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 출애굽기 서론(I) ◁ 2002년 10월 5일


01. 출애굽의 하나님

말씀: 출애굽기 6:6,7
요절: 출애굽기 6:6,7


오늘부터 출애굽기를 통해 출애굽의 하나님을 함께 공부하고, 배우고자 합니다. 이전에 기록된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의 배움을 위한 것(롬15:4)이란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의 깊게 성경의 모든 단어 하나 하나에까지 주의를 기울이고(벧후1:19) 읽고, 묵상하고,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부주의한 성경 독자들이 결코 찾을 수 없는 영적 보화들을 다 캐낼 수 있어야 하며, 성경을 읽지 않는 성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식은 곧 힘입니다. 우리의 지식은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지 결코 자랑하거나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알고 행동하기 위한 것이며, 지식은 믿는 바를 흔들림없이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적 지식을 주시는 것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골로새서 1:10,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골1:10). 우리가 아는 지식이 열매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거나, 남을 정죄하거나, 자기를 자랑하는데 사용된다면 그것은 해악일 뿐 아니라 큰 범죄입니다. 지식은 언제나 영적 열매를 맺는데 유익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이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한즉 너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빈약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1:8)라고 합니다. 출애굽기는 영적 보화의 창고이며, 이 책을 공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구속의 하나님’,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조명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애굽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주의 말씀 자체를 기뻐하고 그 속에 심취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119:162, [많은 노략물을 얻은 사람같이 나는 주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나이다.] 주님께서 출애굽기 공부를 통해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영적 각성과 부흥의 풍성한 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합니다.

창세기가 시작의 책이라면 출애굽기는 구속의 책입니다. 이어지는 레위기는 경배에 관한 책입니다. 오늘은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출애굽기의 전체적인 개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이란 뜻은 to depart(떠나다)란 뜻입니다. 히브리서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죽으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자기 뼈들에 관하여 명령을 주었느니라.](히11:22). 출애굽기의 핵심 어휘는 구속(redemption, redeem Ex 6:6; 13:13,15; 34:20;)입니다. 출애굽기의 저자는 모세입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인정하신 내용입니다(요7:19, 요5:46-47). 출애굽기는 역사적인 책이면서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구원과 성도의 생애에 대한 풍성한 예표들로 넘쳐납니다.

