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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삼손의 믿음


말씀: 히브리서 11:32
요절: 히브리서 11:32

성경 인물 중에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사람들 중에 하나가 삼손입니다. 삼손은 긴 머리카락과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란 것 외에는 오해를 많이 받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사기를 읽으면서도 삼손의 믿음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 이들은 히브리서를 읽으면서 왜 삼손이 '믿음의 사람'인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삼손은 믿음의 영웅이요,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구원한 구원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과 희생, 민족을 위한 애국심,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완수하는 모습 등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비쳐진 삼손은 음행과 향락 가운데 살며, 방탕한 인물같지만 삼손은 평생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사사기에 기드온과 더불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인물이 삼손입니다. 그는 단 지파의 마노아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을 20년간 재판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시대에 삼손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니라.](삿15:20). 히브리서 기자는 삼손이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게 한 증거를 지닌 사람이요, 좋은 평판을 받은 사람으로 그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삼손의 생애를 간략하게 살펴 보고, 그가 믿음으로 행한 것이 무엇인지 배울 것입니다.

삼손은 구약 성경에서 이삭, 침례 요한과 더불어 수태고지를 받고 태어난 3명의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시기에 이스라엘을 위한 특별한 사역을 맡기기 위해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자인 마노아의 집에 삼손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당시 불임은 하나님의 저주로 인식되던 시기였습니다. 본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는 ‘불임’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네 땅에서는 유산하는 자가 없고 수태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요, 내가 네 날 수를 채우리라.](출23:26), [네가 모든 백성들보다 더 많이 복을 받아 너희 가운데 남자와 여자와 너희 가축의 수컷과 암컷에 수태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며](신7:14). 이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을 저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임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이 무엇입니까? [보라, 자식들은 [주]의 유산이요, 태의 열매는 그분의 보상이로다.](시127:3). 그런데 마노아의 아내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영적 통찰력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라, 리브가, 한나, 엘리사벳과 마찬가지로 자식이 없는 가운데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은혜를 간구했을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때가 되어 마노아의 아내에게 친히 오시고,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수태 고지를 해 주신 것입니다. 삼손은 믿음의 선물이요, 보상이었습니다.

주의 천사는 마노아의 아내를 찾아 오셨고, “보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삿13:5)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태가 죽은 여인에게도 자식을 낳게 하실 수 있습니다(사라). 하나님은 어려운 일이 없고,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게 하고는 낳지 못하게 하겠느냐?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낳게 하고는 태를 닫겠느냐? 네 하나님이 말하노라.](사66:9). 주님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늙은 노인에게서도 아이를 낳게 하실 수 있습니다(엘리사벳).

주의 천사가 직접 삼손의 어머니에게 와서 삼손의 출생과 그의 사역을 알려 주었습니다. 꿈으로 현몽한 것도 아니고, 다른 누군가를 통해 전해 준 것도 아닙니다. 직접 삼손의 어머니에게 왔습니다. 때는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여 40년간 블레셋의 통치를 받던 때였습니다(삿13:1). 남의 종살이를 한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40년은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울부짖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으로 ‘한 아기’를 준비하셨고, 주셨던 것입니다. 이는 장차 이 땅을 구원할 메시야의 출생 역시 그러하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죄와 사망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한 아이’를 준비하십니다(사9:6).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삼손의 출생은 이삭, 사무엘, 침례인 요한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시는 모습을 잘 예표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자를 예비해 주시고, 일으키셔서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성취하십니다. 삼손은 천사의 수태고지를 받았다는 점, 평생토록 나사르 사람이 된다는 점,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이미 부름 받았다는 점 등에서 우리 주님을 가장 잘 예표합니다. 특히 삼손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았는데 그 역시 우리 주님의 사역을 예표합니다.

