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에녹은
말씀: 히브리서 11:5
요절: 히브리서 11:5
아담의 직계 아들 아벨의 믿음에서 곧 바로 7대손 에녹으로 넘어갑니다. 2,3,4,5,6대의 자녀들은 족보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소개되는 에녹은 성경 역사상 가장 독특한 인물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 영원히 죽지 않을 사람으로서 환란 전 이 땅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의 휴거(들림받는 것)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예언적 사건의 예표라는 점에서 에녹의 사건은 교회 성도들의 한 모델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벨과 에녹은 둘 다 믿음으로 살았고, 둘 다 의롭다는 증거를 얻었지만 그 믿음의 보상은 완전히 다릅니다. 아벨은 의로 인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들림(translated)을 받았습니다. 이는 신약 성경에서도 그대로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야고보는 헤롯에게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옥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건짐 받았지만 초대 교회의 많은 순교자들은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과학적 실험과는 달리 동일한 원인에 동일한 현상이 결과로 도출되지 않습니다. 상황마다, 개인마다 하나님께서 다르게 역사하십니다. “누구의 경우에, 어떤 경우에 이러했으니 나도 그럴 것이다.”라는 식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간증을 듣고 은혜를 받아도 그 사람과 같이 되게 해 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결과 죄인이 의롭게 되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언제나 같지만 그 나타나는 현상들은 경우마다 다릅니다. 이 땅에는 믿음으로 살다 아벨처럼 죽은 이들도 있지만 에녹처럼 하늘로 들림 받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에녹은 아담의 칠대 손이며 ‘야렛’의 아들로서 그 이름은 “헌신된, 바쳐진”(dedicated)이란 뜻입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헌신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믿음으로”(by faith)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믿음으로 들림 받았습니다. “들림 받다”(translate)는 말은 옮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세 번 나오는데 처음에는 사무엘하 3:10에 이스라엘 왕국을 사울의 집에서부터 다윗의 집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다음은 골로새서 3:10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골3:10). 성도들은 모두 영적으로 왕국이 옮겨진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죄악의 왕국, 어둠의 권능에서 하나님의 왕국, 빛의 왕국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어둠의 권능, 죄의 사슬에서 해방을 얻고 자유를 누립니다. 우리는 이미 한 차례 에녹과 같이 옮김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저 하늘로 옮겨질 것입니다. 하늘에서 나팔 소리가 나고 주님께서 “이리 올라오라” 말씀하시는 순간 무덤에서 잠자던 자들은 물론이요, 살아 있는 우리는 이 땅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저 하늘로 들림 받게 됩니다. 몸이 순식간에 더 변화되어 순간 이동한다는 것입니다(고전15).
창세기 5장을 보십시오. 아담부터 시작되는 인류의 조상들이 차례대로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낳았더라, 죽었더라”의 반복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5:21-24절에 갑자기 이런 반복의 사슬을 끊고 “죽었더라”가 없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에녹은 육십 오년을 살며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뒤 삼백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아들딸들을 낳았더라. 에녹의 전 생애는 삼백육십오 년이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took) 그가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창5:21-24). 에녹은 300년을 하루같이 주님과 동행하다가 어느 날 이 땅에서 실종되었습니다. 경찰에서 아무리 찾아도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실종이었습니다. 죽은 것이 아닙니다. 유괴된 것도 아닙니다. 더 깊은 종교적 수련을 위해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으로 숨어 버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 데려 가 버리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기독교인들 사이에 “하나님께서...형제(자매)를 데려 가셨습니다.”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육신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데려 간 것은 ‘영과 혼이지 몸’이 아닙니다. 몸은 이 땅에 남겨 두고 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은 이의 몸을 땅에 묻거나 화장을 하거나 등등의 장례를 치릅니다. 그러나 에녹의 경우 “하나님께 그를 데려 가셨다”는 것은 영과 혼이 아니라 몸 자체를 산 채로 하늘로 옮기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5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란 말이 죽어서 혼이 떠났다는 말이 아니라 전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는 뜻이란 사실을 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통해 에녹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1. 에녹은 아담의 7대손이었다. 2. 에녹은 야렛의 아들이다. 3. 에녹은 65세에 아들 므두셀라를 낳았다. 4. 그는 아들을 낳은 후부터 300년을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5. 365세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 데려 가셨다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 그에 대한 정보가 몇 가지 더 추가 되어 있고, 설명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과 유다서에 에녹이 무슨 일을 했는가? 어떻게 살았는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에녹과 에녹의 믿음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에녹과 동일한 믿음의 영을 주셨음을 믿습니다(고후4:13).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찾지 못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언을
가졌느니라.](5). 첫 마디 말씀에 주목해 보십시오. 에녹은 다른 믿음의 사람들과 같이 무엇을 바치거나 싸우거나 떠나거나 버리거나
지키거나 등등의 능동적인 무슨 행위를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행동하는 믿음을 살아 있는 믿음, 순종하는 믿음이라고 칭찬하고
따르려고 합니다. 그런데 에녹이 믿음으로 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쉽게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잘 읽어 보십시오.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 에녹이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한 것이 맞다 할지라도 지금 히브리서 기자의 초점은 동행이 아니라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 것’입니다.