출애굽기는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구속의 필요성입니다. 1-6장은 이집트의 노예로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의 절규가 하늘로 메아리칩니다. 노예가 없는데 노예 해방이 있을 수 없고, 죄인이 없는데 사면이 없듯이, 구속의 필요성이 없는 곳에 구속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박한 구속의 필요성을 외쳤습니다. 둘째, 구속자의 능력입니다. 7-11장은 각종 이적과 기사를 통해 강하신 분의 능력이 온 이집트를 강타합니다. 하나님은 구속의 필요를 외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한 구속의 능력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셋째, 우리는 구속의 특징을 봅니다. 12-18장에는 피를 통한 구속, 능력을 통한 구속이란 분명한 특징을 보여 줍니다. 창세기에서 어린 양이 약속되었고, 출애굽기에서 어린 양이 피를 흘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대속에 관한 진리가 한층 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계시는 점진적으로 발전합니다. 넷째, 우리는 구속받은 자들의 의무에 대해 배웁니다. 19-24장은 구속받은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순종해야 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신성한 의무에 대해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속받은 백성들을 내 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출애굽기의 핵심 구절 중의 하나는 6:6,7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주]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속박에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고 또 편 팔과 큰 심판들로 너희를 구속(救贖)하며 너희를 취하여 내게 한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주] 너희 하나님 곧 이집트 사람들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자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6:6,7). 구속은 바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이 체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구속받은 자들의 실패와 불순종에 대한 주님의 대비책에 관한 말씀입니다. 25-40장입니다. 하나님은 불신과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을 파괴하는 백성들에 대해 죄사함의 근거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성막과 예배에 대한 규례가 주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구속받은 것이 아니었듯이, 그들의 일생 역시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이는 신약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가지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바랄 뿐입니다. 출애굽기 15:13, [주께서 구속(救贖)하신 백성을 주의 긍휼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인도하사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셨나이다.] 성도가 성도답게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입니까? 맞습니다. 성경입니까? 맞습니다. 기도입니까? 그렇습니다. 성도의 교제입니까?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성도답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필요하지만 나의 나되는 것은 지식으로도, 훈련으로도, 혹독한 징계와 심판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 살인자요, 박해자였던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 다른 무엇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그 날부터 온 세상에서처럼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도다.](골1:6). 출애굽의 하나님은 바로 구속의 하나님이시며,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 성품은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출애굽기를 공부할 때 몇 가지 명심해야 할 성경적 예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는 예표로 넘쳐나는 책입니다. 이는 신약 성경의 해석과 교훈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집트는 세상의 예표입니다. 이집트는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속박하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신명기 4:20, [그러나 [주]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 용광로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사 이 날의 너희와 같이 자신을 위하여 상속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신4:20, 참조: 왕상8:51, 렘11: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출애굽 이후로는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들과 동맹을 맺지 말아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말들을 번성시키기 위해서라도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는 일은 저주받을 일이었습니다. 신명기 17:16, [오직 왕이 된 자는 자기를 위해 말들을 많이 늘리지 말 것이요, 말들을 많이 늘리려고 백성을 이집트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주]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후로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라.](신17:16). 파라오는 이 세상 신인 마귀의 예표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노예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라오는 결국 하나님의 백성을 끝까지 핍박하려다가 결국 자신이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파라오를 심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적그리스도는 마지막에 주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교회의 모형입니다. 이 세상에서 구속받고,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침례의 모형이며, 세상과의 단절을 나타냅니다. 고린도전서 10:1, 2 [또한 형제들아, 나는 /이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모두 바다를 지나가며 모두가 구름과 바다 속에서 침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고](고전10:1,2).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요6). 요한복음 6:48-51, [내가 곧 그 생명의 빵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빵이니 사람이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아니하리라.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사람이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내가 주고자 하는 빵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고자 하는 내 살이로다, 하시니라.] 터진 반석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터진 반석을 통해서 물이 나오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성령이 오십니다. 고린도전서 10:3,4 [모두가 같은 영적 음식을 먹으며 모두가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느니라. 이는 그들이 자기들을 따라가던 영적 반석으로부터 마셨기 때문이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였느니라.](고전10:3-4). 아말렉은 육신의 모형이며, 순례의 길에서 성도들을 괴롭힙니다(출17). 출애굽기에서 가장 강력한 예표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피의 대속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로다.]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중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이 모세입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모세는 사역에서 주님을 예표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언자(행3:22)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대언자입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나같은 대언자”라고 말했습니다. 신명기 18:15, [[주] 네 하나님께서 네 한가운데서 곧 네 형제들 중에서 나와 같은 대언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켜 세우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니라.](신18:15). 여기서 대언자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대문자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여러 대언자가 아니라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같이 신약을 대표하는 유일한 대언자 한 명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신명기 18:18, [이에 따라 내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서 너와 같은 대언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켜 세우고 내 말들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가 그들에게 다 말하리라.](신18:18).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말씀하시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모세는 제사장이었습니다. 흔히 아론이 제사장이고 모세는 대언자로 역할이 분리된 것 같지만 모세는 때로 제사장의 역할을 했으며, 제사장이었습니다. 이는 시편 99:6에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제사장들 가운데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가운데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주]를 부르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셨도다.](시99:6).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히브리서 7:24, [이 사람은 항상 계시므로 변할 수 없는 제사장 직분을 소유하고 계시느니라.] 주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실행하고 계십니다. 모세는 왕이었습니다. 신명기 33:5, [그가 여수룬 안에서 왕이었으니 곧 백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모인 때에로다.] 우리 주님 역시 만왕의 왕이십니다. 모세는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시편 105:26, [그분께서는 자신의 종 모세와 친히 택하신 아론을 보내시니] 주님 역시 종으로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시고,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마태복음 12:18, [내가 택한 나의 종, 나의 혼이 매우 기뻐하는 자 곧 나의 사랑하는 자를 보라, 내가 내 영을 그 위에 두리니 그가 이방인들에게 공의를 베풀리라] 모세는 이스라엘의 목자였습니다. 그는 40년간 장인의 양떼를 치는 목자였으며, 이스라엘을 40년간 광야에서 이끄는 목자였습니다. 주님 역시 양떼들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 주거니와] 모세는 중보자였습니다. 그는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율법을 주고 받고 언약을 체결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죄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주님께 기도한 진정한 중보자였습니다. 출애굽기 33:8-9, [모세가 성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온 백성이 일어나 저마다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성막에 들어갈 때까지 그를 바라보았더라. 모세가 성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와 성막 문에 서며 주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주님 역시 유일하신 중보자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5,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모세는 구원자였습니다(행7:35). 마찬가지로 주님 역시 구원자이십니다(살전1:10). 우리는 출애굽기의 모세를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배울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하나님은 신약 성도들에게 동일한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모세의 성품 역시 주님의 성품을 잘 예표해 줍니다. 모세는 온유했습니다(민12:3,마11:29). [이 때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하여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였더라.](민12:3).  모세는 자신에게 대적하고 불평하는 양무리들을 온유함으로 감당했습니다. 온유함은 약함이나 비굴함이 아닙니다. 온유함은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이 땅의 일들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온유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 주님 역시 온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온유함은 말씀이 내 안에 내재할 때, 성령이 내 안에 충만할 때 외부의 충격과 격정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성품입니다. 마치 자동차가 충돌하는 순간 에어백이 나와서 우리 몸을 보호하듯이 외부의 심한 욕설과 불평과 질책을 들을 때에 내 안에 거하는 풍성한 말씀, 성령의 충만함이 튀어나와 나의 육신을 사로잡아 이끄는 힘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성경을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점점 더 온유의 영을 지닐 수 있습니다. 모세는 신실했습니다(히3:2). [그분께서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신실한 것같이 하셨으니] 주님 역시 모든 일에 신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성공적인 사역을 하라고 명령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신실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모세의 신실함으로 우리의 성품으로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길지어다.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할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전4:1,2). 모세는 말과 행동에서 능했습니다(행7:22). 우리 주님 역시 말씀과 행동에 능한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 그분의 설교, 행하는 이적들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6:2, [안식일이 되어 그분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시매 많은 사람들이 듣고 깜짝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그가 받은 지혜가 어떠하기에 그의 손으로 이런 능력 있는 일들을 행하느냐?](막6:2).

