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지식
말씀: 요 17:3
말씀: 요 17:3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성경을 암송하는 일은 자신이 암송한 내용을 간직하고 계속해서 묵상하고 원활하게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워 놓은 성경 구절을 내 뜻대로 자유자재로 써 먹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뜻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성경 암송을 해 보면 처음엔 내가 성경을 암송하는 것 같지만 암송한 말씀을 묵상하고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살게 될 때 말씀이 나를 이끌며, 가르치며, 힘을 주며, 위로해 주고, 세워주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 암송을 하는 일은 성경을 잘 이용해 먹자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의 인도함을 받자는 것입니다. 말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아래에 있기 위해서입니다.
단체나 조직에서는 사람을 세뇌시키기 위해서 강령이나 자신들의 신조를 담은 어떤 내용을 머리에 암기시킵니다. 암기된 내용으로 정신을 지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성경 암송은 머리에 말씀을 담아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말씀을 담아 두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유용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시고, 주의 진리를 보내십니다. 그 때에 우리 마음속에 기록된 말씀이 암송되어 있다면 그대로 결합됩니다. 주의 영과 하나가 됩니다. 주님이 보내 주신 빛과 진리의 말씀이 나를 인도하며, 나를 이끕니다. [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사 그것들이 나를 인도하게 하시며 주의 거룩한 산과 주의 장막들로 나를 데려가게 하소서.](시43:3). 내가 말씀을 마음대로 내 멋대로, 자기 의지대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인도하고 이끌어 줍니다. 시편 기자의 기도 역시 내가 써 먹을 말씀을 주시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보내주신 말씀이 자신을 인도해 주고, 이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암송할 때 이 점을 각별히 유념해야 합니다. 나를 이끌어 줄 말씀!! 나를 인도해 줄 말씀!! 말씀과 나의 관계를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그분께서 하늘로부터 보내사 나를 삼키려 하는 자의 모욕에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셀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긍휼과 자신의 진리를 보내시리로다.](시57:3).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때 주님은 천사들을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보내십니다(시107:20, 147:18, 사9:8). 자신의 긍휼과 진리를 보내십니다. 병이 들었을 때도, 멸망당할 위기에서도 주님은 말씀을 보내셔서 고치시고, 건지십니다. [자신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며 멸망들에서 그들을 건지셨도다.](시107:20).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성경을 암송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근거가 됩니다. 내 속에 말씀이 거할 때 주님은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부히 거하게 하여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훈계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골3:16). 누가 가르치고 훈계합니까? 우리 속에 풍부히 거하게 된 말씀입니다. 말씀이 가르치고 훈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하나님의 신격과 권위를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同等)되게 사용됩니다.
말씀의 빛이 비추어 지고, 주의 진리를 받을 때 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진리를 알며, 따를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갑자기 떠오르는 영감이나 직관을 붙들기 위해서 노트에 메모를 하거나 오랫동안 깊이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맙니다. 성경 암송은 마음속에 주님이 보내신 빛, 주의 진리를 붙들어 두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성경을 암송하는 과정에서 주의 빛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암송한 후에 묵상할 때 주의 빛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 암송은 마음속에 주님의 빛이 머물러 있게 하는 방법이며, 빛의 창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빛을 밝히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내 마음의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 암송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엡5:17)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고 고민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도 있으면 알고 싶다며 문의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암송해 두고, 묵상해 둔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정도만큼 주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아는 만큼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반적인 뜻은 이미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고,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이것은 기도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함으로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의 기준에 하나님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否認)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믿음의 단련도 받아야 합니다. 환란이란 시련도 통과해야 합니다. 믿음의 차이는 시련의 차이입니다. 쇠의 강도는 불 속에 얼마나 많이 들어갔다 나왔는가? 얼마나 뜨거운 불 속에서 달구어 졌는가? 하는 차이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뜻을 이해하는 정도의 차이는 말씀으로 단련을 받은 정도의 차이와 정확히 비례합니다.
