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Q37.  이미 앞서 박사님은 기독교의 저명한 목사님들과 은사주의 운동가들이 카톨릭의 주교, 사제, 추기경들과 협약을 맺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형제로서 공통적인 믿음의 정의와 이해에 관한 협약이었습니다. 물론 저희들은 카톨릭 교회가 늘 카톨릭 교회에 속하지 않거나, 교황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예외없이 연옥이나 다른 곳으로 간다는 자기들의 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박사님께서 이 자리를 통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새 역본들안에 있는 카톨릭 본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NIV와 NASB는 카톨릭 교리와 너무나 일치하기 때문에 이런 협약이 맺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역본을 들고 20년만 사역하면 어떤 기독교 지도자라도 로마 교황을 루터나 칼빈, 쯔빙글리, 재침례교도들이 평생동안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확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3은 경고합니다. "아무도 어떤 식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할 것임이라."

킹제임스 번역자들은 그들의 헌사문에 죄의 사람을 대문자로 처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번역자들과 그의 선조들은 이 이름이 교황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인쇄된 킹제임스 성경의 헌사문에는 더 이상 대문자로 처리하지 않았더군요. 이런 현상도 오늘날 배교하고 있다는 증거들 중의 하나인 셈이죠. 새 역본들은 로마 카톨릭이 콘스탄틴 황제(A.D. 330)때부터 사용했던 정확히 똑같은 헬라어 사본을 따르고 있습니다. 전 역사를 통해 참된 교회는 단 한번도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필사본을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 사본들이 부패했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언된 대로 배교하고 있는 이 말세에 다시 그 부패한 사본들이 부활하여 배교를 부추기고  결국에는 하나의 세계 교회로 가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26년간 로마 카톨릭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제가 비교한 새 역본들이 로마 카톨릭의 신학과 교리에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저는 26세에 구원받았고, 주님은 거짓 교회로부터 나를 불러 내셨습니다. 계시록 18:4에 "내 백성아, 그녀에게서 나오라" 말씀하시기에 저는 나왔습니다).

새 역본들 안에서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에 자신들을 갖다 바치는 구절들이 수백, 수천 구절이나 됩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1:3에 예수님은 "홀로12)(by himself) 우리의 죄들을 정결케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에는 성모 마리아가 들어갈 구석이 없습니다. NIV에서는 홀로(by himself)란 말을 삭제함으로써 로마 카톨릭의 중보자, 동정녀 마리아가 끼어 들 틈을 주었습니다.

마태복음 1:25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예수님이 "그녀가 낳은 첫 번째 아들"(her firstborn son)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다른 아이들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NIV와 NASB에서는 "첫 번째로 낳은"(firstborn)이란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마리아는 영원한 동정이라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를 확고히 해 주었습니다. NIV 구약 성경에서 처녀(Virgin)란 단어를 대문자 처리하여 그녀의 영원한 동정성을 의미하는 마리아에게 주어진 명칭으로 만들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늘 소문자 virgin(처녀)을 씁니다.

