 분, 나의 등잔불을 밝히시는 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시며, 그분의 몫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이 비추는 빛을 받아 들이고, 그분이 밝혀 주실 때 기쁨으로 보는 것입니다. 때로 성도들이 오해하는 한 가지는 자신이 기도나 금식이나 교회 활동이나 여러 가지 일을 해서 빛을 만들고, 빛을 비추어야 하는 줄로 아는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오해입니다. 우리의 눈을 여시는 분이 주님이시오, 내 등잔불을 밝히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3. 기도하라. 주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 주님이 어떤 분이신 줄 들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주시는 순간 우리에게는 그 말씀에 대한 기도의 의무가 주어집니다. 시편13:3, 119:18입니다. [오 [주] 내 하나님이여, 나를 깊이 살피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시13:3). 다윗은 자신의 눈을 밝혀 줄 것을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눈을 밝히시고, 등잔불을 밝히시는 분이시란 사실을 알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믿는 일은 기도의 근거가 됩니다. 믿음의 기도란 읽고, 선포되는 말씀을 자신의 기도 제목으로 붙들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요청하는 것입니다. [내 눈을 여사 나로 하여금 주의 법에서 나오는 놀라운 것들을 보게 하소서.](시119:18).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할지라도 내가 그것을 체험할 수 없고, 맛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지각의 눈이 열려서 자신에게 두신 하나님의 계획과 영광의 소망을 알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밝은 대낮에 눈을 감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난로를 가지고도 스위치를 돌리지 않아 추위에 떨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이 내 안에서 효과적으로 일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고 구하십시오. 눈을 열어 주소서! 나의 눈을 여사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구할 때 성령의 지혜, 말씀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4. 주의 말씀은 눈을 밝게 합니다. [[주]의 법규들은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시19:8). 우리의 눈을 밝게 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게 되고, 저 셋째 하늘에 있는 하늘의 왕국을 보게 됩니다. 장차 오게 될 천년 왕국을 보게 됩니다. 또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을 때 자신 안에 아무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몰랐습니다. 자기 지체 안에 죄의 법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죄의 법이 자신을 사로 잡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사악한 죄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내면에 들어왔을 때 그는 자신이 탐심의 소유자요, 비참한 자요(롬7:25), 선한 것이 조금도 거하지 않는 죄인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알면 알수록 자신의 죄악 됨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로다”(딤전1:15b)라고 탄식했습니다. 말씀이 눈을 밝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전혀 보지 못하는 ‘라오디케아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눈에 안약을 발라 보게 하라.](계3:18b). 안약을 발라 보는 순간 그 교회는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의 안약이 있다면 주님 앞에서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은 눈을 밝게 합니다.

5.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때 눈이 밝아집니다. [이제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남은 자들을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시고 또 자신의 거룩한 곳에서 우리에게 못을 주셨사오니 이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밝히시고 우리를 우리의 속박 가운데서 조금 소생(蘇生)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스9:8). 하나님의 은혜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빠지지 않는 단단한 못입니다(사22:23).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시면 견고하게 박힌 대못이 되어 결코 빠지지 않으십니다. 전도서 기자가 말하기를,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집회의 스승들이 굳게 박은 못들 같으니 이 말씀들은 한 목자께서 주신 것이니라.](전12:11)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우리의 눈이 밝아집니다. 어렵던 말씀도 쉽고 단순하게 믿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의 마음을 다스립니다. 로마서 5:21, [이것은 죄가 군림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같이 은혜도 의를 통해 군림하여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롬5:21). 군림=통치, 다스리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다스릴 때 우리는 은혜로운 말, 은혜로운 성품, 은혜로운 교제 등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를 가르칩니다. 무엇을 가르칩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후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가르치십니다. [이는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딛2:11~12).

저는 오늘 ‘단일한 눈’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살펴 보았고, 눈을 어둡게 하는 것과 눈을 밝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 상고(search)해 보았습니다. 악한 눈, 음탕한 눈, 교만하고 거만한 눈 등은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일한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볼 때 우리의 등불이 활활 타오르고 빛나게 될 것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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