에녹은 무엇을 믿은 것입니까? 자신이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아벨이 믿음으로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이 의롭게 되고, 하나님께 받아 들여지는 법에 대해서 증거했다면, 에녹은 믿음으로 죄인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고, 지옥이 아니라 하늘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에녹이 어떻게 죽지 않았습니까? 그가 에덴의 동산으로 들어가서 생명 나무 실과를 훔쳐 온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신비를 깨우치고, 불사약을 개발한 것이 아닙니다. 에녹은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신의 인물도 아니고, 천사의 씨도 아닙니다. 그는 아담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죽음을 보지 않았던 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에녹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 생명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생명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임을 보여 준 실례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저 하늘로 올라가는 방법 역시 ‘믿음’이란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40)고 하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100세가 된 노인이 아들을 얻는 것이나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믿음도 큰 믿음이지만 ‘자신이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 진다’는 믿음을 가졌던 에녹의 믿음이야말로 정말로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납니다(롬10:17).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믿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말씀에서 생기는 것이요,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입니다(엡2:9). 믿음은 성령으로 인해 맺어지는 열매입니다(갈5:22). 에녹이 주님과 300년을 함께 걸으면서 주님으로부터 듣고 믿은 것은 ‘세상은 심판을 받아 멸망하지만 너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진다’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에녹은 노아가 하늘에서 비가 온다는 사실을 믿었듯이 자신이 이 땅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지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보지 않는 것이 믿음으로 되는 일입니까? 하늘로 옮겨지는 것이 믿음으로 되는 일입니까? 에녹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영생불사를 꿈꿉니다.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로 올라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에 대한 해답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살 때 영생을 얻습니다. 믿음으로 살 때 하늘로 옮겨집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실증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에녹은 가인이나 아벨이나 아버지 ‘야렛’과 마찬가지로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입니다(히9:27). 그런데 에녹이 믿은 믿음의 내용인 즉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입니다. 그는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죽을 수 밖에 없지만 ‘믿음으로 살 때’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첫 사람입니다. 믿음은 죽음을 이깁니다. 믿음은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사망을 이깁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옮겨집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 땅에서 저 하늘로 옮겨집니다. 에녹처럼 우리는 옮겨집니다. 우리는 이 썩을 몸에서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타 없어질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 하늘에 마련된 우리의 몸, 우리의 맨션으로 옮겨집니다.
창세기 5:22에 에녹의 기사를 보면, [...므두셀라를 낳은 뒤 삼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walk with God) 아들딸들을 낳았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0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지 않는 시간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보았거나 느꼈거나 체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믿음으로”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함이라.)](고후5:7)는 말씀에 가장 충실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에녹이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65세까지는 별볼일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이한 것은 “므두셀라를 낳은 뒤”에 삼백년이란 점입니다. 그는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아들 므두셀라를 낳기 전에 에녹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의 아버지들은 결혼해서 자식을 낳을 때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생명의 존귀함을 몸소 체험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고, 사람들이 다르게 보이고,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제 자식도 생겼으니...”란 말은 흔히 듣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자식이 생기면서 삶이 진지해 지는 경우는 흔히 있지만 자식이 생겼다고 해서 갑자기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들을 때만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므두셀라의 출생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이 65세에 자식을 낳고 이런 믿음의 삶을 살게 된 데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므두셀라는 히브리어로 “그가 죽으면 그것이 보내어 질 것이다.”란 뜻의 이름을 지녔습니다. 이 이름을 에녹이 직접 지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에 대한 분명한 계시를 받았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이후로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심판과 재림에 대한 예언을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다서 14-15절에 자세히 나옵니다. [아담으로부터 일곱 번째 사람인 에녹도 이들에 대하여 대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자신의 수만 성도(ten thousands-일만 성도)와 함께 오시나니 이는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집행하사 그들 가운데 경건치 아니한 모든 자들이 경건치 아니하게 범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그분을 대적하여 말한 모든 거친 발언에 대하여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다서14,15). 에녹은 노아와 마찬가지로 의의 선포자였고, 하나님의 오심과 심판을 선포한 대언자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연도 계산을 해 보겠습니다.
아담을 1년으로 하면 에녹은 622년에 태어나 687년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987년에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에녹은 자식 므두셀라가 300살이 되도록 믿음의 본을 보인 훌륭한 가장이었습니다. 이때까지 아담은 살아 있었고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심판과 재림에 대해 전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담은 8대손 므드셀라와 243년간을 같이 살았습니다.).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으므로 1656년에 죽었습니다. 노아가 1056년에 태어나 600세 때 홍수가 났으므로 노아의 홍수가 나던 해에 므두셀라는 죽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므두셀라는 살아 있었습니다. 므두셀라는 아버지가 의를 전파하는 것을 들었고, 손자가 의를 전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에녹은 자식을 낳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증거하기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언을 가졌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다음 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에녹은 30년이 아니라 300년을 주님과 동행했다면 그가 얼마나 신실한 사람이었는지 상상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동행하는 것은 마음이 일치해야만 가능합니다. [두 사람이 합의하지 아니하고서야 어찌 함께 걷겠느냐?](암3:3). 에녹의 마음은 하나님과 일치하였습니다.