주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삿13:5)고 말씀하셨을 때 이는 단지 아이 없는 여자가 언제쯤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라 주님께서 아이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삼손’이란 위대한 사사를 얻었습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몸이었지만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였고, 영적 분별력을 지닌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들에서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주의 천사를 한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사사기 13:6, [이에 그 여인이 가서 자기 남편에게 고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왔는데 그 용모가 마치 하나님의 천사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그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나이다.](삿13:6). 삼손의 아내는 자신에게 온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란 것과 하나님의 천사같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남편 마노아보다 훨씬 더 영적 분별력이 날카롭고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뛰어났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말씀을 모두 남편에게 고했습니다(삿13:7). [그러나 그가 내게 말하기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즙과 독주를 마시지 말며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말라.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 되리라, 하더이다.](삿13:7). 마노아의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들은 말씀을 한 마디도 빼지 않고 그대로 전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처럼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고, 마음에 간직했다가 남편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 마노아는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할렐루야 찬송을 하거나 곧 바로 단을 쌓고 감사와 찬양의 희생물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아내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아들을 하나 주시기를 수십년간 기도했을 법한 일이지만 막상 응답이 왔을 때, 사람들은 받지 못하고 의심을 합니다. 제사장 사가랴 역시 성전에서 분향하다 수태 고지를 받았을 때 믿지 못해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마노아는 아내의 말을 듣고 곧 바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에 마노아가 [주]께 간청하여 이르되, 오 내 {주}여, 원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그로 하여금 앞으로 태어날 그 아이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를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삿13:8). 마노아는 아내에게 들은 것을 다시 직접 자신이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을 원했습니다. 체험을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말씀해 주셨지만 그것은 모두 무효로 돌리고 다시 새로 자신에게 직접 말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대부분 현대인들이 가지는 자세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해주는 사람이 들려주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게 생각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믿지 못합니다. 마노아 역시 아내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미 주님은 말씀해 주셨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라고 간청했습니다. 마노아는 후에 자신에게 온 이가 주의 천사란 사실을 알자 죽게 되었다고 두려움에 질렸지만(삿13:22), 삼손의 어머니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자신들이 드린 번제 헌물과 음식 헌물을 받으신 것과 이런 일들을 말씀해 주시고, 보여 주신 것들을 보아 죽이시려는 것이 아님을 알고 확신했습니다. 삼손의 어머니가 지닌 영적 통찰력과 믿음은 마노아를 훨씬 능가했고, 그녀는 아들을 낳자 자신이 직접 ‘삼손’(삿13:24)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를 통해 삼손에게 전수된 믿음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디모데 역시 그런 경우에 속합니다. 모든 가정에서 아버지가 제사장이 되고, 성경 교사가 되어 자녀들을 주의 교훈으로 양육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어머니가 자식들을 가르치고, 믿음을 전수해 주어야 합니다(딤후1:5). 삼손의 어머니가 주의 천사를 통해 “태어날 아들”에 대해서 들은 말씀은 첫째, 그가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된다(삿13:5b). 둘째, 머리에 삭도를 대어서는 안 된다(삿13:5a). 셋째,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 된다(삿13:7b)는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직접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 먼저 삼손의 어머니에게 주시고, 다음에 아버지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해 주고, 들려주고,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삼손은 태어나면서부터 바로 자신이 어떻게 출생했고, 자신이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해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모세가 그러했고, 사무엘이 그러했고, 침례 요한이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그 부모, 특히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고, 들은 말씀을 마음으로 믿어 위대한 믿음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삼손의 믿음은 어머니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생겨난 것이고, 자라난 것입니다. 그는 평생 동안 이 세 가지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가 비록 들릴라에게 자신의 힘의 비밀을 말해 준 적이 있어서 손을 대지 말아야 할 머리카락이 잘리는 곤혹을 치르긴 했지만 그 자신이 머리에 삭도를 대지는 않았습니다. 삼손은 평생 동안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고 구원하는 일에서 눈을 뗀 적이 없었던 점 역시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사명을 수행했고, 그 사명을 수행하는데 자신의 한 몸을 기꺼이 바쳤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삼손을 믿음의 영웅으로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삼손은 어려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태어났고,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된 나사르 사람이란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나는 순간, 영적 출생의 그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나사르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의 복음을 들고 죄인들을 구원해야 할 구원자들입니다. 우리의 힘의 원천은 삼손과 달리 머리카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구약 성도들에게 주의 성령은 그 안에 임하지 않고 ‘그 위에’(upon) 임했습니다. 우리말로 “주의 영이 ***에게 임하니라.”고 기록된 “에게”는 to, unto가 아니라 "위에"(upon)입니다. 주의 성령은 우리 안에 임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신약 성도들은 나사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에 대한 규정이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삼손의 연약함을 공격합니다. 교회에서 설교자들 역시 삼손에 대해 설교할 때면 어김없이 “삼손은 여자를 밝혔다, 창기와 사귀었다, 이방인과 결혼했다, 여자 때문에 패가망신했다”는 식으로 비난하고, 힘은 강했지만 절제와 인내심이 없어 육체의 정욕에 무너진 삼손에 대한 비난 일색입니다. 근거 없는 비난은 아니지만 삼손이 그런 중에도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을 지켰고, 믿음으로 행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삼손은 평생 동안 자신에게 맡겨진 주의 소명, 사역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삼손이 말년에 두 눈이 뽑힌 상태에서도 ‘블레셋’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의 ‘영적 사명감’은 개인의 복수심을 능가하는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나사르 사람으로서 기꺼이 자신을 ‘산 희생물’로 주님께 바쳤고,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완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사람 삼손’이라고 부르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삼손에 대한 평가에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삼손은 태어나 자라면서 주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유년 시절은 어느 아이들의 유년 시절보다 복된 시절이었습니다. 사사기 13: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주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삿13:24). 우리 주님께서 어려서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으신 것처럼(눅2:52) 삼손 역시 그러했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주님께서 삼손을 복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삼손이 영적 유해 환경에서 비뚤게 자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 있는 부모로부터 양육을 받았고, 주의 복을 받아 믿음과 지혜와 힘이 자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르 사람으로서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는 삶을 살도록 교육을 받았음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성령을 주시고 삼손을 감동시키기 시작하셨습니다. [...주의 영께서 때때로 그를 감동시키기 시작하셨더라.](삿13:25b). 삼손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통해 지성과 야성을 소유하고, 자신을 보좌해 줄 뛰어난 인재들을 구하고,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고, 백성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끌어낼 카리스마를 갖추는 것이 아니나 ‘주의 복을 받고, 주의 영의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의 일을 하겠다고 ‘소명’을 받은 이들은 먼저 명문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박사 학위를 받으려는 시도를 하기에 앞서 [주님의 복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삼손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서 이스라엘을 위해 펼칠 눈부신 활약상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감이 모아지는 순간입니다.

