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부흥 90 - 73. 참된 자유
말씀; 요8:32


오늘날 믿지 않는 자들은 두 가지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속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들은 모두 자유로운 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말씀 안에 꾸준히 거하는 사람들뿐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속박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자유를 이야기하고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하지만 참된 자유가 없습니다. 이는 꼭 정치적 경제적 자유만이 아닙니다. 언론, 집회, 결사, 출판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런 것보다 훨씬 무서운 속박의 사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사람들은 죄의 종입니다. 누구나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으며, 마귀의 이끌림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니라.](요8:34). 죄를 범하면 죄는 즉시 주인이 되어 그 사람을 다스립니다. 사람은 자신을 누구에게 내어 주느냐에 따라 죄의 종이 되기도 하고 순종의 종이 되기도 합니다. [너희 자신을 누구에게 종으로 내어 주어 순종하게 하면 너희가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구원받았다고 해도 주님께 헌신하지 않으면 그는 여전히 구원받은 죄의 종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영은 거듭났습니다. 혼은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죄악된 습관을 끊지 못하고 정욕에 이끌림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몸의 지체들을 죽이고 거룩함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몸을 산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열매 맺으심으로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② 사람들은 향락의 종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고 불순종하고 속임을 당하고 여러 가지 정욕과 향락의 /종이 되어/ 섬기며 악의와 시기 가운데 살며 증오하며 서로 미워하는 자들이었으나](딛3:3). 사람들은 쾌락을 사랑하며, 쾌락을 즐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쾌락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쾌락의 종이 됩니다. [배신하며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딤후3:4). 죄인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죄를 지배하고 있으며 언제든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두고 하고 싶을 때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입니다. 쾌락이 이끄는 대로 갑니다. 쾌락, 유희, 오락, 향락은 사람들의 도구나 소품이 아니라 그것을 즐기는 자의 주인이 됩니다. 밖으로 나가 노는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불안하고 평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일이 되어도 가족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야만 삶의 의미를 느낍니다. 술집에 가는 사람들, 도박장에 가는 사람들은 모두 취미로, 여가 시간에 잠깐 재미로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시대는 Entertainment가 극도로 발달해 있습니다. 이것으로 사람들의 시간과 관심과 생활을 휘잡습니다. 각종 볼거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놀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세상은 마귀의 문화이고, 마귀는 쾌락으로 사람들을 종으로 삼습니다. 참고* 쾌락의 특징- 말씀을 듣고 나아가는 자들의 숨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함(눅8:14). 방탕함에 빠져 마음을 살찌게 한다(약5:5). 우리는 이 땅에서 쾌락을 즐기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고난을 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쾌락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택하였으며](히11:25).

③ 사람들은 부패의 종입니다. [그들이 자유를 약속하나 정작 자기 자신은 부패의 종이 되었으니 이는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라.](벧후2:19). 사람들은 아무리 종교적이고 도덕적이라고 해도 부패한 사람입니다. [이전의 행실에 관하여는 너희가 속이는 것으로 가득한 욕심들에 따라 부패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4:22). 만물보다 심히 사악하고 더러운 마음(heart)를 가진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는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다 누더기 같습니다. [오직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불법들이 우리를 바람같이 몰아가나이다.](사64:6). 물건은 방부제를 뿌리든지 냉동실에 보관해서라도 어떻게 부패를 방지해 보겠지만 사람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단 한 가지는 하나님께 새 생명을 받아 새로운 성품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몸을 입음으로 부패의 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④ 사람들은 마귀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지 않으면 그는 마귀의 종이 됩니다. 마귀는 이 세상 통치자입니다. 마귀는 세상 왕국들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왕국을 세우시는 날까지 마귀는 마치 이 땅을 자신의 것인양 소유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혼을 붙들고 있습니다.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靈)이라.](엡2:2). *요8:44 참조. -너희 아비 마귀. 불신자들은 모두 마귀의 자녀들이다.

성도들이라고 해서 죄의 종, 마귀의 종, 부패의 종, 향락의 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교리적으로는 완전히 벗어났지만 실제 삶은 여전히 마귀의 올무에 매여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교만해지면 누구나 마귀의 정죄에 빠집니다(딤전3:6). 성도들은 마귀의 올무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딤전3:7). 아예 마귀에게 사로잡힌 포로도 있습니다. 승전국의 군인이 패전국에 포로로 잡힌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마귀에게 포로로 잡혀 사는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 [이것은 마귀의 뜻대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회복시켜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려 함이라.](딤후2:26). 성경은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 마귀의 올무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신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주님께 헌신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는다면 언제나 넘어질 수 있습니다. 다윗이 믿음이 없고,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어서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깨어있지 못하고 육신을 따를 때 육신적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진자는 이긴 자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벧후2:19).

