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에 대한 기사가 넘쳐 나길래 좀 살펴 보았다. 이 글은 '아트 린슬린'이 쓴 것이고, 조만간 테리 왓킨스 목사가 성경적으로 날카롭게 분석한 글을 올려 드리고자 한다. 소설이란 본래 허구를 사실처럼 엮는 것이 명작이다. 그런데 왜 이런 논쟁이 일어나는 것인가? 한심한 일이다. 소설과 영화에 믿음이 밀리는 성도들이 너무 많다. 전에 Passion of Christ란 영화를 보고 감동하며 흥분한 이들은 다빈치 코드를 보면서는 낙담하고 마음이 상할 것이다. 그들은 성경의 증거와 성령의 확신으로 주어진 믿음이 아니라 세상이나 역사나 과학이나 고고학, 철학이 주는 증거를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나는 Passion of Christ란 영화를 우습게 보았거니와 다빈치 코드 역시 우습기만 할 뿐이다. 누가 표를 주고 돈을 주고 보러 가자고 해도 전혀 갈 마음이 없다. 어떤 이가 Passion of Christ란 영화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처럼, 믿음을 고양해 줄 것처럼, 마치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보아야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표를 구해와서 보러 가자고 말할 때 참으로 한심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그런 영화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뿐 아니라 '피식' 웃어 줄 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세대이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 예루살렘에서 바울 서신서 원본 쪽지나 예수님이 입었던 옷이라도 발견되면 좋아서 미치려 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로 주님을 믿는 이들은 그런 외적 증거가 성경을 옹호하든, 반박하든 아무 것도 아닌 법이다. 어떤 영화를 성화라며 좋아하고 교회에서 단체 관람하다가, 어떤 영화는 보지 말라고 관람 반대 운동을 한다고 서명하고 떠드는 것을 본다. 우리의 믿음은 영화나 소설이나 고고학 증거, 과학적 자료 등에 있지 않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증거와 확신에 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누구에게 있는가? 점검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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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린슬리 / C. S. Lewis Institute 상임연구원
필자는 액션, 모험, 미스터리 등 재미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다빈치 코드」는 첫 장부터 읽는 내내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흥미를 지녔고, 허술한 결말 부분을 제외하면 지적 스릴러 소설로서 결코 실망스럽지 않다. 하지만 정말 실망스러운 부분은 바로 댄 브라운이 자신의 소설을 기독교의 근본을 공격하는 ‘실제 사실’ 처럼 보이려 했다는 점이다.
◈ 허구를 사실처럼 만든 베스트셀러
소설댄 브라운의 책은 읽을만 하다는 점과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실적’ 주장이 복합되면서 일거에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재 「다빈치 코드」는 40개 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곧 할리우드의 영화 감독 론 하워드에 의해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어느 작가에게든지 스릴이 있는 시나리오겠지만, 이 작품에서 주장하는 소위 ‘사실’ 이라고 하는 부분 때문에 논쟁의 소지가 있다.
첫 장에 ‘사실’ 이라고 제목이 붙은 글은, 1099년 설립된 유럽의 비밀 단체 ‘시온 수도회’ 의 기밀 문서로 알려진 양피지들이 1975년에 발견되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이 소설에 나오는 예술 작품, 건물, 자료, 비밀 종교 의식들에 대한 모든 묘사들은 정확한 것이다” 라고 씌어 있다. 이 말은 소설 전체에 나오는 반 기독교적 모든 주장들을 포함하고 있다.
「다빈치 코드」의 ‘사실’ 부분은 난해한 지식, 절반의 진실, 노골적인 허위 등 흥미진진한 조각들이 혼합된 것이다. 필자는 저자가 의식적으로 독자들을 현혹시키려 했다기보다 몇몇 사항들에 대해서 무지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옳지 못한 ‘전문가’ 들의 말을 들었고, 따라서 다른 증거들을 보여준다면 그의 생각을 바꿨을지도 모른다.
