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찾아 나선 무리들-
말씀: 요 6:22-26 요절: 요 6:26
오병이어를 통해 배부르게 빵을 먹어 본 군중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피하시자 그들은 부지런히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열심히 찾아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빵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빵을 원하는 것이 사람들의 본성입니다. 주님이 그들을 해산해서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다음날 바다 건너편으로 와서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 다음 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분의 제자들이 탄 배 외에는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그분의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니라.](22).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분명히 동행하지 않은 사실을 아는데, 건너편에 배는 한 척 뿐이었습니다. 주님이 이곳에 계시려면 한 척의 배가 더 있어야 하는데, 배가 한 척 뿐이니 주님은 아직 건너편 바다에서 오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이성과 추론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밤에 물 위를 걸어서 건넜을 것이라는 생각을 누가 했겠습니까? 우리는 때로 우리의 생각으로 주님을 제한하고, 테두리 속에 가두고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
어떤 술 취한 사람이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었습니다. 30분 정도만 저으면 되는 작은 강을 한 시간을 저어도 배가 나가지를 않고 제 자리 걸음이었습니다. 이상하다 하면서도 노를 내려놓고 배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배가 묶여 있더란 것입니다. 나룻터에 묶인 배를 풀지 않고 그냥 계속 노를 저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의 틀에 주님을 묶어 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함으로써 믿음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3절입니다. [(그러나 다른 배들이 디베랴를 떠나서 {주}께서 감사드리신 뒤 그들이 빵을 먹던 곳으로 가까이 왔더라.)](23). 이들은 다시 주님을 찾으러 처음 위치로 왔습니다. 대대적으로 주님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어떤 놀라운 이적에도 이들은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자가 나았을 때나 침례를 받았을 때나 설교를 들었을 때 그들은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빵을 먹었을 때, 배가 불렀을 때 주님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24-25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또 그분의 제자들도 없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배를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그분을 만나 이르되, 랍비여, 언제 여기로 오셨나이까? 하매](24-25). 이들은 아무데서도 주님을 찾을 수 없자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랍비여, 언제 여기로 오셨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정작 이들이 물어야 할 것은 “언제 여기로 오셨나이까?”가 아니라 “어떻게 여기로 오셨나이까?”입니다. 언제 온 것이 아니라 배를 타시지도 않고 이곳에 온 방법을 물었더라면 ‘물 위를 걸어 오신 이적’에 대해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배가 부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자신들을 먹일 수 있는가?입니다. 주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시오, 구주란 사실을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진리를 찾아 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죄에서 구원해 줄 구세주를 찾아 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생명의 말씀을 들으러 찾아 왔거나, 스바의 여왕처럼 지혜를 들으러 찾아 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들은 무엇 때문에 주님을 이토록 간절히 열심히 찾았습니까? 자신들의 빵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최고의 지도자, 최고의 CEO는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와서 간절히 주님을 찾고, 또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교회도 부족해서 기도원을 찾고, 부흥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주님 자신보다는 주님이 주실 빵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뭔가를 간절히 찾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마음에 맞는 교회를 찾고, 어떤 이는 더 나은 직장이나 학교를 찾고, 어떤 이는 결혼할 배우자나 연인을 찾습니다. 사람들은 각각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청교도의 후예들이나 자유를 찾아 자신의 고국을 떠난 많은 사람들, 더 나은 삶을 찾아 이민 길에 오른 사람들, 진리의 지식을 찾아 길을 떠나는 구도자(求道者)들, 쾌락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먹고 살 길을 찾아 이리 저리 떠 도는 사람들...우리는 그렇고 그런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주님을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께서 하늘에서 사람들의 자녀들을 내려다 보사 혹시라도 깨닫는 자나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보려 하신즉 그들이 다 치우쳐서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시14:2-3). 진정으로 찾아야 할 것들을 찾지 않고 삽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어떤 이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찾아 평생을 헤맵니다. 어떤 이는 찾다가 지쳐서 포기하고 보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찾느라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을 찾았습니다. 헤롯은 어린 아이의 생명을 찾았습니다. 이방인들은 옷과 먹을 것을 찾습니다. 마리아는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눅24:5). 침례인 요한의 제자 둘은 예수님에게 “너희는 무엇을 찾느냐?”(요1:38)란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여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아닌 무덤에 누워서 여전히 죽어 계신 주님을 찾아 왔습니다. 주님은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슬피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그녀는 그분을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선생님이여, 당신이 그분을 여기서 옮기셨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일러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모셔 가리이다, 하매](요20:15). 이들은 예수님을 찾아오긴 했지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죽어 있는 시체를 찾았습니다. 천사들은 이들을 책망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 두 남자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느냐?](눅24:5). 주님을 찾아 나섰지만 주님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자기들 마음 속에 생각하고, 예상한 모습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계십니까? 혹시 무덤에 누워 계신 주님입니까? 십자가에 매달린 채 죽어 계신 예수님입니까? 오병이어로 빵을 배불리 주신 예수님입니까?
