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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하나님을 기쁘시게

말씀: 히브리서 11:5b
요절: 히브리서 11:5b


믿음으로 산 아벨과 에녹은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것이 있습니다. 아벨은 ‘의로운 자’(he was righteous)란 증거를 얻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 때 어떤 증언(증거)을 주시는데 이것을 일컬어 성경은 믿음으로 ‘좋은 평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장로들이라 일컫는 이들은 믿음으로 살았기에 믿음의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영광과 존귀와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능력과 성취와 업적 위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산 이들은 세상으로부터는 집중적인 조명을 받지 못했고, 무명한 자들이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으로부터는 칭찬을 듣고, 좋은 평판을 받았습니다. 사실 아벨, 에녹, 노아 등은 사람들이 기록한 역사 책이나 인물 사전에는 그 이름이 빠져 있지만 세상의 어떤 영웅들보다 그 이름이 더 많이 알려져 있고, 유명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실은 유명한 자들입니다. 모세는 “신실한 자”(히3:2,5)라는 평판을 받았습니다. 바울 역시 “신실한 자”(딤전1:12, 고전7:25)란 평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어떤 평을 받았습니까? [...또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내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행13:22). 하나님께서 다윗을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평하시는 기준은 능력이나 학력이나 부나 권세나 지위가 아닙니다. 그가 이룬 성취나 업적이 아닙니다. 인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십니다. 욥기 34:19, [하물며 통치자들을 외모로 받지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중히 여기지 아니하시는 그분...](욥34:19a). 주님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우리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영을 달아 보시고, 우리 속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평가 항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이 맡기신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신실하게 행할 때 그는 믿음의 좋은 평판을 받고,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신실한 성도들이라면 하나님을 시원케 하는 자들이란 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신실한 사자는 그를 보낸 자들에게 마치 수확 때에 내리 차가운 눈 같으니 그는 자기 주인들의 혼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25:13).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요약됩니다. 그는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은 것은 그가 상식과 이성을 초월하여 주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에녹은 [자신이 죽지 않을 것과 하늘로 옮겨질 것](히11:5)이란 주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는 상식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에녹은 주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믿을 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의 존재 이유요 목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존재합니다. 요한계시록 4:11,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계4:11).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것은 바로 이 목적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언이나 개그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가무, 연극, 공연 등을 기획해서 ‘나를 좀 기쁘게 해 다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뭘 많이 바쳐서 기분을 좋게 해달라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기쁘게 할 수 있는 전제 요건은 “믿음”입니다. 돈이나 능력이나 재주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에녹을 기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쁨을 얻었습니다. 기쁨을 누려 본 적이 없는 이들은 아무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무엇으로? [주의 법규들은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시19:8). 에녹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기쁨을 얻었습니다. 말씀장이라고 불리는 시편 119편을 보십시오. 다윗은 계속해서 주의 법규, 주의 증거, 주의 명령이 내게 기쁨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내 안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없다면 우리는 고난을 견딜 수 없습니다. 의로 인한 박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주의 법이 나의 기쁨이 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나의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119:92)고 한 그대로입니다. 예레미야가 눈물의 대언자로 불릴 만큼 고통과 박해를 받았지만 [...내가 주의 말씀들을 발견하고 먹으매 주의 말씀이 내게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이 되었사오니]...(렘15:16)라고 고백한 것처럼 주의 말씀, 주의 법은 믿는 성도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만약 성도들이 말씀을 통해 주의 기쁨의 강물을 마실 수만 있다면 신경 쇠약이나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질병, 연약함 등은 모두 해결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세상은 근심과 염려를 줍니다. 세상은 믿는 자들을 곤고하게 합니다.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고자 교회를 나와도 더 골치가 아프다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기쁨의 근원되시는 주님께서 믿는 자들 안에 기쁨을 줄 때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살전5:16). 에녹은 300년 동안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이 주신 기쁨으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 속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포도즙이 불어날 때의 기쁨 보다 더 크니이다.](시4:7). 에녹은 말씀을 통해 기쁨을 얻었고, 그 기쁨으로 인해 세상을 이길 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으로 에녹을 기쁘게 했습니까? [이는, 주여, 주께서 행하신 일을 통해 주께서 나를 기쁘게 하셨음이오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들로 말미암아 내가 개가를 높이 부르리이다.](시92:4). 에녹은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았고, 앞으로 행하실 일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묵상할 때 내 속에는 주의 기쁨이 넘치게 잔잔히 흘러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게 하기 전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걱정, 근심, 불안, 염려, 두려움이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내 속에 염려가 많을 때에 주의 위로가 내 혼을 기쁘게 하였나이다.](시94:19). 성경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영광이 가득한 기쁨”(벧전1:8), “넘치는 기쁨”(벧전4:13, 유1:24), “충만한 기쁨”(요일1:4), “큰 기쁨”(행8:8)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이런 기쁨으로 넘쳤습니다.

