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믿음
말씀: 히브리서 11:32
요절: 히브리서 11:32 우리는 지금 성경이 기록한 믿음의 인물들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믿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어떤 예언자의 글이나 운명을 믿었다면 믿음이 아닙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이스라엘의 잠재력을 믿었다면 이 역시 믿음이 아닙니다. 때로 사라들은 ‘하나님의 말씀’ 이 아닌 어떤 것을 믿으면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행한 것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성경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만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믿었고,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벨은 바른 희생물이 무엇인지, 그 희생물을 어떻게 주님께 드려야하는지 믿었고, 에녹은 장차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고, 노아는 하늘에서 비가 내려 온 땅을 심판할 것을 믿었고,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실 것과 땅에 대한 약속을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이 무엇을 믿었는지 그 믿음의 내용들, 믿음의 대상들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근거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될 줄 알았어, 결국 이렇게 될 줄로 믿었다!”는 식은 성경적 믿음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과학적 근거가 없고,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없는 일이고, 통계학적으로 발생한 일이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믿고, 그대로 순종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믿음으로 산 사람 중에서 ‘다윗’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4명의 사사들을 언급한 다음에 다윗과 사무엘을 언급합니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 위인들을 볼 때면 그들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위대한 일들을 했는지 그 방법이나 인생 역정을 알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성공하고 싶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인생에 관심을 갖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고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은 당연히 재벌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조사하고 연구합니다. 학문적 업적과 명성을 얻으려는 이들은 노벨상을 탄 학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연구 업적을 남겼는지 궁금해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큰 믿음의 소유자들, 믿음의 자취를 받은 이들의 이름을 들을 때면 어떻게 그들이 그런 믿음을 소유했고, 승리를 쟁취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우리는 누가 어떻게 돈을 벌었고, 누가 어떻게 명성을 얻었고, 누가 어떻게 왕이 되었고, 장군이 되었고, 학자가 되었다는 등의 일보다 누가 어떻게 큰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는가? 거기에 훨씬 더 깊은 관심을 갖습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로마의 황제들과 같은 삶보다는 바울이나 요한의 삶을 더 원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돈이나 명예나 학문이나 권세가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믿음으로 산 다윗”을 살펴 볼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립니다. 성경에서 다윗이란 이름보다 그 이름이 더 많이, 더 자주 언급된 인물은 없습니다. 다윗은 유다 지파였고, 이새가 낳은 8 아들 가운데 막내였습니다. 그는 집에서도 그다지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영재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남다른 재능을 타고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 이새가 유대의 특별한 거부였다든가, 정치인이었다든가, 특출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다윗은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이새의 아들로서, 베들레헴이란 시골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은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 자라난 환경에서 생기는 ‘환경결정론’이 아님을 확인합니다. 그가 한 일은 들에서 아버지의 양떼를 친 것이 고작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목자요, 왕으로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서와 시편을 통해 다윗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을 통해 자신이 믿고 알고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계시들을 찬양하는데 그 내용들을 읽어 보면 이렇게 하나님을 깊이 안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 대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내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그가 내 뜻을 다 성취하리라.](행13:22)고 말씀합니다. *a man after mine own heart. 다윗이 만난 하나님, 다윗이 믿은 하나님, 다윗이 알고 경배한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다면 매일 시편을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이런 믿음의 소유자가 된 것입니까? 우리는 다윗의 믿음이 전적으로 주의 말씀에서 나왔음을 압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그치지 않고 늘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했습니다. 다윗의 놀라운 믿음은 “말씀 묵상”에 답이 있습니다. 다윗은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습니다. [오직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시1:2). 다윗이 주야로 한 일은 ‘말씀 묵상’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은사로 받은 놀라운 ‘지혜의 사람’이었다면 다윗은 그런 은사 대신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했다는 것은 그가 수도사들처럼 성경을 앞에 펴두고 매일 종교적 수행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일생은 언제나 매우 바쁘고 고달픈 업무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목동으로, 그 후에는 장군으로, 사울 왕의 사위요, 부하로서 그는 언제나 긴장된 삶을 살았습니다. 사울의 미움을 받아 정적으로서 도망자 신세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살 때도 있었고, 왕이 된 후에도 여전히 과중한 업무의 연속이었습니다. 