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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용맹하게 되어

말씀: 히브리서 11:34
요절: 히브리서 11:34


누가 말하기를 “믿음의 삶은 갈등의 삶이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후로 삶에 찾아온 것은 평안, 행복, 자유, 안식, 기쁨과 같은 좋은 것만이 아니라 죄와 육신과의 끊임없는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세상을 못 박기도 하지만 또한 세상에 못 박히기도 합니다. 성령을 통해 강 같은 평화, 넘치는 기쁨의 연속이 아니라 투쟁의 연속인 것이 믿음의 삶을 산 이들의 간증이요, 현장 보고입니다. 저 역시 거듭난 후로 잠시 놀라운 평강을 누렸지만 이후로 오랫동안 고민, 번민, 갈등의 나날을 보낸 기억이 선명합니다. 육신을 입고 악한 현 세상을 사는 동안 성도들은 안식의 시간이 아니라 ‘투쟁과 전쟁’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지치지도 않습니다. 순례의 길은 가는 길목마다 원수의 매복이 있고, 악한 자들이 쏘는 불 화살이 날아 듭니다. [보라, 사악한 자들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여 마음이 올바른 자를 몰래 쏘려 하는도다.](시11:2). 우리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믿음이 없기 때문이요 둘째,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 오는 각종 시련들을 겸손하게 받지 않고 불평하기 때문이요 셋째, 교회의 지체간에 다투고 싸우는데 온 힘을 다 빼 버리는 까닭에 정작 원수 마귀와 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가 약 20년을 넘게 신앙 생활을 하면서 경험으로 체득한 것들입니다. 죄와 싸우고, 육신의 정욕과 싸우고, 마귀와 싸우는데는 한없이 연약하고 무기력한 형제들이 교회 내에서 같은 믿음의 형제들과 싸울 때는 얼마나 용맹 무쌍한지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강하게 되어 용맹하게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고, 세상을 못 박고, 자신의 지체 안에서 다투는 영적 악들을 소멸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모두 구원받는 순간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고난을 견디어 내라. 전쟁을 치르는 자는 아무도 이 /세상/ 삶의 일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자기를 군사로 택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우리는 영적으로 모두 군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삼는 그리스도의 군사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순간 이미 군인이며,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영적 전투는 전후방이 따로 없습니다. 내가 사는 곳, 내가 있는 바로 그곳이 전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전쟁터에서 동료들과 싸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내분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습니다. 육신적인 형제들은 영적인 형제들을 경쟁자를 넘어서 원수로 여기고 싸웁니다. 사울이 다윗을 원수요, 적으로 여겼고 이스마엘은 이삭을, 에서는 야곱을,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원수요 적으로 대했습니다. 라헬은 언니 레아와 싸웠습니다. 그녀는 납달리를 낳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라헬이 이르되, 내가 내 언니와 큰 싸움을 싸워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창30:8).그래서 영적인 성도들은 안에서 싸움을 걸어오는 형제들을 피해야 하고, 밖으로는 싸워야 할 원수들을 대적해야 하는 어려움에 놓여 있습니다.

군사로 부름받은 군인의 길은 고단합니다. 군대가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병사들의 삶을 동경하거나 그리워하는 이는 없습니다. 세상과 우리는 한 번도 평화 협정을 맺은 적이 없습니다. 세상과 성도는 단 한 번도 화해한 적이 없습니다. 성도는 단 한번도 죄와 신사 협정을 맺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휴전도 정전도 없는 그런 상태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구원의 대장이신 주님은 전쟁을 독려하십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영원한 생명을 붙들라.](딤전6:12). 성경은 우리에게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면 승리는 노략물로 주어집니다. 승리는 선물입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싸우기 싫다. 나는 전쟁이 싫다. 교회에 온 것은 평안과 자유, 안식과 기쁨을 얻기 위함이지 싸움을 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싸우기 싫다고 해서 전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수들은 결코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7:5,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에 우리 육체에 안식이 없었으며 사방으로 고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싸움이 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노라.](고후7:5). 이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던 바울의 고백입니다. 세상이 바울과 그 동료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상은 결코 믿음을 지닌 이들을 모른 채 하지 않습니다. 법적, 제도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는 나라라 해도 ‘마귀의 불화살’은 계속해서 날아들고 있습니다. 바울과 같은 사도들, 전도자들에게만 이런 영적전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전쟁은 선교사들이나 목사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한 싸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이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또한 지금도 내 안에 있음을 듣는 바니라.](빌1:30).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통해 강하게 되어야 하고, 싸움에서 용맹하게 되어야만 합니다.