사사기 14:1을 보십시오. 놀랍게도 삼손의 행위는 주의 복을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의 행동으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예상 밖의 그런 것입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자 가운데 하나를 데려와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설득합니다. 이는 율법에도 금지된 일입니다(신7:1-4). 삼손의 아버지는 삼손을 책망하였지만 삼손은 “그 여자가 나를 매우 기쁘게 하니 나를 위하여 그녀를 데려 오소서”(삿14:3)라고 고집을 부리고 결국 그 여자를 데려와 결혼해 버립니다. 이 구절만 보면 우리는 삼손에 대해 실망할 수 있고,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나사르 사람으로 헌신된 삼손이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율법을 어기면서 자신만을 위해 자기 멋대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것이 주께로부터 나왔음을 알지 못하였고 또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더라.](삿14:4). 마노아는 물론이요, 영적 분별력이 탁월했던 삼손의 어머니도 이 일이 주께로부터 나왔음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주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고 있음도 알지 못했습니다. 삼손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 첫 일이 블레셋 여자와의 결혼이었습니다. 이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사람의 계획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대언자 호세아에게 창녀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게 하신 것처럼 삼손에게는 반드시 물리쳐야 할 원수의 나라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일은 분명히 주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고자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변 이방 민족들과 결혼하면 신앙이 무너지고, 그들에게 동화되어 버립니다. 이는 지혜의 대왕 솔로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방 여자는 늘 올무가 되고, 배교의 철로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이방 블레셋 여자와 결혼한 삼손은 그들에게 동화되거나 연합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방 여자를 매개로 그들을 모두 멸해 버렸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자와 결혼했지만 그들과 동화되기는 고사하고 사사건건 그들을 괴롭히고 멸했습니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구원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음을 말합니다. 이방 여인과의 결혼하는 삼손의 음행, 육신의 정욕만 보이고 그 뒤에 행해지는 ‘믿음의 행위’들이 보이지 않으면 그는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이 아닙니다. 블레셋 여인이 삼손의 아내가 됨으로써 블레셋 사람들은 여간 곤욕을 치른 것이 아닙니다.

