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통해 얻은 것들(I)
말씀: 히브리서 11:33
요절: 히브리서 11:33
이 시간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얻는 것들의 예들을 볼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믿음으로(by faith), 믿음을 통해(through faith)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믿음은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깨닫고(3), 믿음을 통해 힘을 얻고(*11-사라),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는다(39)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임하며(롬3:22,30), 믿음을 통해 율법을 굳게 세우며(롬3:31), 믿음을 통해 성령을
약속으로 받고(갈3:14),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고(엡2:8), 믿음을 통해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고(엡3:12),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거하게 하며(엡3:17),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벧전1:5).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것이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들이 구했던 것처럼,
[우리의 믿음을 크게 하여 주옵소서](눅17:5)란 간구를 하게 됩니다. 믿음이
커지는 것, 믿음이 자라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성경 공부를 하는 이 모든 일들이 모두 믿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상식을 늘리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교적 지식을 키우기 위해서, 교양을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교회에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을 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주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자라나게 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모든 일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납니다. *from faith to faith. 주님은 믿음이 이룰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산을 옮겨 바다에 빠지게 하고, 뽕나무를 명하여 바다에 심는 일에 필요한 것은 기술이나 능력이 아니라 ‘겨자 씨 한 알만한
적은 믿음’으로 족하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영적인 일을 수행하도록 초인적인 힘이나 천사들의 지혜나 시대를 앞서가는 신기술이나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재화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권세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있다면
불가능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너희에게 불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라.](마17:20). 이스라엘이 400년간 종살이를 하던 이집트에서 나오는데 필요한 것은 군대가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너는데 필요한 것은 큰 항공모함이나 대형 항공기가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데 필요한 것은 미사일이나 대포가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불임이었던 사라가 90세의 나이에 아이를 낳는데 필요한 것은 유능한 산부인과 의사나 발달한 현대 의학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매 시간 [믿음으로]란 한 마디에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보았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상황에서든지, 어떤 사람에게든지 결과를 만들어내는 한 가지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믿음으로 산 이들의 행적’에 주목함으로
그들의 예를 본으로 얻고 교훈과 격려를 얻어야 합니다. 그 중에 단연 우리에게 많은 믿음의 빛을 주는 이들이 ‘대언자들’입니다. 대언자들은
배교의 시대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유다와 이스라엘 한 가운데 일어나 빛을 발했으며, 하늘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였고, 죄악과
맞서 싸웠습니다. 믿음의 씨앗인 말씀을 받았고, 믿음을 자라게 하는 주의 영을 받았던 대언자들은 오늘날 신약 성도들과 동일한 조건, 동일한
상황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믿음의 씨앗인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대언자들이 가졌던 믿음과 그들이 믿음으로 이루었던 일들을 이루는데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대언자들이 믿음으로 이룬 일들이 무엇입니까?
33절입니다.
[그들이 믿음을 통해 여러 왕국을 정복하기도
하며 의를 이루기도 하며 약속들을 얻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히11:33). 33절에는 일단 4가지, 34절에 또 다시
4가지를 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 성경의 모든 사건들을 믿음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구약의 역사는 곧 ‘믿음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역사는 왕들을 중심으로 기술되지만 성경은 ‘믿음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기술합니다. 믿음을 지닌 이들이 단지
교회사의 한 페이지만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역사의 중심 인물들입니다.
첫째, 믿음을 통해
왕국을 정복했습니다.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믿음을 통해 정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부름을 받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여호수아,
갈렙, 다윗이 그러했듯이 우리는 믿음으로 싸워야 할 적들이 있고, 차지해야 할 영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해 믿음으로
싸웠던 이들은 왕국을 정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하시니]
(막9:23). 이들은 우월한 무기 체계, 잘 훈련된 군인들, 뛰어난 지략, 국제 사회의 압도적 지지, 비교를 불허하는 경제력을 가지고 싸워
이긴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정복했습니다. 대언자들 가운데 믿음으로 적을 무찌른 대표적인 한 사람을 들라면 엘리사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원수는 ‘시리아’였습니다. 그런데 시리아는 압도적인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엘리사로 인해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엘리사를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군대를 보냈습니다. 열왕기하 6:15,
[하나님의 사람의 종이 일찍 일어나서 나가 보니, 보라, 군대가 말과 병거와
함께 그 도시를 에워쌌으므로 그의 종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아아 슬프다. 내 선생님이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왕하6:15).
엘리사의 종은 시리아 군대를 보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시리아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습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여시사 보게 하옵소서, 하니 [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보라,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시리아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그가 [주]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이 사람들을 치사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니
그분께서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을 치사 눈을 어둡게 하시니라.](왕하6:17-18). 엘리사는 칼 한 자루 들지 않았지만 믿음을 통해
시리아 군대를 완전히 물리쳤습니다.