용맹은 인간적 기질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우리 안에 주어지는 성품입니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도 주님을 믿을 때 그는 강하게 되고, 용맹스럽게 됩니다. 주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을 버려두고 모두 도망을 쳤습니다. 그들은 다락방에 함께 모여 꼭꼭 숨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사도행전에서는 매질이나 감옥이나 죽음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예수가 주요, 그리스도시오,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선포합니다. 매질을 당하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담대함’을 보았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겁을 먹은 채 눈치보며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항상 선포자들은 ‘담대히’ 말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성격이 담대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용맹하게 된 것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연약한 자는 강하게 되고, 겁이 많은 자들은 담대하게 되며, 적을 맞을 때면 용맹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 순간 순간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는 하나님의 보급로요, 통로입니다. 믿음을 통해 용맹하게 된 자들이 외부의 군대들을 물리칩니다. 우리는 승리하지 못하면 패배자가 됩니다. 정복 당한 자는 정복자의 노예가 됩니다.

구약 성도들에게 외부의 군대라 하면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주변 민족들입니다. 블레셋, 시리아, 바빌론, 이집트 등이 외부의 군대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적들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거한 여호수아 때부터 외부의 적들과의 전쟁은 구약의 전 시대에 걸쳐 반복되었습니다. 믿음을 통해 용맹하게 되면 승리했고, 안식을 얻었습니다. 반면 배교하고 믿음을 버리면 그들은 패배자요, 노예로서 공물을 바치며 종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역사를 통해 승리와 패배의 갈림길은 언제나 ‘믿음’의 유무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믿음을 통해 용맹하게 되어 외부의 군대들과 싸워 물리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후로 모든 사사들 역시 그러한 예들에 해당합니다. 다윗이나 아사 왕, 히스기야 등이 믿음을 통해 용맹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교훈과 본을 통해 배움을 얻어야 합니다.