주님은 자신을 찾는 자들이 있는가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사람들의 자녀들을 내려다 보사 혹시라도 깨닫는 자나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나 보려 하신즉](시53:2). 그러나 하나님을 찾는 이는 없고,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자들은 많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니라.](히11:6). 누구라도 주님을 찾으면 주님은 만나 주십니다. 진리를 찾는 길은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주님은 부지런히 찾는 자들은 반드시 무엇인가 얻게 하십니다.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고 감추어진 보배들을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그때에 [주] 두려워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아는 것을 발견하리니 이는 [주]께서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자신의 입에서 내시기 때문이로다.](잠2:4~6).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시지 아무 것도 구하지 않고 찾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찾는 일은 마치 은을 구하는 것 같이 해야 하며, 감추어진 보배들을 찾는 것 같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숨으시는 하나님이시오, 감추어져 있는 보배와 같은 분이십니다.
주를 찾는 자들에게 미치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1. 버림받지 않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찾는 자들을 결코 외며하지 않으시며, 버리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찾아야 할 때 찾지 않는 사람들은 버림받을 지라도 고난의 순간, 절망의 순간에 주를 찾아 부르짖을 때 주님은 응답하십니다.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 주를 신뢰하리니 이는 [주]께서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셨음이니이다.](시9:10). 부흥은 주님을 찾고 간구하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네 자녀들이 그분께 범죄하였으므로 그분께서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그들을 버리셨을지라도 네가 만일 늦기 전에 하나님을 찾고 전능자께 간구하며 또 네가 순수하고 곧바르면 이제 그분께서 반드시 너를 위해 깨어나사 네 의가 거하는 처소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비록 네 시작은 작을지라도 네 나중은 심히 크게 되리라.] (욥8:4~7). 여러분들은 무슨 일에서나 먼저 주님을 찾고, 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을 찾는 자들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며,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시오,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을 찾는 자들은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시오, 생수의 근원이신 그분께 필요를 공급받는 사람들이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젊은 사자들은 부족하여 굶주릴지라도 [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34:10). 모든 보화는 다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찾으면 모든 것을 찾습니다. 주님을 찾기만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을 그 안에서 다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좋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은혜, 긍휼, 진리, 선함, 공의, 거룩함 등이 다 포함됩니다. 확신과 능력과 담대함 역시 좋은 것들입니다. 먹고 입을 것과 같은 것 역시 좋은 것입니다. 빛과 화평 역시 좋은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이런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넉넉하고, 넘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항상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에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3.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갈수록 우리의 삶은 기쁨과 즐거움이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쁨과 즐거움이 없던지 아예 코메디언, 개그맨, 배우들을 동원해서 인위적으로 쇼를 보여 주고, 그것을 쳐다보며 웃게 합니다. 