「다빈치 코드」는 선천성 색소 결핍증을 앓고 있는 가톨릭 성직자 사일래스가 파리 루브르 박물관장 자크 소니에르를 암살하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소니에르는 죽기 전에 깊고 어두운 비밀로 들어가는 기호적 실마리를 남겼다. 소니에르와 만날 예정이던 하버드대학 종교기호학 로버트 랭돈 교수는 곧바로 사건의 주 용의자가 된다. 경찰 암호 해독 요원이자 소니에르의 손녀 소피 느뵈가 사건을 맡게 되고, 그녀는 재빨리 랭돈의 탈출을 돕는다. 그녀는 랭돈과 함께 경찰을 피해 다니며 동시에 ‘성배’(Holy Grail)를 찾기 위해 크로스컨트리 경주에 참가한다. 와중에 그들은 레이 티빙이라는 전문가를 만나고 그는 위대한 비밀을 전해준다. 성배는 컵이 아니라 예수의 부인이며 후에 프랑스 왕의 선조가 된 아이의 어머니인 막달라 마리아의 몸이란 사실이다. 이 비밀은 교회를 무너뜨릴 것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버지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거의 모든 것이 가짜라는 거요”(1권 360쪽). “성경은 인간의 작품이란 말일세, 신의 작품이 아니고. 성경은 구름에서 기적적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야. 격동의 시기에 인간들이 만들어낸 역사적인 기록이지. 그리고 그것은 수없이 많은 번역본과 첨가, 개정 작업을 거치면서 진화해 온 것이라네.”(1권 354쪽). “신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위상 수립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되고 ‘투표’에 부쳐진 거였다오”(1권 357쪽). “그 당시 여든 개 이상의 복음서들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지. 하지만 오직 몇 개만이 신약 성경 안에 포함되도록 뽑혔다네”(1권 355쪽). 이러한 논쟁은 일부 사람들의 신앙을 흔들어 놓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극제가 되었다. 「다빈치 코드」는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 저녁 만찬에 오르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따라서 미국 외에 전 세계에서도 그 파장이 예상된다.
◈ 댄 브라운이 인용한 사소하지만 큰 오류
「다빈치 코드」에 인용된 수많은 정보 가운데 이야기 구성에 기여한 최소한의 네 가지 자료는 첫 번째로 미카엘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이 쓴 「성혈과 성배」(The Holy Blood And The Holy Grail)이다. 「다빈치 코드」의 ‘레이 티빙’(Leigh Teabing)이라는 이름은 「성혈과 성배」의 저자 리처드 레이(Richard Leigh)와 베이전트(Baigent)의 알파벳을 다시 배열해 만들어낸 것이다. 두 번째는 예수학회(Jesus Seminar)가 옹호하는 「도마복음서」(Gospel of Thomas)다. 세번째는 위카, 여성신 운동(Wicca, Goddess movement)으로도 잘 알려진 신(新)이교도주의에서 나온 「신성한 여성」(Sacred Feminine)이다. 네 번째로 작가 엘레인 파겔스가 나그함마디 문서의 중요성을 재해석한 「영지주의 복음서」(Gnostic Gospels)다.
「다빈치 코드」를 좀더 면밀히 읽어간다면 사실과 다른 수많은 사소한 오류들을 발견할 수 있다.
1.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여장을 한 것이다?(1권 185쪽) 레오나르도 다빈치 시대의 자료들이 뒷받침하듯 모나리자는 프란체스코 조콘도의 아내 ‘마돈나 리사’ 라는 실제 여인이다.
2.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동성애자였다?(1권 185쪽) 이 주장에 대한 유일한 근거는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적 변화기에 젊은 시절 다빈치는 동성애자라는 죄명으로 고소당했지만, 재판은 기각됐다.
3. 니케아 공의회에서의 투표가 막상막하였다?(1권 358쪽) 실제 투표 결과는 316 대 2였다.
4. 고대 시리아 언어인 아람어 학자들은 빌립 복음서 63장 34절에서 마리아를 지칭하는 ‘짝’(companion)이란 말이 당시에는 ‘부부’를 뜻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2권 16쪽). 그러나 (콥트어 문서에서) 헬라어 차용어는 ‘코이노노스’(koinonos)다. ‘코이노노스’는 공유자, 연합자, 짝, 파트너 등 동행자를 의미하며 실제로 마리아는 동행자였다. 헬라어에서 ‘부인’ 을 뜻하는 구체적인 단어는 ‘가이네’(gyne)다.
5. 초대 교회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흑색 선전이 없었다(2권 12쪽). 주후 591년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이전까지 마리아를 창녀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누가복음 7장의 ‘죄인인 한 여자’ 와 누가복음 8장의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 와 혼동했을 것이다.
6. 사해의 두루마리는 1950년이 아닌 1947년에 발견되었다(1권 359쪽). 사해 두루마리에서 어떠한 복음서나 기독교 문학도 발견되지 않았다(1권 359쪽).
