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있다 함이요 ]
T. 드위트 탈마지(T. Dewitt Talmage)
"테켈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있다 함이요"(단 5:27).
바빌론은 화려한 건축물의 천국이었습니다. 현대의 정교한 건축술도 사실 이 시대의 유산에 불과합니다. 바빌론에 건설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그곳의 주요 작품들과 건축물들을 만드는 데는 200만의 인부가 동원되었습니다. 이 도시를 둥그렇게 둘러친 성곽의 길이는 60마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곽 주위에는 깊은 도랑을 팠는데, 땅을 파면서 나온 돌과 흑은 도시를 건축하는데 활용되었습니다. 도시 사위로 스물다섯 개의 황동 문이 만들어졌고, 문들 사이에는 망대들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그 스물다섯 개의 문 앞쪽으로는 반대편 문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깔렸는데, 도로는 모두 50개였고 그 길이는 각각 15마일이었습니다. 이 도로들 덕분에 도시는 아주 규칙적이고 질서 있는 외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도시의 집들은 서로 붙어 있지 않았고, 집 사이에는 정원과 작은 관목 숲이 있었습니다. 집 지붕들 사이에는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시민들은 이 다리를 건너다니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유프라테스의 한 지류가 이 도시로 흘러들고 있었습니다. 이 강물은 도시 한가운데를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고, 그 강물 위로는 멋진 다리들이 놓여졌습니다. 우기 때 강물이 범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물을 가두어 둘 수 있는 큰 호수를 파 놓았는데, 이 호수는 건기가 되면 훌륭한 저수지 역할을 해서 메마른 땅으로 물을 흘려보냈습니다.
그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 위로 세워진 다리 양쪽에는 각각 궁전이 한 채씩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 둥그렇게 지어진 궁전의 지름 길이는, 한 채는 1.7마일이었고, 다른 한 채는 7.5마일이었습니다. 느부캇네살의 아내는 메디아 산지에서 자랐고, 그래서 바빌론의 평지를 너무도 낯설어 했습니다. 왕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도시의 한 복판에 100피트 높이의 산을 건설했습니다. 산은 계단식 축대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 축대 밑은 거대한 아치형 기둥이 떠받치고 있었습니다. 그 아치형 기둥 위로는 우선 평평한 돌을 놓고 그 돌 위에는 갈대를 깔고 갈대 위에 역청을 바른 후, 또 그 위에 벽돌을 두 겹으로 얹었습니다. 그리고 그 벽돌 위에 다시 함석판을 깔고, 함석판 위에 최종적으로 기름진 흙을 덮었습니다.
덮은 흙은 무척이나 두터워서 큰 나무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열대 지방의 꽃들이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꽃자루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꽃을 피워대는 바람에, 누군가 그 아래에서 정원의 풍경을 봤더라면 구름들이 온통 만개해 있는 듯 하고 먼 하늘은 그 큰 삼나무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듯해 보였을 것입니다. 산꼭대기에는 유프라테스 강물을 끌어 모아 놓은 거대한 물탱크가 있었고, 이 물탱크에서 나온 물은 온 정원을 촉촉이 적셨습니다. 왕은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아내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하여 건설했습니다. 아마, 그의 아내는 무척이나 행복해 했을 것입니다.
이 도시의 중앙에는 벨로스(Belus) 신전도 세워져 있었습니다. 신전 안에는 여러 탑들이 있었는데, 이 탑 가운데는 그 치솟은 높이가 200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 높은 탑의 꼭대기에는 천문대가 있어서, 별들과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곳을 필요로 하는 천문학자들에겐 아주 제격인 건축물이었습니다. 신전 안에는 금으로 만 듯 각양의 잔들과 석상들 그리고 줄 달린 흔들 향로들이 즐비했습니다. 혹자는 말하길 바빌론에서 금 일천 달란트는, 요즘 돈으로 5천 2백만 달러쯤이 된다고 합니다.
