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를 건넌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 바로 광야의 여행에 접어들었습니다. 광야는 육신적으로는 힘들고, 거친 곳이지만 영적으로 매우 유익한 곳입니다. 주님이 해로나 좋은 길을 제쳐두고 광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데는 뜻이 있습니다.
1. 광야를 통해서 주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연단과 시련을 통한 믿음을 심어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의 열 가지 재앙의 특별한 체험과 홍해의 기적 등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흥분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체험과 감정적 흥분은 삼일의 광야 여행동안 마른 땅의 수증기처럼 모조리 말라 버렸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 부른 찬양은 마음 속에서 그 유효기간이 3일을 넘지 못했습니다.
광야 여행의 목적은
첫째, 이스라엘을 시험하시고 낮추시는 것입니다. {[주] 네 하나님께서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너를 인도하신 그 모든 길을 기억할지니 이것은 그분께서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또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려 하는지 그렇지 아니한지 알고자 하심이라.}(신8:2). 주님은 우리의 믿음, 우리의 찬양이 심중에서 나온 것인지 광야로 인도하심으로 시험하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메마른 광야를 통과하는 중이라면 자신을 낮추는 시간이 되어 정금같이 빚어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광야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는 자연 환경입니다. 그런 곳에서 살아났다면 우리는 빵과 물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 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고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3). 성도들이 아직 이 진리를 배우지 못했다면 오랫동안 광야 생활을 더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주의 징계하심을 생각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또 너는 사람이 자기 아들을 징계하듯 [주] 네 하나님께서 너를 징계하심을 마음 속 깊이 생각할지니라.}(신8:5). 현대 기독교는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과 사랑과 위로만 있는 반쪽짜리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서 자기들이 발췌한대로 인위적으로 조작한 자기들의 마음에 맞는 하나님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주님은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광야는 징계를 통해 우리를 바로잡고, 훈육하는 장소입니다.
사람은 겪어 보아야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안에 있는 모든 육신의 죄성을 다 드러내 보였습니다. 크리스찬들에게 이 세상은 황량한 광야입니다. 자연인들은 이곳이 고향이지만 우리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여행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그네요, 순례자입니다. 잠시 머물다 곧 다른 곳으로 이동할 곳에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부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광야는 영적 생활에 접어든 성도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입니다. 홍해와 가나안 사이에는 걸어야만 하는 광야가 있습니다. 실로 광야의 교훈은 참으로 귀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귀한 시간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의 여행을 통해서 자신들이 왜 택함받았는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롭거나 거룩하거나 두뇌가 탁월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한 이유는
첫째, 사랑 때문입니다. {[주]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들의 뒤를 이은 그들의 씨를 택하시고 자신의 큰 권능으로 친히 보시는 중에 너를 인도하여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시며}(신4:37).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특별히 믿음의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으로 인해 이들은 구원받았습니다.
둘째, 수가 가장 적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고 너희를 택하신 것은 너희가 다른 백성보다 수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모든 백성들 중에서 수가 가장 적으니라.}(신7:7). 하나님은 이집트나 바빌론이나 로마 제국을 택하시지 않으시고 가장 수가 적은 히브리 민족을 택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네가 가서 그들의 땅을 소유하게 됨은 네가 의롭거나 네 마음이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이 민족들이 사악하므로 [주] 네 하나님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기 때문이니 이것은 [주]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로 하신 말씀을 친히 이루려 하심이니라.그러므로 /너는/ 알지니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이 좋은 땅을 소유로 주신 것은 네가 의롭기 때문이 아니니라. 이는 네가 목이 뻣뻣한 백성이기 때문이니라.}(신9:5~6). 이스라엘은 결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의롭기 때문에 땅을 주시는 것이 아님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셨습니다. 유업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는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와 흡사합니다. 우리가 받게 될 상급 역시 모두 주님의 은혜의 결과이지 나의 땀의 수고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계시록4:10에 보면 자기들의 왕관을 주님 앞에 던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왕관이 자신들의 공로라고 주장하며, 쓰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스물네 장로가 왕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경배하고 자기들의 왕관을 왕좌 앞에 던지며 이르되,](계4:10). 우리 역시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도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이며, 나의 수고 역시 주님의 은혜입니다(고전15:10).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 우리는 이런 점을 늘 기억한다면 많은 열매를 맺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설교 중에서-
'목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약함을 자랑하자 (0) | 2005.02.13 |
---|---|
심판받은 죄인들의 불만.... (0) | 2005.02.13 |
전도자의 모습은 지하철 안의 판매자의 모습이 아닐까 (0) | 2005.02.11 |
공부하라 (0) | 2005.02.08 |
진리에 대한 바른 자세 (2) | 2005.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