주님께서 슬픔의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기쁨이 있습니까? 주의 기쁨, 성령님의 기쁨(살전1:6)이 없다면 우리는 믿음의 삶이 고행의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곧 기쁨 충만입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갈5:22). 사람들은 주님의 기쁨이 아니라 세상에서, 일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아니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기쁨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평생을 살면서 잠시 기뻐할 일, 웃을 일은 몇 번 있지만 진정한 기쁨을 얻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신 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사람들은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매우 기뻐합니다. 그 존재가 탄생하는 자체가 기쁩니다. 아이는 말을 할 줄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할 수도 없지만 부모들은 생명의 탄생, 존재 그 자체에 기쁨을 누립니다. 임신했다는 소식만으로도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아버지들을 봅니다. 이는 우리의 존재 목적과 존재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약1:19). 성령을 통해 낳으셨습니다. 낳으신 분은 낳은바 된 자녀란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고 기뻐합니다. 우리의 존재 의미는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 잠시 기뻐하고 마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는 날마다 주님의 기쁨이 됩니다. [내가 그분 곁에 있되 그분과 함께 양육을 받은 자로 있어 날마다 그분의 기쁨이 되었으며 항상 그분 앞에서 기뻐하였고](잠8:30).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고, 그분의 기쁨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는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실존주의 철학이 유럽과 이곳 미국을 휩쓸던 세대에 많은 청년들이 허무주의에 빠졌습니다. 인간의 실존을 탐구한다는 실존주의만큼 인간의 실존 의미를 몰랐던 철학도 드물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의미, 삶의 가치, 삶의 존재 이유, 삶의 목표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서구 청년 사회에는 마약을 비롯한 약물 복용이 성행했고 알콜 중독자들이 넘치고 히피, 집시들만 양산되었습니다. 낙태와 동성애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버림으로써 정작 잃어버린 것은 자기 자신들이었습니다. 인간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것이요- [곧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자라. 이는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를 창조하고 그를 지었으며 참으로 내가 그를 만들었음이라.](사43:7). 그에 못지않는 또 하나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이는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이요,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 하더라.] (계4:11). 우리는 여기서 모든 피조물의 존재 목적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단연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존재 의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계4:11b)라는 성경의 선포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낍니다. 생의 허무 가운데 헤매다 이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 마음속에 스며든 감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는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의 대상이며, 사랑과 기쁨의 관계입니다. 탄생 자체는 세상에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며, 잃어버린 존재도 아닙니다. 부모의 실수로 태어났건, 계획하지 않는 가운데 태어났건 생명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부하는 자들이 낙태를 지지합니다. 그들은 유아 살해, 영아 살해를 행하면서 자신들의 선택을 존중해 달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그 누구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존재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분의 기쁨을 위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생명의 존엄과 경외감을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구원이 주님의 크게 기뻐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일임을 선포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자녀로 입양하셨으니] (엡1:4~5).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무한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일에 놀라시고 경이로워 하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시며, 만물이 주님의 뜻대로 계획대로 예정대로 움직일 뿐이라면 주님께서는 권태롭지 않으실까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분명이 기뻐하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날마다 기뻐하시며, 크게 기뻐하시는 뜻대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셨습니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 예정론을 지지하는 구절로 흔히 인용되지만 본문이 말하는 것은 ‘예정론’이 아니라 지극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스바냐 대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한가운데 계시는 [주] 네 하나님은 능하신 이시니 그분께서 구원을 베푸시고 너로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하시고 친히 사랑하시는 중에 안식하시며 너로 인해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우리는 주님의 기쁨을 위한 존재란 사실을 믿으십시오. 이보다 우리의 삶에 기쁨을 주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 했기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기쁨입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즐거워하십니다. [이는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즐거워하시기 때문이니 그분께서 온유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시리로다.](시149:4). 자기 백성이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입니다. 신약에서는 거듭난 크리스천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을 주님은 즐거워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쁨이라면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면 지식없는 열정으로 자신을 망치게 됩니다. 미가가 말하기를, [내가 무엇을 가지고 주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절을 할까? 내가 번제 헌물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분 앞에 나아갈까? 주께서 수천의 숫양이나 수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가 내 범죄로 인하여 내 맏아들을, 내 혼의 죄로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믹6:6-7)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런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자 다같이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언을 가졌느니라.](5b). 에녹이 얻은 믿음의 증언을 우리 역시 얻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말씀을 통해서 상고해 볼 때 주님께서 충만한 은혜를 저희 마음 속에 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감사로 그분을 크게 높이리니 이것이 또한 수소나 뿔과 굽이 있는 황소보다 [주]를 더 기쁘시게 하리라.] (시69:30~31).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할 때 기뻐하십니다. 감사할 때 기뻐하십니다.