7.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 막달라 마리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1권 12쪽)은 전문가인 카르멘 밤벡 등 대부분의 미술사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8. 사일래는 오푸스 데이의 킬러 ‘수도승 ’으로 묘사되지만 오푸스 데이라는 조직에 ‘수도승’ 은 없다.
- 저자의 주장 1 - 예수가 결혼했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으며 아이가 있었다? 예수가 결혼했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전혀 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가 사역에 집중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기로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댄 브라운이 말하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 유대적이라는 주장 - “당시의 사회 규범은 유대인 남자가 결혼하지 않는 것을 금하고 있었소. 유대교 관습에 따르면 독신 생활은 비난받아 마땅한 짓이었고…”(2권 15쪽) - 은 어떤가? 유대인 랍비들이 결혼을 옹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외도 허용되었다.
예수 시대 당시에 존경받는 유대교 단체인 쿰란 공동체의 에센파는 독신을 옹호했다. 예수는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다고 가르쳤다(마 19:10~12).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받은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에서 독신에 대해 이와 비슷한 의견을 옹호했다. 어떤 사람은 사역에 더욱 자신을 드리기 위해 독신을 선택할 수 있다. 광야의 선지자 세례 요한은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예수가 결혼하고 아이를 두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절대로 예수의 신성에 방해되는 본질적인 장애가 아니다. 결혼과 가족은 선한 것이다. 예수는 온전한 인간이셨고 동시에 온전한 하나님이셨다. 예수가 결혼했다는 것은 예수의 신성에 대해 어떠한 본질적인 문제가 될 수 없다. 다만 유일한 문제는 예수가 결혼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를 읽고 가장 아쉬운 것은 허술한 결말이다. 소설은 흐느낌과 한숨으로 끝난다. 필자는 차라리 그 ‘비밀’이 밝혀져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보았으면 했다. 브라운도 그런 결말을 고려해 보았으리라고 의심치 않는다. 문제는 만약 예수가 결혼했던 비밀이 밝혀졌다면 교회는 ‘그래서 어쨌다고?’ 라고 말했을 것이다.
- 저자의 주장 2 - 4복음서 위해 80개 복음서가 포기되었다?
데럴 복은 그의 저서 「다빈치 코드를 해독하다」(Breaking the Da vinci Code)에서 이 부분이 「다빈치 코드」에서 가장 많이 오도되었다고 말했다.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영지주의 복음서는 5개만 있다(진리, 토머스, 빌립, 애굽, 마리아). 벤틀리 레이튼의 저서 「영지주의 복음서」(Gnostic Scriptures)에는 단지 3개의 복음서만 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네 복음서에 관해선 초기 때부터 받아들여지고 읽혀진 것으로 보인다. 독일인 학자 마틴 헹겔은 “4복음서들은 주후 69년에서 100년 사이에 처음으로 유포되었다”고 말한다. 신약 성경은 처음부터 권위를 인정받았다. 교회가 정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정경이 교회를 만든 것이다.
4복음서를 포함한 신약 성경의 4/5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마르시온(AD 90~160년)처럼 처음부터 받아들여진 성경들에 반대해 목록을 수정하려 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는 모든 구약을 제외시켰고 신약에서 누가복음과 바울 서신 10편만을 성경으로 정했다. 바울 서신을 즉각 정경으로 받아들인 것은 베드로후서 3장 16절에서 베드로가 바울 서신을 성경으로 언급한 것에 기인한다. 바울은 처음부터 누가복음을 성경으로 언급하고 있다(딤전 5:18, 눅 10:7). 주후 200년부터 무라토리안 정경(Muratorian Canon)은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등을 제외한 현재의 신약 성경을 포함해 모든 곳에서 인정받은 책들을 나열하고 있다. 초대 교부들은 4복음서를 받아들였다. 초대 교회에서 영지주의 복음서들을 받아들였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 저자의 주장 3 - 기독교는 여성의 존엄성, 가치를 파괴했다?