모세의 생애 역시 주님을 예표합니다. 모세는 태어날 때 파라오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주님 역시 태어나셨을 때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모세는 왕자로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영화보다 자기 백성들과 고난받는 것을 스스로 택했습니다. 히브리서 11:24- 26 [믿음으로 모세는 나이가 들었을 때에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기를 거절하고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주께서 보상해 주시는 일에 관심을 두었음이라.](히11:24-26). 모세는 이 세상이 주는 영화보다는 저 하늘의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에 더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 역시 마땅히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의 재물과 사라질 것들의 영광에 관심을 두기 보다 믿음으로 고난을 견딤으로 저 하늘의 보상에 관심을 두고, 위에 있는 것에 애착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 역시 스스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자기 백성들을 위해 고난받기를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면 마땅히 주님의 행동 pattern을 모델로 삼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가 되는 일은 너무 쉽습니다. 그러나, 성도로서 합당하게,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은 굳은 의지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버리고 고난을 택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의지며, 믿음의 선택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어디에다, 무엇에다 투자하시고, 어디에 씨를 뿌리시겠습니까?

모세는 처음에 백성들에게 배척받았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을 위해 일해 준 모세를 향해 [누가 너를 치리자와 재판관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행7:27)며 배척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배척받은 모세를 다시 백성들 앞에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사도행전 7:35, [그들이 이르기를, 누가 너를 치리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바로 이 모세를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난 천사의 손을 통하여 치리자와 구원자로 보내셨으니] 주님 역시 처음에는 자기 백성들의 영접을 받지 못하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모세는 두 번째 나타났을 때, 백성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주님 역시 재림하실 때, 자기 백성들로부터 영접을 받으실 것입니다.

모세는 이방 여자를 아내로 얻었습니다. 주님 역시 이방인들을 교회로 부르사 신부로 삼으셨습니다. 모세는 이집트를 정죄하고 심판했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정죄하고 심판하셨습니다. 모세는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이집트에서 백성들을 구출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십자가의 피를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한 가지 대조점은 모세가 율법을 받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호수아가 들어갑니다. 주님은 은혜와 진리를 통해 오셨습니다(요1:17).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신자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를 통해 우리는 갓 구원받은 성도가 죄와 세상과 단절된 후에도 여전히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는지 그 일생의 여정을 자세히 배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외없이 이집트의 속박 아래에서 신음하고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다 죄와 세상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구원자를 보내셨듯이, 이 땅에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이집트에서 구원받았듯이,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구원받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길은 그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홍해를 건넘으로써 자신들을 추격하던 이집트(세상)의 권세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피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죄의 용서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순례의 길이 평탄한 것은 아닙니다. 순례의 길에는 아말렉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말렉은 육신을 예표합니다. 모세가 산에서 손을 들어 기도함으로써 아말렉을 진멸했듯이 우리는 기도로 원수를 이길 수 있습니다. 아말렉을 이기는 길은 기도와 말씀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순례의 길 동안에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이스라엘의 진영을 인도했듯이 성령의 인도하심과 말씀의 조명이 우리를 저 하늘에 도착하는 그날까지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먹으면서도  [우리가 이집트에 있을 때에 마음대로 먹었던 물고기와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양파와 마늘이 생각나거니와](민11:5)라며 불평을 토했던 것처럼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먹는 것보다 세상의 음식을 먹고자 불평을 터뜨립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 가는 길은 지상에서 천상까지 가는 길을 예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갓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인 복을 어떻게 누리는가?에 대한 설계도와 같습니다. 전쟁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계속됩니다. 이는 우리가 이미 주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의 땅을 실제로 나의 것으로 성취해 나가는 믿음의 정복 전쟁입니다.

처음 구원하신 분이 주님이셨듯이, 순례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 역시 주님이시며, 가나안의 땅을 정복하도록 전쟁을 이끄시는 분 역시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일생은 구원받는 그 순간부터 주님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생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한편의 서사시가 바로 출애굽기입니다. 출애굽기는 노예로 시작하였지만 하나님의 영광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그러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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