-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기쁨으로 맞이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죄인의 회개는 하늘에서 기쁨의 잔치를 열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 사람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으로 인하여 더 기쁨이 있으리라.](눅15:7).

-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히11:6).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사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마8:10). 백부장은 믿음으로 주님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세상에 어떤 사건이 주님을 놀라게 하며, 어떤 사람이 주님을 놀랍게 만들 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히11:6)란 말씀은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 주님은 올바른 것을 기뻐하십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시험하시고 올바른 것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또 아나이다. 나로 말하건대 내가 올바른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자원하여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니 심히 기쁘나이다.](대상29:17). 올바른 예배, 올바른 기도, 올바른 섬김, 올바른 마음, 올바른 헌물 등 무엇이든지 올바른 것을 기뻐하십니다.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자들은 [주]께 가증한 자들이나 자기 길에서 곧바른 자들은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이니라.](잠11:20).

- 주님은 분리를 기뻐하십니다. 죄악을 단호하게 버리고, 끊어 버리는 자들은 주님의 긍휼을 얻습니다.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누구든지 죄들을 시인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으리라.](잠28:13). 죄를 인정하고 시인하면서 하던 짓을 계속하는 것은 주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분리할 때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여 이 땅 백성과 이방 아내들로부터 너희 자신을 분리할지니라, 하니](스10:11). 순결을 위한 투쟁은 악을 버리고 죄와의 단절에서 시작되며 이런 결단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 주님을 두려워하고 긍휼에 소망을 두는 자들을 즐거워하십니다. [주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자신의 긍휼에 소망을 두는 자들을 즐거워하시는도다.](시147:11). 하나님은 사악한 자를 향해서는 날마다 분노하시지만 주를 두려워하고, 주님의 긍휼에 소망을 두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 주님은 우리의 형통함을 기뻐하십니다. [나의 의로운 사정에 호의를 보이는 자들이 기뻐 외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참으로 그들이 계속해서 이르기를, 자기 종의 형통함을 기뻐하시는 [주]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35:27). 하나님은 우리의 형통함을 기뻐하시며, 잘되는 것을 좋아 하십니다.

- 주님은 꼭 맞는 추를 기뻐하십니다. [거짓된 저울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꼭 맞는 추는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니라.](잠11:1). 저울, 추, 잣대는 성경적 기준을 말합니다. 원칙을 말합니다. 틀린 잣대, 틀린 원칙, 틀린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제대로 살아도 틀린 인생입니다.

- 진실하게 행하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거짓말하는 입술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진실하게 행하는 자들은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이니라.](잠12:22). 마음의 진실함, 정직한 영으로 걷는 일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걸으면 모든 일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골1:10a).

- 곧바른 자의 기도를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사악한 자의 희생물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곧바른 자의 기도는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니라.](잠15:8). 바른 마음으로 드려지는 올바른 기도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반면 율법에서 귀를 돌이키는 자는 그의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됩니다(잠28:9). 바르게 구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주께서 그 말을 기쁘게 여기시니라.](왕상3:10)

-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은 {주}를 매우 기쁘시게 하는 것이니라.](골3:20). 이 점을 자녀들에게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부모에게 순종함으로 본을 보이고, 교육시켜야 합니다.

- 복음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는 일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복음을 위탁받은 대로 우리가 말하노니 이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2:4).

-이 세상 일에 얽매이지 않을 때 기뻐하십니다. [전쟁을 치르는 자는 아무도 이 세상 삶의 일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자기를 군사로 택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4).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알고 행하도록 합시다.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고 날마다 기뻐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우리 역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는 것은 확실한 기도 응답의 비결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그분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분의 눈앞에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기 때문이라.](요일3:22). 위에 언급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란 증거를 얻는다면 그보다 더 복된 인생이 없을 것입니다. 에녹이 얻은 증거를 우리 역시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들을 알고, 그것들을 행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시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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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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