사무엘이 그러했듯이 대언자 엘리사는 믿음의 기도로 이스라엘을
구원했고, 그들을 정복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 왕에게 [믿음을 통해 왕국을 정복]하는 법을 말해 주었습니다. 열왕기하
13:15-19,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취하소서, 하니 그가 활과 화살들을 취하매 그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니 그가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에 놓고 이르되, 동쪽으로 창을 여소서, 하니 그가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니 그가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것은 [주]의 구원의 화살 곧 시리아로부터 구원받게 하는 화살이니 이는 왕이 아벡에서
시리아 사람들을 치되 진멸하기까지 칠 것임이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화살들을 취하소서, 하니 그가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니 이에 그가 세 번 치고 멈추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그에게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치셨어야만 했나이다. 그리하였더라면
왕이 시리아를 치되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러나 이제 왕이 시리아를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왕하13:15~19).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이 믿음으로 시리아를 진멸하는 법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땅을 치라는 말에 세 번을 치고 멈추었습니다. 엘리사는 대여섯번을
치지 않는 왕을 책망했습니다. 승리는 믿음의 정도만큼만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겨야 할 적은 무엇입니까? 로마 교회가 십자군
전쟁을 벌이고, 유럽 국가들이 제국주의 전쟁을 벌이듯이 전쟁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안팎으로
싸움이 있습니다. 안에는 육신의 정욕이 밖에는 세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케 해야 합니다(고전9:27).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의의 병기로 내어 드려 거룩함에 이르러야 합니다(롬6:19). 우리 속에는 끊임없이 전쟁이
있습니다. 육신의 죄악 된 본성은 기회만 되면 고개를 들고 일어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肢體)들을 죽이라.](골3:5a)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 속에서 강력하게 일합니다. 죄와 싸울 힘을 주고, 육신을 이길 힘을 줍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
누구도 자기와의 싸움, 죄와의 싸움, 육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야고보 4:1,
[너희 가운데 전쟁과 싸움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속에서 싸우는 정욕(情欲)들로부터 나지 아니하느냐?](약4:1). 그렇다면 지체 속에서 싸우는 정욕들을 이기고 싶다면 그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믿음을 통해]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승리하고, 믿음이 없을 때 패배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오 내 백성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스라엘이 내 길들 안에서 걸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하였더라면/ 내가 곧 그들의 원수들을 정복하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對敵)들을 쳤을 것이요,] (시81:13~14). 원수를 이기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을 통한 승리는 곧
하나님의 승리를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극기, 고행, 오랜 수련, 금욕을 통해서 자아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승리합니다.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또 하나의 원수는 세상입니다. 정복하지
못하면 패배자로, 노예로 살게 됩니다. 현 세상은 악합니다(갈1:4).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딛2:12)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돈이
있으면 세상을 즐기며, 정복자처럼 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돈에 찔려 파선하고 맙니다. 권력이 있으면 세상을 다스리며 살 것 같지만 그것은
잠시의 착각일 뿐 그 종말은 세상의 버림을 받습니다. 세상을 사랑했던 롯이 세상을 이길 수 없었고, 세상의 친구가 되었던 교회와 성도들이 맛을
잃어버린 소금처럼 내어 버려졌습니다. 바울이 세상을 이긴 법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는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세상을 등지고 산다며 산 속에 들어가 동굴에 기거하는 승려들이
세상을 이긴 자들이 아닙니다. 속세를 버렸다며 방랑 시인으로 산 김삿갓이 세상을 이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아무 미련이 없다며 자연과 동화되어
살자는 자연주의, 노장 사상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이긴 자들이 아닙니다. 세상에 동화되고, 세상에 일치하는 것이 마치 진정한 자유와 안식을 얻는
것처럼 가르치는 거짓 사상과 철학과 종교가 세상을 휩쓴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세상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이
땅에서 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대언자들이 믿음을 통해 왕국을 정복했듯이 우리는 믿음을 통해 안으로 육신의 정욕을 밖으로는 세상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둘째, 믿음을 통해
의를 이루었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의롭지 못합니다. 욥기에
[사람이 무엇이기에 깨끗하겠느냐?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가
무엇이기에 의롭겠느냐?](욥15:14)라고 했고, 솔로몬은 말하기를,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였으니 내가 죄에서 떠나
순결하다, 할 자가 누구리요?](잠20:9)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오직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불법들이 우리를 바람같이 몰아가나이다.](사64:6)라고 했습니다. 전도자는
이르기를,
[이는 선을 행하고 범죄하지 않는 의인이 땅 위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로다.](전7:20)고 합니다. 아무리 의롭게 되려고
노력해도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 점을 누구보다 깊이 깨달았던
사람입니다.