왕이라고 해서 매일 빈둥빈둥 놀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많은데다 정국을 안정시키고,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연이어 터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그런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나라의 기틀이 잡히자 이번에는 왕궁 안에서 자식들의 문제가 터졌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내전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 다윗이 주야로 제일 매진한 일은 ‘말씀 묵상’이었습니다. 다윗의 모든 믿음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나온 것입니다. 다윗은 마치 탐험가들이 매순간 나침반과 지도를 펼쳐 보듯이 언제나 성경을 곁에 두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땅에서 살았지만 하늘을 보며 산 것입니다. 다윗은 언제 말씀을 묵상했는가? 시편 1편에서는 주야로 묵상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할 일이 없을 때 묵상의 시간을 가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묵상의 시간을 만들어서 가졌습니다. [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시119:97). 주야로, 종일토록. 그는 한 밤중에 일어나 주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밤의 경점(更點)보다 앞서 갔나이다.](시119:148).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선함을 맛 본 이들만이 이런 묵상의 삶이 가능합니다. 다윗은 말씀을 꿀 곧 송이 꿀보다 더 달다는 사실을 알고, 그 맛을 즐긴 사람입니다. 특히 고요한 밤이 되면 언제나 말씀을 묵상했는데 이것이 그가 낮에 주의 일을 수행하는 능력과 지혜와 형통함의 비결이었습니다. 그의 밤은 여느 제왕들처럼 술과 후궁들과 연회와 각종 오락으로 지새는 밤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을 묵상하는데 드려졌습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그리하오리니](시63:6). 크고 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면 밤을 어떻게 보내는가? 에 달려 있습니다. 저녁 식사 후 T.V와 신문, 잡지만 보는 사람들은 결코 낮에 믿음의 능력을 나타내 보일 수 없습니다. 밤에 오락을 구하는 이들은 결코 낮에 주님의 영광을 구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어떤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만 특별한 믿음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전 생애의 모든 일에 대해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이런 믿음은 늘 곁에 말씀을 두고, 그 말씀을 마음에 묵상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싸우는 전쟁마다 승리하고, 별다른 내전의 상처 없이 통일 이스라엘의 기틀을 다진 것은 백성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생긴 ‘지혜와 명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입이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의 묵상이 명철(明哲)이 되리로다.](시49:3). 다윗은 높은 학위를 취득해서 얻은 세상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지혜와 명철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주의 증거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더 많은 명철이 내게 있으며](시119:99)라고 합니다. 다윗이 어디서 명철을 얻은 것입니까? 말씀 묵상을 통해 많은 명철을 얻었습니다. 이미 묵상이 주는 유익을 많이 설교했지만 그 묵상의 능력과 유익을 일생을 통해 증명해 보인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시편 5:1, [오 [주]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며 나의 묵상하는 것을 살피소서.](시5:1). 다윗은 주님께 자신의 기도하는 것과 묵상하는 것을 살펴 주시기를 구할 만큼 늘 말씀 묵상에 전념했습니다. 믿음을 기르는데 말씀을 듣고, 읽는 일과 마찬가지로 그 말씀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주야로 묵상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삶을 산 그의 일생에서 묵상은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고, 우선순위에서 앞 서 있던 일이었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할 때 마음의 생각이 바르게 되고, 입술의 말이 정결하게 됩니다. [오 나의 능력이시요, 나의 구속자(救贖者)이신 [주]여,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默想)이 주의 눈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 되기를 원하나이다.](시19:14). 올바른 기도는 말씀의 묵상에서 옵니다.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는 것 역시 묵상을 통해 옵니다. 지속적인 말씀 묵상을 통해서 다윗은 건전한 생각, 정결한 입술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기도의 희생물’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많은 시편을 지을 수 있었던 것 역시 문학적 재능, 풍부한 상상력에 기인한 어떤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주님을 묵상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그의 삶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묵상을 통해 그의 마음 속에 풍성히 말씀이 거했기에 그의 입에는 찬양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내 혀는 능숙한 문장가의 펜이니이다.”(시45:1b). 마음 속에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이들은 그 입에서 불평과 쓴 뿌리와 독사의 독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찬양이 나옵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할 때 제대로 주님을 증거하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또한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고 주께서 행하신 일을 이야기하리이다.](시77:12).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손이 행하시는 일을 깊이 생각하나이다.](시143:5).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말하는 것이 설교요, 전도입니다. 꾸준히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묵상할 때 입에서 흘러 넘치는 그 말들이 간증이요, 증거입니다. 전도의 요령을 익히기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말씀을 묵상하면 그 속에서 넘쳐 나오는 말들이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영이 강권하는 말이 나옵니다. 가만히 참고 있으면 도리어 지쳐 버리는 그런 말들이 쏟아져 나오게 하십시오. 이런 모든 일들을 위해서 우리는 들은 바 말씀들을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묵상]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그 단어들의 거의 대부분이 다윗의 시편에 나오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큰 성공은 묵상을 통해 온다고 하셨습니다(수1:8). 