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믿음으로 경고를 받아

말씀: 히브리서 11:7
요절: 히브리서 11:7

 믿음의 사람으로 좋은 평판을 받은 세 번째 인물로 노아가 나옵니다. 노아의 홍수는 아담 이래로 현 세상이 겪은 가장 참혹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아와 대홍수에 대해서 신화나 설화로 해석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노아가 실존 인물이었으며, 대홍수는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분명히 증거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읽는 그대로 믿습니다. 성경은 종교적인 문제를 다루는 책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다루는 책입니다. 히브리서 11:7절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믿음으로’(by faith)란 말로 시작해서 ‘믿음으로’(by faith)란 말로 끝나는 독특한 구절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구약에서 친히 인정하신 3대 의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님은 ‘노아, 다니엘, 욥’을 의인 중의 의인으로 꼽으셨습니다(겔14:14,20).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단 한 사람도 없도다.”는 주님의 증언에 비추어 볼 때, 노아의 의(義)는 자기 자신의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 믿음이 있을 수 없고, 믿음이 없는 곳에 “의”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노아란 이름은 “주께서 저주하신 땅으로 인해 우리가 행하는 일과 우리 손의 수고에 대하여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하리라”(창5:29)는 아버지 라멕의 믿음과 소망이 담긴 이름이었습니다. 노아는 아버지 라멕이 182세 때, 즉 아담의 창조로부터 1056년에 태어나서 2006년에 죽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믿음의 삶을 단 한 절로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경고를 받고 두려움으로 움직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 집을 구원하였으니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11:7). 이 한 절의 말씀 속에는 믿음의 생활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거의 모든 내용을 포괄적으로 다루어져 있습니다.

노아는 세상의 물로 멸망이란 심판을 앞 둔 시점에 이 땅에 살았다는 점에서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우리와 거의 같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표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경고’를 주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성도들은 세상에 표적이나 기적을 통해서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올 심판에 대해 경고합니다. 성경은 각 사람들에게 “죄의 삯은 사망이며,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히9:27)고 경고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혼은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 받는다고 경고합니다. 이 땅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장차 대 환란이 있을 것임을 경고합니다. 이 땅이 불로 타 없어질 것(벧후 3:10-12)이라고 경고합니다. 아무리 무서운 경고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피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도로에 적힌 경고문, 음식 포장지에 적힌 경고문이나 주의 사항을 읽습니다. 운동 선수들은 심판이 내리는 경고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직장인들은 상사가 주는 경고에 신경을 쓰고, 두려워하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경고가 적힌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듣으려 하지 않고,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아의 때에도 노아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경고를 믿지 않았고,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경고를 받았습니다. 우리 역시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경고를 받았습니다.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듣고 믿었을 뿐 아니라 그는 두려움으로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침된 믿음입니다. 노아의 날들에 사람들은 아무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상은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경고를 믿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과 노아의 날들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 노아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핵 폭탄으로 망할 것이다, 남극이나 북극의 빙하가 녹아서 물이 불어 망할 지도 모른다, 행성이 지구와 충돌할지도 모른다. 기상 재해나 환경 오염으로 망할 지도 모른다, 등등의 다양한 가설을 제기하고 수긍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재림하셔서 믿지 않는 자들을 타오르는 불로 징벌하신다(살후1:8)는 말에는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노아의 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노아의 날들과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알지 못하였나니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마24:37-39)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를 짓고, 방주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물로 세상이 멸망할 것이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면서 일상의 생활을 영위했지만 하나님이 경고하신대로 심판의 재앙이 임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면서 세상의 멸망은 없을 것 같이 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주님의 재림이란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어떤 이들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이냐? 면서 이 구절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찍이 오늘날만큼 먹고 마시는 일이 자연스럽고 보편화된 예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서나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여행을 다녀도 먹을 것과 마실 물을 가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지금은 지갑에 돈이나 신용 카드만 챙기면 맨 손으로 어디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은 온 집안의 큰 행사였고, 오래 준비를 하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눈만 맞으면 언제든지, 어디서나 결혼해 버립니다. 결혼은 하늘이 맺어 준 신성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쉽게 이혼하고 또 결혼합니다. 특히 이곳 미국과 유럽 사회는 한 번 결혼한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입니다. 3번, 4번 결혼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노아의 때에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노아가 살던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결혼하여 거인들을 낳았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범죄한 천사”(벧전2:4),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유6)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일은 향후 몇 년 내지 몇십년 이내에 이 땅에 그대로 재현될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가 말한 대로 [이미 있던 것 그것이 후에 있겠고 이미 행한 것을 후에 다시 행하리니 해 아래 는 새 것이 전혀 없도다.](전1:9)입니다. 다니엘은 천년 왕국(돌왕국)이 세워지기 직전의 적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있을 일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같이 그들이 자기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것이나 그들이 서로 결합하지 못함이 쇠와 진흙이 섞이지 아니함 같으리이다.](단2:43). 우주 시대가 열리고 생명 공학과 유전 공학이 초고도로 발전될 때 사람들은 곧 닥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알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나마 있던 기독교 신앙은 아침 이슬처럼 말라 버릴 것입니다. 만약 지금 이 시대에 캘리포니아 상공에 단 한 대의 UFO가 1시간만 떠 있어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완전히 파산 나고 말 것입니다.