스포츠 경기를 중계해 주고 이기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지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세상에 웃을 일이 거의 없고, 마음에 솟아 올라오는 기쁨과 즐거움이 거의 없는 시대이다 보니 인위적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잠깐 웃게 만들 수 있어도 내적인 기쁨과 즐거움이 될 수 없습니다. 기쁨은 주님을 찾을 때 오는 것입니다. [주를 찾는 자들은 다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주]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40:16). 주님께서 기쁨을 주시고, 즐거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코메디언이나 개그맨이 주는 기쁨은 가공품이요, 인위적인 조잡스런 가짜입니다. 과일에서 나는 맛과 조미료로 가공한 맛이 다르며, 야생 꽃에서는 나는 천연의 향기와 향수 병에서 나는 썩은 향수가 다르듯이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은 속에서 솟아나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주는 것은 외부에서 약간의 자극으로 웃게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눈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토록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주님을 찾을 때 충만한 기쁨, 영원토록 즐거움이란 놀라운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4. 주님을 찾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오 {주}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들이 나로 인하여 당황하지 않게 하옵소서.](시69:6). 주를 찾을 때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수치와 모욕을 당할지라도 그것을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주님은 변화의 능력자이십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라] 성경 공부 시간에 다루지 못한 부분이 “변화의 능력자이신 하나님”입니다. 주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무엇이든지 변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강들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고 샘들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들이 사악하므로 결실의 땅이 변하여 불모지가 되게 하시고 또 광야가 변하여 서 있는 물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들이 되게 하시고](시107:33-35). 이런 예는 허다합니다. 주님은 인생을 단숨에 역전시키는 분이시며, 우리의 수치를 영광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강을 광야로, 샘을 마른 땅으로 바꾸시고, 광야가 변하여 저수지로, 마른 땅을 샘으로 바꾸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때에 이 처녀가 춤추며 기뻐하되 젊은이와 늙은이가 함께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애곡(哀哭)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로 하여금 슬픔에서 벗어나 기뻐하게 할 것임이라. 또 내가 기름진 것으로 제사장들의 혼을 흡족하게 할 것이요, 내 백성은 나의 선함으로 만족하게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렘31:13~14).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우리는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수치와 모욕을 주던 자들과 받던 자들이 바뀝니다. 슬픔과 기쁨이 바뀝니다. [시온에서 애곡하는 자들에게 재 대신 아름다움을 주고 애곡 대신 기쁨의 기름을 주며 근심의 영 대신 찬양의 옷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주]께서 심으신바 의의 나무라 일컬음을 받게 하고 그분께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61:3).
5. 주님을 찾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분의 증거들을 지키고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시119:2). 주님을 찾으면 그 자체로 복된 일입니다. 배우자를 찾는 것보다 훌륭한 스승을 찾는 것, 동역자를 찾는 것보다 더욱 복된 일이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심마니들은 산삼을 찾아 전국의 유명산을 다 찾습니다. 산삼을 찾기 위해 그들은 별의 별 금기를 다 만들어서 지킵니다. 노다지를 캐러 다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굴꾼들은 남의 무덤 속에 있는 귀한 보물과 문화재를 찾아냅니다. 그들이 그런 것들을 찾으면 희열에 차서 고함을 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복되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운(運)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을 찾는 자들은 복(福)이 있습니다. 