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보이는 것들은

말씀: 히브리서 11:3 
요절: 히브리서 11:3

오늘 이 시간은 생명의 기원,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좀 다루겠습니다. 이 주제는 모든 종교와 철학의 근원적인 질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신자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답을 주지 못합니다. 성경은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란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정확하고 간략하게 대답해 줍니다. 성경은 유물론(唯物論)을 단호히 반대합니다. 생명은 생명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이 열매를 맺도록 명하셨습니다. 물이 생명을 냅니다. 땅에서도 생명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대의 철학자들은 땅과 물이 생명의 근원이요, 기원인 줄로 알았습니다. 과학이 발전한 현대인들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열심히 물질에서 우주의 기원을 찾고, 생명의 기원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방향부터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기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히11:3). 이것을 어떻게 압니까?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거듭나지 못한 이들이 갖고 있지 못한 진리를 알고 판단할 수 있는 지각 기관이 있습니다. 구원받는 순간 우리는 믿음을 통해 영적인 것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것들을 우리는 세상이 결코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압니다.

거듭난 성도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도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지각의 눈(엡1:18), 영적인 눈이 밝아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가 무엇으로 창조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이 지어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눈은 있지만 마음의 눈은 어두워져 있습니다. 에베소서 4:18, [그들의 지각(知覺)은 어두워지고 그들 속에 있는 무지(無知)와 그들의 마음이 눈먼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도다.](엡4:18). 그래서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또 다른 것들의 합성으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물질의 합성, 진화를 주장합니다. 잠시 생각해 봅시다. 자동차는 이 땅에 있는 모든 보이는 것들을 캐내어서 만든 것입니다. 땅에서 나는 물질들을 가지고 도구를 만들고, 기계를 만들고, 그것으로 에너지를 만듭니다. 석유를 캐내고 천연 개스를 캐냅니다. 이 땅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사람들이 만든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당장 우리 주위를 보십시오. 모두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백화점에 들어가 보십시오. 아예 창을 만들어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것들을 보지 말고 사람이 만든 것들만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새로운 제품,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려는 노력은 엄청납니다. 인공 지능 로봇도 만들고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하는 중입니다.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히11:3b)는 말씀은 공장에서 일하는 제조업자들이나 장인(匠人)들에게는 이 무슨 말인가 이해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모든 제품은 다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한 가지 원소라도 발견하고, 그 특성을 파악하면 그것을 이용해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연구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었다고 특허를 내고 수익성을 따집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히11:3b). 이는 공산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흙으로 집을 지을 수 있고, 석회석으로 시멘트를 만들고, 쇠를 캐내고 금을 캐내어 기계 장비를 만들 수 있지만 흙을 만들 수 없습니다. 석회석을 만들 수도 없고 철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금을 녹여서 금 반지나 장신구를 만들 수는 있지만 금(Gold)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연금술사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애를 썼지만 금을 만들 수 없었던 것은 ‘금’(보이는 것)은 ‘나타 보이는 것들’(각종 재료들의 합성)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원자를 일컬어 합성된 것이 아니라서 더 분리할 수 없는 최소 단위라고 말합니다. 그 말인즉 ‘원소’로 규정된 것들은 사람들이 결코 만들 수 없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유가 뭡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규정해 놓고도 답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히11:3b). 생명의 분야로 접어들면 더욱 그러합니다. 사람들은 유전 공학을 이용해서 신품종을 만들고, 유전자 조작을 하지만 생명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풀 한 포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나뭇잎 한 장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것들을 왜 못 만듭니까? 풀이나 나뭇잎은 우리 눈에 잘 보이는 것들입니다. 귀한 것도 아니고, 값비싼 것도 아닙니다.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재료비가 들어갈 일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많은 석학들이 팀을 만들어서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투자해도 그들이 결코 풀 한 포기, 나뭇잎 한 장을 만들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성경에 그 답변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히11:3b). 동식물들은 모두 눈에 보이지만 만들 수 없습니다.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눈에 보이지만 누구도 하늘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하늘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수족관을 가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는 롱비치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가면 거대한 수족관이 꼭 바다를 옮겨 놓은 듯합니다. 사람들은 정교한 기술로 거대한 수족관을 만들었지만 수족관 안에 있는 작은 고기 한 마리도 만들어진 것은 없습니다. 거기에 헤엄치는 많은 생물들 중 단 하나라도 만들어서 넣어 놓은 것은 없습니다. 모두 바다에서 잡아다가 넣어 놓았을 뿐입니다. 수목원에 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수만 종의 나무와 꽃과 풀을 심어 놓고 가꾸어 놓았습니다.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사이를 걸으면 삼림욕이 되어서 몸이 맑아지고 정신이 개운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거기에 있는 작은 이끼하나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이 말해 줍니다.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히11:3b). 그럼 동물들, 식물들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단 말입니까? 그것들은 모두 예외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늘 보이는 하늘, 땅, 공중의 새, 들의 꽃과 풀, 각종 나무들이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십니다. [[주]의 말씀으로 하늘들이 만들어지고 하늘들의 모든 무리가 그분의 입의 호흡으로 만들어졌도다.](시33:6). 하늘을 만든 재료는 눈에 보이는 어떤 원소들의 결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늘들의 무리들이 만들어진 재료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호흡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과 해와 달과 별들이 빅뱅으로 저절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교하게 지어진 것’(framed)이라고 말씀합니다. *frame- 구조, 조직. [그분께서 말씀하시매 그것이 이루어졌으며 그분께서 명령하시매 그것이 굳게 섰도다.](시33:9). 다윗은 이미 어떤 물리학자들이나 생물학자들이 결코 알지 못했던 우주 만물의 생성 요소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고 우리에게 전해 줍니까? [믿음을 통해서...깨닫나니]. 모든 영적 지식은 믿음을 통해서 옵니다. 베드로후서 3:5,7절입니다. [그들은 이 사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고 또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아니하느니라.](벧후3:5). 사람들이 창조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은 ‘일부러 알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지식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창조주의 존재와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믿기 싫어하는 고의적 무지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도 만들어진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있는 이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사...](벧후3:7a).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권능의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고 계십니다. 권능의 말씀을 붙들고(uphold) 계십니다. 느헤미야는 말하기를, [오직 주는 홀로 [주]시니 주께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그 모든 군대와 땅과 그 안의 모든 것과 바다들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다 보존하시오매 하늘의 군대가 주께 경배하나이다.](느9:6).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매”란 말씀을 보십시오. 주님만이 생명의 창조주이시고, 지으신 것들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이 위대한 한 마디 말씀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게 됩니다. 창조주를 믿는 창조 신앙이야말로 모든 신앙의 기본이며 출발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마귀는 늘 창조에 대해서 가장 강력하게 공격합니다. 모든 과학자들은 마치 창세기가 허구임을 입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진화론을 필두로 성운 가설, 빅뱅 이론 등 갖가지 이론들이 모두 창조 신앙을 공격합니다. 연일 우주선을 쏘아 올리며 우주의 기원에 대한 단서를 찾을 것처럼 떠들어 댑니다. 조만간 모든 비밀이 풀릴 것이라고 광고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중 단 한 가지도 만들어 보지 못한 인간이 마치 창조주인 것처럼 행세하며 앞으로는 모두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처럼 자랑합니다. 해답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거짓을 떠드는 일이야 말로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우리는 매일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별로 노력을 하지 않고, 의식을 하지 않아도 하루에 몇 번은 하늘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몇 번씩이나 보는 하늘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전혀 모릅니다.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하늘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매일 땅을 봅니다. 이 도시는 온통 콘크리이트 바닥이라 사람들이 만든 것들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대부분 가리고 있지만 그래도 나무가 있고 잔디가 있어서 땅을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땅, 흙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습니까? 흙을 구성하는 32가지 원소를 아무리 혼합해도 흙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이는 것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창1:1). 이게 전부입니다. 물질의 기원이 이것입니다. 모든 것의 생성의 원인이 이것입니다.