에녹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히9:27)란 주님의 말씀에 예외적인 적용을 받은 최초의 사람입니다.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곧 바로 들림 받는 교회의 모형입니다. 지금 주님이 오신다면 저희 교회 형제, 자매님들은 모두 죽음을 맛보지 않고 에녹처럼 바로 올라갑니다. 그는 노아의 홍수를 보지 않고 들림 받았기 때문에 교회 또한 환난을 보지 않고 들림 받을 것입니다. 에녹의 기적적인 들림 받은 사건이 세상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의 휴거 역시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한 날 한 시에 모두 휴거 되어 버리면 세상이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고 마비될 것처럼 걱정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매주 세상에서 빠져 나오는 휴거 연습을 합니다. 주일마다 집과 직장을 떠나 교회로 옵니다. 지금 세상을 보십시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만약 주말에 휴거 시켜 버리면 세상 사람들은 그 다음날까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교회 간 줄로 알 것이고, 어떤 목사님은 ‘오늘따라 믿음 좋은 사람이 교회 안 나왔네’ 할 것입니다.
에녹의 예언을 다시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일곱 번째 사람인 에녹도 이들에 대하여 대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자신의 수만 성도(ten thousands-일만 성도)와 함께 오시나니 이는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집행하사 그들 가운데 경건치 아니한 모든 자들이 경건치 아니하게 범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그분을 대적하여 말한 모든 거친 발언에 대하여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다서14,15). 에녹의 설교에서 계속 반복되는 말은 “경건치 아니한”(UNGODLY)이란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에녹은 경건한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았고, 그들에게 부정적인 설교를 했습니다. 그의 설교 내용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심어 주는 내용이 아닙니다. 심판과 정죄에 대한 경고의 설교였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마치 노아의 시대와 같다고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에녹이나 노아가 한 설교와 우리의 설교는 비슷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입술에는 항상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있어야 합니다. 죄에 대한 분명한 지적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삶의 지침이 분명해야 합니다. 삶의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바울이 벨릭스에게 한 개인 전도를 유념해서 보십시오. 사도행전 24:25에 이르기를 [바울이 의와 절제와 다가올 심판에 대하여 설명하니 벨릭스가 떨며 대답하되, 이번에는 그만 가라. 적당한 때에 너를 부르리라, 하고](행24:25). *의는 불의한 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주제입니다. 절제는 육신과 세상의 쾌락을 즐기는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주제입니다. 다가올 심판은 모든 죄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주제입니다. 바울은 총독 벨릭스가 가장 싫어할 만한 소리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삶이 어떤 삶인지 성경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말라기 2:6에 이르기를,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법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공평으로 나와 함께 걸었으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불법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말2:6). 여러분은 주님이 이 세상을 다시 심판 하러 오신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 줘야 할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대가없는 삶이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는 멸시와 조롱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는 옮겨지는 영광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다 어느 날 갑자기 저 공중으로 옮겨지는 영광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누구를 기쁘게 하며 살 것인가?”입니다. 아마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답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냐,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한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리라.](갈1:10). 그리스도의 종은 사람들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지만 사람들을 기쁘게 해서도 안됩니다. 주님은 [나를 보내신 분께서 나와 함께 계시도다. 내가 항상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그분께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이웃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반면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은 유익이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5:2-3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그의 유익을 구하여 세워지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이 나를 덮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15:2-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면 내 안에는 성령이 주시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에녹의 믿음의 삶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창5:22).
‧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 가족들에게도 믿음의 영향을 끼쳤다(므두셀라, 라멕, 노아까지).-창5:23
‧ 그의 생애는 turning point가 있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유14-15).
‧ 설교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님의 재림, 성도들의 구원, 주님의 심판,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 믿음의 결과 - 들림받았다.
이제 우리는 아벨과 에녹이란 2명의 믿음의 영웅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벨과 에녹은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하신 말씀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합니다. [너희가 이 빵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아벨의 피)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에녹의 휴거) 보이느니라.] 이미 말씀드린대로 아벨과 에녹은 동일한 믿음의 증거를 가졌지만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방법은 완전히 다르셨습니다. 아벨은 죽임을 당했고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들림을 받았습니다. [은밀한 일들은 주 우리 하나님께 속하거니와 드러난 일들은 영원토록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하나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신29:29). 동일한 믿음이라고 해서 동일한 현상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생각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다만 이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뿐입니다.
저는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누구일까요? 므두셀라(969세). 에녹은 5,000살이 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에녹이 얻었던 것과 동일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 주님과 동행 --빛 가운데서 교제하라(요한1:7).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