주님을 찾는 자들은 누구나 복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요, 무한한 영적인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중세의 위대한 설교자로 알려진 탄첼름의 이야기입니다. “탄첼름이 한 번은 성당의 계단을 걷고 있었다.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고 탄첼름은 하루 종일 하나님께 자신에게 성경에 있는 뭔가를 가르칠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성경을 얻기가 거의 불가능했고, 그 당시에는 "자격을 갖춘 권위자들"이 만들어 놓은 지옥의 어둠이 전 유럽을 뒤덮고 있었으며, 기근이 그 땅에 있었던 때였다(암 8:11). 때는 추운 겨울 밤이었고 탄첼름은 떨며 돌 위를 걷고 있었다. 그는 새벽 한 시쯤 되어서 성당의 커다란 횃불 옆에 웅크리고 있는 어떤 거지에게 무심코 말을 던졌다. "잘 지내는가, 친구?" 탄첼름이 물었다. "저는 항상 잘 지냅니다." 그 거지가 대답했다. "그래. 자네를 지옥에 던져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자네는 어떻겠는가?" "하나님이 없는 하늘나라보다는 그분이 계신 지옥에 있는 편이 더 행복할 겁니다." 거지가 대답했다. 탄첼름은 걸음을 멈추고, 응답받지 못한 기도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거지에게 다가갔다. 허리를 굽히고 그는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누군가?" 거지는 두건 아래에서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나는 왕입니다." "자네의 왕국은 어디 있는가?" 탄첼름은 재빨리 물었다.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그 거지는 말하며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탄첼름은 똑바로 서서 조용하게 말했다, "자네는 그것을 언제 찾았는가?" "내가 지혜를 찾아 사람들에게 가는 것을 그만두고 곧장 하나님께로 갔을 때입니다"라고 그 거지는 대답했다. 이것이 바로 그 날 밤 탄첼름이 한 "성경 공부"였다!” (Peter S. Ruckman의 욥기 주석 중에서). 여러분이 주님을 찾을 때 이 거지가 자신의 가슴에 소유했던 하나님의 왕국을 얻게 되며, 왕으로서 항상 잘 지내게 될 것입니다.
6. 주님을 찾는 자들은 찬양을 하게 됩니다. [온유한 자는 먹고 만족할 것이며 [주]를 찾는 자들은 그분을 찬양할 것이요,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리로다.](시22:26). 기도하는 일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 주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기도하라는 명령과 동일하게 찬양하라는 명령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도들이 어려움 속에 빠졌을 때 기도하는 일은 쉽지만 주님을 찬양하는 일은 좀 드문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기도를 마친 후 실라와 함께 찬양을 했던 그 밤으로 가보십시오. [간수가 이러한 분부를 받아 그들을 안에 있는 감옥에 가두고 그들의 발을 차꼬에 단단히 채우니라.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부르니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감옥의 기초가 흔들리고 즉시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결박이 풀리니라.](행16:24~26). 발에 차꼬가 채워졌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불렀고, 죄수들이 그 찬양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실라만 풀어주신 것이 아니라 빌립보 감옥의 모든 죄수들의 결박을 다 풀어 버리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언제라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노래가 있습니다. [주의 폭우 소리에 깊음이 깊음을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뒤덮나이다. 그러할지라도 [주]께서 낮에는 자신의 인자하심을 명령하시며 밤에는 그분의 노래가 내게 있으므로 내가 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42:7-8). 저는 군대에 처음 갔는데, 이동 중에는 결코 그냥 가는 법이 없습니다. 끊엄없이 군가(軍歌)를 부르게 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에도 그냥 쉬게 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군가(軍歌)를 부르게 했습니다.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어느 덧 군인 정신을 갖게 되고, 군대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와 격리된 삶에 대한 불안을 해소해 버리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끊임없이 주를 찬송하고 주를 부르게 될 때 세상의 근심, 염려는 완전히 사라지고 마음에 큰 기쁨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께 노래하는 노래 소리를 다 들으시며, 우리의 찬양을 받으십니다.