폭풍전야의 바빌론
도시는 포위당했고,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습니다. 20년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도시가 하루아침에 멸망당하게 생겼습니다. 왕의 만찬 식탁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접시들이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술통에 가득 들어있는 포도주를 마음이 원하는 데 까기 원껏 부어 마십니다. 건배하라, 귀족들이여, 왕의 건강을 위하여! 바빌론의 영광을 위하여! 잔을 비워라, 이 도시의 파수꾼들을 위하여, 우리 앞에 다가올 무한한 영광의 미래를 위하여!
포도주가 넘쳐서 탁자 위에 피처럼 흘러내려도 그들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병기들이 부딪치는 소리처럼 들려오는데도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희희낙락할 뿐입니다. 수백 명의 귀족들이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서 다투기도 하고 욕설을 퍼붓기도 합니다. 술에 취해 머리가 해롱해롱해진 왕은 폭신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멍한 눈길로 회벽을 응시합니다.
그러다가 흐릿하던 눈동자가 어느 순간 불현 듯 번쩍 떠집니다. 깜짝 놀랄 만한 장면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가 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자 귀족들도 그쪽으로 시선을 집중합니다. 방안의 모든 눈길이 그 회벽을 향하고 있습니다.
방안에 갑자기 암울한 분위기가 엄습합니다. 금접시도 더 이상 반짝거리는 빛을 내지 못합니다. 그 어둠의 자락 끝에서 불같은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사람들을 전율케하고는 천천히 벽 쪽으로 다가가 마치 무언가를 쓰겠다는 듯 손을 한바퀴 돌려 손목을 푼 후에, 불똥이 튀기는 손가락 끝으로 회벽에다 왕의 운명을 예언하는 말씀을 기록합니다.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있다...』
갑자가 왕궁의 문이 활짝 열리고 여기저기 문들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수천의 단검들이 번쩍거리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는 귀족들을 덮칩니다. 그 와중에 왕은 살해당하고, 그의 보좌에는 시체더미가 쌓입니다. 그 즐겁던 만찬장에는 보이지 않는 저울이 있었습니다. 그 저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한쪽에는 벨사살 왕의 업적이 올려졌고, 다른 한쪽에는 그의 죄들이 올려졌습니다. 그리고 저울은 죄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왕을 저울에 달았더니 부족함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울은 죄의 무게를 측정합니다. 이 나라에는 그릇된 추를 쓰거나 측정치를 속이는 사기가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부는 감독관을 선정해서 저울추의 무게와 측정체계를 관리감독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릇된 것을 옳다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것과 다른 저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사람이나 사물을 측정하는 데 있어 실수를 범하는 것에 거의 습관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저울이 있습니다. 이 저울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좌 앞에서 무게를 다는 데 쓰입니다.
그 외의 다른 저울들은 모두 엉망입니다. 줄이 끊어져 있거나, 평형추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그들이 말하는 일 파운드는 원칙상의 일 파운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 파운드를 살려고 돈을 지불했는데 전혀 다른 무게의 물건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저울은 절대 그 정확무오함을 잃지 않습니다. 그 저울로 달면, 일 파운드라고 하면 정확히 일 파운드이고,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고 나오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라고 나오며, 혼은 혼으로, 영원은 영원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저울은 부셸 단위의 측정도 할 수 있고, 아주 극소 단위로도 측정할 수 있으며, 또 갤런 단위의 측정도 할 수 있습니다.
상인들이 밀이나 소금 따위를 일 부셸이라고 측정하고 나면, 하나님께서는 즉시 그들이 측정한 무게를 다시 달아 보십니다. 상인의 저울은 오차가 있을 지라도, 하나님의 저울은 절대 틀릴 수 없습니다. 상인들이 기름을 일 갤런 달면서, 정확하게 일 갤런을 올리지 않고 일 갤런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름을 다시 정확하게 달아보신 후, 말씀하십니다.