새 역본들에서 가장 이상한 변화 중의 하나는 계시록 2:15에 나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니콜라파의 교리, 그것을 내가 미워하노라"(doctrine of the Nicolaitanes, which thing I hate)고 하십니다. 니코(Nico)는 정복하다는 뜻이고 레이티(laity)는 웹스터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귀족과 구별되는 사람으로써 어떤 특정 전문직을 갖지 않는 사람들, 즉 평민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약 성경 교리인 "믿는 자의 만인 대제사장" 교리대신 그들의 성직을 이용하여 성도들을 지배하려고 시도하는 학자들과 성직자들을 미워하십니다.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란 구절을 빼버림으로써 다시 한번 로마로 돌아갈 발판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누가복음 11:38에서 "씻다"(washed)라고 말하는 대신 어떤 새 역본들에서는 그 단어를 로마 카톨릭의 용어인 "정결례"(ceremonially washed)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5에서 "예물"(gifts)을 새역본들에서 카톨릭 용어인 "봉헌물"(vowtive gifts)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2:15에 "천사"대신에 새 역본들은 "수호 천사"(guardian angel)라고 합니다. 로마서 15:16에는 "하나님의 복음의 일을 하게하는"이라고 말씀합니다. 새 역본들에서는 "사제로서 하나님의 복음의 일을 하게하는"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23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무"(ministration)란 대신에 그들은 "사제직"(priestly service)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약 성경 전체에서 새 역본들은 "우리가 구원받았음이라"(we are saved)는 2형식 현재 시제를 모두 "우리가 구원받고 있는 중이라"(we are being saved)란 진행형 시제로 바꾸었습니다. 이는 알랜 쉬랙(Allen Schreck)이 쓴 <카톨릭과 기독교>란 책에서 주는 암시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는지를 물어보거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카톨릭 교인에게 "당신 구원받으셨어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저는 구원받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유아 세례를 받았을 때 구원받았고, 지금은 천국으로 가는 나의 길을 걷고 있는 중입니다."는 말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어법이 정확합니다. 새 역본들은 2형식 동사의 번역이 형편없습니다. 구원이란 우리가 일해서 얻는 어떤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새 역본들에서 로마 카톨릭식 번역인 "구원받는 중"(are being saved)이란 말은 점진적인 구원의 거짓된 개념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4에서 "진설병"대신 새 역본들은 "신성한 빵"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6:33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빵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그분이시니라."(For the bread of God is he which cometh down from heaven)고 하시지만. 새 역본들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빵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그것이니라"(For the bread of God is that which comes down from heaven).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숙주라고 믿는 화체설을 지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바빌론 창녀 교회"로 여겨져 온 교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주는 수 백개의 구절이 있습니다.

밥 케이스턴(Bob Kasten)이 쓴 다음 글은 그런 상항을 잘 요약해 줍니다.

두 여인과 작은 집 

중국 고전에 전쟁이란 말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한 글이 있다. 두 여인이 사는 작은 집을 그린 상징적인 그림은 마치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교회의 모습과 같다. 아브라함은 이 중국 그림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마지막 때의 집(교회)안에는 늘 다투는 두 여인이 살고 있었다. 신부와 창녀로써 영과 육신처럼 늘 원수였다. 신실하고 사랑스런 신부인 처녀와 변덕꾸러기인 거짓  신부인 창녀와는 완전히 달랐다. 한 사람은 늘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간구하고(엡5:18), 한 사람은 늘 채워져 있었다(술로). 유사한 점도 많았지만 권위에 대한 그들의 태도만큼은 천양지차였다. 한 여인은 기꺼이, 즐겁게, 그녀의 혼이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순종하고, 살아있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다른 한 여인은 늘 투덜대면서 "나는 나를 지배하는 이 사람이 싫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주권을 거부하고 자기 마음에 맞는 여러 사람을 사랑했다.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유구한 세월이 흘러 증명되었고, 그리스도를 영예롭게 하는 킹제임스 성경을 문자로 기록된 최종 권위로 믿었다. 그녀는 분열주의자, 배타주의자, 다루기 힘든, 성경 숭배자란 낙인이 찍혔다. 또 한 여인은 기록된 최종 권위는 없다며 여러 가지 성경을 모두 인정하였으나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다. 더 많은 것들을 즐기면 즐길수록 그녀의 마음은 무도회에서 하는 마음대로 짝짓기에 끌렸다. 모든 창녀가 그러하듯이 그녀도 매력적이었다(육체적으로). 현대적이고, 진보적이고, 모든 것을 포용한다고 인정받는 끌리는 여인이었다.

이 전쟁은 강력해 질 수 있다. 그러나 곧 우리의 사랑하는 이의 음성이 들린다(솔2:8). 영광! 자 그 때까지 나아가자!

오늘날 배교의 물결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 말씀이 또 다른 여인 (과부)에게로 갔다. 그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권위를 잃어 버렸다. 그녀의 교회는 킹제임스의 고어(죽은)를 발음하면서 그것을 빼앗아 버렸다. 그녀는 외로웠지만 포옹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없었다. 그 과부를 위해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