7. 주를 찾으면 주님을 만납니다. 일생의 어느 누구와의 만남보다 더 값지고, 큰 기쁨이 있는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내가 사랑하나니 일찍 나를 찾는 자들이 나를 만나리라.](잠8:17). 주님은 찾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를 찾으면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세상은 자신보다 높은 지위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도 누군가의 중재가 필요하고, 약속을 잡아서 겨우 겨우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나를 찾는 자들이 나를 만나리라”하셨습니다. 부지런히 주님을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주] 네 하나님을 찾게 되리니 만일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여 그분을 찾으면 만나리라.](신4:29). 주님을 만나는 일은 예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찾으면 됩니다. [너희는 만날 만한 때에 [주]를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부르라.](사55:6), [또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날 것이라.](렘29:13).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는 간단한 방법입니다.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라는 말만큼이나 쉬운 방법입니다. 교회를 오랫동안 다녀도 주님을 만난 영적 체험이 전혀 없는 분들은 종교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표시가 잘 나지 않지만 마음 속에는 영적인 평안이나 기쁨이 전혀 없습니다. 강단에서 설교를 통해 선포되는 이야기를 그냥 이야기로 듣습니다. 자신 안에 실제적으로 있어야 할 것들이요, 내가 현재적으로 누려야 할 것들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주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십시오. 인도의 썬다씽은 "인도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입니까? 기독교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을 모른다면 내가 살 의미가 없습니다. 내일 새벽까지 나에게 당신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죽겠습니다."하고 생명을 걸고 밤새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한 썬다씽에게 십자가를 진 예수님이 나타나서 "내가 너의 하나님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회심의 이야기를 보면 모두 주님을 찾고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8. 주님을 찾으면 생명을 얻고 주의 은총을 얻습니다. [이는 누구든지 나를 찾는 자는 생명을 얻고 [주]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잠8:35). 주님을 찾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주의 은총을 입습니다. 마리아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란 말을 들었습니다(눅1:28,30). 다윗 역시 주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는 은총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의 은총을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에 따라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시119:58). 주의 은총을 받으려면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9. 주님을 찾으면 깨달음(명철)이 넘치게 됩니다. [악한 자들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나 [주]를 찾는 자들은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잠28:5). 명철은 유전의 문제가 아닙니다. 명철은 교육의 문제가 아니며,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명철은 신앙의 문제이며, 영적 생활의 문제입니다. 주를 찾는 자들은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고 말합니다. 깨달음을 한자어로 명철, 풀어쓰면 이해력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셨듯이 주를 찾는 모든 성도들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10. 주님을 찾으면 주님께서 선하심을 보이십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과 자신을 찾는 혼에게 선하시도다.](애3:25).오병이어를 맛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오가면서 주님을 열심히 찾았지만 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이런 복을 전혀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빵을 줄 수 있는 랍비를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주를 찾은 것이 아니라 선생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배를 채워줄 물주를 찾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1.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죄 가운데서 죽게 됩니다. [누구든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는 자는 크든지 작든지 남녀를 막론하고 죽이기로 하고](대하15:13).
2. 사악한 자요, 교만한 자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악한 자는 자기 얼굴의 교만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리니 그의 모든 생각에는 하나님이 없나이다.](시10:4).
3. 재앙, 징계, 심판의 원인이 됩니다. [이는 이 백성이 자기를 치시는 이에게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주]를 찾지 아니하기 때문이로다.](사9:13).
4. 형통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목양자들이 짐승같이 되어 [주]를 찾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형통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양떼가 다 흩어지리로다.](렘10:21).
우리가 진정으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해야(찾아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았거든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라(찾으라. seek).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애착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지니](골3:1,2).
● 주님과 그분의 힘, 그분의 얼굴을 구해야(찾아야) 합니다. [주와 그분의 능력을 구할지어다(seek). 항상 그분의 얼굴을 구할지어다(seek).](시105:4).
● 주의 말씀을 구해야(찾아야) 합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여야(찾아야-seek)하리니 이는 제사장이 만군의 주의 사자가 됨이니라.](말2:7).
마귀는 누구를 찾는가?
삼킬 자를 찾습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하나님은 누구를 찾으시는가?