창세기 1:1은 모든 과학과 철학, 사상의 기초입니다. 이런 간단한 진리의 지식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이해 불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곧 내 손이 하늘들을 펴고 하늘들의 모든 무리에게 명령하였노라.](사45:12).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창1:21).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창1:27).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는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압니다. 진화론자들, 유물론을 바탕으로 한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은 물질로 봅니다. 정신은 물질의 진화 또는 작용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생명의 존엄함이나 인간 존중이 없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볼 때 그가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피조물]임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참된 인간 존중, 인권은 창조주에 대한 지식과 믿음에서만 나옵니다. [나를 모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모태 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욥31:15). 이런 지식이야 말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참다운 인간애의 기초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보살핌과 돌봄의 기초 역시 창조 신앙이 근간입니다. 맹인, 귀머거리, 벙어리를 누가 지었습니까? 주님이 친히 지으셨습니다(출4:11).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하지 말고, 앞에 장애를 놓지 말고 보살피고 존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민족들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오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들이 주 앞에 와서 경배하고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리이다.](시86:9). 바른 민족주의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을 때 질서와 조화 가운데 평화를 누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족주의는 다툼과 전쟁만 불러일으킵니다. 이 지상에서 유일하게 모든 민족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없애 버려야 한다는 공격을 받는 민족이 있습니다. ‘유대 민족’입니다. 중동의 많은 민족들 사이에 둘러쌓여 있는 이스라엘은 전쟁이 없는 날보다 전쟁으로 더 많은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상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이란 민족의 기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많은 통치자들이 두려움을 모르고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 정책을 폅니다. [그러나, 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께서 이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기 때문이니 너는 내 것이니라.](사43:1). 세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지으신 민족이란 점을 부정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란 점을 미워합니다.