노아는 입 다물고 방주만 지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노아가 ‘의의 선포자’였음을 말합니다. [오직 의의 선포자인 여덟번째 사람 노아](벧후2:5). 노아는 에녹과 마찬가지로 죄와 세상과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세상은 노아를 광신자로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세상은 도리어 노아를 정죄하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노아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경고]을 들었으나 믿지 않았습니다. 자, 보십시오. ‘노아’란 이름은 안식이란 뜻입니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아들을 낳아 ‘노아’라 부르며 [주께서 저주하신 땅으로 인해 우리가 행하는 일과 우리 손의 수고에 대하여 바로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하리라.](창5:29)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라멕의 기대와 달리 노아가 살던 시대는 땅에 폭력이 가득하고, 죄악이 넘쳤습니다. 노아는 안식을 주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마11:28)의 모형이 아니라 ‘대 환란을 통과하는 의인들’의 모형이었습니다. 노아는 세상을 거부하고, 세상을 정죄하고 세상을 버림으로써 구원을 얻었습니다.

노아의 시대의 사람들의 영적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창세기 6:5-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커지고 또 그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주께서 땅위에 사람 만드신 것으로 인해 슬퍼하시며 또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시고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하되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날짐승까지 다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으로 인해 슬퍼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창6:5-7). 사람의 죄악이 얼마나 충만했던지 주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으로 인해 근심(repent)하시고 슬퍼할 지경이었습니다. 세상은 고쳐 쓸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폐기 처분해야 하는 그런 상태입니다. [땅도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폭력이 땅에 가득하더라. 하나님께서 땅을 보신즉, 보라 그것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 위에서 모든 육체가 자기의 길을 부패시켰기 때문이더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육체의 끝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이는 땅이 그들로 인해 폭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라. 보라,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6:11-13). *땅이 부패하다. - 성경에서 토양 오염은 ‘피를 흘리는 것과 음행, 우상 숭배’로 인함이라고 말한다(레18:27). 환경 물질의 배출 때문이 아니다. 노아의 시대는 폭력, 음행, 우상 숭배가 넘치던 시대였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폭력이 지배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살인, 음행, 우상 숭배가 일상생활의 일부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에녹과 노아라는 걸출한 하나님의 종들이 있었습니다. 에녹은 300년 동안이나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 대해 심판을 선포했으며, 노아는 방주를 지으며 120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벧후2:5). 자, 보십시오.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 완전한 자더니 그가 하나님과 함께 걸었더라.](창6:8-9). 그렇다면 온 땅에 모든 사람들이 부패하고, 폭력과 음행과 우상 숭배로 가득 찬 세대에서 노아는 어떻게 주의 은혜를 입었고, 의인이요,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해답은 이것입니다. 노아는 에녹이 선포한 주의 오심과 심판을 믿었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경고를 흘려 듣거나 거부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선포된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 들였습니다. ‘세상이 멸망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신다.’는 경고를 두려움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믿는 믿음이 노아의 믿음이며, 노아가 주의 눈에 은혜를 얻고, 주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는 말씀을 듣고 믿었기에 주의 눈에 은혜를 얻었고, 의인이라 불렸고, 완전한 자라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경고를 받고 날마다 자신을 돌아 보는 것이 경건에 이르는 길입니다. 성도들이 날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살펴 보고, 그 말씀의 경고를 받아서 지킬 때에 큰 보상이 있습니다. 시편19:7-11절,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回心)시키고 주의 증거는 확실하여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주의 법규들은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 주의 두려우심은 깨끗하여 영원토록 지속되고 주의 판단들은 진실하고 다 의로우니 참으로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또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주의 종이 또한 이것들로 경고를 받나니 이것들을 지킬 때에 큰 보상(湺尙)이 있나이다.](시19:7-11). 다윗은 “주의 종이 이것들로 경고를 받나니”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늘 곁에 성경을 두고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교훈을 받고, 위로를 받고, 책망을 받고, 바로 잡힐 뿐 아니라 [믿음으로 경고]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를 받았고, 지켰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경고를 받는 믿음’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이 바로 ‘노아와 같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경고를 받고 두려움으로 움직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 집을 구원하였으니 ...](히11:7a).