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십시오. [... 싸움에서 용맹하게 되어 외부의 군대들과 싸워 물리치기도 하며](히11:34). 이스라엘이 외적을 물리친 것은 강한 군대나 말들이나 천재적인 전술, 전략가들이나 뛰어난 무기 체계 등이 아니라 언제나 ‘믿음을 통해서’였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언제나 믿음입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4). 성도들에게 믿음은 언제나 전부입니다. 믿음이 없을 때는 작은 적도 크고 무섭게 느껴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원수들이 일어나서 너를 치려 하면 [주]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신28:7).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을 믿을 때 얻는 복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역사에서 현실로 늘 드러난 결과로 보고 체험한 결과입니다. 출애굽기 23:22, 27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가 참으로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고 내가 말하는 바를 다 행하면 내가 네 원수들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對敵)들에게 대적이 되리라.](출23:22). [내가 나의 두려움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만나게 될 모든 백성들을 멸하고 네 모든 원수들로 하여금 그 등을 네게서 돌리게 할 것이며](출23:27). 믿을 때 용맹하게 되는 이유는 주님이 친히 그들을 멸하시는 최선봉에 서시기 때문입니다. 믿을 때 성도들이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이길 사람이 없고, 하나님을 이길 민족이 없는 한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을 때 어떻게 됩니까? [[주]께서 너로 하여금 네 원수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또 네가 땅의 모든 왕국으로 흩어지고](신28:25). 주님께서 패배를 주시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군사 동맹을 맺든지, 군대를 양성하든지, 무기를 계발하든지 별별 노력을 다해도 원수를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너희들 힘으로 살도록 버려 두마, 너희에게 아무 간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개입하셔서 패배를 선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로 하여금 네 원수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어떤 경우에도 성도의 삶에 주님은 개입하십니다. 믿음으로 살 때는 승리를, 불신으로 살 때는 패배를 주시는 것입니다. 복과 저주, 생명과 죽음, 승리와 패배 등을 직접 주시는 것입니다. 승리를 믿음으로 얻듯이, 패배 역시 믿음 없음으로 인해 주님께 얻은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들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힘을 길러도 결코 정복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믿음을 통해서 강하게 되고, 용맹하게 됨으로써만 이길 수 있습니다. 삼손, 다윗, 기드온 등은 믿음을 통해 용맹하게 싸워 이긴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을 통해서 열악한 무기 체계, 적은 수의 군사, 열악한 환경에서 용맹하게 싸워 외부의 군대들을 물리쳤습니다. 기드온이 300명으로 미디안 군대를 물리친 것은 전 세계 전쟁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지닌 무기가 최신 무기가 아니라 ‘나팔과 빈 항아리’(삿7:16)였다는 사실은 원수들이 미리 알았더라면 어이가 없었을 것이며, 훗날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수치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을 통해 기드온은 약함 가운데서 강하게 되었고, 싸움에서 용맹하게 되어 외부의 군대들을 물리쳤습니다. 전쟁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상의 준비물은 무기와 병력입니다. 원활한 보급 체계가 갖추어 지고, 뛰어난 전략과 전술과 지휘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군인들은 엄정한 군기와 사기가 충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런 모든 것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이 누구십니까? 믿음을 통해서 싸움에서 용맹하게 된 이들은 무엇을 믿었던 것입니까? 주님이 전사란 사실을 믿었습니다. [[주]는 전사(戰士)시요, [주]가 그분의 이름이로다.](출15:3). [누가 영광의 왕이시냐? 강하고 능하신 [주]시요, 전투에 능하신 [주]시로다.](시24:8). 하나님께서 전사시고, 강하고 능하신 주시며, 전투에 능하신 주시란 사실을 믿는 믿음이 싸움에서 용맹을 떨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대장이십니다(히2:10). 주님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칼로 원수들을 소멸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19:15에서 [그분의 입에서 예리한 칼이 나오니 그분께서 그 칼로 민족들을 치시고...](계19:15a), [그 나머지는 말 타신 분의 칼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칼로 죽임을 당하니...](계19:21a)란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전사이십니다. 이 주님을 믿는 이들은 아무리 연약하고, 어린 자라도 강하게 되고, 용맹하게 되어 승리자로서의 영예를 얻습니다. 아사 왕을 보십시오. 그는 믿음을 통해 그는 엄청난 이디오피아의 군대와의 싸움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주눅 들지 않았고, 원수를 향해 담대히 전투에 임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없던 군대가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원수가 갑자기 항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믿음을 통해서 강하게 되고, 용맹하게 되고, 승리하게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역대기하 4:11, [아사가 [주] 자기 하나님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여, 많은 사람들로 돕든지 능력이 없는 자들로 돕든지 주께는 문제가 되지 아니하나이다.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이는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으로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음이니이다. 오 [주]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하14:11). 핵심은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믿음을 통해서만 현실에서 능력으로, 승리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지혜는 믿는 자들의 믿음을 통해서만 빛으로, 향기로, 열매로 드러납니다. 믿음 외의 그 어떤 다른 수단을 모두 동원한다 해도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 안에 재현하고, 드러내며, 일하게 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평안을 원합니다. 주님이 주신 평안은 믿음을 통해 싸워 이긴 승리의 전리품이요, 결과입니다. 우리는 기쁨을 원합니다. 기쁨 역시 승리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참된 자유를 원합니다. 자유는 죄의 사슬로 우리를 결박하는 마귀를 이겼을 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안식은 우리가 강하여 짐으로 감히 원수들이 우리를 공격할 시도조차 하지 못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나라와 나라 간에도 마찬가지이며, 개인과 개인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이 어떤 결과나 열매를 기대한다는 것은 헛된 소망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믿음을 통해서 강하게 되기도 하고, 용맹하게 되기도 해야 합니다.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교도들 즉 주변 민족들과의 전쟁이었지만 신약 성도들에게 ‘외부의 적’은 저 하늘에 있는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세상, 육신, 죄, 마귀들입니다. 에베소서 6:12,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엡6:12). 우리는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 정확히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셨고,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주셨고, 싸울 수 있는 전쟁 무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전쟁 무기는 강력합니다. [비록 우리가 육신 안에서 걸으나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통해 강력하여 요새들도 무너뜨리느니라.)] (고후10:3-4). 문제는 믿음입니다.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강력한 힘이 드러나고, 요새들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해서만 불붙은 마귀의 불화살을 끌 수 있습니다(엡6:16).