"기름이 일 갤런에서 많이 부족하다! 천사들은 정확한 수치로 다시 기록하라!"
농부들이 시내에 사과를 들고와서 팔면서 무게를 속여 달아서 팔면 하나님은 그 즉시 작은 무게 단위까지 측정을 해서 사과가 얼마나 부족한 지를 기록해 두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일 수도 있고, 또 주위 사람들을 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가면, 우리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운 것이 옳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즉, 16온스는 일 파운드이며, 2,240 파운드는 일 톤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원칙으로 정해둔 그 무게 치로 무게가 측정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저울에 달 것은 그러나 커피나 설탕이 아닙니다. 마지막 날에는 법칙들과 각 개인들과 교회들, 그리고 세상을 측정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죄의 무게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의 무게는 이 세상을 으스러뜨릴 만큼 무겁습니다. 그리고 이 지구 자체의 무게를 달수도 있습니다. 산과 계곡, 그리고 바다의 무게도.
알프스와 피레네 산맥, 또 히말라야와 워싱턴 산, 그리고 세상의 모든 도시들을 저울 한 쪽에다 올리면 저울이 팍삭 망가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얼마나 가치 있는 지, 혹은 실재보다 평가절하된 것은 없는지 철저하게 달아보실 것입니다. 그분은 마지막 날에 백보좌에 앉아서 세상의 무게란 것이 깃털보다 가볍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실 것입니다. 그분은 횃불을 들고 서 있는 천사에게 외치십니다.
"세상을 불태우라. 무게를 달았더니 부족함이 드러났도다!"
하나님은 교회들을 저울에 달아보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들을 날마다 저울에 달아보십니다. 그분은 큰 교회들을 저울에 올려보십니다. 한쪽 접시에는 사역자들과 성가대 대원들, 그리고 수천 수백 달러를 들려 축조한 거대한 건물을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성도들의 영적인 삶과 형제애 믿음 혹은 가난한 자를 향한 마음을 올려놓습니다.
하나님은 나라들도 저울에 올리십니다.
하나님은 나라들도 달아보십니다. 그분은 수개월 전에 스페인 군주정을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 부족함을 확증하신 후 그들을 역사의 한 편으로 치워버리셨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왕도 그의 왕국과 함께 저울에 달아보신 적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이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보소서, 저는 황제로 있으면서 파리의 도로를 확장했고, 샹젤리제에 불을 밝혔습니다! 거기다 튈르리 궁전(Tuileries)을 증축하고 길드 오페라 하우스도 건축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황제가 올라 선 쪽의 저울 접시에다 그가 만든 대로와 샹젤리제, 그리고 튈르리 궁전과 길드 오페라 하우스를 올립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 저울 접시에는 그의 가증스럽고 난폭한 행위들과 그가 자신의 조국 프랑스에 그가 지었던 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올려놓습니다. 죄가 담긴 저울 접시는 기울고 황제는 하늘 높이 솟구칩니다. 그의 업적들과 함께 말입니다. 황제에게 부족함이 드러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회자는 그저 추상적으로 이야기하고 말지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한다고 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얘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냥꾼이 허공에다 대고 총질을 했다면 어떻게 사슴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사냥꾼은 개머리판을 어깨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가늠좌에 눈을 바짝 갖다대고 목표물을 정확히 겨냥한 후 방아쇠를 당깁니다. 그러면 낙뢰 같은 소리를 낸 총알이 바위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사슴뿔을 향해 줄창 달려갑니다.
의사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두리뭉실하게 다루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가지고 어느 세월에 환자의 염증을 가라앉히고 고통을 없애줄 수 있단 말입니까?
죄란 여러분이나 나를 만성적으로 괴롭히는 병입니다.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죽을 수도 있는 위중한 병인데, 그저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니!
