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용사여
말씀: 히브리서 11:32
요절: 히브리서 11:32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행한 이들을 한 명씩 예로 들다가
32절에서는 무려 6명의 이름과 대언자들을 한꺼번에 말합니다. 이유는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입니다.
믿음으로 산 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다 언급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 모든 사건, 모든 지명을 다 기록하지
않습니다. 때로 성경의 모순을 이야기 하는 이들 가운데 성경의 이런 기술적인 특성을 외면한 채 어떤 것은 기록에 없다, 어떤 사람은 나오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 역시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만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심지어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두기에 부족할 줄로 나는 생각하노라.”(요21:25)고 한 것과 같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이 듣고, 알고, 믿어야 할 꼭 필요한 인물, 사건들만을 기록해 두셨습니다.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란 말은 믿음으로 산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단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믿음의 삶을 산 사람들의 역사는 아벨로부터
시작해서 에녹, 노아, 아브라함을 이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1에는
“이렇게
큰 구름 같은 증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히12:1a)라고 함으로써 믿음으로 산 이들이 극소수의 몇 몇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 동안 계속 이어져 왔으며, 매우 많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믿음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 시대에 우리는 믿음을
산 이들이 수없이 많고, 이 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저 하늘에는 모두 그 이름과 행적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란 점을 생각할 때 큰
위로와 힘을 얻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구약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았으며, 믿음으로 증거를
얻고, 믿음으로 좋은 평판을 얻었음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믿음으로 살지 않음으로 멸망한 가인,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당대의 모든 사람들, 홍해를 건너려던 이집트 사람들, 여리고 사람들은 다 멸망했습니다. 믿음으로 산 아브라함과 그렇지 못한 롯을
보십시오. 롯은 불신자가 아니었습니다. 롯은 분명히 믿는 신자였지만 그는 믿음이 없이 육신적으로 살다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 하나님이 앞서 가서 싸우시고, 대신 싸우시며, 승리를
주신다는 믿음이 없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했습니다(히3:19). 믿음이 없는 것은 창고에 식량이 떨어졌다, 은행에 돈이
떨어졌다, 공장에 기름이 떨어졌다, 기계에 동력이 떨어졌다는 말이나 매 한 가지입니다. 오히려 이런 것보다 더 심각한 위기입니다. 믿음이 없다!
불신자들에게 이 말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성도들에게 이 말은 모든 것의 파산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거듭났고,
침례를 받았고, 매주 교회에 출석하기는 하지만
‘믿음이 없을 때’ 우리는 이
땅을 소돔의 롯처럼 혼의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출애굽한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메마른 삶을 살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호응이요, 반응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오랜 시간 열심히 많이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믿음의 기도만이 권능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리라. 혹시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용서받으리라.](약5:15).
우리는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서 믿음으로 구하고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는 말은 권능과 권세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할 때 그
대상이 산이든 뽕나무이든 다 순종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에게 말하여, 여기서 저 너머로 옮겨 가라, 하면 그것이 옮겨 갈 것이요, 또 너희에게 불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라.](마17:20b).
*산에게 말하여. 주님은 산을 옮기는데 필요한 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데 필요한 것은 ‘믿음’외에 다른 아무 것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에게 이르기를, 옮겨 가서 바다에 빠지라, 하며 마음 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무엇을 말하든지 다
받게 되리라.](막11:23). *이 산에게 이르기를.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에게 이르기를,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겨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이 뽕나무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사람에게 말할 수 있을 뿐이지만 믿을 때 산에게도 말하고, 나무에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바람에게 명하시고, 바다에게
명하시며, 산과 나무에게 명하시며, 구름들에게 명령하시며, 마귀들에게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는 분이십니다. 욥기9:7,
[그분께서 해에게
명령하사 뜨지 못하게 하시고 별들을 봉하시며](욥9:7).
[그러나 그분께서 위로부터 구름에게 명령하시며 하늘의 문들을 여시고](시78:23).
[이는 그분께서 명령하시매 폭풍이 일어나 파도들을 높이 일으키기 때문이로다.](시107:25). 우리 주님은 누구에게든지, 무엇에게든지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우리를 대신해서 일하십니다.
주님은 죽은
자에게도 명령하십니다. 주님께서 무덤을 향해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요11:43) 외치셨을 때 나사로는 벌떡 일어나 수의를 걸친 채 걸어 나왔습니다. 주님은 병든 자에게 명령하십니다.