1.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가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할지니라.](요4:23-24).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며, 예배에 소홀하면 모든 것이 소홀하게 됩니다. 영혼의 부흥은 예배를 통해서 옵니다.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는 참된 경배를 통해서 옵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자를 주님은 간절히 찾으십니다. 여러분이 그런 경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형식적인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라디오 방송 듣듯이, T.V 해설자의 해설 듣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온 마음을 모으고 아멘으로 화답하며 영적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어떤 말씀에서는 결단을 보이고, 어떤 말씀에서는 회개를 하고, 어떤 말씀에서는 감사와 찬양을 하는 그런 예배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시계만 쳐다보다 마치는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귀를 통해 듣는 말씀이 내 마음에서 격렬하고도 능동적으로 말씀이 믿음과 결합되고, 수용하는 그런 시간이 예배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말씀하소서. 내가 듣나이다.”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한 시간의 예배가 한 주일보다 더 복되고 알찬 시간이 될 것입니다.
2. 복음을 전하러 갈 일꾼을 찾으십니다. [또 내가 주의 음성을 들으니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시니] 지금 세상은 하얗게 되어 추수할 밭과 같습니다. 너무나 일손이 부족합니다.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7:8). 여러분들은 틈나는대로 복음을 전하십시오. 내가 만난 예수, 내 안에 계신 예수를 전하시면 됩니다. 신학을 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찾고 나를 만나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면 됩니다.
3. 잃어버린 자를 찾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온 것은 길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열심히 찾습니다. 여러분도 잃어버린 것을 정신없이 찾아보지 않는 예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더욱 그러하십니다. 아담이 범죄 했을 때에 주님이 먼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하시며 찾아 오셨습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도 하나님이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주님께서 인간을 찾아 오셨습니다. [기록된 바, 의로운 사람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롬3:10-11). 환자는 의사를 찾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병든 줄 알지 못하면 의사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느니라.](마 9:12)했기 때문입니다. 의인에게는 변호인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죄인에게만 변호인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죄인이라면 마땅히 의로운 변호인이신 주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왔노라.고 하시니라](마 9:13).
4. 믿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히11:6).
5. 중보자를 찾으십니다. [이 땅을 위하여 내 앞에서 울타리를 세우며 무너진 곳에 서서 나로 하여금 그곳을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들 가운데서 찾았으나 아무도 찾지 못하였나니](겔22:30). 죄악된 세상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자들을 주님을 간절히 찾으십니다. 무너져 가는 도덕성, 가치관을 보면서 우리는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곳을 멸하지 못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채 사는 사람들이 질병과 사고로 지옥에 떨어지지 못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직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채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26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기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빵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 예수님을 찾아 나선 무리들은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속 마음을 정확히 아셨습니다. 그들이 구주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배를 채워줄 수단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이들이 찾는 것은 심마니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바꾸어줄 산삼을 찾는 노력이나 노다지꾼들이 금광을 찾아 나서는 것이나 도굴꾼들이 전국의 산들을 돌며 보물이 있을만한 무덤을 찾아 나서는 것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꿈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 수단이 산삼이나 금이나 땅속의 보물이 아니라 다만 주님이란 대상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먼 길의 유학을 떠나는 사람들이 학문이나 예술에 대한 불타는 혼으로 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그곳에서 받은 학위를 가지고 자신의 배를 채우고, 생활의 편리를 구하는 수단으로 삼듯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옵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단으로써 종교를 찾고, 예수를 찾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찾아나선 자들을 환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사회 복지 사업가로 만들어 버리는 일은 너무나 흔히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Welfare Mentality! 주님에게 Food Stamp를 달라고 사람들은 모여 듭니다. 만약 주님이 아니라 정부가 이것을 주면 그들은 주님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주든지 주는 사람에게 갈 것입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먹이셨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있었지, 어떻게 먹이셨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거나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먹이든지 상관없다. 제때에 먹을 것만 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그분이 구약의 예언된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먹고 살 문제를 잘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병을 고치시고, 먹을 것을 마음 껏 주시는 분이라면 걱정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를 다니지만 영혼의 관심을 벗어나 오직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비열한 욕심을 가지고 주님을 찾는 신자들과 거의 같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2).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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