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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믿음이 없이는

말씀: 히브리서 11:6 
요절: 히브리서 11:6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어떤 이는 돈이라고 말합니다. “돈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나니...”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많은 현대인들이 100% 지지하지는 않을지라도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어떤 이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능력이 없이는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 시절에 늘 듣던 말 가운데 하나는 “실력을 기르자.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자!”였습니다. 돈과 능력만 있으면 가족, 직장, 친구는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런 견해와는 달리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믿음으로 구하고, 믿음으로 싸우고, 믿음으로 정결하게 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믿음으로 거룩하게 구별됩니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죄입니다(롬14:23). 이런 점에서 우리는 믿음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지금 히브리서를 쓴 바울은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나니”(impossible to please God)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없었던 가인은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렸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의로운 자라는 증거도 얻지 못했습니다. 땅에서 나는 헌물을 가지고 왔을지라도 믿음으로 행하지 않았을 때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한 그는 ‘몹시 분해하며 침통해 했습니다(창4:5-6). 에녹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그는 보는 것으로 걷지 않고 믿음으로 걸었기 때문입니다(고후5:7). “믿음”이 빠진 행위는 그것이 헌물이든 경배이든 찬양이든 감사이든 그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며,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특히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제사장들, 서기관들은 믿음이 없이 얼마나 열심히 철저하게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준 예들입니다. 그들은 믿음과 상관없이 율법을 준수했고, 전통을 지켰고, 헌금을 드렸고, 성전으로 가서 헌물을 드리고, 길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화 있을진저!”

성도에게 ‘믿음이 없다’라는 말은 차에 엔진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전자 제품에 전기가 없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믿음이 없는 성도란 생명이 없는 몸이란 말이나 영이 없는 사람이란 말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없이는 살 수 없다, 능력이 없이는 살 수 없다, 학벌이 없이는 살 수 없다 등의 말을 합니다. 정치인들은 권력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선수들은 “인기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환자들은 ‘의사 없는 세상, 약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 하지만 그것들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땅의 성도들은 모두 “믿음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성도에게 믿음이란 생명과도 같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영적 생활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다 믿음으로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에서 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다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롬14:23). 믿음이 없이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11:6). 믿음이 없을 때 주님은 꾸짖으십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이나 무리들이나 어떤 죄인들을 향해서 돈이 없다는 이유로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식하다는 이유로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인물이 못났다거나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꾸중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을 때 “어찌하여 마음이 완악하냐?” 꾸짖으셨습니다.

성도들이 별 부끄러움도 없이 “저는 믿음이 너무 없어요”라고 말하거나, “믿음이 약해요, 믿음이 어려요”란 말을 겸손이나 미덕처럼 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은 식탁에 빵이 없다, 우물에 물이 없다, 들에 양식이 없다는 말보다 더 심각한 말입니다. 믿음은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은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 안에 전달되고, 효력 있게 일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효과적으로 믿음이 자라나고 강해지는 법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 것입니다. “믿음”은 자가 생산성이 없습니다. 믿음은 결코 자연 발생적이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믿음을 생산할 수 없고, 자라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지력, 신념, 정신력은 수련이나 명상이나 기타 훈련으로 깨울 수 있고, 강하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닙니다. 저는 스포츠 심리학이란 것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운동 선수들이 큰 경기를 앞두고 긴장으로 인한 실수나 위축을 방지할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하게 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정신력이 강하다’는 말은 ‘믿음이 강하다’가 아닙니다. “배짱이 좋다, 독종이다”란 말과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믿음]이란 혼의 영역이 아니라 ‘영’의 영역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로마서 10:17,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느니라.](롬10:17).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얻고, 강하게 하기 위해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는 친교도 중요하고, 여러 가지 유익한 행사도 중요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런 것들에서 믿음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통한 친교,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행사나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무익할 뿐 아니라 영적 유해물이 되고 맙니다. 교회가 집중해야 할 사역은 ‘말씀 사역’입니다. 성도들이 집중해야 할 일 역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어도 어떤 강연에서, 어떤 책에서, 어떤 사람의 간증이나 교훈을 통해서 얼마든지 감화를 받을 수 있고 인생의 가치관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믿음이 생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종교적 감화가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생관이나 가치관의 변화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만 납니다. 말씀에서 난 것이 아니라면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들으라”고 말합니다. 

