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오시는가?
말씀: 행1:11
요절: 행1: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이 언제 오실 것인가? 그 날과
시각(day and hour)은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언제(when)? 라는 때에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주님은 “그것은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1:7)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재림의 징조, 재림의 때에 있을 표적, 마지막 날들이 무엇과 같은지 등등에 대해서는 많이
말씀하셨지만 정확한 날짜를 못 박거나 정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24:36). 우리가 아무리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재림의 날짜와 시각입니다.
주님은 ‘도둑같이’ 오신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가 사람의 아들이 오는 그 날도 그 시각도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그 시기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살전5:1~2).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언제 오실 것인가?
날짜를 계산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애써 노력하거나 기도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우리 역시 침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주님이 어떻게 오실 것인가? 에 대해서는 주님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눈에 보이게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똑같은 방법으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11,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주님은 천사들과 함께 올라 가셨습니다.
주님은 몸을 입고, 사람들의 눈에 보이도록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은 구름을 타고 올라 가셨습니다. 고로 주님은 몸을 입고, 사람들이 눈에
보이도록, 천사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 동일한 예수님”(this
same Jesus)은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선포합니다. 다른 예수가 이 땅에 올 때에는 이런 모습이
아닙니다. 다른 예수가 자신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이라고 할 때에는 이런 방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 앞에 자신을 보일 것이며, 나타날
것입니다. UFO를 타고 오든지, 찬란한 빛을 타고 오든지, 다른 기적적인 방법으로 하늘에서 내려 온다고 해도 그는 성경이 말한 ‘이 동일한
예수님’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7,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하여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로다. 아멘.](계1:7). 주님은 순간 이동을 통해서 오시거나
우주선을 타고 오시거나 불 말이나 불 병거를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름들’과
함께 오십니다. 구름은 언제나 주님의 영광의 임재를 나타낼 때 쓰였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보라, 주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니라”(출16:10)고
말합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보라, 내가 짙은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한 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듣게 하려 함이며
또한 영원히 너를 믿게 하려 함이니라,...’(출19:9)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 산에 오를 때 구름이 산을
덮었습니다(출24:15). [[주]께서 구름 가운데 내려오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주]의 이름을 선포하시니라.](출34:5).
우리는 성경에 주님의 임재가 늘 구름과 함께 있음을 봅니다.
주님의 오심은 두 단계입니다. 첫 번째는 이 땅에 곧 바로 내려
오시지 않고 공중에서 우리를 불러 올리십니다. 주님은 대기권 영역에서 우리를 부르시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이 일어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공중으로 끌려 올라 갈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5-17,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5-17). 주님은 공중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땅에서 하늘로 끌어
올리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부활’과 ‘휴거’라는 위대한 진리를 보게 됩니다. 이 일은 신학적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 우리에게
있을 일들입니다. 주님은 일찍이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부활),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휴거)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11:25-26). 주님은 부활과 휴거를 동시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2-53,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죽은 자들의 부활)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휴거)](고전15:52-53).