성도들은 주님이 주신 영광스런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박당한 종처럼 사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저 역시 그런 체험이 있습니다. 참된 자유를 맛보지 못한 채 늘 무엇인가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즉 내가 한 법을 발견하였나니 곧 내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에 악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로다. 이는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안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보기 때문이라.] (롬7:21~23). 자신 안에는 언제나 또 다른 나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이전 사람 즉 옛 사람이 하나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새 사람이 하나입니다. 옛 사람이 완전히 처리되고, 새 사람의 성품과 능력으로만 살면 우리는 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 새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옛 사람의 특징만 드러나면 육신적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새 사람으로만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유를 누리는가?

①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주님을 믿으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롭게 되리라.](요8:36). 주님께서 자유를 선포하셨고, 마귀의 사슬을 끊어 버리셨습니다. 마귀의 권세를 파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믿기만 하면 자유를 얻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종노릇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군대를 제대한 민간인이 군법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사면을 받은 죄수는 더 이상 교도소의 규율을 따를 필요가 없고, 간수의 지시를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 자유를 얻은 순간 더 이상 종이 아니며, 죄수가 아닙니다. 우리 역시 그러합니다.

② 진리의 말씀에 꾸준히 거하면 자유를 누립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꾸준히>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리니 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1~32).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속에 들어가면 그는 탄광의 파묻힌 갱도 속에서도 자유를 누리며, 옥중에 갇힌 몸으로도 자유를 누리며, 파선한 배에 갇혀서도 자유를 누립니다. 이것이 말씀이 주는 진정한 자유입니다. 진리의 빛은 어떤 어둠도 걷어 내 버립니다. 생명의 빛은 사망과 어둠을 모두 몰아 내 버립니다. 말씀에 꾸준히 거하게 될 때 누리는 자유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③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자유를 누립니다. [이제 {주}는 그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3:17). 성령이 임하면 자유를 누립니다. 영광스런 자유,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속박하는 영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영입니다. 다윗은 죄의 속박에서 뼈가 타는 듯한 고통을 경험을 한 후에 자유를 갈구했습니다. [주의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주의 자유로운 영으로 나를 붙드소서.](시51:12). 성령은 자유로운 영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성도들은 현재의 죄, 육신, 세상, 마귀 등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한 삶을 누리며 삽니다.

④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자유롭습니다. 성도들은 주의 종으로 불리지만 이는 사역의 관계에서 그렇고 실제 신분은 종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아들의 영을 받았습니다(갈4:6).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너희를 지배하지 못할 것임이라.](롬6:14). 은혜는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를 다스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방을 얻었습니까? 은혜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리의 틀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고 의의 종이 되었느니라.](롬6:17~18)

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율법의 정죄와 저주는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사형에 처하며, 유죄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율법의 마침(롬10:4)이 되셨습니다. 주님 자신이 친히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의를 충족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의(義)이십니다. 율법의 2대 기능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롬3:20).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訓育) 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라.](갈3:24).

⑥ 우리는 두려움에서 자유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죽음의 공포를 잠재의식 속에 안고 삽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죽음의 공포를 완전히 벗어 버린 사람들입니다. [자녀들은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또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속박에 얽매인 자들을 건져 내려 하심이라.](히2:14-15). 우리는 죽을 것 같은 위기와 고난을 많이 겪지만 자유를 누립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참으로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시23:4). 우리는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습니다(롬8:15).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두려움도 없습니다. [사랑에는 결코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이는 두려움에 고통이 있기 때문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완전하게 되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⑦ 삶의 근심에서 자유입니다. 여러분은 먹고 사는 문제, 건강 문제, 장래 문제에 대해 근심과 염려 속에 있습니까? 자유를 누리고 삽니까? 성도들은 자유를 누립니다. 무대책의 자유가 아닙니다. 삶의 포기도 아닙니다.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자유를 누립니다.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이는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기 때문이니라.](벧전5:7).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자유를 누립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주님께서는 먹을 것,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굶어 죽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6:31). 내일 일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말지니 이는 내일이 자기 일들을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악은 그 날에 족하기 때문이니라.](마6:34).

⑧ 미래의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 자유롭습니다. *요5:24, 살전1:10 참조. 우리의 구원은 영원히 안전합니다. 아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롬8:38-39).

이상의 자유를 누리고 산다면 복되고 행복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염려가 없고, 두려움이 없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얻은 자유는 참된 자유입니다.

☜ 암송할 말씀: 요8:32, 시51:12

☜ 생각해 볼 문제:

- 사람들의 종된 상태에 대해 기술하시오.
-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근거는 무엇인가?
- 참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기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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