38년이나 침상에 누워있던 병자를 향해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네 집으로 가라”(마9:6)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은 누구에게나 다만 말씀하실 뿐입니다. 소경, 귀머거리, 문둥병자, 마귀 들린 자 등 그 누구에게든지 명령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홀로 일하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사는 이들을 통해서 함께 일하십니다. 믿지 않을 때 주님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거기서 능력 있는 일들을 많이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마13:58). 주님의 권능은 언제나 믿는 자들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구약 성경이나 복음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많은 능력 있는 일들이 오늘날 우리 교회, 우리 가정, 나의
일상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을까? 왜 우리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을까? 등등의 고민을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병이든 성도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지만 낫지 않고,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고 이런 저런 소원을 빌어 보지만 별로 기대한 응답이 없을 때
남모르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믿음이 자라나고, 크고, 강해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까?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우리는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고,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행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손해가 될 것 같고, 어려울 것 같고,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고,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때에
‘순종해야겠다!’ 결단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심하면 주님은 길을 인도하시고,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을 만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믿을 때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길,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믿음에 대해 자칫 오해하는 한 가지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대신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합니다.
오늘 본문에 믿음의 본으로 나오는 사사(Judge·재판관)들은
믿음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32절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과 입다와 또 다윗과 사무엘과 대언자들에 관하여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라.] (히11:32). 이 시간에는 먼저 기드온입니다. 기드온과 바락은 유난히 두려움이 많은
사사들이었습니다. 전쟁과 분쟁이 많았던 시대에 요구되는 사람은 두려움을 모르는 용사입니다. 그러나 기드온과 바락은 그런 점에서 실격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드온, 바락은 두려움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며 삼손과 입다는 인격적인 면에서 실패자들이었습니다.
사사기 6장을 펴 놓으십시오. 기드온이 살던 때에 이스라엘
자손은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고, 주님은 그들을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미디안은 닥치는 대로 이스라엘을 약탈하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산으로 도망쳐서 거기서 구멍과 굴과 요새를 만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삶입니까? 하나님이
유업으로 주신 땅과 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민족들을 다스리고 지배해야 할 이스라엘이 도리어 자기 땅에서 쫓겨나 산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저항을 해도 미디안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기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 족속으로 인하여 산에 구멍과 굴과
요새를 만들었는데 이스라엘이 씨를 뿌린 후에 미디안 족속이 올라오고 또 아말렉 족속과 동쪽의 자손이 그들을 치러 올라와 그들을 향해 진을 치고
네가 가자에 이르기까지 땅의 소출을 멸하여 이스라엘을 위해 양식을 남기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자기 가축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오되 메뚜기같이 많이 왔기 때문이요, 그들과 그들의 낙타들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더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그 땅을 멸하려 하니 이스라엘이 미디안 족속으로 인하여 심히 핍절하게 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부르짖었더라.](삿6:2-6).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곧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목축을 기반으로 한 산업이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고, 군대는 무장 해제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영적 궁핍은 곧 삶의 곤고함이란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구약의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진리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악을 행하고, 믿음을 떠날 때 그들의 현실 생활 역시 곧바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극도의 궁핍과 어려움을 겪게 되면 성도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삿6:6,7).
미디안으로 인해 주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대언자를 보내
이스라엘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일러 주셨습니다(삿6:8-10).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해 주셨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에 대해 지적하셨습니다(삿6:10). 그리고 주의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삿6:11). 주의 천사는 기드온의 집으로 왔습니다.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는 기드온을 향해 주의 천사는
[...강한 용사여,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6:12)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드온은 겁쟁이에다 전혀 강한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기드온을 향해
“강한 용사여”라고 말씀합니다.
왜 강한 용사입니까? 주님이 기드온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크고 강한
자입니까?
크고 강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마28:20)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강하신 주님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강한 용사’입니다.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 내 마음보다 크신 이가 우리 속에 계시기에 우리는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의 천사가 ‘강한 용사여’라고 불렀을 때, 기드온은 자신이
[강한 용사]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군사 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 수많은 가병
(家兵)을 수하에 부리며 미디안에 게릴라 수법으로 저항을 하던
장군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돈이 많거나 대중적 인기를 받는 정치인도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기드온은 자신이 약하고, 작은 자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사기 6:15을 보십시오.
[...보소서, 내 가족은 므낫세 중에서 가난하며 또한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삿6:15).
