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 아래 설명을 보십시오.
내용 설명
많은 이들이 하는 질문 중에 하나입니다. 질문하신 분의 글을 일단 옮겨드립니다.
질문 내용.
"사람이 죄를 지으면 회개를 해야 하는데(또는 자백), 어느만큼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죄는 즉시 자백하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보통이겠지만, 제 생각에 심각한 죄는 회개, 자백해도 자주 생각나고 죄책감이 드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죄는 생각날 때마다 자백하고, 죄책감이 없어질 때까지 회개하는 것인가요? 잊혀질 때까지 하면 되는 건가요? 하나님은 사람과는 다르시니 한 번만 자백하고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다 잊으시나요? 하나님은 다 잊으셨는데, 자꾸 회개한다면서 말씀드리면 중언부언하는 건가요? "
크리스천이 죄를 지은 후 죄의 사면을 받는 요건은 간단합니다.
1. 죄를 시인하고 자백하면 됩니다.
“내가 주께 내 죄를 시인하고 내 불법을 숨기지 아니하며 또 이르기를, 내 범법들을 {주}께 자백하리라, 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의 불법을 용서하셨나이다. 셀라.”(시 32:5)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려니와 누구든지 그것들을 자백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으리라.”(잠 28:13)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
하나님께 죄를 시인하고 자백하면 주께서는 그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문제는 성도들이 자기의 죄를 자백한 후에도 여전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기 마음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백에 자백을 여러번 반복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느낌이 올 때까지 반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짓 자백, 거짓 회개가 아니라면 자백은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범죄자가 자수를 할 때 경찰에 여러번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정에서 자기 죄를 시인할 때는 "예" 라고 짧게 한 마디만 해도 충분합니다. 압력이나 위협 아래서 하는 거짓 자수, 자백이 아니라면 솔직한 자백은 그 자체로 증거와 증인과 같은 동일한 효력을 발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상상을 다 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시인할 때 "내가 주께 죄를 지었나이다."라며 자신의 죄를 있는 그대로 솔직히 시인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거짓 자백이나 후회라면 수 백번을 반복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럼 참 회개와 거짓 회개를 어떻게 구분합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마3:8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회개에 합당한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행26:20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 3:8)
“먼저 다마스쿠스 사람들에게 또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두루 모든 유대 지방과 이방인들에게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에 합당한 일들을 행하여야 함을 보이매”(행 26:20)
회개한 후에는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일이란 첫째, 주께 시인한 죄를 떠나는 것입니다. 개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듯 다시 이전에 지은 죄를 반복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술, 담배, 도박, 마약을 하던 사람이 그것에 가책을 받고 주 앞에 시인했다면 다시는 그 생활로 돌아가지 않아야 합니다. 예배에 잘 빠지던 사람이 자신의 게으름, 나태함을 회개했다면 다시는 집회 참석을 회피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함을 통해 다시 넘어질 수 있지만 그 때마다 회개하고 이전 생활로 돌아가지 않도록 주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고 힘을 얻어서 굳게 서야합니다.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2. 자기가 시인한 죄에 대해 최선을 다해 책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이면 비난을 받고, 배상을 해야할 일이면 배상을 하고, 손해를 당해야 한다면 그것을 수용해야 합니다. 주의 징계나 심판도 기꺼히 수용하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일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죄를 시인하고 거기서 떠나 돌이키는 것입니다. 단지 죄를 인정하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주 앞에서 죄임을 알고 시인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문제는 죄를 시인했는데 내 안에 아무 양심의 깨끗함이 없고 혼의 새롭게 됨이 없을 때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기록된 말씀에 근거한 믿음보다는 느낌을 찾습니다. 마음 속에서 속이 시원한 느낌, 깨끗한 느낌이 동반되면 좋겠지만 아무렇지 도 않을 때 죄가 용서되었는가 싶은 의심과 불신이 찾아 옵니다.
죄를 죄로 시인하고, 자신의 불법으로 불법인 줄로 정확히 인식하고 주의 말씀에 따라 죄요 불법이요 잘못임을 시인하면 거기에 대해 변명하지 마십시오. 변명하는 마음, 시도는 그가 한 자백, 회개가 거짓임을 증명합니다. 이는 파라오, 발람, 사울 왕이나 가룟 유다도 했던 자백입니다.
바른 회개, 참된 회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근심-sorrow)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 (고후 7:10)
죄를 시인하고 회개했다면 그 죄에 대해 치러야 할 어떤 대가도 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무겁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회개한 후에 자식을 잃었습니다. 칼이 그 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후궁들은 백주 대낮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수치를 당했습니다. 회개하고 사면을 받았다고 해서 그 책임,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는 회개했지만 평생 동안 수치를 당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회개를 한 후에도 손해 배상을 해야 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뿌린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다음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는 회개함으로 해결되었는데 어떤 사람과는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죄를 지었을 때 그 사람이 회개한다고 해서 교회의 분열이나 상처가 깨끗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회개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서 아무리 사죄를 반복해도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용서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사과와 진정을 보일 것을 요구할 뿐입니다. 일본이 한국에 앞으로 100년을 사죄한다 해도 용서받을 일은 없을 겁니다. 용서할 의사도 없고 의지도 없는데다 상대의 약점을 계속해서 국내 정치에 이용해 먹어야 하기 때문에 화해, 용서란 말은 상징적 구호에 그치고 맙니다. 교회 지체들 간에도 비슷합니다. 죄를 시인하고 심지어 회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사과하고 회개해도 '진정성이 없다'고 해 버리면 끝입니다. 이것은 피해자가 도리어 문제입니다.
진정성이 느껴지든 느껴지지 않든 '내가 회개하노라"고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이 풀리 때까지, 만족이 올 때까지 용서와 회개를 하라고 요구하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그것이 도리어 죄입니다. 죄를 짓고도 시인하지 않는 죄인에 게 혼의 고통이 있다면,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악심을 품는 지체들 역시 혼의 고통과 성령의 소멸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만일 하루에 일곱 번 네게 범법하고 하루에 일곱 번 네게 다시 돌아와 이르기를,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그를 용서하라, 하시니라.”(눅 17:4)
정리합니다.
1. 언제 회개해야 하는가? 죄를 인지/인식할 때입니다. 자의든 타인든 내가 죄를 깨닫게 될 때 회개해야 합니다.
2. 얼마나 회개해야 하는가? 한 번으로도 충분합니다. 내가 주께 죄를 지었다, 나는 유죄다! 시인하고 인정하면 유죄로 확증됩니다. 스스로 죄를 시인하는 것은 증인이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3. 이미 회개한 죄를 다시 시인하고 회개해야 하는가? 하나님 앞에서는 반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해서나 문제 해결을 위해서 때로는 다시 한 번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4. 내가 회개했다고 해서 지은 죄에 대해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형벌이나 보상에 대해서는 기꺼이 수용해야 합니다. 속죄제와 속건제의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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