하나님은 당신도 저울에 올려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밤에도 그분의 저울을 보좌 앞으로 가져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엔 우리가 살아온 하루하루가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면밀하고 엄정한 조사를 받고 있고 또 저울에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한꺼번에 저울에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에 한 명씩 올려집니다. 누가 제일 먼저 올라가겠습니까? 아, 여기 지원자가 있군요. 이분은 도덕군자입니다. 부룩클린에 있는 여느 사람 못지않게 도덕적인 사람입니다. 자, 올라오십시오.
그런데 저울에 들고 올라가는 건 뭐죠? 그러자 그는 대답합니다. "제가 얼마나 도덕적이고 올바르며 흠이 없는가를 말해 주는 사람들의 평가들입니다." 그런 내려놓으십시오. 그걸 재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저울은 오직 당신 자체를 평가를 것입니다.
이웃을 살해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결코 그런 짓 한 적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불법이 될만한 행위를 한 적이 있습니까?
"아뇨, 전혀." 예, 아직까지는 준수하군요.
그러면 항상 올바른 생각만을 하며 살아오셨습니까?
"아,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저는 그의 이름 옆에 표시를 하나 남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마땅히 해야 할 만큼의 수준으로 섬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표시는 하나 더 늘어납니다.
당신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즉 인간에게 지워진 수많은 의무들을 모두 다 행하여 살아왔습니까?
"아니요."
그러면 그의 이름 옆에는 수많은 표시들이 늘어납니다.
이쯤 되면 그의 결점과 흠을 일일이 다 기록하기 위해선 좀 더 큰 공책이 필요한 지경이 됩니다.
검사가 끝날 때까지 저울에서 내려오지 마십시오.
그는 자신의 선행과 자선 그리고 평화를 조성했던 행위들을 끌어안고 저울 한 쪽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선 맞은 편 저울에는 다음의 말씀이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분의 눈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롬 3:20).
이런! 말씀이 올라간 저울은 사정없이 내려갑니다. 그에게 부족함이 나타났습니다!
허울뿐인 전통주의자들
자, 여기 또 한 사람이 저울로 올라갑니다. 이 사람은 형식주의자입니다. 그의 신앙의 핵심은 예배 시간에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과, 근엄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외형적으로 보기게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 등입니다.
그는 주머니에 늘 책 한권을 넣어가지고 다닙니다. 그 책은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Weatminster Assembly Catechism)입니다. 그리고 다른 쪽 주머니에도 무언가를 넣고 다닙니다. 그 책은 또 하이델베르크 신앙 고백서(Heidelberg Catechism)입니다. 손에 들고 있는 건 무엇입니까? 아, 그건 교회 장부군요. 그리고 그가 올라선 주변에 여러 가지 책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그건…… 예, 칼뱅주의에 관련된 서적들이군요.
그러나 형제여, 이 저울은 책 무게를 다는 저울이 아니랍니다. 그 책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건 간에 책을 다는 저울이 아닙니다. 이 저울은 그대의 혼의 무게를 달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의 교리가 당신을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교리문답을 등에 짊어지고서 지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신앙의 형식적인 측면들이란 영적인 생명을 죽이는 단두대 같은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 만일에 당신이 하나님보다 성전을 더 중요시하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라면 말입니다.
"저는 매 시간 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구원은 그렇게 해서 받는 게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자선행위로 구원받는 다는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전 매일 밤 성경 한 장씩 일고 잤어요."
아닙니다. 구원은 그렇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성찬식에 참석도 했어요."
성찬식에 참석했다고 구원받는 말씀은 없습니다.
"교회 회원 명부에 제 이름이 오랫동안 올라 있었는데요?"
교회 회원은 모두 구원받는다는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전 30년 동안이나 제 신앙을 시인하며 살아왔다고요!"
구원은 그것과 상관없습니다.