다윗은 그 말씀의 가장 실증적인 간증을 보인 인물입니다. 다윗의 믿음은 어떻게 생겼는가? 첫째가 말씀 묵상이었다면 그 다음은 기도 생활입니다. 다윗은 언제나 기도했습니다. 그는 말씀 묵상과 더불어 기도에 모든 것을 드린 사람입니다. 시편은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하루 세 번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기도하고 크게 부르짖으리니 그분께서 내 음성을 들으시리로다.](시55:17). 다윗은 기도를 들어 주시도록 기도했고, 자신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것 자체가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 간구하는 것에서 떠나 숨지 마소서.](시55:1).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시88:2). 다윗이 매사 얼마나 간절하게 주님을 찾고 울부짖으며 기도했는지는 시편의 곳곳에 나옵니다. 우리 역시 이런 기도 생활에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기도를 드리면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그러하오나, 오 [주]여,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보다 앞서 가리이다.](시88:13). 만약 하나님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신다면 맨 처음에 보게 될 것은 ‘다윗의 기도’일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맨 처음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린다는 심정으로 아침 일찍 기도했고, 주님보다 앞서 가도록 그 앞에 기도를 둘 정도로 기도했습니다. [오 [주]여, 아침에 주께서 내 목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위를 바라보리이다.](시5:3).다윗은 기도 생활을 습관화 했고, 기도를 통해 주님의 응답을 확신했습니다. 다윗은 단지 기도를 오랫동안 길게 많이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기도는 순결한 기도였습니다. [나의 기도가 주 앞에 향을 올려 드림같이 되며 나의 손을 들어 올림이 저녁 희생물을 /올려 드림/같이 되게 하소서.](시141:2). 바른 기도는 말씀 묵상을 통해 나옵니다. 다윗의 믿음은 다윗의 믿음은 어떻게 생겼는가? 환경의 연단입니다. 다윗은 일생은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일찍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그의 삶은 평안, 안락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왕의 자리가 그냥 굴러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우리는 사무엘서를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집에서 양을 지키는 목동시절부터 그의 삶은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블레셋의 챔피언이었던 골리앗을 죽이며 일약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본격적인 시련과 어려움은 그 때부터였습니다. 백성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되자 사울 왕이 그를 정적으로 여기고 견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시절의 어려움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는 내 날들이 연기같이 소멸되며 내 뼈들이 화로의 바닥같이 탔음이니이다. 내 마음이 얻어맞아 풀같이 시들었으므로 내가 빵 먹는 것도 잊고 있나이다. 내 신음 소리로 인하여 내 뼈들이 살갗에 붙었나이다. 나는 광야의 펠리컨 같고 사막의 올빼미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자지도 아니하니 지붕 위의 외로운 한 마리 참새 같으니이다.] (시102:3~7). 환란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낳는다는 말처럼 다윗은 극심한 환란 속에서 연단 받았습니다. 그는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었습니다. 거친 광야의 세파에서 낮의 더운 열기와 밤의 추위와 빵과 물의 없음으로 인해 주리며 목마른 그런 삶을 통해 연단 받은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내 마음이 속에서 심히 아프며 사망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였나이다. 무서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쳤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오 내게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내가 멀리 날아가 안식하리로다.](시55:4-6). 그는 어딘가로 도망 가서 평안히 쉬고 싶은 심정을 토로합니다. 이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라면 홀로 견디며 감당하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그가 이런 환란 가운데서 믿음이 연단되고, 성장했다는 점에 주목해 보십시오, 다윗이 믿음의 소유자가 된 데는 그만한 시련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윗의 믿음은 주일 학교나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매 순간 순간 닥치는 환란의 파도 속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다윗은 엄살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 보십시오. [죽음의 슬픔이 나를 에워싸고 지옥의 고통이 나를 붙들므로 내가 고난과 슬픔을 당하였도다.] (시116:3). 보통 사람들은 이런 순간에 미쳐 버리거나, 자살 충동을 느낍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런 고난을 통해 얻은 것들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첫째, 고난을 통해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을 배웠습니다. [그가 나를 부르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고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91:15). 둘째, 고난을 통해 주의 율례를 배웠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길을 잃었사오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하오니 이로써 내가 주의 법규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는 고난, 징계를 통해 얻은 영적 유익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다윗의 믿음이 어떻게 자랐고, 형성되었는가? 를 보았습니다. 우리 역시 동일한 믿음의 영을 지녔다면 동일한 방법으로 믿음이 자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묵상, 기도, 환경의 연단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바꾸어 주시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경 속에서 믿음이 연단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회피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다 보니 믿음이 자라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가 현재 처한 환경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연단을 받고, 자라남을 기억하십시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