기드온은 강함과 약함의 차이를 소유, 외모, 힘, 권력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친 공통적인 가치관입니다. 진정으로
강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강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강한 용사입니까? 강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약한 자들입니다. 죄와 싸울 힘이 없습니다. 세상과 싸울 힘이 없습니다. 육신과 싸울 힘이 없습니다. 작은
시험과 유혹이 밀려와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약한 것이 아니고, 체구가 적고 힘이 없기 때문에 약한 것이 아니고, 돈이없기
때문에 약한 것이 아닙니다. 후원해 주는 조직이나 뒤를 봐줄 배경이 없기 때문에 약한 것이 아닙니다. 크고 강하신 주님-
[높이 계신
[주]는 많은 물들의 소리보다 강하시며 참으로 바다의 강한 파도들보다 강하시니이다.](시93:4)- 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때 그는 약한 자요,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은 기드온을 향해 ‘강한 용사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주님 편에 선 사람이 강한 사람이요,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한 사람이 큰 사람이요,
주님과 함께 하는 이가 승리자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초능력을 준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만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번개나
천둥, 비, 바람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신적인 권능이나 재능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단지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고 말씀만 주셨습니다. 주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등 믿음의 발자취를 남긴 이들에게 한결같이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우리들에게 역시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이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곧 바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시적인 증거, 표적을 주시기를
구했고 주님을 시험했습니다(삿6:36-40).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이 아니라 표적을 보아야 믿는 연약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드온이
지금 믿음의 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적 관점에서 볼 때 기드온의 믿음은 칭찬받을 성질이 아니라 책망 받아야 할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의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기드온은 주의 천사임을 깨닫자 곧 바로 제단을 쌓고 주님을 경배했습니다(삿6:24).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가 듣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깨달을 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곧 바로 바알의 제단을 헐고 작은 숲을 베어 내
버렸습니다(삿6:25-26). 이는 주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사람들이 두려워 낮에 그 일을 하지 못하고 밤에 했지만 주님이 하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바알의 제단을 무너뜨리고 제단 옆의 작은 숲을 베어내면 죽임을 당하는 시대였습니다(삿6:30). 그런
시대에 주님의 명령을 받아 바알의 제단을 무너뜨리고 작은 숲을 베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도무지 순종해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드온은 점점 믿음이 자라나 이제 주님의 말씀을 한 가지씩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적들이 쳐들어왔을 때 전쟁을 위해
나팔을 불었습니다(삿6:34). 주의 영이 임하자 그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않았고, 숨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 한다는 말씀과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훨씬 적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을 압도할 수 있는 전쟁 물자나 무기나
뒤를 든든히 받쳐줄 군사 동맹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기드온은 나팔을 불어 군대를 모아 미디안과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네가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 족속을 치리라’(삿6:16)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을 때 겁쟁이 기드온이 어느덧
이스라엘의 강한 용사로 변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천적으로 힘이 세고, 겁이 없는 사람, 지략이 뛰어나고 담대한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소심하고 겁이 많고, 약하고, 스스로 자신이 가장 작다고 여기는 기드온을 부르시고,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후천적으로 자기 개발을 한 사람을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육신적으로, 혈통적으로, 세월의 풍상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노련한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강해진 용사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사람은 언제나 약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써 그들은 강하고 담대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기드온은 어느 덧 이스라엘의 장수가 되었고,
그들을 위해 싸우는 용사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가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 족속을 완전히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믿을 때
승리가 주어진 것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을 추방하려면 많은 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기드온 역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숫자에 연연해하지 않으십니다. 기드온은 전쟁에 나갔을 때도 여전히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소집된 군인들을 다 돌려보내고 단지 300명만을 데리고 전쟁터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순종해서 전쟁터에 나간 것은 분명히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완벽주의를 지향하다가 절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은 서서히 연단되고, 성숙해 가는 것이지 단번에 주어지는
사건이 아닙니다. 순종해서 한 걸음씩 나아갈 때 불안하기도 하고,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불안해 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100%의 완벽성을 갖추어야만 한다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순종할 때 연약한 믿음은 연약한 대로,
적은 믿음은 적은대로, 불완전한 상태라면 그대로 보시고 그대로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연약한 믿음을 있는 그대로 축복하셨고, 미디안
사람들의 꿈 이야기를 듣게 하심으로써 다시 한번 용기와 확신을 주셨습니다.
기드온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하심을
체험했습니다. 300명의 적은 수로 미디안의 대군을 완벽하게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기드온의 실패, 연약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하고 행한 것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연약하면 연약한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는 자세, 그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강하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강건한 자가 되기를 빕니다. 포도즙
틀에서 숨어서 타작하던 기드온에게 ‘강한 용사여’ 란 말씀으로 부르신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강한 용사여’라고 부르십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을 잡고 싸우며,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빕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고, 항상 이기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나갑시다. 자신의 타고난 성격이나 자라면서 형성된 능력이나 지식이나 지금 처한 환경을 보지 말고,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따로 우리 속에 큰 능력과 지혜를 부어 주시지 않으셔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속에서 이미
믿음의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주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셨듯이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자, 우리 모두 강한 용사로 일어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