모든 교리 문답집과 종교 서적들, 그리고 성찬식에 몇 번 참석했나 하는 것 등을 모두 저울 접시에 올려보겠습니다. 그러나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임이니, 너는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5).
저울은 반대편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대들에게도 부족함이 나타났습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 역시
여기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눈에 척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의 눈과 손 그리고 마음속에는 사업에 관련된 것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 주식, 이익 배당. 배분율, 증권 관련 서류, 사업 계획서, 계약서……등등. 그의 천국은 성공적인 사업 운영입니다. 그가 천국에 가고 싶은 이유도, 거기에 가면 금이 많이 깔려 있다는 얘길 듣고 그걸 주워서 돈이나 끌어볼까 해서일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대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물건들을 얼마나 싼 가격에 사서, 얼마나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것인가?" 그의 하루는 항상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가득하며, 밤에는 달러뭉치에 깔리는 꿈을 꾸곤 합니다. 그에게 일요일은 무척이나 성가신 날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교회 가는 길에도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매일매일 사탕 봉지나 과일, 고기, 얼음, 혹은 석탄 따위의 무게를 재지만, 그 자신도 매시간 저울에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
자, 저울 접시 위에 먼저 그가 올라가고, 그의 발치 옆에 큰 통들과 배럴 단위의 통들, 그리고 금고와 저장 창고, 또 배로 들여온 화물들을 올려놓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세상적인 것들은 접시에 무게를 조금도 더하지 못합니다. 그가 훌륭한 사무실을 임대하고, 좋은 주식을 사고, 엄청난 돈을 벌어들여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을지라도, 그 모든 것을 지켜보시던 하나님과 그분의 천사들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엄중하게 판결을 내리십니다. 저울에 달았더니 부족함이 나타났도다!
심판의 때는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진도를 좀 빨리해서, 마지막 심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가장 중요한 이 심판에 별 생각을 두지 않고 살아갑니다. 언젠가 한 순간에 땅이 갈라지고 우리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입니다. 무덤 말입니다. 맥박은 마치 행군하는 군대처럼 규칙적으로 걸음을 계속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목소리를 들으면 우뚝 멈추어 섭니다.
"정지!"
우리는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 위를 걷듯 생명을 유지하다가는 갑작스레 천길만길 낭떠러지 아래로 뚝 떨어지게 됩니다. 사람은 매일 밤 침대로 들어가지만, 기실 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반드시 보게 되리라는 확실한 보장을 받고서 잠으로 빠져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 집을 나서지만, 집안으로 반드시 다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확실한 보장을 가지고 대문을 나서는 날은 사실 단 하루도 없습니다.
위험은 당신이 가는 모든 길 위에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위험이란 늘 그렇게 당신을 파멸시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서 매복해 있습니다.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나면, 당신은 영원한 보상을 받게 되거나 아니면 영원한 응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머리에 씌워질 영광의 면류관이 준비되고 있든, 아니면 당신을 영원한 불의 감옥에 가두어 놓은 자물쇠가 만들어지고 있든, 둘 중 하나란 말입니다. 빛의 천사들은 언제나 당신의 구원을 선포할 준비를 하고 있고, 어둠의 무리들은 언제나 그 흉측한 손길을 뻗어서 당신을 아래로 끌러내려 멸망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심판은 불현 듯 다가올 것입니다. 한 발은 바다에 또 한 발은 땅위에 올려놓은 천사나 영원히 사시는 분의 이름으로 공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노라, 라고 말입니다!
저는 산들이 요동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저기, 저울이 설치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구름 속에서 작열하는 번개처럼 무언가가 번쩍거리는 빛이 있습니다. 그것은 빛나는 저울에서 반사되는 빛입니다. 이 지상에서 회심하지 않은 모든 혼들은 모두 이 저울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혼들은 올라가기 싫다고 버티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저울 접시 위에 달랑 들어올리십니다.