세상은 노아와 더불어 하나님께로부터 경고를 받았습니다. 심판이 있기 전에는 반드시 경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경고 없이 심판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여 회개하면 심판은 유예되거나 취소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를 심판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지만 먼저 요나를 보내 심판에 대해 사전에 경고를 하게 했습니다. 경고를 들은 니느웨의 왕과 모든 백성들은 금식하며 회개했고 그들에 대해 선고된 심판은 철회되었습니다. 침례인 요한은 자기에게 침례를 받으러 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오 독사들의 세대여,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 외쳤습니다. 경고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여 믿지 않는 자들에게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 증거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경고의 목적은 피하라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디신 것이 아니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2:9). 계속해서 거듭되는 경고를 무시하여 받는 보응은 결코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주의 말씀의 목적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또한 주의 종이 이것들로 경고를 받나니 이것들을 지킬 때에 큰 보상이 있나이다.](시19:11). 말씀의 경고를 받아 지킨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노아입니다. 말씀의 경고를 받고도 지키지 않아 멸망한 사람들이 바로 롯의 부인과 두 사위와 딸들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이 주는 경고를 늘 받을 줄로 압니다. 지킬 때 보상이요, 지키지 않을 때 손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이 주는 경고를 무시함으로 잃어버린 손해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흘릴 그의 눈물과 비례할 것입니다(계7:17).

가르침을 받기 전에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선포하여 각 사람에게 경고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완전한 자로 드리고자 함이니](골1:28).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때, 듣는 사람은 복(福)과 저주를 선택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은 모든 사람이 주의해야 할 생명과 죽음의 선택을 요구하는 이름입니다. 예수란 이름이 제시될 때 그것을 듣는 사람은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그만인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지상에서 인간이 짓는 가장 큰 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왜 죄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인 동시에 심판자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주께서 임하심으로 저주를 받을지어다.](고전16:22) 엄히 경고했습니다.

노아가 받은 경고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11:1에서 말한 진정한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우리가 믿는 믿음은 모두 미래적인 것입니다. 온 세상을 뒤엎을 홍수로 심판한다는 말은 누가 들어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불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은 핵 폭탄 이야기나 지구를 지나가는 혜성의 충돌 같은 것을 생각합니다. 믿는 자들이 어느 날 홀연히 변화되어 하늘의 천사들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하늘 나라와 지옥에 대해서 증거하면 ”네가 가봤어!“ 하며 조롱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노아와 같이 보는 것으로 걷지 않고 믿음으로 걷습니다(고후5:7). 본 것으로 믿는 사람은 은사주의자들 외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보지 못했지만 믿으며 사랑합니다. 하늘의 mansion을 보지 못했지만 소망가운데 확신합니다.

노아는 경고를 받았을 때 두려움으로 움직였습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모든 일의 동기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모든 일의 동기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의 신앙 생활을 권면할 때, [이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늘 순종하였듯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오히려 지금 내가 없을 때에 더욱더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라(work out your salvation)](빌2:12). 오늘날 성도들이 주님의 일을 하지 않고 자기 육신만 돌보는 것은 주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이 모든 것을 내 손이 만들었으므로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느니라. 오직 가난하고 영으로 통회하며 내 말에 떠는 자는 내가 보살피느니라.](사66:2).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자기 마음 가운데 성경의 기록된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하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성경의 기록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두려움과 떨림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 마음 안에 자기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뭐든지 내 뜻대로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나 실상은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잠언 기록만 잠깐 살펴보십시오. 참고- (잠1:7, 8:13, 9:10, 14:16, 15:33, 19:23)

주님의 경고를 받아 두려움으로 움직일 때 주님은 올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외치는 분들은 먼저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할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주를 두려워하는 자 누구냐? 친히 택하실 길로 그를 가르치시리로다.](시25:12). 하나님은 노아에게 일일이 해야 할 일을 작업장의 감독관처럼 지시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노아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예비했고, 가족을 보존했으며, 현 세상을 보존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직접 말씀하셨듯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직접 대화하십니다. 주님과 너무 오랫동안 대화가 단절되신 분들은 깊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기도를 통해 주님께 말씀을 합니다. 주님은 성경을 통해 내게 말씀하십니다. 흔히 사람은 자신이 마음 속으로 뭔가를 결정해 놓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립니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뜻이 무엇이든지 알기 전에 무엇일지라도 순종하겠다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성경적 예를 보겠습니다. 바울과 같이 위대했던 그리스도인도 이런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20:22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자 마음속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같은 결정이 사도행전 20:23, 21:4, 21:10-12에서 거듭되는 주님의 경고를 어기고 불순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육신으로 행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사도행전 21:30절부터 그의 사역은 마지막이 됩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어떠한 방법이나 형태로든지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옛 생활로 돌아가서는 안되며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로운 위치에 확고히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 은혜를 입었더라.](창6:8). 성경에서 처음 '은혜‘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가 은혜를 입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증거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노아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 짓는 일만 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노아를 “의의 선포자”라고 증거했습니다. 한 명의 회심자도 얻지 못했지만 세상을 향해 의를 선포하는 그의 전도 사역은 방주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그칠 줄 몰랐습니다. 노아의 인생은 사람들 앞에서는 광신자요, 바보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완벽했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창6:22, 7:5). 저와 여러분은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롬8:17).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증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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