[보소서, 내가 불법 중에서 형성되었으며 내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수태(受胎)하였나이다.](시51:5). 사람이
무슨 선악을 알고, 행하기 전에 이미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람의 상태요, 지위요, 본질이요, 인격적 정체성입니다. 이는
천부인권론을 주창하는 계몽주의자들이나 성선설을 주창하는 종교인들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 태어 난다”는 주장이 완전히 헛 소리임을
말해 줍니다. 태어나면서 ‘하나님의 형상’, ‘신성(神性)’, ‘불성(佛性)’을 지닌 채 태어나 단지 그것을 개발하고, 깨우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구원없는 기독교, 그리스 철학, 불교, 유교 등의 핵심 교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 죄가운데 살다 죄 가운데 죽는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죄인이 의롭게 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대언자들은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었고, 의를 이루었습니다. 죄인들이 육신의 행위, 율법의 행위, 노력, 선행, 금욕, 종교적
수련 등을 통해 의를 이루고자 할 때 그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 외에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을 통해 의를
이루었다는 것은 대언자들이 말씀을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몸소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했으며, 말씀대로 살았음을 말해 줍니다. 대언자들은 단지
말씀을 전하는 스피커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어떻게 믿고 순종하는가를 그들의 삶으로 보여 주었으며, 그들의 선포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행위’로 자신이 선포한 것들을 다시 한 번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을 통해] 의를 이루었다는 이 말씀은 단지 믿는다고 말만
할 뿐 전혀 행하지 않는 현대 교회의 맹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들은 믿음의 행위로 열매를 맺고, 빛을 발하고,
맛을 내고, 향기를 맡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위와 함께 일하고 행위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약2:22).
셋째, 믿음을 통해
약속들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류, 물증, 담보물 등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말씀만 주시기 때문에 믿음 외에 다른 무엇으로도 주님의 약속들을 받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너희가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벧후1:4)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대언자들에게 주어진 어떤 많은 약속들보다 ‘더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약속들을 기록한 문서를 받는 영수증과 같습니다. 믿음은 세상의 어떤 담보물이나 증표보다 더 확실한
계약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으로 하신 모든 말씀은 변개하실 수 없고, 폐하거나 무를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것은 땅이
아니라 땅에 대한 약속이었고, 아들이 아니라 ‘씨’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인내로 기다리게 하신 후에 약속하신 것들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더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때를
정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약속들을 받아 인내로 기다리면 그 성취를 보게 될 것입니다.
넷째, 믿음을 통해
사자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이 부분은 ‘다니엘’을 언급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니엘은 대적자들이 기도할 때에 사자 굴에
던지기로 정한 법을 알면서도 늘 하던대로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창을 열어 놓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 6:10,
[이때에 다니엘은
그 조서에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들어가 자기 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자기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더라.](단6:10). 다니엘은 자신이 기도를 할 경우에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 하던대로 기도했는데 이는 습관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사자 굴이 결코
다니엘의 기도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가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심으로 다니엘은 아무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단6:22).
자, 보십시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마치 다니엘이 믿음을
통해 사자들의 입을 막은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언제나 이렇습니다. 믿음을 통해 하는 일은 사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믿음을 통해 왕국을 정복할 때 정복자로 앞서 나가신 분은 주의 천사였습니다. 믿음을 통해 사자들의 입을 막았다고 기록하는 것은 [믿음]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행하지 않으셨을 것임을 내포합니다. 우리 역시 다니엘처럼 믿음을 통해 사자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對敵)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마귀는 울부짖는
사자입니다. 그 입은 “믿음을 통해서”만 막혀집니다. 마귀는 그 입을 벌려 신성 모독, 비난, 욕설, 불평, 불신, 시기심 등 온갖 더러운
것들을 자극하는 말을 쏟아 냅니다. 마귀는 입을 벌려 하나님께 우리를 거짓 고소하고, 악의에 찬 비난을 합니다. 사자의 울부짖음은 때로 우리의
고막을 가르고 가슴을 덜컹 내려 않게 하며, 때로는 손발이 떨리고, 신경 쇠약에 걸리게도 합니다. 마귀는 욥을 시험했듯이, 다윗을 시험했듯이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울부짖는 사자 같은 마귀의 입을 어떻게 막습니까? 그 비결을 우리는 다니엘에게서 배웁니다. [믿음을 통해서]
마귀의 입을 막아 버리십시오.
우리는 주님을 향해 마귀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십시오.
[나는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시81:10). 기도하는 입을 크게
여십시오. 찬양의 목소리를 크게 내십시오. 주를 경배하고 감사하는 입을 넓게 여십시오. 덕을 세우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입을 여십시오.
믿음으로 우리는 담대히 입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 속에서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이 쏟아져 나가게 해야 합니다. 다윗은 사자의 입을 막은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입에서 이빨들을 부러 뜨려 버렸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오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빨들을 부러뜨리소서.
오 [주]여, 젊은 사자들의 큰 이빨들을 부러뜨리소서.](시58:6). 이것이 다 믿음의 힘입니다. 진정한 믿음, 참된 믿음은 하나님이
내 안에서 나를 위해 일하시도록 합니다. 하나님은 친히 하신 모든 일을 우리의 믿음이 이루어 낸 일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사자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들(행20:29), 뱀들(마23:33), 개들(빌3:2), 진창 속에 뒹구는 돼지들(벧후2:22)이 있습니다.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다니며
받은 말씀을 즉시 빼앗아 가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다니엘의 대적들이
다니엘을 이길 수 없었듯이 주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믿음을 통해 산다면 우리는 바울이 외친 것과 동일한 외침을
외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고소하리요?](롬8:33).
[누가 정죄하리요](롬8:34).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마귀의 대적, 고소, 정죄하는 입을 틀어
막고, 승리를 선언합니다. 우리 이 시간 모두 [믿음을 더해 주소서.] 기도합시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