주님의 오심은 예기치 않는 날,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그 때에
오실 것입니다. 주님은 “도둑같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도둑은 자기가 언제 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둑은 사람들이 가장 긴장을 풀고 평안하다고
생각할 때 옵니다. 도둑은 집안에 있는 물건을 모두 가져 가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귀한 물건들만 찾아서 재빠르게 가지고 갑니다. 도둑은
결코 자신이 훔친 집에 살거나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훔치려한 물건만 훔치면 즉시 떠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도둑처럼 이 땅의
보화들이 ‘성도들’만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성경에서 성도는 특별한 보배요, 진주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 묻혀 있는 성도들, 땅 위에 살고 있는
성도들을 모두 순식간에 저 하늘로 데려 가실 것입니다. 이 땅은 성도들이 모두 없어진 후에야 무엇인가 잃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로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시는 날 이
땅에 일어날 현상들, 결과들에 대한 상상을 그려 놓습니다. 가족 중에 누가 사라지고, 일터에서 어떤 이가 없어지고, 운전하던 사람이 갑자기
하늘로 들림을 받아 교통 사고가 나는 등등의 일로 인해 세상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던 성도들이
사라지면 이 땅은 급속도로 부패하고 더욱 음란해질 것입니다. 놀라운 일 가운데 하나는 이 땅에서 성직자요, 훌륭한 그리스도인들로 존경을 받고
높임을 받던 이들이 여전히 이 땅에서 활보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인지도 몰랐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어졌는데 반해 큰 교회의 사역자들이며, 신학교
교수들이라는 사람들, 목사요, 장로요, 집사라는 사람들 중에 휴거되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 할 것입니다. 주일 예배 시간에는 좀 줄긴 했지만
대부분의 성도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그대로 나올지도 모릅니다. 어떤 교회는 성도가 아무도 나오지 않아 그 날 이후로 폐쇄되어 버리는 교회가 있을
것이고, 어떤 교회는 전혀 피해가 없었다고 좋아할지도 모릅니다. 자,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공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하는가? 아니면 그 전에 들림을 받는가? 란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도들이 대환란을 통과해서 끝까지 믿음을 부인하지 않고 이기는 자들만이 들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교리를 환란
통과 또는 환란 후 휴거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일부는 대환란 전에 들림을 받고, 믿음이 신실하지 않는 자들은 대환란을 통해 믿음이 연단을
받은 다음에 들림 받는다고 합니다. 이 교리를 부분 휴거설이라고 합니다. 깨어있는 성도들, 주님의 재림을 열망하던 신실한 사람들만 환란 전에
들림 받을 것이고 나머지는 대환란을 통과해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의 근거 구절은 [...또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히9:28b)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부분 휴거를 지지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주님이 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던 자들’이 모두 일어나듯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성도가 들림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부활과
휴거의 근거는 우리의 삶이 신실했는가? 깨어 있었는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슨 일을 했는가?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었는가?”란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면 그는 부활하고, 들림받습니다.
만약 성도가 대환란을 통과해야 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환란’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는 주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마24:42-44). 부분 휴거론이 맞다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일부는 하늘에, 일부는 땅에 있게 되는데 이는 몸된 교회의 분리를 주장하는 이상한 교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란 전 휴거가
성경적 교리요, 진리임을 믿습니다. 대환란은 교회를 깨끗하게 연단하기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대환란은 ‘야곱의 고난의 때’(렘30:7)이며,
주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정련하기 위함이지 교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요한 계시록에서 이 땅에 일어나는 대환란의
재앙이 기록된 4-19장까지 교회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대환란의 기간에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언을 연구할 때 주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for)
오시는 것과 성도들과 함께(with) 오시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들을 위하여 오시는 것은 성도들을 하늘로 데려가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늘로 들림을 받아야 주님과 함께 올 수 있습니다.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이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주님”에 대해서
말씀합니다(슥14:4, 골3:4, 살전3:13, 4:14, 유14). 주님과 함께 오려면 먼저 들림을 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환란 전에 들림을 받는다는 진리는 성경에 나오는 많은
예표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예표하는 인물 중의 하나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버림을 받은 후에 이방인 신부인 ‘아스낫’과 결혼합니다. 요셉은 7년의 기근이 있기 전에 결혼을 통해 신부를 얻었습니다. 7년의
기근은 ‘7년 대환란’을 예표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 환란 이전에 교회라는 신부를 얻게 될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 역시 예수님을 가장 잘 예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세는 자기 형제들에게 배척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이방인 신부를 얻었는데 이는
이집트에 대재앙이 내리기 전이었습니다. 휴거될 성도의 예표인 ‘에녹’ 역시 그러합니다. 에녹은 대홍수 이전에 하늘로 들림을 받았습니다. 반면
노아는 대홍수를 통과해서 구원받았는데 이는 환란을 통과해서 구원받게 될 ‘환란 성도들’을 예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계7:1-8). 우리는 지금
죽음을 보지 않고 들림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큰 그런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어 하늘로 들림을 받을지도 모르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환란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부활과 공중 들림을 기다립니다. 저 하늘로 올라가