주를 아는 지식이 폭넓게 퍼질 때 이 세상의 어둠의 권세는 그 만큼 세력을 잃게 됩니다. 복음이 선포되고 교회가 세워지고 진리가 가르쳐 지는 곳에는 마귀들과 어둠의 권세가 약화됩니다. 마침내 천년 왕국이 오면 그 때에는 주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해 집니다. [그것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사11:9).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 시대에서는 배워야 압니다. 성경을 공부해야 하며,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배우고, 집에서도 읽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안다, 누구를 안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입니다. 배우고 익히는 일은 보람도 있고, 성취감도 줍니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공통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상식 또는 교양이라고 하고,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를 공부합니다. 좀 더 많이 아는 것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알려고 하지 않고, 관심이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요,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알아야하고, 믿어야 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지식을 진리의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은 그는 가장 중요하고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바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자기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들을 알지 못하고, 영생도 알지 못하고, 공의도 알지 못한다면 이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아무리 똑똑하고 많이 배웠다 해도 그는 짐승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아는 것이 짐승 같고](렘10:14a).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롬1:22). 이것이 현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정확한 수준이요, 상태입니다. 짐승, 어리석은 자(바보 같은 자)!! 이것이 주님의 평가입니다. 이것은 욕도 아니고 비방도 아닙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짐승에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대제사장 아버지를 두었지만 배운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엘리의 아들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더라. 그들이 {주}를 알지 못하였더라.](삼상2:12). 덕분에 그들은 망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주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주를 알지 못한 이교도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한 왕국들 위에 주의 진노를 부으소서.](시79:6). 성경을 알지 못하고, 주를 알지 못하는 것은 상식과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의 갈림길입니다.
지식이 없는 자는 선하지 못합니다. [또한 혼에게 지식이 없으면 그것은 선하지 아니하며 발이 급한 사람은 죄를 짓느니라.](잠19:2).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는 것은 없어도, 지식은 모자라도 마음은 착하다! 이런 말이 통합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영적 지식, 진리의 지식,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으면 ‘선하지 못하다’입니다. 한 마디로 착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외모를 따질 때 ‘얼굴도 못 생긴 주제에 머리도 나쁘다, 거기다가 마음까지 악하다.’고 하면 가장 심한 욕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이 “믿음이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선하지 못하다.”입니다. 믿음이 좋은데 영적 지식은 없다! 이것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좋은데 선하지 못하다! 이것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없는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탁월해! 이 역시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있는데 악하다! 이것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 셋은 함께 갑니다. 하나님을 아는 성경적 지식이 없으면 그 자체가 짐승이요, 바보요, 선하지(착하지) 못한 것입니다. 성품이 좋아지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합니다(벧후3:18).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포로가 됩니다. 영적 무지는 결코 용납되지 못하는 죄악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포로로 잡혀갔으며 그들의 존귀한 자들은 굶주리고 그들의 무리는 갈증으로 목마르게 되었도다.](사5:13). 성경 배우지 않아도 신앙생활 잘만 한다는 궤변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웃음거리로 만듭니다. 성경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고 악한 사람이며,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마귀의 간계와 속임수에 속아서 죄의 포로가 되며, 올무에 매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굶주림도 목마름도 없어야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더 주리고 갈증을 느낍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의 빵과 생수를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죄의 노예, 세상의 노예, 정욕의 노예, 육체의 종노릇만 하다가 죽습니다. 영적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배우려고도 하지 않고, 묵상하지도 않고, 암송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완전히 망하고 맙니다.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식들도 망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부족하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너를 거부하여 네가 나를 위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은즉 나도 네 자녀들을 잊으리라.](호4:6). 이들이 바보가 아니면 누가 바보이며, 이들이 악한 자가 아니면 누가 악한 자이겠습니까? 성경을 마음속에 새기고, 묵상하고, 그에 이끌림을 받지 않으면 우상의 이끌림을 받고, 육체의 정욕에 이끌림을 받고, 마귀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승리자요, 정복자의 삶을 삽니다. [또 그가 그 언약을 대적하려고 사악하게 행하는 자들을 아첨하는 말로 부패시킬 터이나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공적을 세우리라.](단11:32).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포로가 되고 망하지만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공적을 세웁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상고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고귀한 사람(noble)입니다.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사람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행17:11). 짐승이나 바보 같은 자가 되는가? 고귀한 사람이 되는가? 는 돈이나 가문이나 육신의 혈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씀을 받아들이고, 날마다 성경을 탐구하는가? 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영적 명문 가정이 되고, 그런 가문을 일으키고 싶다면 말씀을 마음속에 암송하시고, 날마다 성경을 탐구하십시오. 영적 귀족들이 하는 일입니다.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빌3:8). 성경을 암송하고 탐구하는 일을 통해 주님을 아는 가장 뛰어난 지식을 얻습니다. 이는 왕가의 제사장들이요, 고상한 사람들(귀족들)이 할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콩가루 집안의 머슴으로 태어났건, 배움이 짧고, 돈이 없고, 능력이 없는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품을 일구어 나가고,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 내는 일은 외모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에 의해 결정됩니다.