삼손이 결혼할 여자를 데리러 가서 블레셋 청년들에게 퀴즈를 내었는데, “먹는 자에게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 단 것이 나왔느니라.”(삿14:14)였습니다. 이 문제를 풀면 삼손이 얇은 옷 서른 벌과 겉옷 서른 벌을 주고(삿14:12-13), 대신 못 풀 경우에 삼손이 그만큼 받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던진 미끼였습니다. 이 퀴즈는 먹는 자 중에서 강한 자, 먹는 것 가운데 단 것이 무엇이냐? 란 댓구로 된 문제입니다. 블레셋 청년들은 삼손의 아내를 협박해 문제를 풀었는데, 삼손은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을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삿14:18)란 말로 그들의 불법에 대해 복수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결국 블레셋 사람 30명이 죽었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삼손의 블레셋 척결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 때마다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심으로 삼손을 통해 블레셋을 치셨습니다. 삼손은 자기 아내로 삼은 블레셋 여자의 문제를 빌미로, 블레셋 사람들을 마음대로 유린했습니다(삿15). 아내를 괴롭혀서 답을 알아내었다는 이유로 아스글론에서 30명을 죽이고, 블레셋의 장인이 자기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린대 대한 대가로 삼손은 그들을 응징했는데 여우 3백 마리를 잡아 꼬리를 묶어 블레셋 사람들의 들판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삼손은 그들을 응징할 정당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삼손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사사기 15:3, [삼손이 그들에 관하여 이르되, 이제 내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불쾌한 일을 행할지라도 그들보다 허물이 많지는 아니하리라, 하고](삿15:3).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 일을 행하였을지라도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으리니 그 뒤에 내가 멈추리라, 하고 블레셋 사람들을 사정없이 쳐서 크게 살육하고 내려가서 에담 반석 꼭대기에 거하니라.](삿15:7-8). 참으로 블레셋으로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삼손의 잘못을 탓할 수가 없습니다. 당시는 잘못에 대한 보복이 합법적인 시대였습니다. 삼손이 군대를 모아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군대를 모아 전쟁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스라엘의 책임으로 전가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삼손은 한 사람의 개인 자격으로 자신이 개인적으로 당한 일에 대해 블레셋을 응징했는데 결과적으로 블레셋 전체가 유린 당하고 말았습니다. 삼손의 이런 모습은 ‘한 사람을 통한 민족 전체의 구원’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주님이 보내시고, 주의 영이 임한 한 사람으로 인해 이스라엘 온 민족이 아무 노력이나 대가없이 구원을 받는 모습입니다. 이 점에서 삼손은 구약의 다른 믿음의 사람들 못지 않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잘 예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삼손을 통해 예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으로 인해 생긴 문제들을 통해 블레셋의 불법을 징벌하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삼손이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였는데 이 일로 인해 블레셋은 삼손이 살아 있는 한 이스라엘을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삼손은 이스라엘을 건져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사람들의 약함, 무지, 어리석음을 그대로 사용하십니다. 삼손의 약함은 ‘여자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여자로 인해 하나님의 주신 과업을 버리거나 내팽개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삼손의 잘못이나 육신의 정욕, 음행을 변호하거나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삼손은 자신이 사랑한 들릴라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자신의 힘의 비밀을 일러 줌으로써 두 눈이 뽑히고, 놋 족쇄로 결박을 당해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주의 영이 임한 성도는 죄를 다스리고, 세상을 지배하는 승리자의 삶을 살지만 주의 영이 떠나 버리면 그는 원수들의 종이 되어 속박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는 삼손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은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에게 속아 죽음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패배자로서 인생을 마감하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16:28-30을 보십시오. [삼손이 [주]께 부르짖어 이르되, 오 {주}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나를 기억하옵소서. 오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들이 내 두 눈을 뺀 것을 단번에 원수갚게 하옵소서, 하고 그 집을 지탱하여 버티고 있는 두 개의 중간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붙잡으며 이르되, 나를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소서,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영주들과 온 백성을 덮으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 많았더라.](삿16:28-30). 삼손은 힘을 구했습니다. 자신이 죽음과 더불어 원수들을 멸했습니다. 삼손은 마지막에 승리자로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나사르 사람으로서 믿음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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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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