영광의 주님과 사랑하는 성도들을 만날 그 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휴거와 재림 사이에 성도들이 저 하늘에서 받게 될 그리스도의
심판석, 왕의 혼인식 등에 대해서는 후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이제 지상 재림에 대해서 함께 살펴 봅시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두 번째 단계인 ‘지상 재림’은 대환란이 끝날 무렵입니다. 세상은 적그리스도가 통치하고 있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낼 것입니다. 정치, 경제, 종교 등이 통합된 적그리스도의 단일 세상이 펼쳐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순간에 하늘에서 갑자기
주님과 천사들과 성도들이 함께 이 땅에 내려오게 됩니다. 영광의 구름과 함께 주님과 하늘의 군대들이 올리브 산에 설 때 세상은 통곡을 하게 될
것입니다(마24:30). [그 날들의 환난 뒤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자기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지파가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29-30).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은 공중 재림과 달리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물리적인 변화가 하늘에 나타납니다. 소위 천재지변이라고 할 만한 분명한 변화가 표적으로 온 세상에 보여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서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일상 생활에서 복음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들은 물론이고 인권, 교육, 여성의 지위 향상, 장애인들의 문제, 실직, 노후 문제
등등에 성도들이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고민하지만 실제로 그런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주님이시며, 재림으로써만 해결됩니다. 주님의
재림이 늦추어지면 질수록 정부와 교회의 노력이 아무리 커도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더 어려워질 뿐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심판자요,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의 왕국을 선포하며 기다리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사실 가장 실제적인 교리요,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모든 범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종식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인권 문제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종식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 분쟁, 종교 간의 갈등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해결됩니다. 종교간의 대화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가난, 빈부 격차, Homeless, 기아, 헐벗음 등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써 해결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종교적 이상이나 사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의 실제적인 삶 그 자체의 해결책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가장 실제적인 교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구촌의 환경 문제, 기상 이변, 자연 재해, 오존층의 파괴 문제 등은 각 나라의
외교와 비정부 환경 단체들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으로 모두 해결됩니다. 인간의 존엄성 회복, 도덕성 회복과 같은 운동은
높은 교육열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으로 해결됩니다. 주님의 재림은 이 세상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군사, 민족 간의
분쟁, 영토 분쟁, 종교 문제 등 모든 문제를 일거에 영원히 해결하는 유일한 해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때로 성도들이 재림에 대해서 너무나 추상적으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영적으로만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가장 구체적이고, 실질적이고, 현실적이고, 물리적이며, 하늘과 땅과
인간의 모든 근원적인 문제의 완벽한 해결책입니다.
저는 날마다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분쟁을 야기한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언론은 중동의 모든 불안, 분쟁을 이스라엘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국제 여론도 그러합니다. U.N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거의
50년이나 메달려 중재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중동 평화안이니 평화 회담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결코 해결 할 수
없습니다. 누가 해결합니까?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중동은 항구적인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군대, 경제력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통해 안전을 보장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모든 유대인들은 모이게 될 것이며, 모든 민족들의 머리로 우뚝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땅은 에덴의 동산같이 될 것입니다(겔36:33-35).
온 세상의 모든 민족들은 주님의 심판을 받아 양으로 분류된
민족들만 천년 왕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민족들이 민족들을 대적해서 전쟁을 하지 않게 될 것이며,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전쟁을 배우는 군대가 없는 그런 시대가 될 것입니다(미4:3-4, 사2:4). 주님의 재림은 전쟁과 외교, 무역, 문화 교류
등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분쟁을 종식시키며, 노사간의 갈등, 무정부주의, 반정부 시위 등과 같은 모든 문제가 끝이 날 것입니다.
사람들을 속이고 대적하던 마귀와 그의 종들은 주님의 오심으로
결박되어 깊은 구렁에 갇히게 되며, 더 이상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게 됩니다(계20:1-3). 이 세상의 문제는 단지 사람의 문제만
아니라 배후에 역사하는 마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역사하는 영에 따른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 문제는 사람들이 결코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죄로 저주받았던 땅은 주님의 재림으로만 그 저주가 풀리게
됩니다. 로마서 8:22, [또 전체 창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롬8:22).
이것이 현재의 땅과 땅에 사는 피조물의 상태입니다. 이것은 동물 애호가들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면
이 모든 문제는 단숨에 해결될 것입니다. [광야와 적막한 곳이 그것들로 인해 기뻐하며 사막이 장미같이 피어 즐거워하고](사35:1).
이는 저주가 풀린 땅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우리의 삶, 세상, 땅 등 모든 일상적인 삶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 올 것인가를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재림이야 말로 성도들의 복된 소망이요, 산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