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월요일에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습니다.
거기서 또 오랜만에 물건 판매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안면몰수하고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물건을 알리기 위해 큰소리로 떠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경도 쓰지 않았고 고개 수그리거나 돌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도 그 소리를 듣기 싫었지만 목소리가 컸기에 저절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대부분이 무시하지만 그 중에 몇 명은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사람들의 그런 모습이 지하철에서 내려, 목적지에 가는 동안 머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저런 식으로 전해야 하지 않을까?"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큰소리로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저뿐만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대놓고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상대방이 싫어할까봐죠.
그래서 내놓은 대안이 생활로 복음을 전한다입니다. 바른 생활로 그들을 감화시키고 그 다음에 복음을 전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신앙생활 오래했지만 교회로 데려온 사람은 손에 꼽고 여태 교회 다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밖에 없습니다. 진실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람의 체면을 살펴보며 하는 전도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전도자들은 대부분이 사람의 체면을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듣기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예외는 아니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전도에 관한 말씀들을 살펴보면 더욱더 확실해집니다.
"너는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항상 예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 디모데후서 4장 2절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깨어 있어 고난을 견디며 복음 전도자의 일을 행하며 네 사역을 온전히 입증하라." 디모데후서 4장 5절
"내가 복음을 선포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고린도후서 9장 16절
이런 말씀들을 대할 때마다 제 마음은 무겁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실로 이와 같은 상태가 되기 원합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그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아니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 내 뼈 속에 사무치니 내가 참기에 지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노라." 예레미야 20장 9절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사무쳐 그분에 관한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싶습니다.
구청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전하고 있지만 강도가 너무 약한 것 같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심각한 얼굴이 아니라 웃는 얼굴이니 아무래도 제가 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조차 듭니다.
휴...답답합니다. 구령, 주께서 원하시는 혼을 이겨오는 일에 내 자신이 너무 소홀히 여겨서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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