다시 말씀을 보십시오.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히11:3b).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지 않습니까? 도공들은 흙으로 도기나 자기를 만들어서 뜨거운 불 속으로 집어넣습니다. 예술성이 높고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난 도자기가 나왔다고 해도 그들이 흙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대장장이들이 풀무에서 뛰어난 칼을 만들어 낸다 해도 쇠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늘 바람을 접합니다. 바람이 없는 날은 덥고 불쾌해서 쉽게 짜증이 납니다. 바람을 창조하신 분이 누구입니까?(암4:13) 주님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 주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믿습니다. 우리 눈이 볼 수 있다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로 알고 그것만을 신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모든 것을 보라고 눈을 주셨지만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보이는 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며, 소망의 실체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눈에 볼 수 있는 것만을 믿으려고 합니다. 사실 눈으로 무엇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보지 못하는 이들의 소원은 단연 보는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눈먼 자들이 주님께 “보게 하옵소서”라고 외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은 눈이 약하고 아픈 이들은 이미 충분히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서 11:7에, [진실로 빛은 달콤한 것이요, 눈으로 해를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로다.](전11:7)라고 합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돋보기, 현미경을 통해 사물을 봅니다. 보이지 않는 신체 속을 보기 위해서 초음파 사진을 찍고, 속에 내시경을 집어넣어서 봅니다. 더 멀리 보기 위해서 망원경을 만들어서 봅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하늘로 날아오는 적들을 보기 위해서 각 나라마다 ‘방공망’을 가동합니다. 볼 수만 있다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믿음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성도들도 마음이 급해지면 무엇을 좀 보았으면 하는 욕망이 생깁니다. 실제로 가서 보지 못하면 환상이나 꿈이나 다른 방법으로라도 좀 보기를 소원합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결코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 지각의 눈, 믿음의 눈을 갖기를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 말씀을 우리의 영적 생활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형제를 볼 때면 ‘요즘 좋아 보인다. 평안해 보인다. 기뻐 보인다.’ 등등의 말을 합니다. 좋음(goodness-선함), 평안(peace), 기쁨(joy) 등이 얼굴 표정이나 말이나 행동을 통해 드러나 보일 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는 선함, 평안, 기쁨 등은 결코 나타나 보이는 것들(물질, 돈, 명예...) 등등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한대로 “보이는 것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해 보입니까? 너무 너무 행복한 모습으로 등장해서 “나는 행복하다. 나는 복을 받았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는가?” 물어 보기도 하고, 행복해 지는 비결이라도 있으면 한 마디 해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해 보이는 것은 결코 나타나 보이는 것-돈, 직장, 친구, 학위...- 등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안식, 자유, 선함, 평안, 기쁨, 행복 등이 입술의 열매, 성령의 열매로, 선한 행위로 드러나 보일 수 있습니다. 향기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드러나 보이는 것들은 결코 이 세상에 나타나 보이는 육신의 어떤 것, 물질의 소유 따위로 우리 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코미디나 개그 프로그램, 영화나 연극, 소설이나 기타 무엇을 아무리 보아도 마음속에 평안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개그맨들은 사람들에게 웃음은 만들어 줄 수 있을지라도 기쁨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배꼽을 잡고 눈물이 빠지도록 웃게 만들 수 있는 재주가 있는 사람도 그 사람 안에 평안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에 걸친 옷이나 보석들은 돈으로 살 수 있고, 드러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못 만들 것이 무엇이냐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요즘은 돈만 주면 대학을 안 가도 박사 학위도 받을 수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불가능이 없는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영적인 복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만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결코 현상과 본질을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보이는 것은 현상입니다. 결코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새로운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새로운 성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보이지 않는 것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우리 속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심으로(시51:10) 새 성품을 지닌 새 사람을 만드십니다. 눈에 보이는 인격의 변화, 삶의 변화를 원하십니까? 보이는 것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흥, 눈에 보이는 열매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결과를 원하십니까? 보이는 것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보이는 것들을 만들어 내려는 어떤 시도나 노력을 하면 할수록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추구하고, 내 마음에 채우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묵상함으로 내 안에 가득 채울 때 평강과 기쁨과 선함, 온유와 같은 열매들이 드러나 보이게 됩니다. 내 안에 성령으로 가득 채움 받을 때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이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삶으로 드러나 보이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충만할 때 믿음의 선한 행위들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타나 보이지 않았던 것을 추구했던 아브라함과 눈에 보이는 것을 선택했던 롯을 비교해 보십시오. 드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눈에 보이는 저주받은 물건을 탐했던 아간을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을 탐했던 게하시를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대로,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행하는 이들의 결말은 늘 멸망이었습니다.

우린 이 시간 다시 한번 이 말씀이 주는 진리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히11:3b).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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