[그분의 요란한 음성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라.](욥37:2). 주의 말씀을 흘려듣지 않고 주의 깊게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말씀을 대할 때 어두운 곳에서 빛을 대하듯이 주의 깊게 대해야 합니다(벧후1:19). 시편 49:1, [만백성아, 너희는 다 이것을 들으라. 세상의 모든 거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이라.](시49:1).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지 않고 행하는 것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4:10에 [오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들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삶의 햇수가 많게 되리라.](잠4 10)고 합니다. 이사야 28:23에도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귀를 기울이고 내 말을 들으라.](사28:23)고 말합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교회로 오고, 성경을 펴 든다면 그의 믿음은 결코 약해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망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 탄식하셨습니다. [오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오 이스라엘이여, 너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면 얼마나 좋을까.](시81:8). 말씀을 들으라는 말은 믿음의 근거와 믿음의 대상을 제시해 주는 동시에 그 자체가 믿음의 씨앗이 됩니다.

불신과 반역은 말씀을 듣지 않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이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아니하고 자기 목을 굳게 하되 주 자기들의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던 자기 조상들의 목과 같이 하여](왕하17:14). [이는 그들이 주 자기들의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분의 언약과 주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어기고 그것들을 들으려 하지도 아니하고 행하려 하지도 아니하였음이더라.](왕하18:12). 이들은 말씀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웠던 것이 아닙니다. 들으려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믿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는 반역하는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녀들이요, 주의 법을 들으려 하지 아니하는 자녀들이니라.](사30:9).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을 때 주님은 그들의 기도, 간구, 외침도 듣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외쳐도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이 외쳐도 내가 들으려 하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슥7:13).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 하나가 ‘믿음’이란 사실을 봅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믿음)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엡2:8-9).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주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고린도전서 12:9,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믿음을...](고전12:9a). 여러분은 무엇을 선물로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들은 성경에 열거되어 있습니다(고전12:8-11).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선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 주시기를 구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선물로서 믿음을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사도들은 믿음을 구했습니다. [사도들이 주께 이르되,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켜 주옵소서, 하니](눅17:5). 우리 역시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믿음이 필요하다,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믿음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막9:23)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급할 때, 긴급한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도 나를 도와 줄 수 없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한 가지는 돈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뛰어난 재능이나 기술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것은 믿음으로 선한 일을 하고, 덕을 세우고, 서로 섬기는 일을 하게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자, 보십시오. 나는 믿고 싶은데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처음 점검 사항은 믿음의 말씀을 듣는 것이요, 두 번째는 주님께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요구하는 주님 앞에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 주소서](막9:24) 간구했던 어떤 사람처럼 우리 역시 그렇게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않겠다고 작정했던 도마를 향해 주님은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b)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십니다. 성령의 열매 중 하나가 믿음입니다(갈5:22-23). 믿음은 우리 자신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입니다. 육신으로는 결코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안에 주님께서 친히 맺으시는 열매가 믿음입니다. 믿음의 씨앗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자랄 때 믿음은 열매로 맺히게 됩니다. 갓 태어난 아기들처럼 말씀의 젖을 사모할 때 그 젖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이 젖으로 자라가도록 하라.](벧전2:2). 열매는 성장의 표시입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는 것이 부흥이요, 성장입니다. 사도 행전에 보면 교회를 향한 정치적, 사회적 환경은 나빠졌지만 오히려 말씀은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자라고 크게 불어 나더라.](행12:24). 믿음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딤후2:9).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고난과 박해와 같은 외적 환경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세상에 대한 염려와 재물과 쾌락과 같은 것들입니다(눅8:14). 이런 것들이 말씀의 숨을 막아서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채찍이나 감옥이나 불이나 물이 믿음의 성장을 막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8:14, [가시나무 사이에 떨어진 자들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듣고 나아가다가 이 세상 삶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으로 숨이 막혀 완전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이라.](눅8:14).

주님은 말씀의 씨를 뿌리시고, 자라게 하십니다. 반면 마귀는 즉시 와서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 가고(막4:14), 하나님이 뿌리지 않는 다른 씨앗을 뿌려서 함께 자라게 함으로써 성장을 방해합니다(마13:25).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를 행하시는데 그 한 가지는 ‘불같은 시련’입니다(벧전4:12).