마음에 돈을 품고 있는 사람은 수전노요, 술을 생각하면 술주정뱅이가 되고, 명예를 사랑하면 야심가요, 여자를 품고 있으면 색욕가요, 지혜를 사랑하면 철학자이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생각하고 묵상하는 사람, 말씀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왕가의 제사장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저는 아는 것이라고는 장사와 돈밖에 없습니다. 저는 아는 것이라곤 주식 매매 쪽 일과 부동산에 관한 것이 전부입니다. 저는 세금 계산하는 것만 좀 압니다. 저는 미국 법에 대해서는 환하지만 다른 것은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춤과 노래와 술 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알아서 한 평생을 살았다면 그것은 차마 인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고 자식들 다 교육시키고, 지금은 집도 있고 차도 있으며, 여유롭고 편안하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차마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반면 제가 아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고, 참된 진정한 인생입니다. 주님을 아는 사람, 주님만 생각하는 사람, 주님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서 주님을 아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자연스럽게 배어져 나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모든 곳에서 그분을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고후2:14). 하나님만 생각하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저는 십자가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십자가의 전달자요,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느니라.](고전2:2). 제가 자랑할 것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자랑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나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여러분들이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자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배설물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공부하고 안다고 자랑하지는 않습니까? 제가 아는 한 분은 책을 100권 이상 쓴 저술가이며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30세가 되기 전에 방대한 독서를 통해 철학과 종교에 밝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킹제임스 성경을 40독을 한 후에 인간들이 쓴 모든 책은 헛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80독을 한 후에 성경은 ‘살아 있는 책’이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자신이 가졌던 모든 지식이 모두 헛것이란 사실을 알고 ‘반(Anti) 지성 선언’이란 책을 냈습니다. 사람들이 자랑하는 철학과 종교와 과학적 지식의 허상을 조목조목 짚어 놓은 역작입니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기를, 평생 배설물을 공부하는 개 같은 인생을 살다가 이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고귀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느 날 그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 구절이 몇 구절이나 되는지 시험하고 싶은 마음에 녹음기를 켜두고 알고 있는 구절들을 암송하며 녹음하기 시작했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끝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경 암송이 얼마나 철저하고 완벽했는지 모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성경을 통해서 주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시고, 무엇을 하셨고, 앞으로 무엇을 행하실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뜻(will)/하시느니라.](딤전2:4).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진리를 아는 지식은 한두 번 들은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한 번 보았다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장인(匠人)이 만든 음식도 진한 국물 맛을 알고, 그 손맛을 아는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어떤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도 보고 또 보면서 그 작품을 감상하고 음미합니다. 하물며 주의 말씀인 성경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묵상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성경 암송은 진리의 지식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하고 완전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 자체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안다(know)는 말은 정보를 취득하여 활용할 기술을 지니고, 분석하고 예측하는 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적 의미에서 안다는 것은 부부 관계에서 사용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아담이 이브를 알았을 때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다시 알았을 때 셋을 낳았습니다. 마리아는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니...’라고 말합니다. 남자를 알아야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이와 같은 앎입니다. 인격적인 순종과 믿음에 기초한 ‘앎’입니다. 영과 영의 결합입니다. [그러나 [주]와 결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6:17).