여러분은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습니까? 무엇과 싸웁니까? 어떤 이들은 자신이 군사란 사실도 모른 채 삽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영적 전투의 현장이란 사실도 모릅니다. 이는 자신의 원수 마귀가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는 상태란 점을 말해 줍니다. 전쟁터에서 싸우지 않는 이는 죽은 자 뿐입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데도 싸우지 않는 이들은 이미 포로가 되어 무장해제 된 상태로 격리된 자들입니다. 포로수용소에 있으면 전쟁터 보다 편해 보이기도 합니다. 포로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용소에서 시키는 대로 가만히 순종하기만 하면 먹여 주고, 재워 줍니다. 이적 행위만 하지 않으면 먹을 때 먹고, 잘 때 잘 수 있습니다. 야전에서 싸울 때에 비하면 훨씬 편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죄의 포로 된 삶, 마귀의 포로 된, 육신의 노예 된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비록 신분은 하늘의 시민권자요, 소속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지만 여전이 죄의 종 된 삶, 노예 된 삶을 사는 것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포로 수용소에서는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약간의 제한된 자유를 줍니다. 마찬가지로 마귀는 육신적인 성도들에게 복음이 아닌 종교의 자유를 줍니다. 믿음이 아닌 율법을 줍니다. 성령이 아닌 육신의 쾌락을 즐기도록 합니다. 베드로후서 2:19, [그들이 자유를 약속하나 정작 자기 자신은 부패의 종이 되었으니 이는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라.](벧후2:19). 이것이 오늘날 우리 주변에 있는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원수를 이기고 다스리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압할 권능을 주노니 어떤 방법으로도 너희를 해칠 것이 전혀 없으리라.](눅10:19). 믿음을 통해서만 이런 능력이 주어지며, 발휘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c). 주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은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히2:14b). 주님은 승리자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마귀를 대적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근거는 주님께서 이미 ‘승리하셨다’, ‘주님은 승리자이시다’란 영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믿음의 싸움을 싸울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승리, 이김’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싸움에서 용맹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5:57).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고후2:14a). 우리가 싸움에서 용맹하게 될 수 있는 믿음의 근거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 싸움에서 용맹하게 되어 외부의 군대들과 싸워 물리치기도 하며] (히11:34). 외부의 군대들이란 영적 존재들입니다. 마귀와 그의 군대들은 ‘외부의 군대들’입니다. 누가복음 10:18,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 주님은 이들이 저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온 존재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들을 대적하여 싸우려면 육신의 힘, 물질적인 무기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저들이 쏘는 화살은 방탄복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믿음의 방패가 필요합니다. 저들을 공격하는 무기는 핵무기나 생화학 무기가 아니라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엡6:17). 마귀는 사람들이 만든 어떤 무기도 무서워 하지 않습니다.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공격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길들 중에서 으뜸이니 그를 만든 이가 자신의 칼을 그에게 가까이 댈 수 있느니라.](욥40:19). 우리는 이런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전쟁을 알고, 용맹하게 영적 전투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통해 행하면 원수들을 밟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감히 행하리니 이는 우리의 원수들을 밟으실 이가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로다.](시60:12).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언제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만 용맹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용감하게 행할 때 우리의 원수들을 밟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 앞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순종을 말합니다. 말씀을 믿고,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이가 얻는 담대함을 성경은 ‘용맹, 용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용맹무쌍하게 싸운 일에 대해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내가 내 원수들을 쫓아가서 따라잡되 그들을 소멸시키기 전에는 돌아오지 아니하였으며 그들에게 상처를 입혀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였더니 그들이 내 발 밑에 쓰러졌나이다.] (시18:37~38). 다윗은 결코 자신의 힘으로 용맹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통해서 용맹하게 된 것입니다. 39-40절에서 다윗이 그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전쟁하게 하시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를 두르사 나를 치려고 일어난 자들을 내 밑에 굴복하게 하셨음이니이다. 또 주께서 내 원수들의 목을 내게 주사 나로 하여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멸하게 하셨나이다.] (시18:39~40). 주님께서는 우리를 군사로 부르시고, 전쟁하게 하시려고 능력을 주십니다. 원수들을 굴복시키십니다. 원수들의 목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뱀과 전갈을 밟을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겁을 먹고 두려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말에 똥개도 믿는 것이 있을 때는 용감해지는 법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내게 힘을 주시고, 도우시고, 강하게 하시고, 능력의 띠를 두르시고, 원수를 대적하시는 주님을 믿는 우리가 용맹스럽게 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주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용감히 행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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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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