믿음이 없을 때 불가능한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하는 것이 불가능하나니)...](히11:6a).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말은 피조물로서 존재 의미, 존재 목적이 상실되어 버린다는 뜻입니다(계4:11). 우리는 금과 은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대언자 미가는 [주께서 수천의 숫양이나 수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가 내 범죄로 인하여 내 맏아들을, 내 혼의 죄로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믹6:7)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님을 말합니다. 대언자 이사야 역시 이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내게 바치는 수많은 희생물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숫양의 번제(燔祭) 헌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으로 배불렀으며 나는 수소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1:11). 우리는 재물이나 제사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 누구라도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점에서 불신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즉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6)고 선언합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운영하는 주인에게 복음을 전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닌가요?” 당연히 아닙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가인의 후예들입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을 믿습니다. 시편 기자는 [어리석은 자들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는도다.](시14:1). 이 말씀에 따르면 세상은 과학과 학문의 발전으로 똑똑해 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어리석어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불신자들과 무신론자들과 담소를 나누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시는 분’이란 사실 또한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고넬료가 그러했듯이 “부지런히 찾으면 찾으리라”입니다.

둘째,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을 때 죄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성자로 불리는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죄인일 뿐입니다. 우리의 의는 믿음을 통해서만 납니다(롬3:22).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3:9).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의롭게 되지 않으면 지옥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의롭게 되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입니다. 죄인이 의롭게 되는 방법은 주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죄와 저주가 되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사실을 믿는 것뿐입니다. 캐톨릭의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는 매일 밤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겨울 밤에는 기도하다가 자신의 몸일 꽁꽁 얼어서 죽게 될 지경이었지만 일어나지 않고 수도에 정진했지만 그는 자신이 여전히 죄인일 뿐이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절망감만 엄습해 왔습니다. 그는 로마의 성당 계단을 무릎을 꿇고 기어 올라가는데 상처로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 그에게 로마서 1:17,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이 번개처럼 마음 속을 때렸습니다. 그는 이 진리를 깨닫고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혜로”라는 종교 개혁의 깃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느니라.](갈3:11).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자들은 모두 율법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들 위에 임하게 하고 또 우리가 믿음을 통해 성령을 약속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갈3:14).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은 믿음을 통해 임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벗이라 불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방패요, 상급이었습니다. 그런 영적인 복이 저희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는데 방법은 ‘믿음’입니다. 현재 성도들이 믿음으로 얻는 최대의 복은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자신의 뜻대로 은사를 주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며, 가르치시고, 중보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 삼으시고, 우리 속에 거하시며, 우리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이런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넷째,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우리는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발신처만 있고 수신인이 없는 편지와 같습니다. 믿음이 없이 구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소음이요, 말이 아닌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구하라.” 믿음의 기도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에게 이르기를, 옮겨져서 바다에 빠지라, 하며 마음 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무엇을 말하든지 다 받으리라.](막11:23). 이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야고보서 5:15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리라. 혹시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용서받으리라](약5:15). 믿음 없는 기도가 빛이 없는 등이라면 믿음의 기도는 뜨거운 열과 빛을 동반한 강력한 힘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라!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명령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흔들리지 말지니라. 흔들리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나니](약1:6). 솔직히 믿음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해 담대함을 가지고 확신있게 나아감을 얻느니라.](엡3:12).

다섯째, 승리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믿을 때 승리는 마치 전쟁의 노획물처럼 자연스럽게 뒤따릅니다. 요한 사도가 크리스찬이 세상을 이기는데 거창한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승리를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주님은 이미 세상을 이기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는 믿음이 승리를 줍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승리하신 주님을 믿을 때 그 믿음이 승리를 주는 유일한 작전입니다.

여섯째,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히11:3a).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지식을 깨닫는 방법입니다. 사람의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믿음으로 깨닫습니다. 믿는 자는 지혜로운 자요, 믿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성경이 정의하는 바보는 ‘마음 속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시53:1)입니다.

일곱째, 보호 받을 수 없습니다. 

[너희는 마지막 때에 드러내려고 예비하신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벧전1:5). 이미 말씀드린대로 믿음은 우리를 보호하는 방패입니다. 사실 [믿음]은 공격용 무기가 아니라 마귀의 불화살을 끄는 ‘방패’입니다. 전쟁에서 방패로는 지지 않을 수는 있어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믿음’이 이긴다고 말합니다. 믿음의 방패는 단순히 그냥 적의 공격을 막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온 것을 갑절로 되돌려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방패”는 어떤 강한 물질이 아니라 전능하신 주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培牌)요](창15:1). 주님은 원수들을 막으실 뿐 아니라 보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으로 말하건대 그분의 길은 완전하고 주의 말씀은 단련되어 순수하니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가 되시는도다.](삼하22:31). [그러하오나, 오 주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이시니이다](시3:3). [주는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그분을 신뢰하여 도움을 얻었도다](시28:7a). 믿음으로 우리는 방패이신 주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말과 군대가 아니라 주님이 요새시오, 산성이시오, 방패시란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을 이길 수 있는 자가 없다면 아무도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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