온 우주가 이 마지막 저울질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저울에 달려지고 선악 간에 심판을 받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달아보고는 제멋대로 자축하고 즐거워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저울은 그들의 것과는 달리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저울의 한쪽에는 용서받지 못한 사람들이 놓여집니다. 그들의 부와 명예, 그리고 여러 가지 직함들은 모조리 사라진 뒤입니다. 회심치 않은 벌거벗은 그들의 혼 외에, 그들 곁에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울의 다른 쪽에는 그들이 무시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귓등으로 듣고 말았던 설교들, 그리고 회심할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들이 올려집니다. 보십시오! 저울은 그 혼이 올라선 저울의 반대편으로 급속하게 기울어집니다. 기우는 소리가 어찌나 큰 지 마치 꾸르릉하고 천둥이 치는 듯합니다. 하나님은 저울을 확인하고 나서 판결을 내리십니다. 모든 인간들과, 마귀들과 그룹들과 대천사들 앞에서, 땅이 흔들리고 큰 불이 일어나고 심판의 바람이 부는 가운데 그분의 판결을 발표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바람은 이 판결의 소리를 영원히 간직하고서 끊임없이 되뇌곤 할 것입니다.
저울에 달았더니 부족함이 나타났도다!
거듭난 사람이 저울에 올라설 때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선 저울 접시 위로 같이 올라가십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만약에 오늘 밤에 하나님이 찾아오시면, 우리 모두 다 저울에 올려지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정치한 저울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악인은 저울에 올라가 측정된 후 자신들의 죄악과 함께 영원한 불 못으로 사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의인들이 올라갈 차례가 됩니다.
올라오라, 성도들이여!
심판의 종이 울립니다. 그리고 심판의 저울은 당신 코앞에 설치됩니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고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데 대한 책망들이 당신 반대편 저울에 올라갑니다. 당신은 너무나 가볍습니다. 저울은 기우뚱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당신 편에는 수많은 기도와 뉘우침과 믿음이 가세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너무 가볍습니다. 자, 그러자 이제는 바울과 루터, 백스터(Baxter), 페이슨(Payson) 그리고 다드리즈(Doddridge)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을 돕기 위해 당신이 올라탄 저울 접시 위로 올라섭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올라섰음에도 저울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이번엔 또 볼과 홍수를 통과한 순교자들이 올라섭니다. 위클리프(Wickliffe), 리들리(Ridley), 그리고 라티머(Latimer). 하지만 아직도 너무 가볍습니다!
이제, 오라 하나님의 천사들이여. 그대들도 와서 이들을 도와보라. 그대들의 무게가 혹시나 저울을 움직일 수 있는 지 어서 올라와 보라. 심판이 끝나가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 의인들이 악인들과 함께 멸망당할 운명에 놓여 있도다. 그러나 천사들의 가세에도 저울은 너무 가볍습니다. 저울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더. 이제는 모든 빛나는 홀들과, 승리의 종려나무 가지들, 그리고 모든 영광의 면류관들을 올려봅시다. 아……! 그럼에도 무게는 여전히 너무도 가볍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저울 위로 올라가십니다. 그분은 상처 자국이 역력한 발을 그리스도인들의 저울 위에 올리십니다. 그러자 저울은 순식간에 꼭대기에서 맨 밑바닥으로 꺼져버립니다. 그분이 나머지 한 발을 올리자, 천상에는 심판이 끝났음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일제히 울립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의인들보다 더 무거우셨던 것입니다.
맞은편 저울 접시에는 여러분들이 저지른 모든 죄악들과 증오와 질투, 그리고 살면서 저지른 모순된 행위들이 다시 올려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과 저울을 다시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의 편에 서 계신 그리스도께서 이 저울을 영원히 고정시켜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 곧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자유!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모든 죄는 용서되었고, 발을 묶고 있던 차꼬는 끊어졌으며, 감옥의 문들은 활짝 열렸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저울에 달렸으나 부족함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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