사람은 부부관계든 부자 관계든 친한 친구 관계라도 상대를 진정으로 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 방에서 같이 잠을 자고, 같은 식탁에서 먹어도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고, 그 사람 역시 내 마음속에 들어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면 더 심각한 경우도 허다합니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알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우리는 어떻게 아는 관계입니까?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고, 내가 주님 안에 들어오는 그런 관계가 앎의 관계입니다. 주님이 여러분 안에 들어와 계시고, 여러분이 주님 안에 들어가 있다면 여러분들은 ‘내가 주를 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내가 그를 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야 합니다(벧후3:18). 성경 암송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두고, 그것을 되새김질함으로써 주님을 맛보고, 경험하고, 믿고, 순종하며, 신뢰를 하게 됩니다.
성도가 주님을 아는 지식은 경험적이며, 깊은 인격적 관계성이 맺어진 상태로 아는 것입니다. [오 {주}께서 선하신 것을 맛보고 알지어다.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시34:8). 맛보고 알라는 것은 경험을 통하여 그 성품을 알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선하심, 좋으신 하나님을 맛보고 알라고 하십니다. 삶 속에서 주님을 경험하고, 영과 혼이 그 하나님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말로만 은혜, 은혜 할 것이 아니라 그 은혜로우심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너희가 [주]께서 은혜로우신 것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2:3). 이런 모든 일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성경 암송입니다. 성경을 마음속에 암송하고 묵상할 때 우리는 평소에 전혀 알지 못했던 주의 선하심과 은혜로우심에 대해 민감하게, 섬세하게 깨닫게 됩니다. 무감각했던 영적 지각이 예민해지면서 무심코 지났던 많은 일들에 주님의 선하시고 은혜로운 돌보심과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영으로 알고 인식하는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하기 전에 그들의 영적 상태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어리석어 나를 알지 못하였나니 그들은 미련한 자녀들이요, 지각이 없는 자들이로다. 그들이 악을 행하는 데는 지혜로우나 선을 행하는 데는 지식이 없도다.](렘4:22). 왜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까? 성경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단 일반 백성들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신학자들, 목사들부터 시작되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약에서도 제사장들, 율법사들, 목양자들이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가장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쳐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주}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고 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목양자들도 내게 범법하고 대언자들은 바알을 힘입어 대언하며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들을 따라 걸었느니라.](렘2:8).
이는 세월이 한참 지난 예수님 당시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나니 그런즉 너희가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마23:14). 과부들의 집을 삼키는 자는 로마의 병정들이나 조폭들이 아니었습니다. 강도나 도둑들이 아니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할 줄 아는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압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압니까? 전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 기록들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느니라.](마22:29)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압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알고,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아십니까? 그것을 알지 못하면 버림받은 자입니다.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을 아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은혜를 베푸십니다.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님은 인자를 베푸십니다. [오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仁慈)하심을, 마음이 올바른 자들에게 주의 의(義)를 계속해서 베푸소서.](시36:10).
주님의 음성을 즐거이 듣는 자들은 주의 얼굴 빛 가운데 걷습니다.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오 {주}여, 그들이 주의 얼굴빛 가운데 걸으리이다.](시89:15).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 주를 신뢰합니다.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 주를 신뢰하리니, {주}여 주께서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시9:10).
주를 아는 자들을 주님께서 높이 세워 주십니다. [그가 내게 사랑을 품었으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알았은즉 내가 그를 높이 세우리라.](시91:14).
주를 아는 자들은 강하여져서 공적을 세웁니다. [또 그가 그 언약을 대적하려고 사악하게 행하는 자들을 아첨하는 말로 부패시킬 터이나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공적을 세우리라.](단11:32).
주를 아는 것이 번제 헌물보다 낫습니다.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며 번제 헌물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였으나](호6:6).
주님을 아는 지식이 왜 고귀한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알고, 주님 안에서 발견되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성경을 암송하고 묵상하는 귀한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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