과연 기독교가 여성의 존엄성과 가치에 상처를 입혔는가? 교회 역사를 들여다보면, 분명히 여성 차별의 비극적인 예들이 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창 1:26~28)는 성경의 가르침을 본다면,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바울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들 때문에 교회에서 어떤 사람들은 여성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대해 비판하고 바로 잡는데 선지자적인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 부인을 장례식 때 함께 화장하는 것을 폐지한 것, 중국에서 여자들의 발을 묶는 것을 폐지한 것, 1848년 뉴욕 세네카 폴스에 있는 웨슬리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여성 운동이 시작된 것, 오늘날 성노예 매매를 막기 위한 운동의 최전방에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대학에서 기독교적 관점으로 페미니즘을 강의하는 마르디 키즈는 “당신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부당함, 억압, 악행들이 행해졌다는 당신의 관점에 의해 영향을 받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어떤 것을 선하고 악한 것, 정당하고 부당한 것, 옳고 그른 것이라고 판단할 확고한 근거가 없는 영성을 택했다.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해 가장 널리 퍼진 영성-위카, 크래프트로도 알려진 신 이교도주의 여신 운동은 선과 악에 대한 절대적인 구별을 강력히 부정한다. 오직 정의, 선, 옳은 것에 대한 고정된 기준을 제시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만 당신은 불의, 악, 잘못된 것에 대한 알맞은 근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여신 운동의 옹호자 스타 호크는 “마법에서 하나님의 어둡고 쇠퇴하는 면은 악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 구조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라고 말한다. 필립 데이비스는 최근 그의 책 「여신 마스크를 벗다」(Goddess Unmasked)에서 “초월자에 대한 신 이교도주의의 부인은 본질적으로 절대적 도덕적 악에 대해 어떠한 근거도 제거한다. … 결과적으로 여신 운동에서 도덕적 경계에 대한 신 이교도주의의 거부는 성의 영역에서 가장 잘 설명돼 있다.”고 말한다. 브라운의 성에 대한 세계관 뒤에 바로 이러한 종류의 상대주의, 기존의 도덕적 경계의 철폐가 있다. 그러나 일단 분명하고 고정된 도덕적 경계선들을 철폐한다면 브라운이 그의 등장 인물들을 통해 비판하는 여성에 대한 부당한 대우 등을 포함한 기독교와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 판단의 도덕적 근거도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 저자의 주장 4 - 시온 수도회는 1099년 이후 ‘성배’에 관한 비밀을 간직해왔다?
댄 브라운이 ‘사실’ 페이지에서 주장하는 대로 시온 수도회는 1099년 이후 ‘성배’ 에 관한 비밀을 지켜왔는가? 이것은 모두 사기다. 소문으로 템플 기사단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10년에서 1519년까지 단장으로 있던 시온 수도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성배의 진정한 본성을 보여주는 오래 전 잃어버린 문서를 발견했다고 한다. 댄 브라운은 1982년에 나온 책 「성혈, 성배」에 의존하고 있고, 이 책의 저자들은 1953년 사기죄로 징역살이를 했던 프랑스인 피에르 플랜타드가 제공한 문서들에 의존하고 있다. 1954년 플랜타드와 다섯 명의 다른 남자들은 ‘시온 수도회’라고 부르는 조그만 사교 클럽을 시작했다.
클럽의 주된 목적은 프랑스에서 저렴한 주택 공급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 플랜타드는 프랑스 왕조가 막달라 마리아의 혈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련의 서류들을 위조했다. 1971년에 플랜타드 클럽의 회원 중 한 사람인 필립 드 체리지는 그 양피지들이 위조된 것임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플랜타드는 프랑스 작가 장 루크 초메일에게 이 사실을 인정했지만, 나중에 그 위조된 것이 원래 원고의 사본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구명하려고 했다. 훨씬 나중에 그는 전혀 새로운 계획으로 다른 문서들을 만들어 냈는데, 플랜타드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프랑스 대통령의 친구 중 한 명을 시온 수도회의 단장으로 지명한 것이다.
1993년 「성혈, 성배」가 나온 지 11년 후 플랜타드는 법정 소송에서 ‘시온 수도회’ 에 대한 모든 것들은 조작되었음을 증언했다. 법원은 플랜타드의 집을 수색할 것을 명령했고, 피에르 플랜타드가 프랑스의 진정한 왕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다른 서류들을 발견했다. 판사는 플랜타드에게 엄중한 경고를 내렸고, 그를 아무런 해가 없는 허풍쟁이로 무시했다. 수많은 책들과 글들은 플랜타드의 사기성을 밝혀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수백만 명의 독자들이 그것을 사실로 믿고 있다.이것이 마지막은 아니며 마지막의 시작은 더욱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와도 맞서야 한다.
※ 아트 린슬리는 C. S. Lewis Institute의 상임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True Truth: Defending absolute Truth in a Relativistic World(IVP) 등이 있다. 이 글은 「Knowing & Doing」 2004년 여름호에 실린 내용으로 허락을 받아 <빛과 소금 2004년 10월> 호에 번역, 게재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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